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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수는 모두 나의 가족

요녕 대법제자 채심(茝心)

【정견망】

2023년 새해가 다가올 때 나는 몇몇 독신 여성 동수들이 설 쇠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이들 중 일부는 일찍이 사별해 혼자 살고 있고, 어떤 이는 줄곧 가족이 없었으며, 일부는 영어(囹圄)의 몸이 된 후 가정이 깨져 이후 독신으로 지낸다. 나 역시 몇 년 전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지금까지 독신으로 지내는데 재혼할 생각이 없어서 지금껏 독신이다. 나는 이에 그들을 일일이 찾은 후 함께 새해를 보내자며 집으로 초대했다.

션윈(神韻) 공연이 방송되기 전에 나는 상을 잘 차려 모두 함께 설날 저녁을 먹었다. 이어서 또 모두 함께 신당인(新唐人)에서 방송한 《왜 인류가 존재하게 되었는가》와 신년 션윈 공연을 보왔다.

박해를 받다가 감옥에서 풀려난 한 동수는 눈앞에 펼쳐진 새해 풍경을 보며 감동해서 말했다.

“여기야말로 따스한 집이네요! 올해는 지금까지 새해 중 가장 의미 있고 가장 좋은 새해입니다!”

대법을 수련한 이래로 나는 항상 동수들을 나의 가장 가까운 가족으로 대해왔다. 1999년 7월 이후 많은 동수들이 박해 받을 때, 나는 집을 떠나 떠도는 동수를 만날 때마다 전력을 다해 그들을 도왔고 보호해주었다.

한 번은 파출소에서 온 경찰들이 갑자기 내 직장에 찾아와 내가 외지(外地)에서 온 한 남자 동수를 도왔다는 이유로 구류하려 한다며 차에 태웠다. 나를 파출소로 데려간 후 그들은 그가 우리 집에 머무는지 물었다.

나는 말했다.

“우리 남편은 이미 당신들이 데려가서 구금되어 있고 집에 남편이 없는데 내가 어떻게 다른 남자를 데려다 집에 살게 하겠어요?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까?”

경찰관도 내 말이 맞는다면서 나를 차에 태워다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사실 그 외지 남자 동수는 내가 집을 구해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람이었다. 당시 나는 아무런 두려움도 없었고 오직 그가 견정한 대법제자라는 것과 동수를 돕는 것은 내 의무이자 책임인 것만 알았다.

나와 함께 ‘세 가지 일’을 했던 동수들은 심성이 각기 달랐다. 한 뚱뚱한 언니는 진상을 전하러 나갔을 때 무슨 일이 생기기만 하면 자신이 들고 있던 진상자료를 다른 동수의 손에 밀어 넣는 바람에 많은 사람들이 그녀와 함께 하지 않았다. 나도 경험이 있는데 그녀와 진상을 알릴 때 누군가 우리를 미행하고 있다고 생각한 그녀가 모든 자료를 내게 떠넘긴 일이 세 차례나 있었다.

또 다른 동수가 진상을 말할 때 경찰에게 길을 가로막히자 모두들 그녀가 두려움 마음이 무거워서 동수를 배신했을 거라고 여겼다. 단체 법 공부에서 법을 유창하게 읽지 못하고 글자를 잘못 읽거나 빼먹고 읽어 모두들 그녀를 무시하고 멀리했으며 아무도 그녀와 함께 하려 하지 않았다. 그녀는 특히 이것 때문에 괴로워했다. 내가 자신을 도와주지 않으면 살고 싶은 생각이 없다고까지 말했다. 나는 그녀의 이런저런 나쁜 점은 보지 않았고 그녀에게 법을 배울 생각이 있고 또 진상 알리는 것도 뒤처지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을 알았다. 이에 그녀가 심성의 난관을 넘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려고 노력했다.

한번은 그녀가 자기 집에 돌아갔을 때 건물 앞에 경찰차가 주차된 것을 보고는 몹시 무서워하면서 급히 우리 집으로 달려와 이곳에 머물며 자기 집에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나는 이에 당신이 이곳에서 지내도 되고, 밥이며 요리도 해줄 테니 일단 마음을 안정시키세요! 라고 말했다. 그 후 그녀는 나더러 자기 집에 가서 집에 있는 모든 대법 서적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그녀 집에 가서 모든 대법 서적과 자료를 가져왔다. 저녁 식사 후 그녀와 함께 법을 공부하고 함께 연공했다.

나중에 다른 동수가 내게 물었다.

“당시 그렇게 위험해 보이는 상황에서 이렇게 하는 게 두렵진 않았어요?”

“내가 왜 두려워해야 하나요? 당시 뚱뚱한 언니 동수가 그런 환경에 처해 있었는데 내가 도와주지 않으면 그녀를 어디로 밀어내겠습니까? 일에 부딪혀 남을 위해 생각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또 도시에서 협조인으로 있었던 한 노년 동수가 있었다. 그녀는 감옥에서 박해를 받은 후 다리에 장애가 생겨 거의 걸을 수 없었다. 감옥에서 나온 후 너무 외로워 보여 매달 우리 집에 데려가 한동안 함께 먹고 함께 살면서 같이 법을 공부했다.

