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대법제자
【정견망】
3. 법정인간 시기 겪은 수련 상태
나는 오늘까지 수련하면서 비록 과거에 비하면 격세지감이고 환골탈태했다고 느낀다. 그러나 여전히 날마다 사부님 법상(法像) 앞에 무릎을 꿇을 때마다 늘 자신의 각종 여의치 못한 표현 때문에 고개를 들기조차 두렵다. 물론 웃을 때도 있지만 늘 웃 때 보다는 울 때가 더 많았다.
왜 그런가? 바로 이 인피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매일 수련에서 이 인피를 통제하고 있지만 또 매일 전투에서 실패하고 다시 기어 일어난다. 내가 포기하지 않는 한 사부님께서도 영원히 나를 포기하지 않으실 것이다. 나는 우리 매 사람이 모두 단지 각성하고 정진하는 정도만 다를 뿐 동일한 과정을 거치고 있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이 과정에서 우리는 또 모두가 같은 고통 속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우리 눈에 비친 타인의 인피(人皮)는 다르지만 모두 그 생명 배후의 고통이 있다. 우리는 영원히 선의(善意)를 품고 수련에서 서로 제고하고 지지해야 하며 이렇게 해야만 이 어려운 길에서 공동으로 걸어갈 수 있다.
나는 비록 자신의 능력을 볼 순 없지만 지금은 이미 감히 화를 내거나 또는 멋대로 어느 생명을 싫어하거나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만약 그런 일이 있다면 잠자리에 들기 전에 이런 복잡한 물건들을 깨끗이 청리해서 다음날 일어나면 깨끗한 내가 되도록 주의한다. 이전 한 순간의 악념(惡念)에 대해 나는 이를 제거하고 선념(善念)으로 보완하고자 노력한다.
왜냐하면 내가 화를 낸 후에 받게 되는 징벌은 이미 갈수록 현세현보(現世現報)가 더 무거워졌으며 나는 이미 자신의 내심 일념(一念)이 외부에 대해 일으킨 즉각적인 반응과 변화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또한 나로 하여금 여기에서 위로 닦아야 하며 더는 이전처럼 그렇게 멋대로 굴거나 멋대로 처신할 수 없음을 알게 했기 때문이다. 갈수록 많은 중생이 나의 책임이 되었고 나의 일념이 좋고 나쁨에 따라 무의식중에 다른 생명에게 곤경이나 고난 심지어 생명을 훼멸할 수 있다.
나는 전에 줄곧 왕(王)이 되면 마음대로 먹고 마시며 놀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러다 강희제[康熙帝 청 성조(聖祖)]가 왜 한 걸음을 내딛거나 한번 앉을 때조차 늘 눈빛에서 왕자(王者)의 평온함을 유지했는지 심지어 단지 한 번 돌아보거나 곁눈질하는 것조차 하지 않았는지 분명히 알게 되었다.
무량한 중생을 어깨에 짊어졌을 때 정마(情魔)로 단 하나의 흐트러짐조차 없어야 한다. 내 생각에 나는 영원히 이것을 해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진지하게 신(神)의 법도를 배워야 하며 사부님께서 내게 주신 나의 위치와 이 과정에 내게 맡겨주신 중생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
나는 과거 수련과정에서 아주 많은 고통을 겪었기 때문에 후기(後期) 몇 년에는 자신의 대부분의 업력이 모두 마치 고생을 겪음과 사부님의 보호 하에 소멸된 것처럼 보였다. 수련 후기 몇 년에 나는 편안히 살기 시작했다. 비록 돈은 많지 않았고 생활이 부유하진 않았지만 오히려 아무런 걸림이나 걱정도 없고 근심도 없는 상태가 시작되었다. 내재적인 상태와 외부환경을 막론하고 모두 점차 좋아졌다. 몸에서 멜라닌 색소가 쌓여 있던 시커먼 곳들도 점차 희게 변하거나 없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이것이 나의 주요한 업력이 없어졌기 때문임을 안다.
