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우(真愚)
【정견망】
1. 하늘을 보수(補天)
신화에 따르면 공공(共工)이 천지의 기둥 중 하나였던 부주산(不周山)을 부러뜨렸고 이로 인해 하늘에 큰 구멍이 생기자 여와(女媧)가 오채석(五彩石)을 다듬어 하늘을 보수했다고 한다.
고인은 늘 천간(天干)과 지지(地支) 즉 10천간과 12지지를 결합한 60 갑자(甲子)를 사용해 큰 순환을 이용해 기록했다.
‘간(干)’과 ‘지(支)’는 모두 맥락(脈絡)으로 천지 사이에서 순환하는 맥락이다. 간은 간맥[干脈 주맥(主脈)]이고 지는 지맥(支脈)이다. 10천간(天干)은 10대 주맥(主脈)으로 하늘에 있으며, 12지지(地支)는 12지맥으로 땅에 있어서 용맥(龍脈)이라고도 한다. 천간과 지지의 대순환은 천지의 주천(周天)순환으로 인간세상의 만물은 그 속에서 윤회하며 생생불식(生生不息)하는데 만약 이 순환이 끊어지면 천지와 만물이 훼멸된다.
여기서 주(周)란 원(圓)을 말하며 순환(循環)한다는 뜻이다. 그럼 부주산(不周山)이란 원을 이루지 못했다는 뜻으로 즉 완전한 순환을 할 수 없는 산이란 뜻이다. 즉 부주산은 원래 주산(周山)으로 천지 순환과 대응해 화합하는 산이었다. 공공에 의해 단절된 후 비로소 순환을 이루지 못한다는 뜻에서 부주의 산(不周之山)이라 불린 것이다.
산(山)은 대지(大地)의 용맥(龍脈)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데, 부주산은 지맥과 천맥이 대응해 순환하는 중요한 지점으로, 다시 말해 천지 대주천(大周天) 순환의 중요한 혈위(穴位)가 있는 곳으로 서북천문(西北天門)이라도 한다. 부주산이 부러지면서 천지 순환에 큰 구멍이 생겨 세상 만물(萬物)이 곧 훼멸될 위기에 처하자, 여와가 오행(五行)을 제련해 이 구멍을 보수했는데 이를 일러 ‘보천(補天)’이라 한 것이다. 즉 천지주천(天地周天)을 보수했다는 뜻이다.
여와가 하늘을 보수한 것은 단지 한 단락 역사를 남기고, 하나의 문화를 다졌을 뿐이며 그녀가 삼계 내 저층 소주천(小周天)의 구멍을 보수하진 못했다.
진정한 ‘보천’은 사존(師尊)께서 세상에 내려와 법을 바로잡으신 것으로, 우주의 근본적인 큰 누락을 보수하고 괴멸(壞滅)의 순간에 창궁(蒼穹)을 구도하셨다. 즉 진정한 의미에서 대법제자의 조사정법(助師正法)이란 각 천체 대궁의 누락을 보수한 것이다.
2. 지원(至圓)
구우주(舊宇宙)의 생명은 모두 자기를 중심으로 삼아 자신의 한 원(圓)을 그렸으며 원만(圓滿)이란 자신의 증오(證悟)를 가리킨다.
오직 더욱 높고 더욱 큰 생명이 그려낸 원만이 더욱 크고 더욱 둥글다. 하지만 아무리 크고 아무리 둥글어도 결국 변두리가 있게 마련인데, 변두리가 있으면 곧 정수(定數)가 있고, 끝이 있어서 성주괴멸(成住壞滅)의 숙명을 벗어날 수 없다. 즉 ‘지원(至圓 지극한 원)’이 될 수 없고, 안이 바로 밖이 되고, 밖이 바로 안이 되는[內卽是外 外卽是內] 완전히 투철한 대순환을 형성할 수 없다. 때문에 원용불파(圓容不破)에 도달할 수 없다.
‘지원’을 이루지 못하면, 원용불파할 수 없으니 즉 이 원에 ‘누락(漏 틈이나 구멍)’이 있는 것으로, 이것이 바로 구우주의 근본적인 ‘누락’이다.
하나의 원을 제아무리 크게 그려도 원 안의 공간은 모두 유한하고 원 밖은 무한하다.
매 생명은 모두 자신을 위해 하나의 원을 그리고 그 속에서 자신을 보호하려 하는데 동시에 또 그 안에 갇힌다. 이 원의 테두리가 바로 ‘사(私)‘로 그것은 하나의 보호이자 하나의 장벽이며 하나의 대결계(大結界)인 동시에 하나의 장애이자 뛰어넘을 수 없는 큰 누락이다. 그것은 구우주 생명이 존재하는 근본이다.
바로 이 원에 테두리가 있기 때문에 내즉시외(內卽是外), 외즉시내(外卽是內)하는 ‘지원(至圓)’이 되지 못하고 또한 우주대법에서 자신을 격리시킨다. 때문에 우주대법과 접촉하고 소통할 수 없으며, 대법에서 원용불파하고 자신을 보수할 수 있는 끝없는(無盡) 지혜를 얻을 수 없다. 그러므로 성주괴멸의 숙명에서 뛰쳐나오지 못하게 되며 결국 구우주는 최후의 훼멸로 나아간다.
그 누구도 감히 이 원의 테두리를 지우지 못하는데, 구우주는 스스로 훼멸하는 것이다. 일단 지워버리면 생명은 곧 훼멸되어 존재하지 않으며 일체 입자는 다 깡그리 사라질 것이다. 이것을 또 ‘형신전멸(形神全滅)’이라 한다.
사존의 성음(聲音)이 창우(蒼宇) 사이에서 울려 퍼진 이래 사존께서는 최초로 우주대법을 천지창생(天地蒼生)에게 알리셨고 그들의 심령을 일깨워주셨다.
