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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忍)을 닦음에 대한 작은 깨달음

【정견망】

인(忍)이란 글자는 마음(心) 위에 하나의 칼(刀)이 있으니, 이 칼을 사용해 자신의 마음을 지켜보고 그것이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실질적으로는 우리가 어떤 일에 봉착했을 때 그것이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늘 마음을 움직이지 말고 이렇게 참아낼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좋든 나쁘든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 있으려면 곧 자신의 일체 득실(得失)을 신경 쓰지 말아야 한다. 이 한 점을 해내려면 인간 세상의 일체를 담담히 보아야 한다. 이렇게 하면 세간의 일체에 집착하지 않을 수 있고, 인간세상의 일체 득실이 당신의 마음을 이끌 수 없으며, 세간의 일체 득실을 마주하고 늘 마음을 움직이지 않을 수 있다. 다시 말해 참아낼 수 있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표준에 도달한 참음(忍)이란 마음속에 그 어떤 개인적인 집착도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 당신의 마음속에 그 어떤 집착도 없을 때면 완전히 참아낼 수 있다. 그러므로 인을 닦는 전반 과정이 바로 자신의 집착을 제거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교제할 때 개인의 득실이 생기는 데는 기본적으로 두 가지 상황이 있다. 하나는 이익의 득실이고 다른 하나는 모순이다.

이익의 득실이 있을 때, 당신이 위타(爲他)를 선택할 수 있다면, 다시 말해 자신을 내려놓고 개인의 득실을 따지지 않을 수 있고, 개인의 득실을 마주하고 마음을 움직이지 않을 수 있다면 그럼 참아낼 수 있는 것이다.

또 모순이 나타날 때, 당신이 무조건 안으로 자신의 부족을 찾고 밖으로 남의 부족을 찾지 않을 수 있다면, 이렇게 할 수 있다면 당신은 상대방의 행동에 이끌리지 않을 수 있는데, 다시 말해 마음을 움직이지 않을 수 있고 참아낼 수 있다. 다시 말해 만약 당신이 위타(爲他)와 무조건 안으로 찾음을 해낼 수 있다면 그럼 철저히 참아낼 수 있다.

예전에 동수의 문장을 읽은 기억이 난다. 한 동수가 납치된 후, 경찰이 막 그를 때릴 때, 그는 아무 연고 없는 일이란 없다고 생각해서 곧 자신에게 어떤 사람마음이 있는지 안으로 찾기 시작했다. 이때 경찰이 갑자기 그를 때리지 않는 것을 발견했다. 이 일을 통해 그는 안으로 찾음이 박해를 제지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만약 우리가 법에 입각해서 그 속의 원인을 분석해본다면, 그가 무조건 안으로 찾을 수 있었기 때문에, 인(忍)의 요구에 부합한 것이다. 이때 그가 이미 법에 입각해 있으니 구세력이 당연히 더는 경찰을 조종해 그를 때리지 못하게 된 것이다.

한 수련자로서 만약 매사에 무조건 안으로 찾을 수 있다면, 그럼 그는 곧 다음과 같이 해낼 수 있다.

첫째, 그가 무조건 안으로 자신의 부족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은 그가 이미 자신을 완전하게 진정한 수련인으로 여겼음을 의미하며, 그렇다면 그는 진(真)을 해낸 것이다.

둘째, 사부님께서 “선자(善者)는 늘 慈悲心(츠뻬이씬)이 있어, 원망도 증오도 없이, 고생을 낙으로 삼는다.”(《정진요지》〈경지〉)라고 하셨으니 그가 무조건 안으로 자신의 부족을 찾고, 상대방의 부족을 찾지 않을 수 있다면 그가 상대방에 대해 원망이나 증오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니 이는 선(善)에 부합한다.

셋째, 그가 무조건 안으로 자신의 부족을 찾고, 밖으로 다른 사람의 부족을 찾지 않을 수 있다면 마음이 다른 사람에게 이끌리지 않게 되어 다시 말해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수 있으니 다시 말해 인(忍)을 해낼 수 있다.