하지만 역병이 시작되자 내 몸은 전후(前後)로 큰 소업을 겪었다. 과거 제거했던 일부 업력의 증상이 갑자기 나타났는데 전에 가장 힘들었던 때 겪었던 것보다 10배, 100배나 강력했다. 몸도 불과 몇 주 만에 소모되어 피골(皮骨)이 상접할 정도가 되었다. 과거와 차이점이라면 나의 수련상태가 과거보다 성숙해져서 이런 업력들이 모두 고강도의 법공부와 연공 속에서 통제할 수 있는 상태 하에서 소멸할 수 있었다.
나는 의료계통에 종사하는데 학교에서 어린 아이들을 돌본다. 나는 또 가령 겨울철 전염병이나 봄과 여름의 장염 등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병업(病業) 상태가 나타날 때마다 이런 증상이 모두 먼저 내 몸에 나타나는 것을 발견했다. 단지 내가 법 공부와 연공을 하면 신속하게 소멸되었다. 나는 내가 이곳에서 아이들의 첫 번째 장벽이고 전체 학교 역시 아이들을 위해 도처에 존재하는 구우주의 업력과 온갖 종류의 저령(低靈)・마물(魔物)의 침입에 대항하는 장벽임을 느끼기 시작했다. 만약 나의 수련상태가 좋지 않으면 더 많은 아이들이 유행병의 업력에 영향 받게 된다. 즉 내가 그들을 잘 보호하지 못하게 된다.
내가 신체로 큰 업을 소멸한 초기에는 또 소침하고 혼란스러워지는데 그때 사부님께서 아직 법정인간의 법을 말씀하지 않으셨을 때였다. 나는 수련상태가 점점 좋아진 후에 왜 갑자기 이렇게 큰 관(關)이 나타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설마 내가 무엇을 잘못해서 심하게 떨어져 내려갔단 말인가? 사부님께서 법정인간의 법을 말씀하신 후에야 나는 비로소 이 일체는 연계되어 있으며 자신이 새로운 수련 단계로 진입해서 중생을 위해 감당해야 하며 또 중생을 보호하는 작용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런 업력이 아주 기세등등하고 확실히 나를 두렵게 했는데 마치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았다.
“사람을 구하는 중에서 당신은 이미 아주 많은 사람을 도와 역병(瘟疫)보다도 천배 백배나 강대한 세균・바이러스를 소멸했다.”(《깨어나라》)
나는 정말 이런 과정을 겪었는데 과정 중에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아프고 가려웠다. 만약 강력한 공과 법(法)의 연마가 없었다면 인체(人體)는 단 한순간도 감당할 수 없었을 것이다. 가장 심할 때 나는 거의 포륜(抱輪)과 가부좌에 의지해 살아야 했다. 하루에 두 번 세 번, 한 시간 두 시간, 세 시간을 연마했는데 이 기간에 아예 잠을 잘 수 없었다. 포륜 중에 업력이 신체 어느 부위에 대량으로 모이면 그곳이 심하게 가렵고 아픈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신체 장기(臟器)가 마치 불에 타고 무수한 뱀과 벌레들이 무는 것처럼 견딜 수 없이 괴로웠다.
하지만 공(功)의 보호가 있었기에 흔들리지 않고 버틸 수 있었다. 매번 포륜을 할 때면 극심한 가려움과 통증 속에서 업을 배출했고 그러고 나면 잠시 2~3시간 좀 가라앉았다. 다시 업력을 밀어내기 시작하면 또 연공을 시작했다. 낮에는 일을 해야 했기 때문에 법정인간이 시작될 그 기간에 나는 확실히 아주 힘들었다. 다행히 이 과정을 통해 지금은 이미 많이 성숙해졌고 더는 법리(法理)가 명확하지 않아 의심하지 않게 되었으며 자신이 이런 책임을 감당할 수 있는 것에 대해 감사하고 영광임을 느낀다.
4. 어떻게 항목을 대할 것인가
나는 줄곧 항목을 우주를 구성하는 일부분으로 보아왔다. 그것이 비록 속인 사회의 회사 또는 실체(實體)이긴 하지만 그것도 위로 대응하는 체계가 있다. 아마도 우주의 한 범위, 한 혈위(穴位) 내지는 하나의 공능체(功能體)일 수 있는데 우주에서 에너지와 양분을 생성하고 전파하며 우주 중생들에게 복익(福益 복과 이익)을 주고 배양하며 감당하는 기능을 할 것이다.
