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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구하기 위해 협력하면서 동수에 대한 질투심을 뿌리 뽑다

중국 대법제자 일수(一修)

【정견망】

말하자면 몹시 부끄럽다. 나는 비록 99년에 법을 얻은 노제자지만, 최근 몇 년간 완전히 사람을 구하러 나오지 않았고 그저 사람을 구하는 작은 일들만 해왔다. 겉으로 보면 하는 일이 있고 아이가 어리기 때문이지만 사실상 바로 두려운 마음과 안일을 추구하는 마음이 장난을 친 것이다. 또한 생명에 대해 냉담한 당문화(黨文化)가 가로막고 있었다.

대륙에서 역병 봉쇄가 전면적으로 풀리고 대마두(大魔頭)의 사망 소식이 나에게 충격을 주어 나는 비로소 진정으로 각성했고 마침내 깨닫게 됐다.

‘이 원흉(元兇)이 이미 죽었으니, 저 사당이 또 며칠이나 버틸 수 있겠는가? 사람을 구하는 것은 정말로 이미 최후의 시각에 도달했다. 더 이상 사람을 구하지 않는다면 정말 기회가 없을 것이다.’

나는 시간이 촉박한 것을 깨닫기 시작했고, 낮에는 동수와 협력해 사람을 구하고, 오후에는 법 공부를 했으며, 밤에는 소구(小區)에 나가 자료를 배포했다. 전에 나는 매일 집에서 아이와 함께 온라인 수업을 했고, 직장 업무며 아이 학교 일을 하느라 일이 끝이 없었는데, 지금은 이 모든 것을 완전히 내려놓았지만 오히려 아무 문제도 없다.

처음에는 노(老)동수 한 명과 협력했고, 나중에는 몇몇 동수들과 함께 먼 곳까지 가서 사람을 구했다. 나중에 이 노동수의 집에 일이 생겨서 일시적으로 나와 협력할 수 없었다. 그때 다른 동수가 막 외지에서 돌아왔다. 나는 장을 보러 갔다가 그녀를 만났고, 우리는 함께 협력해서 사람을 구했다. 이 동수는 다년간 매일 밖에 나가 진상을 했는데 능력도 아주 강해서 때로는 하루에 몇 십 명을 구했다. 나는 이것이 정말 사부님의 배치라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나는 날마다 이 동수 및 다른 동수들과 함께 협력해 먼 곳에 가서 사람을 구했다.

하지만 이 동수들과 협력한 후 매번 나갈 때마다 ‘에피소드’를 겪었다. 맨 처음은 동수가 사진에 찍혔는데, 모두들 안전을 고려하고 또 자료도 거의 다 배포했기 때문에, 골목길에서 급히 돌아왔다. 두 번째 나갔을 때는 동수가 남에게 욕을 먹었고, 세 번째는 파출소에서 거리가 너무 가까워 내게 두려운 마음이 생겨, 갈 때 가슴이 두근거리고 마치 큰 바위에 눌린 것 같았다.

비록 결국 모두 놀람은 있어도 위험은 없었지만, 매번 돌아온 후, 내 마음은 늘 몹시 답답함을 느꼈다. 한번은 뜻밖에도 두 어깨가 너무 무거워서 한 시간 참장(站樁)조차 할 수 없었다.

나는 내가 교란당한다고 생각해 안으로 찾아보았다. 내가 어디에서 바르게 하지 못했을까? 매번 나갈 때마다 강대한 정념을 발출해, 현지 다른 공간에서 중생의 구도를 교란하는 사악한 요소와 대법제자의 사람 구함을 교란하는 사악한 요소를 제거했다. 또 사부님께 인연 있는 사람을 제자에게 오게 하고 제자더러 사람을 구하는 지혜가 생기도록 가지해주실 것을 청했다. 내가 사람을 구하려는 마음 역시 순정(純淨)했고 모두들 줄곧 발정념을 했으며 별다른 잡담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게 대체 무슨 원인이란 말인가? 찾아보았지만 찾을 수 없어서 나는 이 무거운 느낌을 겨냥해 발정념으로 제거했다.

하지만 이런 느낌은 결코 아무런 연고(緣故)가 없는 것이 아니다. 나중에 다른 한 동수와 교류했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요? 왜 전엔 다른 동수랑 같이 나가면 이런 느낌이 들지 않았을까요? 그때는 매번 돌아온 후 아무리 많은 사람을 구해도 마음이 늘 아주 상쾌하고 후련했으며, 매번 내일 스케줄을 다급하게 물어보곤 했는데 지금은 오히려 이런 느낌이 드네요. 나는 또 동수에게 내가 몇몇 동수들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그들에 대해 아무런 선입견이나 관념도 없다고 했다. 게다가 이 동수들은 모두 늘 사람을 구해왔고, 모두들 매우 성숙한데 대체 무슨 이유일까요?

