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简体 | 正體 | English | Vietnamese

“용량”을 말하다

중국 대법제자

【정견망】

어느 날 친척이 전화를 걸어 잠시 대화를 나눴다. 전화를 끊은 후 나는 갑자기 이번에는 심태가 왜 이렇게 평온할까? 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이 친척에 대한 나의 관념이 아주 무거웠기 때문이다. 나는 그녀가 아주 이기적이고, 간사하며 또 매우 교활하다고 느꼈다. 하는 말도 신뢰성이 떨어졌고, 좀 믿을 수 없다고 여겼으며 이런 것들을 고려했기 때문에 그녀에 대해 매우 반감을 느꼈다. 때문에 매번 그녀를 만난 후, 번거로움을 느끼곤 했는데 자신도 왜 그런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연공인(煉功人)으로서 이런 일을 만났을 때 자신의 원인을 찾아보아야 한다. 그래서 나는 그녀를 미워했던 일들을 겨냥해 자신에게 무엇이 있는지 살펴보았다. 찾아보니 발견한 것은 원래 그녀가 이기적이라고 여겼지만 사실 나 역시 아주 이기적이었다. 단지 그녀와는 기점이 달랐을 뿐이다.

예를 들어 자신이나 아이가 법에서 정진할 때면 나는 곧 큰 기쁨을 느꼈는데 잠재의식 속에서 신성한 심태(心態)로 대한 게 아니라 대법에서 이익을 얻었다고 느꼈다. 대법이 좋다는 것을 알고, 또 법공부와 연공이 번티(本體)를 개변할 수 있음을 알기 때문에 아이가 법 공부를 많이 하고 연공을 많이 하길 원했고 이렇게 해야만 아이가 정진하는 상태라고 여겼다. 지나치게 표면만 중시하고 내재적인 심성 제고를 소홀히 한 것으로, 이는 단지 감각적으로 볼 수 있는 것에 불과하다. 마치 사람이 돈에 집착해서 종종 돈이 자신의 손에 있어야 자기 것이라고 느끼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 역시 일종의 소유욕이자 또한 이기적인 표현이다.

그럼 이 친척의 간사함과 교활함을 왜 나더러 보게 했는가? 생각해보니 두 가지가 있었다. 첫째는 자신이 아마 이 방면의 집착을 깨닫지 못했을 수 있고, 둘째는 상대방이 이렇게 간교하고 교활한 것을 보고 사람의 관념으로 가늠하고 법으로 대조하지 않은 것은 아닐까?

사실 나 역시 이 방면에서 이런 간교함과 교활함이 존재한다. 남들과 어울릴 때 자신의 사(私)를 보호하기 위해 종종 잔머리를 굴리거나 잔꾀를 부렸는데, 자신은 느낌이 아주 좋다고 여겼다. 아마 다른 사람들도 내가 이 친척을 싫어하는 것처럼 나를 미워했다는 것을 아마 나만 몰랐을 수 있다. 법에서 자신을 대조하지 않고 사람의 방식으로 대했기 때문에, 그녀를 언급하기만 하면 내 마음이 곧 불평하는 상태가 된 것이다. 이런 상태가 어디 수련인과 같은가! 이 역시 스스로 닦아야 할 것이다.

이런 것을 알고 나서, 나는 곧 자신에게서 반영되어 나오는 나쁜 생각을 의도적으로 자제했고, 가급적 이 나쁜 사상에 이끌리지 않으려 노력했다. 점차 자신이 마치 이 친척을 그리 미워하지 않는 것처럼 생각되었고, 정반대로 그녀가 좀 불쌍하게 여겨졌으며 또 그녀의 일부 좋은 면들을 생각했다. 하지만 아직은 뿌리가 완전히 제거되지 않은 느낌이 있었는데 바로 그녀에 대해 두려운 마음이 있었다. 마치 그녀의 나쁜 물질이 내게 무형의 교란을 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다면 이것은 또 어떤 마음인가? 자신을 찾아보니 법(法)을 믿지 않는 마음, 법에 대해 견정하지 못한 마음이 있었다. 왜냐하면 자신을 사람 속에 놓은 것은 자신이 인위적으로 표준을 낮춘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자신이 대법제자로서 우주 중 정(正)의 요소에 대해 책임진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고 사람을 크게 보았으며 자신을 피동적인 위치에 놓았다. 교란당할 수 있는 원인이 나타날 까 두려웠던 것이다.

이제 와서 보니 자신이 안으로 찾는 과정 중에서 나도 모르게 용량(容量)이 확대되었고 내가 가장 받아들일 수 없다고 여긴 사람을 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때문에 이 친척과 통화할 때도 마음이 관념에 이끌리지 않고 평화로울 수 있었던 것이다. 당신이 정말 안으로 자신을 찾을 때면 당신 내재적인 본질이 바뀌는데 이것이 바로 법(法)의 위력이다.

개인의 작은 수련체득이니 부당한 점이 있다면 자비롭게 바로잡아 주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01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