우리는 소우주(小宇宙)는 반고신(盤古神)의 신체(身體)로 그가 소우주를 관장하고 있음을 알고 있고, 또 삼계는 옥황대제(玉皇大帝)가 관장하는데 다시 말해 삼계는 바로 옥황대제의 신체다. 항목을 말하자면 이 항목의 책임자가 위로 대응하는데 만약 그가 수련 성취할 수 있다면 이 항목이 포함하는 범위 역시 마찬가지로 그의 한 층 신체(身體) 범위가 될 것이며 이 범위는 또 장차 무수한 중생과 뭇 신(衆神)을 포함할 것이다.
삼계 내에는 중생뿐만 아니라 수많은 신들이 있으며, 매 한 신(神)은 삼계 범위 내에 자신의 신선(神仙)의 저택이 있으며 옥제(玉帝 옥황대제)와 함께 삼계 중생의 안정을 책임지며 중생을 보호하고 있다. 신(神) 역시 높고 낮음이 있어서 어떤 이는 이 한 층이고, 어떤 이는 위로 보다 높은 우주 체계와 대응한다. 가령 석가모니, 관음보살, 태상노군 등이다.
하지만 이 한 층 우주 범위 내에서 모두들 옥제(玉帝)를 이 한 층의 주(主)로 존중한다. 이는 도한 우리 각 수련인과 항목의 관계와 같다. 우리가 (협조인보다) 더 높을 수도 있고 또 더 낮을 수도 있지만 이 항목에서는 이 항목 협조인(協調人)이 주(主)가 된다. 만약 우리가 닦은 것이 더 높을수록 우리의 심성은 더욱 좋아질 것이며 동수 사이에 성심(誠心)과 예의로 대해야 한다. 수련인은 자신이 높이 수련했다고 해서 남을 짓누르거나 관리에 불복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이는 이상적인 상태이다.
내가 보기에 대법 항목의 협조인(協調人)은 가장 감당하기 어렵다. 사실 만약 한 협조인을 그 위치에서 일반적인 위치로 내려놓는다면 우리는 종종 그가 상당히 괜찮은 사람임을 발견하게 된다. 어떤 이는 용감하고 정의로우면, 어떤 이는 친절하고 겸손하며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고, 어떤 이는 지식이 해박하고 함양(涵養)이 있는 등이다. 그러나 일단 협조인 위치에 놓기만 하면 각종 원망을 불러일으키거나 심지어 평판이 매우 나빠진다. 왜 그런가? 왜냐하면 생명은 모두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용감한 사람은 종종 화를 잘 내고, 겸손하고 관용적인 사람은 용기와 추진력이 부족할 수 있으며, 함양이 잘 된 사람은 표현하고 소통을 잘하지 못하는 등등이다. 또 일단 협조인 위치에 있으면 그 층 우주 범위가 그의 신체가 되고 그의 그 어떤 결점이든 즉시 각 방(方) 중생의 이익과 관련되기에 각종 불만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만약 개선하지 않으면 심지어 항목의 위기까지 초래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위치(位置)는 심지어 잔인하다고까지 말할 수 있다. 수련 성취되기 전에 칼과 도끼로 자르고 물과 불로 단련하는데, 우주의 안전을 위해 이 생명에 대해 조금이라도 정(情)을 남겨둘 수 없다. 때문에 성공적인 협조인이라면 단지 감당할 수 있어야할 뿐만 아니라 또 큰 고통을 견딜 수 있어야 하며, 뼈를 깎는 모순 속에서도 자신의 약점을 볼 수 있어야 하며, 수련 과정 중에서 끊임없이 이를 개선하고 완벽해져야 한다. 만약 이 생명이 이 과정에서 단련되는 것을 감당하지 못한다면 그럼 이 항목이 설사 성공한다 해도 사부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니게 된다. 