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록(白鹿)
【정견망】
지난 2년은 내가 수련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시간이었다. 사당(邪黨)의 노교소(勞敎所) 있을 때보다 더 힘들었다. 처음에는 그래도 비교적 정진했고 또 일부 제고도 있었다. 하지만 2022년에 나는 무엇을 해도 정진할 수 없었는데, 무엇이 나의 제고(提高)를 가로 막고 있는지 몰랐지만 늘 시간을 다그칠 수 없었다. 때문에 날마다 연공도 제대로 하지 못했고, 법 공부도 적게 했다. 하지만 자신이 정진(精進)할 수 있든 없든, 이미 잘 배치된 그런 관(關)이며 난(難)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았고 그들은 정해진 대로 찾아왔다.
우리 부모님은 2020년 9월, 10월부터 병상에 눕기 시작했고 가족 중에는 또 다운증후군을 앓는 남동생이 하나 있었다. 우리는 어머니를 위해 가정부를 고용하고, 아버지와 남동생은 나와 셋째 언니가 돌봤다. 2022년 10월 남동생도 병상에 누웠다. 우리는 원래보다 더 힘들어졌다.
그러다 작년 12월 역병이 밀물처럼 닥쳐왔을 때 내 몸에도 적잖은 반응이 나타났고, 또 ‘양성’증상이 나타났다. 머리가 아프고, 다리가 아팠으며, 온몸에 힘이 없었다. 이때 셋째 언니도 병원에 입원하는 바람에 나 혼자 침대에 누워 말도 못하는 두 사람을 돌봐야 했다. 내 몸도 아직 편하지 않았기에, 나는 속으로 감당 능력이 한계에 도달했다고 느꼈다. 나는 자신에게 마땅히 이를 돌파해야 하며, 마음의 용량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지만, 그러나 나는 돌파해 나오지 못했다.
12월 말에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하셨다. 검사 결과 이미 폐가 하얗게 변하는 백색폐증 진단이 나왔다. 며칠 후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나는 울면서 생각해보았다. 나는 부친에게 잘하지 못했고 때로는 부친에 대한 태도조차 좋지 않았다. 이때 나는 사유전감으로 “너는 아주 잘했다”는 부친의 목소리를 들었다.
아버지가 입원한 바로 다음 날, 동생이 갑자기 고열이 나더니 같은 병원에 입원했다. 동생은 다운증후군 때문에 결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가 돌봐야 했다. 병원에서 각종 약을 다 써봤지만, 실질적인 호전은 없었다. 동생이 병원에 입원한 지 열흘이 넘었을 때, 나는 내 신체가 감당할 수 있는 극한에 도달했음을 느꼈다.
동생이 입원한 지 21일이 지났을 때, 나는 그의 상태도 좋지 않은 것을 보았다. 심장 박동과 호흡도 느려졌다. 나는 울면서 그에게 말했다.
“네게 자신의 천국세계(天國世界)가 있다면, 너는 자신의 세계로 돌아가거라. 만약 없다면 내 천국세계로 가거라.”
이때 나는 그의 사유전감을 들었다.
“내게도 (천국 세계가) 있어요.”
동시에 나는 다른 공간에서 그의 형상이 내 눈앞을 스쳐 지나가는 것을 봤는데 아주 영준하게 생긴 젊은이였다. 동생은 병원에 입원한 후 얼굴모습마저 달라졌다. 원래는 좀 작은 쌍꺼풀이 있었는데, 지금은 마치 불상(佛像)의 눈처럼 눈꼬리가 위로 올라간 큰 쌍꺼풀이 생겼다. 섣달 그믐날 새벽, 남동생도 세상을 떠났다.
나는 원래 자신은 정(情)이 그리 무겁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아버지와 남동생이 차례로 세상을 떠난 후, 나는 정(情)에 시달렸다. 그들이 사용하던 것을 보면 그들이 살아 있을 때의 광경이 떠올라 견디기 힘들었다.
작년에 아버지는 한동안 혼수상태에 빠졌고 밥도 제대로 드시지 못했다. 당시 어느 날 갑자기 부친이 내게 “천국 세계에 갔다.”고 말했다.
나중에는 또 “땅을 쓸지 마라, 땅이 다 황금이란다.”라고 했다.
나는 아버지가 좋은 곳에 갔음을 알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힘겨웠다.
며칠 전 나는 동생이 살아 있을 때의 모습이 떠올라 또 눈물이 났다.
이때 나는 동생의 사유전감을 들었다.
“그것은 나의 가장 끔찍한 형상입니다. 수련을 잘하세요.”
그들이 살아있을 때, 내가 힘들다고 느꼈을 때, 그들은 스스로 고통을 감당하면서 나를 위해 하늘로 올라가는 계단을 놓아주었는데 나는 올라가지 못했다. 이제 그들은 떠났고, 그들은 자신의 생명을 이용해 마지막으로 나더러 친정(親情 가족에 대한 정)을 내려놓으라는 계단을 놓아주었다. 나는 반드시 이 계단을 밟고 올라갈 것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14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