어떤 생명은 천지개벽 이래 가장 자비롭고 가장 홍대한 이 목소리에 깨어나 이 끝없는 지혜에 진감(震撼)했으며 형신전멸을 대가로 자신의 원(圓)을 지우고자 했다.
“사부님! 저는 온 생명으로 당신을 믿으며 최후의 한 입자까지도 대법 안에서 모두 버리고자 합니다! 당신의 품속에서 새로 태어나겠습니다.”
이에 우주에 ‘대법제자(大法弟子)’란 이런 호칭이 생겨났는데, 그들은 중생을 등에 짊어지고 형신전멸을 대가로 창세주와 서약을 맺었다.
3. 홍구(鴻溝)
구우주의 근본적인 큰 누락이, 삼계라는 이 가장 낮은 층 가장 중심의 위치에 들어가면 곧 ‘상생상극(相生相剋)’과 대응하는데 상생상극 사이는 뛰어넘을 수 없는 홍구[鴻溝 역주: 홍구는 원래 유방과 항우가 천하를 양분하기로 하면서 경계로 삼았던 운하의 이름인데 이후 극복할 수 없는 큰 격차나 경계를 의미한게 된다. 여기서는 저자의 의도를 분명히 드러내기 위해 그냥 홍구로 번역한다]가 된다.
상생상극 사이의 홍구를 보수해서 원용하게 만들면, 즉 우주의 큰 누락을 보수한다면 이 역시 보천(補天)이다.
선악(善惡)에 반드시 보응이 따름과 인과순환(因果循環), 이는 삼계의 천리(天理)이자 상생상극이 만들어낸 이치다.
그러나 구우주의 상생상극은 절대적인 것으로 왜냐하면 이것이 우주의 근본적인 큰 누락과 대응해 조성되었기 때문이다.
겉으로 표현되는 것은 이렇다.
선에는 반드시 선보(善報)가 따르고 악에는 반드시 악보(惡報)가 따르는데 선에는 악보가 있을 수 없고 악에는 선보가 있을 수 없다.
이렇게 선과 악 사이에는 뛰어넘을 수 없는 한 갈래 홍구가 있는데 그 실제 거리는 최종적인 우주보다도 더 크다. 대상무형(大象無形)이라 너무 크기 때문에 일체 생명이 모두 그 속에 있지만 이 때문에 그 누구도 볼 수 없으며 그것이 ‘누락’이 됨을 모른다.
그 누구도 선악(善惡) 사이의 거리를 뛰어넘어 둘을 서로 화합시켜 평형을 이루게 할 수 없다. 구우주에서는 최후의 생명을 포함해서, 이런 지혜를 지닌 생명이 없었다. 왜냐하면 이것은 두 가지 완전히 다른 물질이기 때문인데 일단 홍구를 넘어서면 더는 그것이 평형을 이루게 할 방법이 없었고 일체는 이로부터 변이되어 우주 물질은 곧 순환 속에서 평형을 잃고 순환이 단절되어 훼멸될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란 이것이 절대화된 구우주 상생상극의 이치다. 그것은 만사만물(萬事萬物)을 평형하며, 일체 물질을 평형시켜 절대 평형을 유지해서 평형을 잃고 기울어지지 않도록 한다. 이는 또한 구우주의 태극이 정한 평형의 표준이다.
사부님께서는 일체 천지창생(天地蒼生)을 짊어지시고, 이 홍구를 뛰어넘어, 끝없는 대법의 지혜로 우주의 일체 은혜와 원한 득실을 선해(善解)하고 평형하려 하시지만 구세력은 오히려 “아니오”라고 말했다.
칼로 사람을 죽인 사람이 한 차례 목숨을 구해준 은혜로 이를 갚으면 안 되는가? 부모를 거역한 사람이 회한의 눈물로 평생 부모님을 잘 모시면 잘못을 보완할 수 없단 말인가? 악(惡)은 도무지 선(善)으로 화해할 수 없단 말인가? 일체를 부면(負面)적인 방식을 사용하지 않고 정면(正面)적이고 광명(光明)하게 해결할 수는 없는가?
이렇게 하면 역사가 생명에게 남기는 것은 모두 정면적인 교훈이 되고 부면적인 교훈이 없을 것이다. 그럼 우주 창생은 모두 최후 순간에 선해(善解)될 수 있고 진선진미(盡善盡美)할 것이며, 창생은 모두 행복하고 아름다워져 그 어떤 생명도 도태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사부님께서 원하시는 것이다.
마치 아이를 교육할 때와 같은데 만약 부면(負面)적인 방식을 주로 사용한다면 아이는 어려서부터 매를 맞고 욕을 먹는데 자라난 후 이 아이의 심리는 분명히 열등감을 갖고 극단적으로 비뚤어지게 변할 것이다. 만약 어려서부터 아이에게 오직 정면(正面)적인 방법만 사용해 그를 격려하고, 보살피고, 선하게 이끈다면, 이 아이는 자라서 밝고, 선량하며, 활달해질 것이다.
하지만 구세력은 기어코 안 된다고 말한다! 칼로 사람을 죽인 자는 반드시 그도 칼에 맞아 죽어야 하고, 부모에게 불효한 자는 반드시 자녀에게 불효를 당해야 하며, 악은 반드시 악으로만 갚아야 하고 선은 반드시 선으로만 갚아야 한다는 등등.
그것들은 말한다.
“이는 영원히 개변할 수 없는 ‘천리(天理)’입니다. 우리에겐 당신이 말하는 그런 지혜가 없습니다!”
사실은 단지 이 테두리를 지워버리기만 하면 곧 이런 지혜를 갖출 수 있다.
(하편에서 계속)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506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