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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념을 바꿔 바른 이치로 문제를 보자 (2)

수련생

【정견망】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진짜로 수련하는 사람은 병이 없다.”(《파룬따파의해》〈창춘 法輪大法(파룬따파) 보도원을 위한 설법〉)

여러분은 사부님의 이 말씀에서 “진짜로 수련하는(真修的)”에 주목하기 바란다. 내가 이해하기에 진수(真修)해야만 병이 없을 수 있다. 대륙의 현재 이 역병을 마주해 마땅히 진정한 수련인은 감염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여러분 생각해 보라, 우리가 역병이란 이 일에 직면했을 때, 우리 자신을 진정한 수련인(修煉人)으로 간주했는가? 진정한 수련인이라면 마땅히 법에 입각해 바른 이치[正理]로 문제를 보고 좋은 일로 간주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일을 어떻게 보았는가? 만약 우리가 이를 나쁜 일로 간주했다면, 그럼 우리가 바른 이치로 문제를 보지 않은 것과 같다. 다시 말해 우리가 수련인의 각도에서 문제를 보지 않고 속인의 각도에서 문제를 본 것이다. 그럼 이 문제에서 자신을 속인으로 간주한 것과 같은데 속인이라면 당연히 병에 걸릴 수 있다.

그러므로, 당신이 자신을 진정한 수련인으로 간주해야만 병에 걸리지 않을 수 있다. 나쁜 일이란 관념을 바꾸지 않으면 그럼 속인이 역병을 만난 것과 같다. 오직 나쁜 일이란 관념을 바꾸고, 진정으로 법에 입각해 바른 이치로 문제를 보고, 좋은 일로 간주해야만 비로소 진정한 수련인이 역병을 만난 것이 될 수 있으며 비로소 감염되지 않을 수 있다.

만약 당신이 바이러스에 눈이 있음을 믿지 않고 바이러스가 자신의 몸에 감염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럼 당신은 밖에 나가면 감염될까 두려워하는데, 구세력은 이 두려운 마음을 이용해 당신에게 감염 증상을 배치할 수 있다.

만약 당신이 바이러스는 자신을 해칠 능력이 전혀 없으며 자신이 감염될 가능성이 전혀 없음을 믿지 않는다면, 바이러스가 자신을 해칠까 두려워하는데, 구세력은 또 이 두려운 마음을 이용해 당신에게 감염 증상을 배치할 것이다.

만약 당신 마음속에 나쁜 일이란 관념을 갖고 감염을 나쁜 일로 간주한다면, 그럼 일단 구세력의 배치를 승인한 것으로, 또한 나쁜 일이란 관념이 당신에게 감염을 두려워하는 사람마음을 갖게 할 것이다. 이렇게 하면 구세력이 감염을 배치할 구실을 제공해 당신에게 감염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그런 다음 감염 증상이 나타난 후 나쁜 일이란 관념으로 감염 증상을 대하면 또 두려운 마음이 생겨날 수 있는데 구세력은 이 두려운 마음을 이용해 박해를 계속 가중시킬 것이다.

그러므로 감염되지 않으려면, 한편으로는 바이러스에는 눈이 있어서 자신의 몸에 올라오지 않음을 믿어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 바이러스는 자신을 해칠 능력이 없으며 아예 나를 감염시킬 수 없음을 믿어야 한다. 또한 마지막으로 나쁜 일이란 관념을 바꿔 감염을 좋은 일로 간주해야 한다. 이렇게 할 수 있다면 각종 두려운 마음도 생기지 않을 것이고 구세력도 박해할 구실을 잡지 못할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우리는, 좋고 나쁨은 사람의 일념(一念)에서 나오며, 이 일념의 차이가 부동(不同)한 후과(後果)를 가져올 수도 있다고 한다. 그렇게 많은 나이에 속인이라면 다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녀는 살갗하나 안 다쳤다. 좋고 나쁨은 일념에서 나오는데, 만약 그녀가 거기에 누워서 이렇게 말했다 하자. “아이고, 난 안되겠다. 여기도 다쳤고, 저기도 다쳤다.” 그러면 아마 근육이 끊어지고 골절하여 반신불수가 되었을 것이다.”(《전법륜》)

좋은 일과 나쁜 일이란 이 일념(一念)의 차이가 완전히 다른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마치 동수가 차에 치였을 때처럼 당신 스스로 아무 일도 아니라고 생각하면 아무 일도 없지만, 만약 당신이 좋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이 있으면 그럼 좋지 않은 일이 생길 수 있는 것과 같다. 내가 이해하기에 당신이 무엇을 생각하는 것은 바로 당신이 무엇을 원하는 것과 같고, 이는 당신이 그것을 추구한 것과 같다. 나쁜 일이란 관념이 일의 부면(負面)결과가 되도록 확정하는데, 이는 일종 소극적인 부면사유로, 자신에 대해 오직 나쁜 점만 있을 뿐 좋은 점이란 없다.

