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平凡)
【정견망】
사람이 세상에서 무슨 일을 하든 다 반드시 응보(應報)가 따른다. 좋은 일을 했으면 복덕을 쌓고 복보을 받으며, 나쁜 일을 했으면 악업(惡業)을 짓고 악보를 받는데 이는 우주의 법칙이다. 선악에 응보가 따른다는 것은 하늘의 이치가 결정한 것으로 개인이나 조직의 의지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악보(惡報)를 말하자면 두 가지 표현형식이 있는데 바로 현세(現世) 응보와 지옥(地獄) 응보의 두 가지다. 지옥 응보는 누구나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수련에 소질이 있는 수도자(修道者)만이 볼 수 있거나 또는 일부 인연 있는 사람들이 꿈을 꾸는 등의 방식을 통해 지옥의 끔찍한 광경을 볼 수 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전통문화 고서에 아주 상세한 기록이 있다.
내가 어렸을 때 이웃집 할머니의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녀는 꿈에 염라대왕 앞 생사부(生死薄)를 본 적이 있다고 했다. 일찍이 중국공산당이 문화혁명을 일으키기 전에, 그녀와 마을의 한 할머니가 1965년 어느 여름 저녁, 밖에서 바람을 쐬는데, 하늘의 남천문(南天門)이 열리고 한 무리 개떼가 나와 개떼들이 서로 물어뜯더니 그 광경이 사라졌다. 하늘에 다섯 개의 큰 글자가 나타났지만, 아쉽게도 그녀들 둘 다 학교에 다니지 않아서 글자를 알아보지 못했다.
다음 날 여러 사람들에게 이야기했으나 아무도 믿지 않았다. 말을 많이 하자 어떤 사람들은 그들에게 더 이상 말하지 말라고 충고했다. 나라에 큰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는데 누명을 쓰고 비판 받을 수도 있다. 이듬해 개싸움 같은 문화대혁명이 일어났다.
사람의 인식을 뛰어넘는 지옥이나 신불(神佛) 같은 일은 우리가 구두로 전하고 마음으로 받을 뿐이며, 전통문화 이야기나 또는 인연 있는 사람의 직접 경험을 통해 얻을 수 있다. 하지만, 현세 응보는 날마다 우리 곁에서 일어나고 있다. 다만 당문화(黨文化)의 시각에서 거짓말에 가려져 있을 뿐이다.
내가 어렸을 때 겪은 두 가지 일이 기억에 남는다. 이 두 가지 일은 모두 내가 초등학생 때 일어났다.
한 가지 일은 점심시간에 학교를 마치고 집에 와서 밥을 먹을 때 할머니가 해주신 이야기다. 이 마을에서 20대 초반의 여자가 자전거를 타고 현에 가서 장을 보고 우리 집 앞을 지나갔는데 오전 11시에 철교에서 넘어졌다. 사람들이 발견했을 때는 이미 죽어 있었다.
할머니가 말하길 “그 아이가 자전거를 너무 빨리 탔는데 그건 정상인의 속도가 아니라 저승사자가 뒤에서 독촉한 것이다. 그 시간에 맞춰 떠나야 했다”고 하셨다. 당시 나는 이런 해석을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고 동시에 인생의 의미와 목적에 대한 생각해보게 했다.
또 다른 일은 어느 날 오전에 일어났다. 농촌 사람들은 선선할 때 서둘러 일을 하고, 8시가 넘어서 해가 뜨면 집에 가서 아침을 먹는다. 마을에 한 사람이 날이 밝자마자 트랙터를 몰고 밭에 나가 일을 하고, 여덟 시가 넘어서 돌아오다 어느 아주머니의 문 앞을 지나는데 그 아주머니가 문 앞의 돌 옆에서 아침을 먹고 있다가 전 과정을 지켜보았다.
트랙터가 얼마 가지 않아 한 집의 아이를 들이받았고, 아이가 나무에 부딪힌 후에야 차가 멈췄다. 아이는 그 자리에서 죽었다. 이 아주머니는 우리 어머니에게 “그때 트랙터가 너무 빨리 달려서 나도 놀랐어요. 사람과 부딪친 걸 보고 나서야 저승사자가 급해서 뒤에서 독촉했다는 걸 알았어요.”라고 말했다.
당시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는 이 일에 대한 해석이 모두 일치했고, 모두 전생에 악행을 저질러 현세에 받는 업보라고 생각했다. 때문에 우리더러 좋은 사람이 되어야 좋은 보답을 받을 수 있으니 반드시 좋은 사람이 되라고 권했다.
그런데 이와 똑같은 현세응보는 지금도 있고 그것도 매일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왜 오늘날 사람들은 이것이 응보임을 믿지 않는가? 그것은 중공 당문화(黨文化)에 침식되고 독해된 결과다. 당시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는 비록 10년간 문화혁명이란 충격을 겪었지만, 머릿속에는 여전히 구전심수(口傳心授)로 내려온 전통문화의 가치관이 남아 있었다.
