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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념을 바꿔 바른 이치로 문제를 보자 (3)

수련생

【정견망】

현재 정법수련(正法修煉)은 이미 후기에 이르렀고, 어떤 동수들은 곧 수련원만(修煉圓滿)하는 문제에 직면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직 많은 동수들이 나쁜 일이란 관념을 진정으로 바꾸지 않았고, 현재 감염 증상에 직면해 두려움이 생기거나, 적어도 그것을 좋은 일로 간주하지 않음을 발견했다. 뼛속 깊이 나쁜 일이란 관념이 남아 있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감염을 나쁜 일로 간주하고, 감염이 곧 끝나기를 바라는 사람마음과 감염이 계속 발전할까 두려운 마음이 쉽사리 생겨난다. 아직 관념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에 당신더러 구하게 하고 또 두렵게 만든 것으로 이렇게 하면 당신은 구세력의 배치 속으로 끌려 들어간다.

다른 한편 내가 이해하기에 사부님께서도 장계취계(將計就計)로 제자들의 원만을 점검하는 동시에 또한 당신이 감염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는지 보시고 당신에게 원만을 배치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이 다른 방면에서는 다 수련을 잘했다 해도 이 방면에서 문제가 있다면, 모두 당신을 붙잡아 원만하지 못하게 만들 수 있다.

내가 이해하기에 수련(修煉)이란 바로 사람이 신(神)이 되는 것이다. 그럼 신의 표준에 도달해야 하고 문제를 보거나 일을 하는 것도 신과 같아야 한다. 신(神)이라면, 반드시 바른 이치[正理]로 문제를 보고, 모든 일을 다 좋은 일로 간주할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이 신(神)으로 수련 성취하려면 반드시 신과 같이 문제를 보아야 하며, 반드시 마음속에 나쁜 일이란 관념이나 이것저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마음이 없어야 하며, 반드시 모든 일을 다 좋은 일로 여겨야 한다. 그러므로 나쁜 일이란 관념을 바꾸는 것은 우리가 수련의 길에서 반드시 지나야 할 관(關)이며, 만약 이 관을 지나가지 못하면 우리는 신을 향해 나아갈 수 없다.

동수들이여, 생생세세 윤회와 천만(千萬) 년의 기다림은 모두 오늘을 위한 것이다. 일이 이미 여기까지 이르렀는데, 아직도 내려놓지 못할 것이 뭐가 있는가? 천 가지 만 가지 어려운 길을 모두 지나왔는데, 이 관이 우리 수련의 길을 가로막게 할 수 있는가? 그것을 돌파할 신심(信心)이나 용기가 없단 말인가? 여러분이 알다시피, 오직 신사신법(信師信法)하기만 하면 넘지 못할 관은 없으니 차라리 철저히 목숨을 걸어야 한다!

마음을 굳게 먹고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하고, 정정당당하게 수련 중에 부딪친 모든 일을 좋은 일로 대하라. 내 생각에 우리가 정말 이렇게 견정하게 신사신법할 수 있다면, 최종적으로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반드시 ‘유암화명우일촌(柳暗花明又一村)’일 것이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사람들이 간주하는 나쁜 일이란 고난(苦難)을 겪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쁜 일이란 관념은 고생을 겪고 어려움을 당하는 것을 나쁜 일로 간주하며 대한다. 이렇게 본다면 ‘나쁜 일이란 관념’은 바로 ‘고생을 겪고 어려움을 당하는 것이 나쁜 일이란 관념’이라 할 수 있다. 만약 당신이 고생을 겪고 어려움을 당하는 것을 좋은 일로 간주해서 대할 수 있다면 그럼 모든 일을 다 좋은 일로 대할 수 있을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사실 인류사회의 이치는 우주의 이치와 반대이다. 사람이 난(難)이 있고 고통이 있는 것은 사람에게 업을 갚게 하여 행복한 미래가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렇다면 수련하는 사람은 바른 이치(正理)에 따라 수련해야 한다. 고생을 겪고 난을 당하는 것은 업력을 제거하고 죄를 없애 버리며 인체를 정화(淨化)하고 사상경지를 제고하며 층차를 승화시키는 아주 좋은 기회로서, 이는 대단히 좋은 일이며 이것이 바른 법리(正法理)이다.”

(《정진요지 3》〈최후일수록 더욱 정진해야 한다〉)

속인에게는 사심(私心)이 있기 때문에 자신에게 불리한 일이면 곧 나쁜 일로 간주하는데 이 때문에 나쁜 일이란 관념을 형성한다. 나쁜 일이란 관념이 생긴 후에는 또 자신이 나쁜 일에 연루될까 봐 또 두려운 마음이 생긴다.

