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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두박질치며 도를 깨닫다.

수련생

【정견망】

최근 내 몸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 변비로 배가 더부룩하고 메스껍고 걸을 때 두 다리가 아주 무거워서 잘 걸을 수 없었고 걸음이 아주 힘들었다. 마치 만 근이나 되는 두 다리를 끌고 가는 것 같았다. 또 몸에 많은 종기가 나타났는데 너무 가려워서 손으로 자주 긁곤 한다. 신체 상태가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나는 자신이 수련에서 제고할 필요가 있음을 깨달았는데 곤두박질치게 해서 나더러 깨달으라는 것이다.

요즈음 나는 마음이 아주 무기력함을 느끼는데 어쩌다가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 예전에는 그래도 꽤 괜찮다고 느꼈는데, 왜 지금은 아무것도 안 되는가? 미망(迷茫)과 고통 속에서 나는 수련의 어려움과 엄숙함을 느꼈고, 또한 인간 세상의 허환(虛幻)과 무상(無常)을 깊이 깨달았다. 예전에 내가 마음속으로 집착하고 중시했던 것들이 관건적인 시각이 되면 모두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어제는 그래도 괜찮았는데 오늘은 안 된다. 고통 속에서 나는 고통스런 결심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다음은 내가 어떻게 심성을 전변(轉變)했는지 세 가지로 나눠 말해보고자 한다.

첫째, 색욕에 대한 집착을 철저히 내려놓다

나는 비교적 외모가 잘생긴 남자로 사람들이 나를 보면 얼굴에서 광채가 나며 여자들한테 인기가 있을 거라고들 말한다. 지난 몇 년 동안 생활하면서 나 역시 이 점을 확실히 경험했다. 전에 나는 이것 때문에 매우 뿌듯하고 만족스러웠으며, 또한 남녀 관계에 있어서 여러 차례 잘못을 저질렀는데 많은 여자들에게 상처를 입혔다. 만(萬) 가지 악행 중에 음란(淫亂)이 으뜸이라고 했으니 이렇게 조성한 거대한 죄업(罪業)에 대해 지금 보응이 닥치는 것으로 후회해도 이미 늦었다.

고통 속에서 나는 끊임없이 자신의 죄를 반성했고 남녀 문제에 대해 깊이 분석했으며 색욕(色慾)이란 겉치장이 예쁘고 매혹적인 함정임을 깊이 깨달았다. 일단 색욕에 빠지면 이는 함정에 떨어진 것과 같아서 색욕에 집착하면 할수록 점점 더 깊이 빠져들어간다. 남녀 사이의 음란한 행위는 인륜도덕에 위배되는데 한편으로는 가족을 해치고 가정을 파괴하며 사회를 해치고, 다른 한편으로는 남녀 쌍방이 서로를 해치는 것과 같다. 이렇게 하면 모두 큰 죄업을 짓기 때문에 장차 반드시 업을 갚는 고통을 감당해야 하는데, 쌍방 모두 재수가 없다.

예를 들어, 어떤 여자가 나와 음란한 생각을 품었는데 내가 그녀에게 협력한다면, 이는 단지 그녀의 공간장(空間場) 속에서 색욕에 집착하는 물질을 일시적으로 만족시킬 수 있을 뿐이며, 그 생명을 해치는데 그녀의 주원신(主元神)은 장차 업을 갚는 거대한 고통을 감당해야 한다. 한마디로 말해 일시적으로 집착을 만족시킬 수는 있지만 생명은 해치는 것이다.

우리 수련인은 진선인(真善忍)에 따라 해야 하며 남을 선(善)하게 대해야 하는데 특히나 자신을 좋아하는 이성에 대해서는 그녀를 사랑하고 보호해야지 그녀를 해쳐서는 안 된다. 만약 그녀와 협력해 음란한 일을 한다면 이는 그녀에게 엄중한 상처를 주는 것과 같다. 이렇게 하면 그녀에게 매우 미안한 것이다.

