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귀(梅歸)
【정견망】
어릴 때 기억에 아이들이 같이 놀아도 어른 이름을 함부로 말하지 못했고 어른 이름을 직접 말하면 사람을 모욕하는 것으로 여겼다. 당시 농촌에서 흔히 쓰는 기구를 이름으로 가진 이웃이 있었는데, 그 집 딸이 농기구를 빌리러 갈 때면 직접 부모님 이름을 말하지 않고 자신이 적당히 만들어낸 말로 대신했다. 이 일이 마을에서 미담이 되어 칭찬을 받은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저 감탄만 나온다.
지금 아이들은 어른들 앞에서 모두 함부로 직접 이름을 부르고 심지어 형제처럼 대하지만, 더욱 이상한 것은 어른들이 뜻밖에도 화를 내지 않고, 오히려 종종 기뻐하거나 심지어 일부러 아이들에게 이렇게 하도록 부추긴다. 부녀(父女) 사이에도 걸핏하면 누가 누구의 전생의 애인이라고 한다. 장유유서(長幼有序)는 말할 것도 없고, 인륜의 강상(綱常)조차 말하지 않는다. 사람들의 도덕관이 뜻밖에도 이렇게까지 몰락하다니, 정말로 슬프고 한탄스럽다.
과거에는 마을에서 스캔들이 생기면, 곧 나쁜 소문이 돌았고 누구나 다 욕을 했다. 지금은 어떠한가? 보통은 그저 웃는데 심지어 암암리에 부러워한다. 워낙 자주 보다보니 익숙해졌고 가난은 비웃어도 매춘은 비웃지 않는 것이 이미 일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사람의 전반 관념이 다 뒤집어졌다.
어떤 의미에서는 추한 것을 아름다운 것으로 여기고, 악취를 향기로 여기며, 기형적인 것이 세상에 드러나는데 도처가 다 그렇고 아울러 눈길을 잡아끈다. 만약 옛날 서시(西施)를 따라 인상을 쓰던 여인이 지금 다시 태어났다면 일찌감치 인터넷 스타가 되었을 것이다. 서법(書法)은 원래 아주 고상한 것으로 간주되었지만, 어떤 사람은 전문적으로 글씨를 추하게 쓰고 득의만만해하는데 심지어 많은 팬을 거느리고 있다.
내가 젊을 때만 해도, 중매를 설 때면 흔히 이 사람이 매우 진실(實在)하다고 했다. 그 때 “진실하다”는 말은 문자 그대로 좋다는 의미였다. 즉, 믿음직스럽고, 착실하며, 분수를 알고, 신뢰할 만하다는 뜻이었다. 지금 중매를 서면서 누가 “진실하다”고 말하면 아마 두들겨 맞거나 욕을 먹을 것이다. ‘진실’하다는 것이 이미 거의 부정적인 단어가 되어, 마치 멍청하고, 어리석어서, 완고하고, 능력이 없다는 뜻으로 변했다. 겨우 몇십 년 사이에 사람들의 관념이 이 정도까지 변했고, 단어의 의미마저 변이가 발생했으니 두렵지 않은가?
모든 것이 다 변이(變異)되었다. 과거에는 부러움은 부러움이고 질투는 질투였으며, 미움은 미움이었지만, 지금은 질투와 미움이 합쳐져 한 단어처럼 되었다! 부러움은 원래 중성적인 의미를 지닌 단어로 꼭 질투는 아니지만 질투는 일종의 부면(負面)적인 심리다. 또 질투한다고 해서 꼭 미워하는 것은 아니다. 부러움에서 질투가 생기고, 질투에서 미움이 생겨나는데 이런 과정이 있어야 한다.
정상적인 사람이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마땅히 이래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사람들은 부러움과 질투와 미움이 합쳐져서 단번에 올라오는데 중간 과정이 없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것은 배후에서 인심(人心)의 변이가 반영된 것으로 그야말로 섬뜩하기 그지없다.