이 동수와 함께 지낼 때 서로 관념이 달라서 가끔 마심(魔心)의 일이 나와 불쾌한 일도 있었지만, 그런 불쾌한 감정들은 그저 잠시 머물다 스쳐지나갔다. 예를 들면, 그녀가 다리가 좋지 않은 상태로 집안을 다니다보니 “바스락바스락”하는 소리가 아래층 사람들에게 아주 선명하게 들렸다. 집에 온 다른 동수들이 그녀더러 행동을 고치라고 하면서 정념이 강하면 넘길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행동을 고치고 싶지 않다고 하면서 이 말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녀는 늘 낯선 사람들이 항상 우리 집에 오는 것을 보았고 또 나는 그 누구도 거부하지 않았기 때문에 누구든 이곳에 들어올 수 있다는 생각에 이것저것 두려워했고 안전을 걱정했다. 때때로 그녀는 자아(自我)에 상당히 집착했고 기분이 좋지 않을 때마다 내게 소리를 지르곤 했다. 하지만 나는 아무런 관념도 없었고 마음속으로 늘 동수를 생각했다. 누가 오고 싶으면 오라. 동시에 그녀와 함께 있을 때 나는 나에 대한 그녀의 태도를 보지 않았고 늘 안으로 자신의 심성 문제만 찾았다. 때로 그녀가 우리 집에 머물기 힘들어 하면 나는 그녀를 집으로 돌려보내주었다. 그러나 그녀가 떠난 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나를 그리워했다. 그러면 나는 그녀에게 소조 법 공부가 없을 때 다시 그녀를 데리러갔다.

또 다른 여자 동수는 감옥에서 막 출소한 후 심한 박해를 받아 남편에게 이혼 당했다. 가족도 잃었고 딸은 또 외지에 살았는데 어디로 갔는지 몰랐다. 나는 그녀가 이런 어려운 상황에 처한 것을 보고 다른 동수들과 함께 있는 힘을 다해 돌아갈 집이 없는 그녀를 도와주었다. 나는 이에 그녀를 아예 우리 집으로 데려왔다.

이 동수는 원래 이름만 알았지 직접 만난 적은 없었다. 그녀는 감옥에서 박해를 받은 후 정신이 혼미해졌고 생활방면에서도 혼자 자립하지 못해 대소변을 가리지 못했다. 또 콧물이 흐른 것을 훔친 손으로 이곳저곳을 만지곤 했다. 일반인들도 모두 그녀를 더럽다며 싫어했다. 하지만 나는 기왕에 그녀를 기꺼이 돕고 싶었기 때문에 그녀의 이런 상태를 싫어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원래 대학을 졸업했고 안정적인 직업도 있었지만 지금 사당(邪黨)의 박해를 받아 집과 직장을 잃은 것이다. 하지만 대법수련에 대한 그녀의 마음은 여전히 확고했다. 만약 이럴 때 아무도 그녀를 돕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그녀가 우리 집에 온 후 나는 그녀와 함께 지내며 서서히 그녀의 나쁜 습관을 고치도록 도와주었다. 이렇게 그녀와 함께 살면서 함께 법 공부를 하고 함께 연공하면서 그녀에게 짜증을 내거나 미워하지 않았다. 그러자 그녀는 점차 나아지기 시작했다.

두 달 후, 그녀를 돕고 싶어 하는 다른 동수가 나타나 그녀를 데려갔다. 그들이 떠날 때 나는 다른 동수들이 그녀에게 생활비로 준 돈과 전에 그녀가 일해서 번 돈을 모두 그녀를 데려간 동수에게 전했다. 나는 또 천 위안을 보태 그녀가 생활하기에 좋은 환경을 보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게 했다.

어느 날 여동생 집에 일이 생겨서 밤낮 여동생과 함께 지내느라 집에 돌아오지 못했다. 그때 또 어떤 동수로부터 급한 연락을 받았다. 한 동수의 여동생이 위독한데 기어이 내 이름을 찾으니 내가 가보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나는 도시 동쪽에 있는 넷째라 불리는 동수 집으로 차를 몰고 갔다. 가서 보니 그녀(넷째)의 여동생이 심각한 상태였다. 알고 보니 동생도 수련을 했는데, 어느 날 시골 동생 집에 갔을 때 동생의 상태가 좋지 않은 것을 보고 자기 집으로 데려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막상 동생이 집에 도착했을 때 어쩌면 좋을지 몰라 즉시 나한테 연락해 자기 동생을 우리 집으로 데려가 달라고 요청했던 것이다.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여동생은 시골에서 단체로 법을 배울 환경이 없었고 수행도 그다지 정진하지 못했으며 원한심(怨恨心)을 시종 닦아 버리지 못했다. 때문에 몸이 점차 나빠졌고 지금과 같은 상태가 나타났다. 그녀는 병원에 입원했지만 또 퇴원했고 이렇게 몇 차례 반복했다. 그녀가 다시 병원에 가고 싶어 하지 않을 때 나는 그녀더러 우리 집으로 가자고 말했다. 나는 동수 몇 명을 더 찾아 함께 법을 배우면서 함께 그녀를 도왔다. 그 당시 나는 그녀의 심각한 상태에 대해 세상을 떠나도 책임지는 것이 두렵지 않았고 그저 그녀를 내 가족처럼 여기며 그녀를 도울 생각만 있었다.