나쁜 일이란 관념을 바꾸려면 일반적으로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사심(私心)을 내려놓고 더는 개인의 이해득실에 신경 쓰지 않는 것이다. 남이 자신에게 좋게 대하든 나쁘게 대하든 신경 쓰지 않는다면 나쁜 일이란 관념을 버릴 수 있는데 그럼 두려운 마음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다른 방법은 신사신법(信師信法)해서 대법의 요구에 따라 바른 이치로 문제를 보는 것이다. 모든 일을 다 좋은 일로 대하면 간주한다면 역시 나쁜 일이란 관념을 버리고 더는 두려운 마음이 생기지 않게 할 수 있다. 오늘 우리는 신사신법의 각도에서 나쁜 일이란 관념을 바꾸는 문제에 대해 중점적으로 토론해보자.

나는 대법제자 수련 중에 수련을 방해하는 세 가지 주요한 속인 관념이 있음을 아는데 그것은 바로 자사자리(自私自利)한 관념, 눈으로 본 것만이 진실이라는 관념, 고난을 겪는 것이 나쁜 일이란 관념이다.

그것들은 모두 가짜이치다. 실질적으로 자사(自私 이기적)는 자신을 해치게 하고, 눈에 보이는 것은 종종 가짜이며, 고난을 받는 것은 좋은 일이다. 만약 당신이 사실의 진상(真相)을 되돌려 가짜이치를 버릴 수 있고, 객관적인 현실에 부합하는 바른 이치로 문제를 볼 수 있다면, 그럼 당신은 사심(私心)을 내려놓고, 세간의 가상(假相)에 미혹되거나 이끌리지 않을 수 있으며, 수련 중에 부딪친 모든 일을 다 좋은 일로 간주할 수 있다. 이렇게 하면 앞으로 당신이 수련하는 길에서 그 무엇도 당신을 가로막을 수 없다.

특히 대륙 동수들은, 눈앞에 닥친 큰 역병을 어떻게 대하는가? 속인의 각도에서 나쁜 일이란 관념에 따라 그것을 대하고 그것을 나쁜 일로 보는가? 아니면 수련인의 각도에서 바른 이치로 문제를 보고 그것을 좋은 일로 보는가?

일념의 차이가 바로 사람과 신(神)의 차이다. 특히 많은 동수들에게 감염 증상이 나타났는데, 이는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수련이란 누락이 없어야 하며 관념이든 집착이든 모두 남겨서는 안 된다. 이번에 동수들에게 나타난 감염 현상은 동수들이 병업(病業)에 대해 정념(正念)으로 대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것 외에도 아마 동수들이 속인관념을 진정으로 바꿨는지 검증하는 일일 수 있다.

만약 당신이 바른 이치로 문제를 보고, 감염 증상을 좋은 일로 간주했다면 두려운 마음을 철저히 내려놓고, 수련제고에 아주 좋은 눈앞의 이 기회를 충분히 활용해, 고생을 겪고 소업하며 안으로 찾아 심성을 제고하고, 전면적으로 자신을 제고하는 동시에 낙관적이고 당당하게 계속해서 세 가지 일을 전면적으로 잘 하고, 전력을 다해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한다면 일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 당신이 한번 보라.

동수여, 우리 몸에 나타난 모든 일은 다 우리의 마음이 촉성한 것이다. 당신이 자세히 안으로 찾아보면 문제는 틀림없이 당신에게서 나왔을 것이다. 일의 나쁜 일면(一面)만 보면서 일률적으로 그것을 배척하지 말아야 하며 일에는 또 그것의 좋은 일면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만약 당신이 감염이란 이번 기회를 잘 이용해서 자신을 수련해 제고하고 관념과 집착을 제거한다면, 곧 그것의 좋은 일면이 나타날 것이다. 다시 말해 구세력이 당신이 원만을 향해 나아가도록 돕고 있는 것이다!

당신이 수련에 입문한 이후 당신 몸에는 그 어떤 우연한 일도 일어나지 않으며, 모두 당신의 수련과 관계가 있다. 다시 말해, 모두 좋은 일이다. 만약 당신이 부딪힌 일이 모두 좋은 일이고, 자신이 제고할 좋은 기회임을 인식하지 못하고 안으로 찾으려 하지 않는다면 곧 밖으로 보게 될 것이다. 일종 ‘당연하다는 관념’이 자신을 밖으로 보게 하는데, 이 ‘당연하다는 관념’은 다음 세 가지로 표현된다.

첫째 속인의 이치로 속인에게 요구한다. 예를 들면 “아이는 당연히 노인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은 속인의 관념이다. 만약 당신의 아이가 당신을 존중하지 않는 행동을 한다면, 당신은 마음속으로 평형을 이루지 못하고 생각할 것이다.

‘이 아이는 왜 이렇게 철이 없을까? 어째서 어른을 존중할 줄 모를까?’