이를 통해 보자면 수련인이 무조건 안으로 찾을 수 있을 때면 이미 완전히 진선인(真・善・忍)의 요구에 부합한 것으로 이미 완전히 법 위에 설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동수들 사이에 협력해서 법을 실증하다가 모순이 발생했을 때, 모순을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모두 다 무조건 안으로 자신의 부족을 찾고, 밖으로 다른 사람의 부족을 찾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모두 법속에서 자신을 바로 잡을 수 있고, 결국 모두 다 이 모순을 통해 제고할 수 있으며 모순도 해결할 수 있으니 일거양득(一擧兩得)이다!

밖으로 보는 것과 안으로 찾는 것은 실질적으로 사유방식의 문제다.

속인은 모두 일에 부딪쳐 늘 밖을 보고 다른 사람의 부족을 찾는다.

진정한 수련인은 모두 일에 부딪쳐 안으로 자신의 부족을 찾는다.

양자는 사유방식에서 완전히 정반대다. 당신이 진정한 수련인이 되려 한다면 그럼 속인의 사유방식에서 수련인의 사유방식으로 변해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대법제자는 어떤 일을 대하든지 모두 마땅히 긍정적으로 대해야 하며 다른 사람의 좋지 않은 일면을 보지 말고 늘 다른 사람의 좋은 일면을 보아야 한다. 사실 당신들은 아는가. 내가 그 해에 당신들에게 대법을 전할 때, 강의하는 중에 아래에서 많은 속인의 사상이 발출되었는데, 어떤 사람의 사상 반응은 아주 좋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이런 것을 모두 보지 않았다. 나는 당신들의 좋은 그 일면을 보았기에 당신들을 구도할 수 있었다. 만약 내가 당신들의 좋지 못한 일면만 본다면 내가 어떻게 구도하겠는가? 볼수록 화가 날 텐데 내가 어떻게 당신을 구도하겠는가?(박수) 그러므로 어떠한 정황 하에서든지, 속인의 행위에 이끌리지 말고 속인의 마음에 이끌리지 말며 또한 세상의 정(情)에도 이끌리지 말아야 한다. 남들의 좋은 점을 많이 보고 남들의 좋지 않은 점을 적게 보라.”(《2003년 정월대보름설법》)

“보아도 보지 못한 듯이 하니 미혹되지 않는도다”(《홍음》〈도(道) 중에서〉)

사람과 교제하고 일에 부딪칠 때, 만약 당신이 밖으로 다른 사람의 부족을 본다면 곧 아주 쉽사리 다른 사람의 행동에 이끌리게 되고, 당신이 마음을 움직이지 않기란 아주 어려워서 참아내지 못한다. 당신이 사유방식을 바꿔 진정한 수련인의 사유방식으로, 무조건 안으로 찾고 다른 사람의 부족을 보지 않아야만 비로소 진정으로 마음을 움직이지 않을 수 있고, 비로소 진정으로 참아낼 수 있다.

사람들은 흔히 용인(容忍)을 말하는데 다시 말해 인(忍)에는 관용과 포용이 포함되어 있다. 당신이 일에 부딪쳐 다른 사람의 부족을 보지 않을 수 있을 때, 당신은 곧 다른 사람의 부족을 따지거나 집착하지 않을 수 있으니 다시 말해 다른 사람의 부족을 포용할 수 있다. 당신의 용량이 곧 확대되고, 흉금이 넓어지면 점차적으로 관용하며 대범해질 수 있고, 각자(覺者)의 흉금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당신이 나에게 묻고자 한다면, 나는 당신에게 한마디 말을 알려주겠다. 당신이 수련인이 되었기 때문에 당신이 비로소 만나는 것이고, 당신이 수련인이 되었기 때문에 이러한 일은 무릇 정면적인 반응이든 부면적인 반응이든 모두 좋은 일이다. (열렬한 박수) 왜냐하면, 그것은 당신이 수련하고 있는 이 길에서, 당신의 제고를 위해 준비한 것이기 때문이다.”(《각지설법 13》〈2014년 샌프란시스코법회설법〉)

내가 이해하기에 진정한 수련인이라면,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잘하고 못하고는 전혀 중시할 필요가 없다. 누가 우리에게 잘하든 못하든, 모두 우리의 수련제고를 위해 나타난 것이다. 우리는 마땅히 알아야 하는데 첫째, 세인은 미혹 속에 있기에 틀린 일을 할 수 있고, 둘째, 바로 세인이 부족하기 때문에 비로소 우리의 수련을 완전히 성취시킬 수 있다.