“가난뱅이를 싫어하고 부자를 좋아한다”[嫌貧愛富]는 말이 있다. 과거에는 책에서 자주 보았지만 지금은 거의 볼 수 없다. 왜냐하면 이 단어로는 지금 사람의 상태를 표현하기에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금 사람들은 당신이 가난하다고 ‘비웃고’ 부자를 ‘미워’한다. ‘싫어함’과 ‘비웃음’의 차이는 그리 크지 않지만 ‘좋아함’과 ‘미워함’은 큰 차이다. 여기서 ‘좋아함’은 부러워하고 흠모한다는 뜻과 비슷하다. 이것과 미움은 십만팔천 리나 멀리 떨어진 것이다.
대체 인심이 왜 이렇게 무섭게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간 것일까? 사실 대답은 이미 정해져 있지만 당신이 마주할 용기가 있는가 없는가에 달려 있다. 중공(中共 중국공산당)은 정권을 찬탈한 70여 년간 무신론과 진화론을 대대적으로 선전했고, 여러 차례 운동을 펼쳐왔는데 돌이켜보면 줄곧 사람의 마성(魔性)을 방종하고, 사람의 도덕을 패괴(敗壞)시키며, 사람의 신앙을 파괴하지 않았는가? 두꺼비(강택민)가 파룬궁(法輪功)을 미친 듯이 박해하고 진선인(真善忍)을 금기시 했으며 국가적으로 파룬궁 수련생의 생체에서 장기를 적출하기도 했다. 이렇게 대규모 악행을 거리낌 없이 자행하는데 어찌 인심이 독해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어찌 사회 풍속이 망가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역병 3년간 중공의 소위 ‘영명(英明)’한 지도하에 중국 경제는 붕괴되었고 시신이 산더미처럼 쌓여 사람들은 모두 고통, 한숨, 두려움에 떨고 있다. 이는 사람의 겁수(劫數)이자 또한 사람이 스스로 만들어낸 인과응보다. 우리가 죄악을 마주해 비난하고, 저항하고, 항쟁하지 않고 마비되고, 침묵하며, 순종하고, 협력하거나, 심지어 도와서 선봉에 섰다면 당신이 그러고도 여전히 편안하고 행복할 수 있기를 바라는가?
파룬궁(法輪功) 창시인 리훙쯔(李洪志) 선생은 지난 1월 20일 처음으로 세인을 향해 《왜 인류가 존재하게 되었는가》를 발표해 인류, 삼계 등에 관한 수많은 천기를 드러내셨다. 아울러 사람이 구원받을 길을 분명히 알려주셨다. 이는 천지가 개벽한 이래 비할 바 없는 무량하고 홍대(洪大)한 자비다!
“신천우(新天宇)는 절대적으로 순정하고 아름다운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사람이 선념(善念)을 유지할 수 있고, 현대 관념의 충격에 직면하여 사람이 전통 관념을 견지할 수 있고, 무신론・진화론의 충격 속에서 신을 여전히 믿을 수 있으면, 이런 사람은 구도되어 천국으로 돌아가는 목적에 도달할 수 있다. 일체 난상(亂象)은 신이 최후로 안배한 것이다. 목적은 중생의 구도 여부를 고험하고, 동시에 고생은 또 그 과정에서 죄업을 없앨 수 있는바, 일체가 사람을 천국세계로 구도하기 위해 하는 것이다.”(《왜 인류가 존재하게 되었는가》)
“사람은 세상에 태어나서 당신 생활의 빈부와 관계없이, 반드시 좋은 일을 하고, 나쁜 일을 하지 않으며, 선함을 유지하고, 하늘을 공경하며, 신을 공경하고, 남을 기꺼이 도와야 한다. 그러면 복덕이 쌓이고 내세에 복을 받는다.”(《왜 인류가 존재하게 되었는가》)
부디 독자 여러분들이 이 글을 진지하게 읽어보고, 만년에도 만나기 힘든 이 기연(機緣 기회와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중공 관련 조직에서 ‘삼퇴(三退)’해 사악한 공산당의 수기(獸記 짐승의 기호)를 지우고 자기 생명을 위해 영원히 아름다운 미래를 선택하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15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