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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도 자랑도 하지 말고 담담하게 중용을 지키자

대법 수련생

【정견망】

사존께서는 《2019년 뉴욕법회 설법》에서 국제사회 사람들이 “많은 사람이 대륙에서 나온 후, 국제사회에 와보고는 ‘사람이 어찌 모두 이렇게 단순한가.’라고 한다. 이야기를 해도, 심지어 일을 해도 모두 매우 평온하다고 한다. 그러나 대륙사람은 무슨 일을 함에, 무슨 일이든 단번에 가장 극단적으로, 맨 꼭대기까지, 끝까지 해내지 못함을 한스러워하는, 모두 그런 심태이다.” “여러분이 중국대륙에서 양성한 그런 습관은, 글을 쓰든 무슨 일을 하든, 단번에 끝장을 보려고 한다. 그러한 풍조와 그러한 사상은 정말로 국제사회의 사람으로 하여금 견딜 수 없게 한다.”라고 하셨다.

최근 명혜편집부와 동수들이 ‘아첨’과 ‘자랑’에 관해 쓴 교류 문장을 보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2019년에 내가 쓴 《최근 질투심에 대한 약간의 깨달음(近期對妒嫉心的一點淺悟) 역주: 이 문장은 한글로 번역되지 않았음》이 질투심을 없애기 위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의 극단에서 다른 극단으로 간 것임을 깨달았다.

이 문장에서 나는 북송(北宋) 진관(陳瓘)의 예를 인용했는데 백화문으로 번역하면서 “사람들과 담론할 때 늘 다른 사람의 장점을 칭찬(誇獎)했다”라고 했다.[그런데 원문은 “사람들과 논의할 때면 대체로 타인의 장점을 많이 채택했다”(與人議論,率多取人之長)로 단지 채택하거나 받아들였다는 뜻에 불과할 뿐이다.] 번역문에서는 위아래 문장을 결합해 동수를 칭찬했다. 당시 글을 쓸 때는 오로지 “남을 위해 기뻐한다”는 것만 생각했다.

명혜편집부 문장 《아첨과 자심생마》를 학습한 후, 칭찬에 해당하는 ‘과(誇)’의 용법을 찾아보니 대부분 ‘과장(誇張)’, ‘황당한 과장(誇誕)’, ‘굽신거림(誇毗)’ 등 폄하하는 단어로 허황되어 믿을 수 없다는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명청(明淸) 소설에서 ‘과장(誇獎)’은 남을 칭찬하는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 예를 들면, 《서유기》 12회를 보면 “장안성 안에서 다투어 칭찬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으니 모두들 ‘훌륭한 법사님!’이라고 했다.”라고 했다.

또 제16회에서는 “삼장(三藏)이 보고는 ‘좋은 물건이로구나’라며 끊임없이 칭찬했다.”

제95회에서는 “행자가 암암리에 입맛을 다시며 ‘훌륭한 화상이로다’라며 칭찬한다.”

​제96회에서는 “삼장이 아주 겸손하자 칭찬이 끊이지 않는다. 수재가 이 말을 듣고는 ‘정말로 신승(神僧)이로다.’라고 끊임없이 칭찬했다.”

제93회에서는 “역승(驛丞)이 ‘신승(神僧)이로구나 신승이야’라고 말한다.” 등등.

그러므로 수련자는 다른 사람을 질투하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또 다른 극단으로 나아가 극단적으로 칭찬만 해서도 안 되는데 다른 사람이 ‘견디지 못할 것’이다.

《서유기》 제15회에서 보살은 이렇게 말한다.

“그 원숭이 두목이 전적으로 자신이 강한 것에만 의지하는데 다른 사람을 칭찬할 수 있겠는가?”

이는 하나의 극단이지만, 그렇다고 또 다른 극단으로 나아가 오로지 칭찬만 해서는 안된다.

이 ‘구설(口舌)의 마당 시비(是非)의 바다’ 속에서 수련자는 모순을 담담하고 가볍게 여기는 동시에 수구(修口)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며 어떤 말은 스스로에게 하면 된다.

《서유기》 제24회에서 “명월(明月)과 청풍(淸風)이 암암리에 칭찬하며 말했다. ‘좋은 화상이로다! 정말로 서방의 사랑을 받는 성승(聖僧)이 환생한 것이 틀림없구나. 진원(真元)이 어둡지 않으니.”

명월, 청풍은 진솔하게 ‘속으로’ 칭찬하는데 아마 이것이 모순을 해소하는 방법일지 모른다. 이렇게 보면 내향적인 성격은 내향적인 성격의 장점이 있고, 외향적인 성격은 외향적인 성격의 단점이 있다.

이상은 개인의 얕은 깨달음이니 부족함을 피하기 어려우니 자비로 시정해 주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50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