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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언양어: 수련 감오(感悟)

점백(漸白)

【정견망】

2023년 3월 어느 날 나는 《전법륜》을 들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아주 경건하고 또 편안한 마음으로 손에 든 대법서적을 바라보며 차마 펼치지 못하면서 사부님께서 법을 전하시는 것이 쉽지 않음을 느꼈다. 또한 내게 있어 법을 얻은 것이 어떤 의미인지 감개가 무량했다.

이렇게 한동안 감격하고 나서 임의로 책을 펼쳐 읽어 내려갔다. 이전 독서는 모두 사부님의 목소리로 법을 말씀하셨다면 이번에는 달랐는데 사부님께서 창세주(創世主)의 신분으로 창세(創世)의 법을 말씀하셨다. 나는 내심으로 한없이 격동되었고 책을 내려놓고 다시 들어 올린 후에도 마찬가지로 이런 상태였다. 사부님께서는 여전히 창세주의 신분으로 법을 말씀하셨다. 내심으로 너무나 격동한 나머지 나는 스스로 이런 상태를 지나치게 오래 감당할 수 없음을 알고 책을 내려놓자 감동해서 놀란 심정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4월 중순 《홍음 6》을 두 번 보니 격률시(格律詩)를 제외하고 매 수(首)마다 모두 창세주란 세 글자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물론 2수는 예외였는데 그중 한 수에는 ‘조물(造物)’이 언급되었다. 여기서 나는 전에 미혹되었던 한 가지 문제를 분명히 알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창세주, 조물주(造物主), 구세주(救世主)는 대체 어떤 관계인가? 하는 점이다. 사실 뭇신(衆神)들이 보기에 창세주께서 창세(創世)하고 다시 세상을 구하신 하나의 과정에 대한 3가지 시각이다.

창세(創世)가 바로 조물(造物)이고 창세는 또 구세(救世)를 의미하는데 창세주로 줄곧 관통된다.

[역주]
① 격률시란 당대(唐代) 이후 확립된 새로운 한시체로 근체시(近體詩)라고도 하는데 일정한 격률(格律)과 엄격한 규범을 갖고 있다. 근체시는 압운(押韻)과, 글자의 평측(平仄)에 맞게 배열을 해야 하며, 자수나 구수에 대해서도 엄격한 제한이 있다.

② 《홍음 6》 전체 61수 중에서 일부 격률시를 제외하면 〈불신(不信)은 우매〉와 〈하늘로 돌아가는 길은 대법수련으로〉 두 작품에만 직접적으로 창세주가 언급되지 않는다. 이중 〈불신(不信)은 우매〉에 ‘조물(造物)’이 나오는데 실질적으로 ‘창세(創世)’와 통하기 때문에 사실상 한 작품을 제외하면 모두 창세주가 등장하는 셈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30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