왜냐하면 진정으로 직책을 감당할 생명이 와서 이 위치를 감당한 것이 아니라서 이 우주 범위에 조만간 혼란이 나타나거나 심지어 무너질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단지 총협조인 뿐만 아니라 각 위치의 책임자 역시 마찬가지이며 지위의 고하를 막론한다. 어느 한 부분을 책임진다면 그럼 그 부분은 이 생명의 장점과 결점으로 인해 이익이나 손실을 받게 된다. 이 생명은 바로 이 위치에서 수련해 내야 하며 거친 것을 없애고 정교한 것을 취하며, 담금질로 형태를 만들어 일방(一方)을 바로잡는 책임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영원히 이 위치에 있는 것인가? 내 생각에 그렇지 않을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매 번마다 관음보살 하나가 수련하여 올라갈 때, 그녀는 지상에서 그녀의 장래에 자신을 이어나갈 사람을 선택하는데, 그 사람을 도와 그녀 자신과 똑같은 慈悲(츠뻬이)를 닦게 한다. 역시 그렇게 높은 층차이고, 그렇게 큰 위덕이며, 그렇게 큰 고생을 겪을 수 있고 그렇게 큰 위력이 있을 수 있다. 그 사람이 원만을 이뤘을 때, 그녀는 그녀를 제도해 올라와 자신을 대체하게끔 했다. 매 한 불ㆍ도ㆍ신은 모두 이렇다.”(《각지설법 1》〈베이징국제교류회설법〉)
내가 이해하기에 우리의 수련도 마찬가지이며 우리는 개창(開創)하고 있다. 우리는 이전의 그 누구도 가지 않았던 길을 걸어 주신(主神)이 인피(人皮)를 통제하는 기제의 능력을 수련해 내야 하며 이를 통해 미래 생명이 하늘로 올라가고 땅에 들어갈 수 있는 통로를 열어야 한다. 우리는 동시에 또 법(法)에 대해 실천하고 도(道)를 깨닫는 가운데 신우주의 각 층 기제를 개창해야 하며 우리가 떠난 후에는 이런 기제를 후인들에게 남겨주어야 한다. 이런 기제를 감당할 나중에 온 생명 역시 우리가 다져놓은 위치의 특징에 따라 수련 성취될 것이며 이를 통해 이 일방(一方) 우주 운행 기제를 감당할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때로 동수가 항목 어느 위치의 기제가 완벽하지 않다고 협조인에게 불평하는 것을 들을 때마다 그에게 권고한다.
“우리는 이 기제를 개창하기 위해 이곳에 보내진 생명으로, 우리가 이런 생명이 될 수 있는 행운이 있으니 반드시 상응하는 어려움에 직면해야 합니다. 우리 자신의 위치에서 직면하는 불완전한 요소는 바로 우리가 이 위치에서 직면하고 해결하기 위해 보내진 것입니다. 그 누구도 우주를 다 건설한 다음에 우리를 불러다가 우리에게 적합한 곳의 왕(王)으로 삼진 않을 겁니다. 우리는 마치 큰 건물을 짓는 것처럼 스스로 이런 틀을 만들고 있습니다. 어려움과 고생을 겪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고 떨어져 다치거나 떨어져 죽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협조인 역시 머리가 세 개에 팔이 여섯 개 달린 것은 아니며 또한 그 혼자 이 우주를 건설할 수도 없습니다.”
각 층 위치에서 각 층 생명은 자신이 위아래로 소통하고 방법을 찾는 것을 모색해 건설에 성공해야 한다. 만약 자원(資源)이 없다면 스스로 노력해서 자원을 찾아야 하고,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면 스스로 도와줄 사람을 찾아 각 층 생명의 인정을 받아야 하며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해 내고 경영의 틀을 갖춰야 한다. 이런 생명만이 이 한 층 신위(神位)의 주(主)가 될 수 있다.