심지어 평범한 백성들조차 늘 좋은 말을 듣기 좋아하고 남이 나쁜 말 하는 걸 듣기 싫어하는 데 여기에는 또 나름의 이치가 있다. 만약 당신이 그에게 좋은 일이라고 말해주어 그가 좋은 일이라고 믿게 했다면 이는 그가 일의 정면적인 결과를 얻게 한 것과 같다. 이렇게 하면 일이 좋은 방향으로 발전하기 쉽고 결국에는 정말로 좋은 일이 될 것이다.

만약 당신이 그에게 나쁜 일이라고 말해주어 그가 나쁜 일이라고 믿게 했다면, 이는 그에게 일의 부면(負面)적인 결과를 얻게 한 것과 같다. 이렇게 하면 일이 나쁜 방향으로 발전하기 쉽고 결국에는 정말로 나쁜 일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정면사유는 남은 물론 자신에게도 좋지만, 부면사유는 남은 물론 자신에게도 나쁘다.

여기서 나는 또 동수들이 서로 교류할 때, 다른 동수에 대해 함부로 부면(負面)적인 결론을 내리지 말아야 함을 떠올렸다. 동수에게 이러면 안 되고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말하지 말아야 한다. 만약 동수가 수련에서 제고할 수 있도록 동수의 부족을 지적할 때는 오직 동수의 어떤 행동이 법에 부합하지 않는지만을 말해주어 동수에게 자기 수련중의 부족한 곳을 알게 하면 된다. 너무 심한 말을 하거나 인신공격을 해선 안 된다.

당신이 동수에게 안 된다고 말하면 아마 그 역시 자신이 안 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렇게 하면 그에게 열등감이 생기게 만들고 수련에 대한 신심(信心)을 떨어뜨리거나 심하면 수련에 대한 신심을 잃게 만들며 심지어 수련을 포기하고 대법에서 이탈하게 할 수 있다. 이는 변칙적으로 동수를 아래로 밀어낸 것으로 구세력을 돕는 것과 마찬가지다.

주지하다시피 대법수련은 미혹 속에서 전적으로 ‘믿음(信)’이란 한 글자에 의지하는데 사부님과 법을 믿고 신심(信心)이 있어야 수련할 수 있고 한 걸음 한 걸음 원만을 향해 걸어갈 수 있다. 그러므로 동수를 양해할 줄 알아야 한다. 기왕에 동수가 수련을 선택했다면 또한 반드시 자신을 잘 수련하려고 생각할 것이다. 특히나 대륙 동수들은 피비린내 나는 박해 속에서 걸아오기가 아주 쉽지 않았다.

오늘까지 견지하며 걸어올 수 있고 여전히 대법 속에서 계속 수련할 수 있다면 이는 아주 대단한 것으로 우리가 몹시 소중히 여길 가치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동수를 선(善)하게 대해야 하며, 진정으로 동수의 수련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 일이 있을 때는 반드시 동수의 수련을 위해 생각하고 동수가 성취할 수 있도록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내가 이해하기에 “상유심생(相由心生)”(《각지설법 10》〈따지웬회의설법〉)이란 상황이 마음에 따라 변한다는 것이다. 당신 주위에서 발생한 모든 것은 다 당신 마음이 촉성한 것이고, 아울러 이 일체가 당신의 마음이 변함에 따라 변화하고 있다. 만약 당신이 마음속으로 정면적인 사유로 문제를 생각하고 그것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럼 일은 좋은 방향으로 발전할 것이며 결국 좋은 일이 될 것이다.

반대로 당신이 만약 마음속으로 부면적인 사유로 문제를 생각하고 그것이 나쁜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럼 일은 나쁜 방향으로 발전할 것이며 결국 나쁜 일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일의 결과는 당신의 마음에 따라 결정된다고 말할 수 있다. 사부님께서는 “좋고 나쁨은 사람의 일념에서 나온다”(《전법륜》)고 말씀하셨다.

동수들이여, 나쁜 일이란 관념이 더는 자신을 해치지 못하게 해야 한다! 당신은 나쁜 일이란 관념이 바로 당신 자신의 사상 인식이라고 여기지 말아야 하는데 그것은 당신의 진정한 자신인 주원신(主元神)의 사상인식이 아니다. 주원신의 사상 인식은 완전히 법(法)에 부합하는 것으로, 모두 바른 이치[正理]로 문제를 보기에 모든 일을 다 좋은 일로 간주할 것이다.