자신의 전체 과정을 돌아보면서 시시각각 내 마음이 어떻게 움직였는가 생각해보았다. 나는 정말로 일사일념(一思一念)이 모두 아주 순정했는가? 아니다. 나는 정말 오직 안으로 찾고 밖을 보지 않았는가? 이것도 아니다, 겉보기에는 안으로 찾았지만 근본적으로 자신의 내심을 직면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나는 동수의 부족을 보았고 동수에게 닦아버리지 않은 사람마음이 있어 사람을 구하는 공간장(空間場)을 불순하게 만들어 무슨 일이 생길까 두려웠는데 이는 두려운 마음이다. 동시에 안전에 유의하라는 동수의 말도 내게 두려운 마음이 생겨나게 했다. 바로 이런 두려운 마음이 이런 교란을 불러온 것이다. 왜냐하면 사악은 바로 당신의 사람마음을 겨냥해 교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동수들에게는 전혀 작용을 일으키지 못했다.

그런데, 나는 왜 동수의 부족에 신경을 쓰는가? 예를 들면, 자아, 끊임없이 말하기, 가정공간이 깨끗하지 않은 등등. 처음에 나는 동수의 표현은 바로 하나의 거울이며 내가 이런 것을 본 것은 내가 고칠 필요가 있는 요소라고 보았다. 내가 자신을 들여다보면 나는 이런 문제가 없는가? 나 역시 이런 자아가 있는 게 아닌가? 있다. 늘 자신의 인식이 맞는다고 여기고, 집에서 다른 사람의 견해가 나와 일치하지 않으면 그가 잘 모른다고 생각한다.

내게는 ‘끊임없이 말하기’는 없는가? 있다, 체득을 말할 때도 과시심을 지니고 끊임없이 말했다. 또 집안 환경도 깨끗하지 않아서 쓸데없는 물건들이 너무 많다. 나는 동수의 부족만 보았고, 단지 높은 표준으로 다른 사람을 요구했을 뿐, 왜 나 자신에게는 이렇게 높게 요구하지 않는가?

여기까지 생각하고, 집안에서 비교적 지저분하고 자주 청소하지 않는 곳들을 다시 한 번 청소했다. 아마 사부님께서 내가 며칠 동안 깨닫지 못하는 것을 보고 곤혹스러우셨는지, 아니면 안으로 닦으려는 나의 내심(內心)을 보셨는지, 밤에 잠들기 전에 사부님께서 갑자기 “휙”하며 내게 관정을 해주셨다. 나는 마음이 문득 활연히 밝아졌는데 그것은 바로 질투심이었다. 나는 동수에 대해 질투심을 느꼈고, 동시에 강한 호승심(好勝心)이 있었던 것이다.

동수는 원래 아주 열정적이고 친절하며 가식이 전혀 없었다. 또 세 가지 일도 아주 잘했다. 아직 닦아버리지 못한 사람마음은 많든 적든 누구든지 다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나는 왜 늘 남의 부족을 보는가, 이는 동수가 좋고 사람을 많이 구하는 것을 질투한 것이다. 때문에 늘 남의 흠을 찾으려 했는데 이렇게 해야만 자신의 불편한 마음이 좀 균형을 이룰 수 있다.

이외에도 동수가 법을 유창하게 읽거나 법을 빨리 외우면 이 역시 내 마음을 자극했다. 왜냐하면 내가 그녀보다 젊고, 배운 것도 많으니 이것은 마땅히 나의 강점이어야 하는데, 동수가 오히려 나보다 더 잘하면 은근히 좀 불편한 것이다. 사실 모두 동수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나에게 이런 마음이 있기 때문에 비로소 이런 문제를 연화(演化)시켜 내게 보여준 것이다. 원래 내게 아직도 이렇게 더러운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나는 빨리 그것을 없앴고 단호하게 그것을 요구하지 않았다.

나는 지금에 와서야 왜 사부님께서 나를 동수와 함께 하도록 배치하셨는지 알게 되었다. 바로 나더러 이 마음을 발견해 이 마음을 제거하게 하신 것이다. 사부님의 자비하신 배치에 감사드립니다!

이 일은 원래 말하기가 부끄럽지만, 그래도 나는 그것을 써내어 그것을 철저히 폭로해야 하며 그것을 철저하게 깨끗이 제거해 그것이 몸을 숨기고 숨 쉴 기회를 주지 말아야 한다! 이 마음을 도려낸 후, 다시 동수와 협력해 사람을 구하니, 집에 돌아온 후에도 더는 그런 답답한 느낌이 없어졌다. 모든 것은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 공은 사부에게 달린 것이다!

현재 층차에서 개인이 깨달음이니 부당한 곳이 있다면 자비로 바로잡아 주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0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