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 대법제자
【정견망】
개인적인 경험 중에서 수련에 대한 태도가 다르면 결과도 다른 것을 느꼈기에 개인적인 소감을 한번 말해보고자 한다.
처음 수련을 시작할 때 나는 마음속으로 수련을 아주 좋아했다. 왜냐하면 어려서부터 많은 고대 신화를 보았고 또 일부 수련이야기들을 보았는데 수련에 대해 동경했기 때문이다. 나는 많은 기공들을 접해봤지만 구별 능력이 없어서 접촉할 때는 좋고 나쁨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연마하고 나서야 내게는 아무런 효과도 없음을 알았다.
그러다 파룬따파(法輪大法)를 만나 《파룬궁》을 한번 읽었을 때에 이르러 비로소 이것은 정말 수련임을 느꼈다. 하지만 막 수련을 접촉했기 때문에 사람의 집착이 남아 있었다. 비록 평소에도 자신에게 법에 따라 할 것을 요구하긴 했지만 일부 일에서는 여전히 자신을 통제하지 못했고 늘 잘못을 저질렀다. 심지어 심하게 집착한 적도 있다.
즉, 한편으로는 수련이 좋다고 생각하면서도 다른 한편 편안히 잘 살고 싶었다. 수련하면서 절뚝거리거나 심지어 늘 곤두박질치곤 했지만 포기하고 싶진 않았고 포기할 생각도 없었다. 나는 다년간 이렇게 지내왔다. 법리(法理)에 대해 깊이 알지 못했고 어떻게 수련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때로 자세히 숙고해보면 자신의 수련의 길이 어떤 것인지 수련 방식이 어떤 것인지 몰라 망연자실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 자신도 이렇게 해선 안 된다고 느꼈다. 이에 대체 무엇이 진정한 수련인지 끝까지 깊이 생각해보기로 결심했다. 이전에 보았던 수련이야기를 회상하고 법의 요구를 생각해보았으며, 어떻게 해야만 진짜 수련인지 자세하고 진지하게 연구해보았다. 내가 발견한 것은 자신이 수련을 나의 가장 중요한 일로 간주하지 않았고 그저 좋다고만 느꼈을 뿐이다. 수련해서 신으로 성취할 수 있다면 아주 좋은 일이지만 대체 자신이 수련해서 성취할 수 있을지 여부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고 또 어떻게 해야만 수련 성취할 수 있는지 몰랐다.
지금에 와서야 나는 자신이 정말 흐리멍덩했다는 것을 발견했다. 수련해서 성취할 생각조차 없는데 어떻게 수련한단 말인가? 수련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또 어떻게 수련한단 말인가? 이에 나는 큰 결심을 내리고 반드시 대체 진정한 수련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아보고 명백해지기 전까지는 절대 그만두지 않기로 결심했다!
이렇게 3일간 생각했는데, 밥을 먹을 때도 생각했고 심지어 잠을 잘 때도 생각했는데, 대체 진정한 수련이란 무엇인지 조금씩 생각해보았다. 이 기간에 사부님께서 줄곧 점화(點化)해서 계시해주셨다. 정말로 분명히 알고 싶었고 또 진정으로 수련하기로 결심하자 모든 것이 단번에 변했다. 나는 단번에 또 수련은 수련이고 대법 수련은 대법 수련이며 대법 속의 수련과 일반 수련은 또 같지 않다는 것을 똑똑히 알게 되었다.
정말로 무엇이든 다 생각하고 실천하려면 어느 것이든 다 큰 공력을 들여야 하는데, 수련의 길을 잘 걸어가려면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것도 작은 대가가 아니라 모든 것을 내려놓는 큰 대가를 치러야 한다. 자신의 결심과 자신의 태도를 분명히 보여줄 필요가 있으며, 아무리 어려워도 개의치 말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렇게 해야만 큰 광명을 볼 수 있는데 왜냐하면 수련이란 천편일률로 고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마 절벽을 보고 과감히 뛰어내리면 관을 넘은 것으로 칠 수 있을 것이고 또 어쩌면 여러 번 뛰어내려야만 인정할 수도 있으며, 또는 뛰어내리다 넘어져서 겨우 숨만 붙어있을 때조차 마음이 변하지 않아야만 비로소 관을 넘을 것으로 칠 수도 있다. 모두 고정된 것은 아니지만 견지할 수만 있다면 그럼 달라질 것이다.
때로 몇 차례 견지했지만 시간이 길어져도 여전히 할 수 있는가? 할 수 있다! 1~2년이라면? 여전히 할 수 있다! 천 가지 난관 만 가지 위험이 있다면? 그래도 할 수 있다! 견지하기만 하면 그럼 완전히 달라진다. 즉 대법 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수련하면 완전히 다른 것을 느낄 것이다. 나는 겪고 나서야 비로소 수련 방식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자신의 수련의 길을 어떻게 걸어야 하는지 알게 되었으며, 법리에서도 예전에 지식을 배우는 것처럼 그저 알기만 하고 실천할 줄 모르던 것과는 달라졌다. 진정한 깨달음은 명백한 것으로 원래 인간세상은 헛(虛)된 것이고 법(法)이야말로 진실(實)한 것이다. 그중의 현묘(玄妙)함은 진실로 스스로 체험할 필요가 있으며 언어로는 설명할 방법이 없다.
대체 수련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니 처음에는 승려가 출가하는 것을 생각했다. 출가(出家)란 무엇인가, 왜 가족마저 부인하며, 돈과 재물, 생활, 형제자매마저 다 포기해야 하는가? 그와 비교하면 나 역시 내려놓을 수 있는가? 정말로 내려놓았다면 마땅히 어떻게 해야 하고 어떤 태도로 대해야만 내려놓았다고 볼 수 있는가? 실천 속에서 시도해보고 해낼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이 진정으로 수련하려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닌가? 그럼 곧 해낼 수 있다.
이 과정은 아주 긴 마음을 닦는 하나의 과정인데 사람마다 다르다. 빠른 이도 있고 느린 이도 있다. 예전에 도사(道士)가 수련하자면 신체적으로 큰 고통을 겪어야 했는데 나는 그것을 할 수 있는가? 어떻게 해야만 진짜 할 수 있다고 칠 수 있는가? 당연히 해내야만 인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이에 끊임없이 자신이 이렇게 할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나는 그렇게 할 수 있는가? 안된다면 어디가 안 되는가? 찾아냈다면 해내지 못해선 안 된다! 조금의 에누리도 없어야 하며 마음속에서 완전히 그 어떤 불편한 느낌도 없을 때까지 해내야 한다. 좌절을 두려워하지 말고 교란을 두려워하지 말며 견지한다면 그럼 곧 달라질 것이다. 왜냐하면 사부님이 계시고 법(法)이 있기 때문에 그런 광명과 그런 현묘하고 수승함은 자신이 직접 경험하고 깨달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경험을 통해 감수한 것은 어쨌든 반드시 줄곧 법(法)속에 있어야 하며 절대 법에서 떨어지지 말아야 한다. 그 어떤 일이 있어도 견지한다면 정말로 달라지는데 설사 수련에서 비틀거려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데 오직 법속에 있기만 하면 희망과 광명이 있을 것이다!
나 역시 한때 흐리멍덩한 적이 있었고 일부 동수들 역시 흐리멍덩한 것을 보았다. 내 경험이 이런 동수들을 일깨워줄 수 있기를 바라며 함께 토론하고 교류해보고자 한다. 부당한 곳이 있다면 시정해주기 바란다. 우리 함께 정진합시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308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