나쁜 일이란 관념은 인간 세상의 반대로 되는 이치라는 환경에서 형성된 잘못된 인식이다. 원래 좋은 일이었지만 인간 세상의 이 반대로 되는 이치라는 환경에서 보면 나쁜 일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자신을 견정하게 하고 법에 입각해 바른 이치로 문제를 보아야 한다. 당신이 나쁜 일이란 관념에 주재당하기만 하면 그럼 곧 당신에게 악운(惡運)과 재수 없음을 가져다 줄 것이다. 그러므로 단호하게 그것을 남기지 말아야 하며 그것이 당신 사상 속에 나타나기만 하면, 반드시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것이 완전히 없어질 때까지 깨끗이 제거해야 한다. 그것이 계속해서 당신을 해칠 기회를 절대 남겨주지 말아야 한다.

또 다른 방면에서 말하자면 상생상극(相生相剋)의 이치 속에서 그 어떤 일이든 정반(正反)이 함께 나온다. 즉, 그 어떤 일이든 다 그것의 양면성(兩面性)이 나타난다. 그러므로 우리가 일을 볼 때 하나를 둘로 나누어 보아야 하며 절대적으로 문제를 볼 수 없다. 당신이 일의 성격을 나쁜 일로 규정할 때면, 이 자체가 바로 상생상극의 법리를 위배해 일을 절대화시킨 것이다. 일의 나쁜 일면만 본다면, 오히려 일의 좋은 일면은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수련인으로서 한 가지 일이 결국 좋은 일일지 나쁜 일일지는 전적으로 당신이 그것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것이 좋은 방향으로 발전하면 결국 좋은 일이 될 수 있고, 나쁜 방향으로 발전하면 결국 나쁜 일이 될 수 있다. 그것이 결국 어떤 방향으로 발전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이 일이 결국 좋은 일이 될지 나쁜 일이 될지는 당신의 노력에 달려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만약 우리가 법에 입각해 그것을 대하고 그것이 좋은 방향으로 발전하게 한다면 결국에는 좋은 일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말해 우리가 신사신법(信師信法)할 수 있고 법에 따라 실천할 수 있다면 결국 그 어떤 일이든 다 좋은 일이 될 수 있는데 이때는 이미 나쁜 일이란 더는 없을 것이다.

나는 구세력의 배치를 이지적이고 지혜롭게 대해야 하며, 극단적으로 일률로 배척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그것의 좋지 않은 일면은 배척하고 부정해야 하지만, 그것의 좋은 일면은 지혜롭게 이용할 수 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그러나 나는 또 그것들이 배치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장계취계(將計就計)로 그것들이 하는 것을 역이용하고 있다. 바로 이러한 것이다.”(《2003년 정월대보름 설법》)

내가 이해하기에 구세력의 배치는 장계취계(將計就計)해야만 한다. 다시 말해 구세력이 배치한 나쁜 일면을 보고는 그것을 나쁜 일로 규정하고 마음속으로 그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마땅히 그것의 좋은 일면을 우리를 위해 이용해 법을 실증하고 위덕(威德)을 세우는 길을 다져 최종적으로 사부님 배치를 원용하는 일부분으로 삼고 나쁜 일을 좋은 일로 만들어야 한다.

이 점에서 보자면, 비록 구세력의 출발점은 나쁘지만,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정확하게 대할 수 있다면, 그것은 오히려 우리의 수련을 완성시킬 수 있다. 이렇게 보면, 대법제자가 오직 자신의 길을 바르게 걷기만 하면 그것이 바른 것이거나 삿된(邪) 것이거나 상관없이 모두 우리 수련의 제고를 위해 온 것으로 모두 대법제자를 도와 성취시키고 있다. 그렇다면 여러분 생각해보라, 만약 우리가 정확히 대한다면, 심지어 구세력마저도 우리의 수련제고를 돕는 역할을 할 수 있는데 어디에 또 무슨 나쁜 일이 있겠는가? 어디에 또 이것저것 두려워 할 필요가 있겠는가?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그것의 표현이 어떠하든, 이 사회가 어떠하든, 대법제자는 이 사회의 주역이며, 이 연극은 당신들이 부르는 노래(唱)다. 어떻든, 그 석탄가루는 강철과 비교가 안 되는데, 그것이 당신을 용련(熔煉)하지, 당신이 그것을 용련(熔煉)하지 않는다. 바꿔 말하면, 그 공산사당을 포함하고, 그 마귀를 포함하여, 당신을 위해 존재하고, 당신들을 위해 생존한다.”

(《각지설법 15》<2018 워싱턴DC설법>)

(계속)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09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