물론 최종적으로 항목의 성공 여부, 각 층 위치가 적당한 위치를 차지하는가 여부는 결국 또 총협조인과 한데로 연계되어 있다. 그러므로 모두 서로 수련하고 서로 도와 완벽하게 하는 과정이다. 소통과 협조 중에서 시종 선(善)을 기점으로 삼아 서로 이해하고 포용해야 하며 모두가 스스로 개선할 수 있는가 여부가 일을 성취하는 관건이다.
사실 때로, 특히 항목을 처음 시작할 때는 위치의 경계가 아직 분명하지 않다. 내가 이해하기에 이 과정 역시 사부님께서 우리가 되는지 안 되는지, 위치를 감당할 수 있는지, 책임이 높거나 아니면 낮은지 지켜보시는 과정이다. 예를 들어, 나는 비록 의료계통에 종사하며 단지 아이들의 건강문제만 책임지고 있지만 이것을 자신의 책임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내 직업은 내가 사람들 속에서 돈을 벌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고, 나의 진정한 신분은 대법제자다.
내가 보기에 어떤 일을 할 필요가 있다면 나의 능력 범위 안에서 최선을 다해 일해야 한다. 또 말을 할 필요가 있으면 목소리를 내서 말해야 한다. 항목에서 에너지가 막히고 소통이 잘되지 않는 어떤 부분을 보았다면 주동적으로 찾아가 소통해야 한다. 또 항목에서 일부 기제가 부족한 것을 보면 곧 새로 만들려고 시도해본다. 나 역시 많은 때 자신이 한 일이 옳은지, 도를 넘는 것은 아닌지, 남에게 강요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울 때도 있다.
특히 처음 시작할 때는 내 목소리를 내는 것에 대해 늘 압력이 컸다. 왜냐하면 나는 온지 얼마 되지 않았고 직위도 낮기 때문이다. 모두들 단지 사석에서만 불만을 토로하고 있는데 나는 무엇에 근거해 그것을 공개적으로 지적하는가? 사람들이 몇 년 동안 익숙하게 해오던 방식인데 내가 무슨 자격으로 이를 고치고 새로운 기제를 만들 수 있는가, 만약 잘못해서 실패하면 어떻게 하는가, 힘만 들이고 성과가 없으면 어떻게 하는가?
소통이 잘 되지 않아 에너지가 막힌 곳이 있을 때 내가 그들을 찾아가 소통한다고 해서 그들이 내 말을 들어줄 것인가? 여기서 상대하는 이들은 모두 뛰어난 박사들이고 그들은 모두 침묵하거나 과묵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데 습관이 되었지만, 나는 배운 것도 기술도 없으면서 이곳에서 목소리를 낸다면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게 보진 않을까? 항목은 본래 어려운데 내가 또 모순을 일으켜 더 큰 모순을 일으키면 어떻게 하는가? 이런 모든 것들이 다 압력이 될 수 있다.
때문에 나는 매번 무언가를 말하고 싶거나 변화를 시도하려 할 때면 늘 사부님 법상 앞에 한동안 무릎을 꿇고 앉아 사부님께 끊임없이 이렇게 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 여쭤보곤 했다. 그러다 마음이 안정되고 나면 비로소 행동에 옮겼다. 이 과정에 또 늘 불안했고 풍파를 일으킬까 두려워하는 마음, 미움을 받을까 두려워하는 마음, 잘못을 저질러 쫓겨날까 두려운 마음이 수반되었다. 하지만 이런 단련 과정을 거치면서 나는 서서히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었고 하는 일도 제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나는 매일 압박을 느낄 때마다 늘 자신에게 이렇게 묻곧 했기 때문이다.
“내가 이곳에서 수련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지금 나는 날마다 자신에게 명확히 하는데 나는 이곳에서 수련하는 것은 언젠가 이곳을 떠나기 위한 것이다. 내가 인간 세상 이곳에 와서 단련한 것은 언젠가 이곳을 떠나기 위한 것이다. 나는 날마다 스스로에게 이 점을 명확히 한다. 이렇게 하면 나는 최대한도로 그 어떤 요소나 사람마음에 연루되지 않을 수 있다. 이것은 나의 직책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반대로 이곳의 모든 것은 내가 날마다 직면해야 할 실질적인 책임이다. 하지만 이 일체는 모두 사부님께서 최종적으로 내게 주시려는 것이 아니다. 나는 단지 이곳에 와서 훈련하고 개창하기 위해 이곳에 배치된 것이다. 하지만 떠나기 전에 나는 이 모든 것을 잘하고 형태를 만들어 나중에 오는 사람에게 남겨줄 책임이 있다.
