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简体 | 正體 | English | Vietnamese

사람과 결별할 기회를 놓치지 말자

중국 대법제자

【정견망】

최근 동수가 가정모순 중에 큰 관(關)을 넘겼다. 나는 동수를 돕는 과정 중에서 동수가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는 것을 보고 끊임없이 교류하는 중에서 수련의 요소를 똑똑히 볼 수 있었다. 내 수련의 길 역시 천천히 눈앞에 펼쳐졌고, 수련이란 사람 속에서 걸어 나와야 함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우리의 수련이 성숙해짐에 따라 심성을 제고할 이런 기회는 갈수록 줄어든다. 관난(關難) 속에서, 갈수록 줄어드는 이런 수련의 기연(機緣)을 동수들이 부디 소중히 여기기 바란다.

이 한 차례 사람에서 걸어 나오는 기회를 반드시 움켜잡고 환골탈태해서 자기 수련의 길을 조정해야 한다. 반드시 바른 법리[正法理]를 사용해 스스로 닦아야 하며, 법의 표준으로 가늠해야 한다. 사람이 좋다고 여기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이 아니며, 사람이 나쁘다고 여기는 것도 고층차에서 입각해서 본다면 아주 좋은 일일 수 있다.

법속에서 우리는 옳은 것은 그이고 틀린 것은 자신임을 안다. 또한 수련인(修煉人)이 속인과 모순을 일으키면 백분의 백 수련인의 잘못이라는 것도 안다. 기왕에 사부님께서 수련인의 잘못이라고 하셨으니 우리는 무조건 자신을 찾아 어떤 행동이 잘못이고, 어떤 말이 잘못이며, 어떤 사상과 인식이 잘못인지 찾아내야 한다. 오직 찾아내야만 비로소 고칠 수 있다. 뼛속까지 파고들어가서라도 그것을 찾아내야 하며 그 후 다시 바로 잡고 승화해 올라가야 한다.

내 경우를 말해보겠다. 검은 소굴에서 나오니 아이들이 대학 입시를 코앞에 두고 있었다. 둘 다 성적이 좋지 않았는데 원래 전에는 공부를 아주 잘 했다. 나는 우리 아이들 역시 다른 동수 아이들처럼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도록 하고 싶었다. 내가 사람 속의 것을 너무 중하게 보니, 사부님께서 이 점을 보시고 과외를 시키지 말라고 점화해주셨다. 한 시간에 200위안인데 이 돈을 중생을 구하는 데 쓴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나는 사부님께 그래도 과외비를 써야겠다고 말씀드렸고 늘 큰돈을 썼다. 결과는 아무 것도 없었다. 단지 내가 원하는 대로 했을 뿐이고 표면적으로 보면 내가 최선을 다한 것 같았다. 하지만 아이들은 이로 인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다. 나는 그들을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매번 그들에게 상처만 줬다. 어려서부터 부모님은 내게 충분한 자유를 주셨지만, 나는 오히려 사랑을 구실로 내 아이들에게 조금의 자유도 주지 않았다. 때때로 나는 아이들의 감당력이 정말 컸고 내가 진작에 뛰쳐나올 수 있었다면 좋을 텐데 라고 생각한다.

만약 내가 사부님께 모든 것을 맡겼더라면 아이들과 더 평화롭게 지내고 몸과 마음이 모두 즐거울 수 있고, 아마도 그들에게 대법의 아름다움을 더 많이 느끼게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성격이 강해서 아이들에게 내 몸에서 파룬따파(法輪大法)가 좋다는 것을 더 깊이 느끼지 못하게 했다. 속인의 방법으로는 수련 중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법이다. 나 자신의 수련에 문제가 생겼는데, 강요하고 엄마라는 신분으로 아이들을 억압하는 것은 바로 자아(自我)를 견지하고 위사(爲私)한 요소를 견지하는 것이다.

심각한 장벽에 부딪히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자신을 닦아버려야 함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지금 이 자아를 끊임없이 한 층 한 층 닦아버리고 있다. 고대에 십대 남자들은 집안일을 도맡아 결정을 내렸다. 그러니 아이들에게 자유롭게 성장할 권리를 돌려주어야 한다.

나는 원래 병을 치료하고 몸을 건강하게 하기 위해서 수련에 들어왔다. 나는 온몸에 크고 작은 뼈가 자라나 생활에 아주 많은 불편을 초래했다. 내가 검은 소굴에서 3년 넘게 박해받는 기간이 마침 아이들 성장기였다. 아이들도 마치 과거의 나처럼 크고 작은 뼈가 자라고 있었다. 어느 날 어머니가 아이들이 아침에 학교에 가는 데까지 지장을 준다고 알려주셨다.

나는 이에 사부님을 굳게 믿고 모든 것을 사부님께 맡겼다. 아이들에게 가벼운 말투로 무엇을 주의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편지를 썼고,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보니 놀랍게도 아이들은 과거의 내 상황보다 훨씬 심각해서 마치 장애인처럼 걸었다. 당시 나는 일념(一念)을 정했는데 이는 사부님께서 내게 주신 고험(考驗)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이 일념을 지켰고 각 방면에서 자신을 바로잡았다. 대학에 들어간 후 아이들이 방학을 맞아 집에 돌아올 때마다 걸음걸이가 많이 좋아졌고 지금은 거의 눈에 띄지 않는 멋진 총각으로 성장했다. 만약 그때 내가 사람 속에 빠졌더라면, 내 수련에 얼마나 많은 번거로움을 초래했겠는가?

왜냐하면 우리는 수련인이라 사부님이 계신다. 우리가 사람과 결별할 때, 순수하고 깨끗하게 자신을 닦아야 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사부님께 모두 드리고, 우리가 법(法)에 부합할 때면 사부님께서는 반드시 우리를 위해 각종 방면의 인연을 선해(善解)하실 것이다. 이는 속인을 위해서는 할 수 없는 것이다. 수련인이 보기에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모두 좋은 일이다. 법에서 수련하는데 무슨 집착할 것이 있는가? 사람마음을 자극하는 다른 사람들의 그런 악담은 생각조차 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우리의 제고를 위해 미운 역할을 연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신을 잘 닦는 것이야말로 너무나도 중요하다. 우리 함께 더욱 정진합시다.

우리는 사람과 결별할 수 있는 모든 기회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

마지막으로 사부님의 《정진요지》〈뿌리를 캐다〉의 한 구절로 동수들과 함께 격려하고자 한다.

“관건적일 때, 내가 당신들에게 사람과 결별하라고 하면, 당신들은 나를 따라오지 않는데, 기회는 두 번 다시 있을 수 없다. 수련은 엄숙한 것으로, 격차가 벌어지는 것이 갈수록 크다. 수련 중에 사람의 어떠한 것을 섞든지 모두 극히 위험하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07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