이에 질투심이 나오는데 아이의 행동에 불만을 품거나 심지어 몹시 분개해서 아이를 비난하거나 꾸짖어 아이를 해칠 수 있다.

두 번째 방면은 속인의 이치로 동수에게 요구하는 것인데 표현은 위와 같다.

마지막 세 번째 방면은 대법의 법리로 동수에게 요구하는 것이다. 동수가 늘 법에 부합하지 않는 행동을 하는 것을 볼 때면, 늘 눈에 거슬려한다. ‘이 어찌 수련인의 모습이란 말인가, 수련한 게 형편없구나!’ 그래서 동수를 업신여기고, 무시하면서, 주동적으로 동수와 간격을 형성한다. 이렇게 되면 동수 사이에 정체(整體)를 형성할 수 없으며 같이 합심해서 법을 실증하는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며 또한 모순이 생겨날 수 있다.

그럼 이런 문제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사실은 다 좋은 일이고 다 여러분들 수련제고를 위해 나타난 것이다.

가장 먼저 이 ‘당연하다는 관념’을 바꿔야 한다. 한 수련인에 대해 말하자면 우리는 오직 대법 진선인(真善忍) 표준에 따라 무조건 안으로 자신을 요구해야 하며 밖으로 남에게 요구할 권리는 없다.

사부님께서는 “무엇을 선택하는가 하는 것은 스스로 결정한다”고 말씀하셨다.

(《오스트레일리아법회설법》)

내가 이해한 것은 바로 남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수련하려 하는지, 제고하려 하는지, 그것은 모두 그 자신의 선택이고, 선택은 그 자신에게 달렸으며, 다른 사람은 간섭할 권리가 없다. 우리는 동수에게 마땅히 어떻게 해야 한다고 요구할 권리가 없고, 다만 선(善)을 권할 뿐 남을 강요할 수는 없다.

기왕에 우리에게 그 어떤 우연한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럼 동수의 좋지 않은 표현 역시 우연히 나타난 게 아니라 분명 우리의 수련제고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어떤 동수는 말한다.

“그 사람은 수련이 너무 차(差)해요. 그에게 말을 해도 변하지 않으니 모두들 그가 이렇게 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겨 그와 상대하길 꺼려요.”

분명 그에게는 확실히 부족한 점이 있겠지만, 그러나 여러분은 그의 부족한 이런 면을 어떻게 대하는가? 눈에 거슬려하고 무시하면서 상대하지 않았다. 이는 단번에 여러분의 부족을 드러낸 것이 아닌가? 만약 여러분이 지금 모두 밖을 보길 멈추고, 모두 무조건적으로 안으로 자신의 부족을 찾아, 눈에 거슬리거나 무시하거나 상대하지 않으려는 이런 사람마음을 없애고 제고해 올라간다면, 그럼 동수가 표현한 부족은 바로 여러분이 부족을 찾고, 부족을 제거해서 결국 제고해 올라가도록 돕는 것이 아닌가? 이는 정말로 좋은 일이 아닌가?!

그러므로 대법제자들 사이에 모순이 있는 걸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여러분이 서로 돕고 제고할 좋은 기회이며, 고통 속에서 서로 업을 없애도록 돕고 안으로 찾아 서로 심성을 제고하도록 도와 결국에는 모두의 업력이 사라지고, 심성이 제고되면, 모순도 해소될 것이다. 즉 모두 좋은 일로 될 것이다.

사실, 동수들이 함께 협력해 법을 실증하는 이 환경 또한 서로 도와 제고하는 좋은 환경이다. 누가 당신에게 좋지 않게 대한다면 그럼 당신의 수련 제고를 돕는 것이고, 누가 모두에게 다 좋지 않게 대하면 모두의 수련제고를 돕는 것이다. 종종 표현이 더욱 좋지 않은 행동을 하는 사람일수록 여러분의 제고에 더욱 큰 도움이 된다. 그러므로 앞으로 더는 이것이 맘에 들지 않고 저것이 눈에 거슬리며, 이것을 보면 마음이 불편하고 저것을 보면 마음이 불만스럽지 말아야 하며, 그것은 모두 진정으로 당신을 돕는 사람임을 알아야 한다. 은혜에 감사해야 하는데 그들은 모두 당신을 성취시키고 있다!

물론 확실히 잘 하지 못한 그런 동수들은 늘 남의 수련을 돕고 늘 남을 연마시키기만 해선 안 되며 스스로 주동적으로 안으로 찾아 자신을 잘 닦아야 한다. 누가 수련하면 누가 제고되고, 누가 최종적으로 원만을 얻는다. 만약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당신의 중생들은 어떻게 하겠는가? 그들은 당신이 구도해주길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계속)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09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