물론 생명은 특징이 다르기 때문에 그에 대한 우주의 배치 역시 다르다. 어떤 생명은 산처럼 안정적으로 일방(一方)의 책임을 감당하며, 어떤 생명은 물처럼 늘 인연에 따라 모이면서 지역을 바꾸는데, 이 과정에서 각 층 생명의 고통과 즐거움을 경험하며 각 층 생명을 이해하고 길러내는 법을 배우며, 우주의 에너지 순환을 조정한다. 마치 부처(佛)의 요소는 만물과 중생을 자양하는 대지와 같고, 도(道)의 요소는 하늘처럼・바람처럼・물처럼 가볍게 흘러가며 도처를 운유(雲遊)하는 것과 같다. 수련과 우주는 비할 바 없이 오묘해서 고생을 낙으로 삼으며 집중할 가치가 있다.
그러므로 내가 보기에 항목이란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와 같고, 각 수련인은 이 생명체의 각 층 신위(神位)에 대응하는데 또는 혈위(穴位)라 한다. 매 수련인마다 모두 자신이 책임진 구역이 있다. 수련인으로서 우리가 책임진 구역에서 저애력이나 어려움이 발생하거나 또는 다른 우주 영역・생명과 모순 충돌이 있을 때면 우리는 상응하는 심성, 정력(定力), 덕과 지혜로 이를 원용하고 해결해야 한다. 또 아직 형성되지 않은 기제에 대해 우리는 책임지고 이를 만들고 돌보아 그것이 형태를 이루고 완벽히 운행하게 만들어 정체에 복익(福益)을 주어야 한다.
만약 모순이 발생했는데 우리가 안으로 찾지 못하고, 심성과 지혜로 받아들여 해결하지 못한다면, 최종 결과는 단지 두 가지 뿐이다. 즉, 하나는 항목을 성공하지 못하거나 또 하나는 이 생명이 모순이 격화되는 가운데 항목을 떠나는 것이다. 물론 항목 속 생명의 거취가 다 이런 것은 아니며 정상적인 이동은 필연적이다. 다만 모순이 격화될 때면 우리가 자신의 수련에 대해 책임지기 위해 반드시 배후의 원인에 대해 경계해야만 한다. 어쩌면 자기 생명 중에 크게 개선할 필요가 있는 곳이 있을 수 있다. 왜냐하면 심성 용량이 부족하면 사부님께서 원하시는 것처럼 수련을 잘하고 수련 성취하지 못하고 다음 관(關)에 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항목을 보는 견해다. 우리는 어려움 속에서 개창하고 있으며, 법에 대한 실천 속에서 우주에 지금껏 없었던 기제를 개창하고 있다. 나는 항목에 대해 완전히 책임이 있지만 그러나 여기는 내가 돌아갈 곳이 아니다. 나는 그것을 수립하기 위해 모든 것을 바쳐 노력하겠지만, 다 만들어진 후 나는 하나의 물건도 가져갈 필요가 없다. 나는 영원히 걸림이 없고 편안하고 즐거울 것이며 사부님께서 어디에 계시면 그곳이 바로 내가 돌아갈 곳이다.
사부님께서 나를 선택해 주신 것에 대해 무한히 감사드리며, 나처럼 보잘것없는 생명을 이 겁난 속에서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게 해주신 것은 내게는 더할 나위없는 행운이다. 나는 장차 구우주(舊宇宙)에서 벗어날 것이며 신우주(新宇宙)는 바로 내 앞에 있다. 나는 운 좋게 중생의 희망이 되었고 나는 또 영원히 이 희망을 감당할 수 있기를 겸손히 희망한다.
사부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이상은 현재 수련 층차에서 내가 깨달은 것이다. 동수들과 교류하고자 한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3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