만약 우리 주변 환경 속에 모두 좋은 사람들이라면, 그럼 우리는 영원히 수련 성취할 수 없다. 그러므로 남의 부족은 마땅히 아예 따지지 말아야 하며 마땅히 세인을 이해하고 고맙게 여겨야 한다. 세인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이 좋은 기회를 충분히 활용해서 무조건 안으로 찾고 자신을 닦는 이것만이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당신이 일에 부딪쳐 밖으로 다른 사람의 부족을 볼 때면, 이때 당신은 자신을 진정한 수련인으로 간주하지 않은 것으로 당신이 수련 제고할 좋은 기회를 포기한 것이다. 이는 어리석은 일을 한 것으로 자신의 수련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 것이다. 알아야 할 것은 당신의 수련 성패(成敗)는 결코 단순히 개인의 성패 문제만이 아니다.

당신은 얼마나 많은 생명들이 당신의 수련 성취를 기다리고 있는지 안다.

당신의 천국중생, 당신이 진상을 알려 구도한 세인과 그가 대표하는 천국의 중생, 당신의 생생세세 친인・친지 및 일찍이 당신을 도와준 적이 있거나 당신이 해친 적이 있는 사람들, 그들 모두 당신이 수련 성취해서 그들을 구도해 이익을 받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그러므로 당신의 수련은 이들 중생을 구도하기 위한 수련이다. 오직 당신이 수련 성취해야만 진정으로 그들을 구도하고 이익을 얻을 수 있게 할 수 있다. 이 책임이 얼마나 중대한지 한번 생각해 보라! 그러니 그들을 위해서라도 정말로 정진해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수련인이 안에서 찾는 이것은 법보(法寶)이다.” (《각지설법 9》〈2009년 워싱턴DC국제법회설법〉)

전에 동수의 문장을 읽을 때, 동수는 안으로 찾음은 확실히 사부님께서 대법제자 매 사람에게 주신 법보라고 했다. 그(역주: 안으로 찾음을 말함)는 살아있는 생명이고 원뿔형인데 평소 가슴에 놓으면 뾰족한 쪽이 명치를 향한다. 당신이 안으로 찾을 때면, 그는 곧 명치에서 안으로 파고들어가기 시작한다.

보아하니 이 안으로 찾음은 정말이지 만능 법보다.

그는 자신의 사람마음을 없애고 심성을 제고해 대법에 동화시킬 수 있다.

그는 구세력의 배치를 부정하고 박해를 제지할 수 있으며, 대법제자들 상호간의 간격을 없애고 공동으로 협력해 법을 실증하는 일을 잘하게 할 수 있다.

또한 그는 대법제자들이 순정(純淨)한 심태로 조사정법(助師正法)하고 중생을 구도해, 대법제자의 역사적 사명을 완수하게 할 수 있다.

그럼 어떻게 안으로 찾는가?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법을 배우고 법을 얻어
배움을 견주고 수련을 견주나니
일마다 대조하여
해내어야 수련이로다” (《홍음》〈착실한 수련〉)

내가 이해하기에 안에서 찾는 기초는 바로 법 공부를 잘해서, 법리를 명확히 하고 표준을 명확히 하는 것이다. 그런 다음 일에 부딪쳐 자신의 행동을 대법 진선인(真善忍) 표준과 대조해서, 자신의 행동이 진선인 표준에 부합하는지 보고 표준에 맞지 않는 부분을 찾아냈다면 곧 고쳐야 한다. 만약 자신이 대법의 표준에 도달했는지 여부를 점검하려면 바로 자신의 실제 행동을 보아야 하는데, 반드시 자신의 행동으로 대법의 요구를 진정으로 해낼 수 있어야만 “해내어야 수련이로다”(《홍음》〈착실한 수련〉)이다.