때문에 문제를 보고 문제를 생각하는 것은 선악에는 보응이 따른다는 천리(天理)의 각도에서 사고했다. 하지만 오늘날 중국인들은 당 문화의 수십 년 세뇌를 거치면서 이미 신성(神性)의 내포를 잃었다. 설사 선악에 보응이 따름을 논해도 역시 말로만 할뿐 마음으로는 믿지 않으며, 뇌 속에는 ‘봉건미신’이란 생각이 번뜩일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인정하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며, 나쁜 짓을 하면 반드시 현세 응보의 일이 발생한다. 중공바이러스(무한 폐렴)라 불리는 신종바이러스가 2020년에 발생하여 많은 사람들이 사망했으나 사람들은 자신들과 멀리 떨어져 있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비록 파룬궁 수련생들은 사람들에게 역병에는 눈이 있어서 중국 공산당을 겨냥하고 있으니 당, 단, 대에 가입한 모든 사람들의 목숨이 위험하니 빨리 진상을 알고 중공 관련 조직을 탈퇴하고 ‘파룬따파 하오 쩐싼런하오’를 믿으면 중공바이러스의 표적이 되지 않을 수 있다고 알려주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신경 쓰지 않는다.
작년 12월, 중국 공산당은 갑자기 ‘봉쇄제로’ 정책을 풀어 중공 바이러스를 독감이라 선언하고 더 이상 어떠한 통제 조치도 취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그 결과 역병이 사방에서 일어나 수많은 사람들이 중공 바이러스에 감염되었고 이중 많은 사람들이 비명횡사했다.
현재 미디어의 급속한 발전, 특히 1인 미디어의 발전으로 인해 중공은 더는 정보를 차단할 수 없게 되었고 우리는 다양한 경로를 통해 사망자의 신원과 배경을 알 수 있다. 중공의 거짓말을 퍼뜨린 인민일보 기자 2명이 역병에 걸려 세상을 떠났고, 전 축구선수 1명이 서른네 살에 감염돼 세상을 떠났다.
또 상하이TV 직원 학욱(郝煜 하오위)가 감염돼 서른일곱 살에 세상을 떠났고, 중국과학원 원사 장화양(蔣華良 장화량)이 57세에 역병에 걸려 죽었다. 거짓말을 퍼뜨린 CCTV 앵커는 마흔두 살에 중공 바이러스로 사망했으며, 파룬궁을 여러 차례 헐뜯으며 정치 자본을 챙기려 했던 ‘과학 건달’ 하조상(何祚庥 허쭤슈) 부부와 아들 일가족이 모두 중공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큰 고생을 겪었다.
명문대학 교수들도 여럿 사망했는데, 그중 적지 않은 수가 중공산당원이었다. 중공 우수 당원이자 저명한 마르크스주의 철학자인 여덕양(黎德揚 리더양) 무한(武漢)공대 교수는 2022년 12월 28일 무한 협화(協和)병원에서 사망했는데 향년 85세다. 그는 호북성에서 이른바 ‘반사교(反邪敎) 협회’ 회원이자 호북성 ‘610’의 고문으로 오랫동안 활동하며 파룬궁 박해에 적극 가담했다.
12월 29일 하루 사이에 청화(淸華)대 미술대학 진한민(陳漢民 천한민) 교수, 서안교통대 전기공학대학 구관원(邱關源 추관위안) 교수 등 많은 교수들이 숨졌다. 이 중 천한민은 중공 위안화, 홍콩 반환 로고, 모택동 수정관(水晶棺) 등을 디자인하는데 참여했다.
중공 체제 선전의 앞잡이인 오모(五毛 친중공 인터넷 댓글부대) 중에서도 소위 4대 오모의 하나로 꼽히는 사마난(司馬南 쓰마난)과 그 가족도 역병에 감염돼 큰 고통을 받았다.
이상의 사례들을 통해 우리는 역병에 정말 눈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느낄 수 있다. 사람이란 요행심리가 있어서는 안 되는데, “초하룻날은 피할 수 있지만 보름날은 피할 수 없다.”
당신이 만약 확고한 중공 당원이라면 반드시 중공 바이러스를 피해갈 수 없다. 그것은 중국 공산당을 겨냥해왔기 때문이다. 이는 하늘의 뜻이다. 반대로 말하면, “초하루를 피할 수 있다”는 것은 하늘이 참회하고 진상을 알아 스스로 구원받을 기회를 준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 계속해서 잘못을 저질러 중공의 거짓말에 끌려 다닌다면, 역병에 걸려 목숨을 빼앗기는 악보를 당할 수밖에 없다.
내 여동생이 전에 한 가지 이야기를 들려준 적이 있다. 작년 12월 많은 사람들이 중공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매우 고통스럽게 견딜 때의 일이다. 출근한 후, 모두 서로 사람이 사는 목적과 의미가 무엇인지 묻고 있었다. 과거에는 불가능한 일이었는데, 그때만 해도 사람들은 자신의 월급과 보너스, 어떻게 큰돈을 벌 것인가에만 관심이 있었다.
요즘 사람들은 인생의 의미가 무엇인지 적극적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물론 주변에서 벌어지는 현세 응보에 냉담한 사람도 있고, 당 문화를 이용해 중공을 계속 찬양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는 지극히 위험한 일이다. 신불(神佛)은 사람들에게 진상을 깨닫고 자구(自救)할 기회를 준다. 그러나 사람이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면, 정말로 현세의 응보가 닥쳐와 소중한 사람 몸과 생명의 미래를 완전히 잃어버릴 수 있다. 그때는 후회해도 소용이 없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05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