나는 두 자매를 차에 태워 우리 집으로 데려간 다음 함께 법을 공부할 동수들을 찾았다.

이 동수는 상황이 여전히 좋지 않아 법을 배울 수 없었다. 게다가 음식을 먹으려 하지 않았고 밤새 잠을 자지 못했으며 화장실에 여러 번 가기를 반복했다. 어느새 내가 새로 준비한 침대 시트는 대변인지 오줌인지 모를 그녀의 오물로 얼룩이 졌고 집안에 악취가 진동했다. 어떤 동수는 우리 집에 와서는 참기 힘들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아무런 마음도 없었다. 나의 가장 큰 관심은 그저 곤경에 처해 도움이 필요한 동수를 돕는 것뿐이었다.

그녀는 상황이 여전히 좋지 않았고 아울러 점점 더 악화되었다. 동수들이 상의해보더니 만약 이 사실을 그녀의 자식들이 알게 되면 자식들이 우리를 비난할 수 도 있을 것 같았다. 또한 그녀의 앞이마를 보니 잠시 밝아지더니 주름이 모두 펴지면서 쇼크 상태에 빠졌다. 깨어나서는 또 온 집안에 벌레가 가득하다고 했다. 이는 세상을 떠나려는 징조가 아닌가?

한 남자 동수가 그녀를 업고 내려갈 때 그녀의 목과 팔이 다 뻣뻣하다고 말했다. 병원에 도착한 후 의사가 수액을 투여했다. 나는 그녀의 이마에 다시 왕(王)자가 나타난 것을 보았는데 이마 주름도 생겨났고 숨이 좀 편해지는 것을 보았다. 그 후 우리는 그녀를 다시 시골로 돌려보냈다.

그녀는 전에 결혼 경험이 있는 남자와 결혼했는데, 남편은 이미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났다. 자녀들은 그녀의 친자식은 아니었지만 다행히 새어머니에게 아주 잘했고 우리가 집을 방문하는 것도 거부하지 않았다.

나는 동수와 함께 늘 그녀를 보러가곤 했다. 비록 그녀의 집이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외딴 시골에 있었지만 나와 동수들은 가급적 어려움을 극복하고 다른 동수를 배치해 시골에 가서 그녀를 돕게 했다.

한편, 우리 지역 협조인은 동수들이 무슨 일만 생기면 나를 찾고 또 내가 너무 바빠서 제때 자신과 상의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는 잘 수련되지 않은 마음이 작용을 일으켰다. 어느 날 그녀가 우리 집에 찾아왔는데 집에 들어오기도 전에 밖에서부터 큰 소리를 지르며 눈물을 흘렸다. 다른 동수들 중 일부가 말했다.

“이건 그녀가 너무 이지적이지 못한 것으로 건물 앞뒤에 사는 다른 사람들이 그녀의 행동을 보면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이것은 그녀의 질투심이 아직 제거하지 않았고 또한 강렬해진 것이 아닌가!”

나 역시 당시 감정의 파동이 있었지만 곧 마음속에서 제거했다. 나중에 나는 협조인 및 그녀 남편과 이 문제에 대해 토론하면서 나는 그녀를 대신해 협조인이 되려는 어떤 의사도 없다고 분명히 표시했다. 그녀도 나를 잘 알았고 또 동수들이 일만 생기면 나를 찾아오는 원인을 잘 알고 있었지만 까닭 없이 화가 났을 뿐이다.

그 후 교류를 통해 원래 그녀와 늘 함께했던 동수가 그녀를 떠난 후 매사가 뜻대로 되지 않았는데 내가 그 누구와도 잘 협력하는 것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화를 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다른 동수들과 상의한 후, 법을 외울 수 있는 동수를 찾아가 그녀와 함께 천천히 법을 외우게 했다. 또 그녀가 협조인을 하고 싶다면 그 누구도 다투지 않겠노라고 알려주었다. 그러자 그녀도 점차 이지를 되찾았다. 나는 이 일 때문에 그녀에 대해 그 어떤 마음의 매듭도 생기지 않았고 여전히 그녀를 내 가족처럼 대했다.

내가 모든 동수들을 나의 가족처럼 대했을 때 접촉 과정에서 마난(魔難)이 나타나면 끊임없이 자신을 수련했고 진일보로 내 마음의 용량을 확장시켰으며 일반인이 감당할 수 없는 많은 일들을 참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내게는 아주 많은 닦아버리지 못한 마음이 여전히 존재함을 나는 똑똑히 안다.

동수를 자기 가족처럼 대하자면 여기에는 대법 진선인(真善忍) 수련이 필요하다. 사부님께서는 세상 사람은 모두 일찍이 당신의 가족이었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럼 우리는 왜 동수를 자신의 가장 가까운 가족으로 대하지 못하는가?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26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