이 자리에서 장기간 마난에 처한 동수들에게 일깨워주고 싶다. 반드시 진선인(真善忍)과 대조해 자신의 사람마음을 전면적으로 찾아야 한다. 이렇게 해야만 모든 사람마음을 다 찾아낼 수 있고, 그런 후 실제 행동으로 단호하게 법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 반드시 진정으로 이렇게 할 수 있어야만 비로소 당신이 진정으로 자신을 바로잡을 수 있고 비로소 사악이 틈을 타게 할 수 없으며, 비로소 구세력의 배치를 철저히 부정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병업 마난에 처한 동수를 말해보자. 그가 실질적으로 관을 넘지 못한 이유는 바로 신사신법(信師信法)에 있어서 진정으로 신사신법을 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진(真)을 해내지 못한 것이다. 만약 당신이 신사신법을 점검하려면 그럼 당신이 실제로 일에 봉착했을 때 대법의 요구에 따라 했는지 여부에 달려 있다. 당신이 대법의 요구에 따라 했다면 그럼 당신이 신사신법을 해냈음을 설명하고, 당신이 대법의 요구에 따라 하지 않았다면 당신이 신사신법을 해내지 못했음을 설명한다.

사부님께서는 진정한 수련인은 병(病)이 없다고 하셨는데, 당신은 믿는가? 그것은 당신의 실제 행동을 보아야 한다. 어떤 병업 중의 동수는, 세 가지 일을 하지 않거나, 혹은 적게 하거나 심지어 자신을 환자로 여기고 행동하는데, 당신의 이런 행동은 사실상 자신을 환자로 간주한 것으로 이미 구세력의 배치를 승인한 것과 같다. 당신이 진정으로 실제 행동으로 자신을 환자로 여기지 않고, 마땅히 어떤 일을 해야 하면 여전히 잘하고 계속해서 전면적으로 세 가지 일을 잘해야 하는데, 이렇게 해야만 비로소 진정으로 신사신법(信師信法)할 수 있고, 구세력이 틈을 탈 수 없게 할 수 있으며, 병업 마난을 끝낼 수 있다.

인자무적(忍者無敵 참는 자에게는 적이 없다)이니, 당신이 진정으로 밖으로 다른 사람의 부족을 보지 않고 무조건 안으로 자신의 부족을 찾을 수 있을 때면, 당신의 눈에는 곧 적이 없을 것이다. 운운중생은 모두 당신의 수련과 제고를 돕는 사람이 되며, 이때 당신은 모든 중생들에게 감사할 것이다. 당신의 자비심이 자연스레 나타나서 당신이 내심에서 우러나와 중생을 구도할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우리를 자비롭게 고도(苦度)하시는데, 세인들은 미혹 속에서 업(業)을 짓고 덕(德)을 잃는 것도 따지지 않고, 사부님께서 우리를 구도하는 것을 돕고 있다. 우리 몸에 발생하는 모든 일들은 다 우리를 성취 시키기 위해 온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니 감사해야 한다, 동수들이여, 일체는 다 당신을 위해 온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에게는 오직 감사할 몫만 있을 뿐, 당신이 불만을 품을 몫은 없다.

당신은 이미 그 어떤 이유로도 세인의 부족을 다시 볼 수 없다. 오직 무조건 안으로 자신의 부족을 찾아서 최대한 빨리 자신을 제고하고 정념정행으로 세인을 구도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만 사부님의 자비하신 고도(苦度)에 떳떳할 수 있고, 전력을 다해 당신의 수련을 성취시키려는 세인에게 떳떳할 수 있다.

앞으로 중생을 구도하는 길에서 어떤 상황에 봉착하든지, 오직 우리가 선량(善良)하고 위타(爲他)한 기점을 확고히 지키고, 문제에 봉착해 무조건 안으로 찾을 수만 있다면, 그럼 그 무엇도 우리가 사람을 구하는 길을 가로막지 못할 것이다. 최종적인 결말은 반드시 세인들이 구도 받고, 우리는 이를 통해 제고할 수 있으며 아울러 대법제자가 법을 실증하는 위덕(威德)을 건립할 수 있고 최종적으로 대법제자의 역사적 사명을 완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상은 현 단계의 작은 깨달음이니, 부당한 점이 있다면 자비로 지적해 주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799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