나는 수련인인데 어찌 남에게 상처를 주고 미안한 일을 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하면 양심의 가책을 느낄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나는 자신이 전에 여자들에게 협력해 음란한 일을 했음을 깨달았다. 당시 나는 정말로 상대방을 사랑한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정반대로 나는 그녀의 생명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일은 전혀 하지 않았다. 오히려 철저하고 심각하게 그녀의 주원신을 해쳐 지옥으로 끌고 갔으며 그녀를 고통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던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내가 전에 심하게 상처를 입혔던 이런 생명들을 마주하고 내심으로 몹시 고통스럽고 자책한다. 이에 나는 앞으로 다시는 여인들에게 심각한 상처를 주는 이런 일을 하지 않기로 결심했으며 색욕에 대한 집착을 철저히 버리고 모든 여자들을 선(善)하게 대하리라 결심했다.

내가 여자들을 선하게 대하기로 결심한 후, 다시 여자들을 보니 예전과는 완전히 달라졌다. 전에는 행위상으로는 절대 여자들과 음란한 행동을 하지 않을 순 있었지만, 예쁜 여인을 보면 그래도 몇 번 더 쳐다보았다. 하지만 지금은 예쁜 여자를 봐도 마음에 아무런 반응도 없다. 그녀의 아름다움이 마치 나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것 같다. 나는 여자의 외모를 투과해 법을 위해 온 여자라는 이 생명을 생각했다.

여자로 살아가기란 어렵고 쉽지 않은 것을 생각하는데 같은 사람이지만 여자는 종종 남자보다 더 많은 것을 감당한다. 나는 사람노릇이 어렵고 여자노릇은 더욱 어렵다는 것을 깊이 깨달았다. 만약 내가 어떤 여자에 대해 조금이라도 잘못된 생각을 한다면, 이는 모두 그녀에 대한 모욕이자 상처이니 다 그녀에게 미안한 것이다!

둘째, 견정(堅定)하게 바른 이치에 따라 수련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사실 인류사회의 이치는 우주의 이치와 반대이다. 사람이 난(難)이 있고 고통이 있는 것은 사람에게 업을 갚게 하여 행복한 미래가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렇다면 수련하는 사람은 바른 이치(正理)에 따라 수련해야 한다. 고생을 겪고 난을 당하는 것은 업력을 제거하고 죄를 없애 버리며 인체를 정화(淨化)하고 사상경지를 제고하며 층차를 승화시키는 아주 좋은 기회로서, 이는 대단히 좋은 일이며 이것이 바른 법리(正法理)이다.”(《정진요지 3》〈최후일수록 더욱 정진해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수련하기에 어떤 일도 모두 좋은 일이다.”(《세계 파룬따파의 날 설법》)

사부님께서는 우리 수련인에게 바른 이치[正理]에 따라 수련하고 수련 중에 부딪히는 모든 일을 다 좋은 일로 여기라고 요구하셨다. 나는 실제 수련 중에서 때로 바른 이치에 따라 문제를 보고 봉착한 모든 일을 좋은 일로 볼 수 있었지만, 때로는 사람의 반대되는 이치로 문제를 보고 봉착한 모든 일을 나쁜 일로 간주했다. 근본적으로 말해서 사람의 관념을 아직 철저히 전변(轉變)하지 못했고 여전히 인간 세상의 반대되는 이치로 문제를 보았다.

우리가 봉착한 일을 나쁜 일로 간주할 때면, 우리는 속인의 입장에서 문제를 보는 것과 같으며, 자신을 속인으로 간주한 것과 같다. 그렇다면 속인이 어떻게 구세력이 배치한 마난(魔難)에서 벗어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대법제자는 반드시 자신을 진정한 수련인으로 여기고, 바른 이치로 수련해야만 비로소 수련의 길을 바르게 걸을 수 있고, 구세력의 배치에서 벗어나 사명을 완수할 수 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는, 좋고 나쁨은 사람의 일념(一念)에서 나오며, 이 일념의 차이가 부동(不同)한 후과(後果)를 가져올 수도 있다고 한다.”(《전법륜》)라고 하셨으니 당신이 바른 이치에 따라 수련하고, 부딪힌 일을 좋은 일로 여기느냐, 아니면 속인의 반대되는 이치로 수련하면서 부딪힌 일을 나쁜 일로 간주하느냐에 따라 직접적으로 일의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일에서 정면(正面)적인 결과를 얻으려면 반드시 견정하게 흔들리지 말고 바른 이치에 따라 수련해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중생을 제도하니 관념이 바뀌고 부패된 물체 없애니 광명이 나타나네”(《홍음》〈신생〉)라고 하셨다. 당신이 속인의 관념을 바꿔 바른 이치로 문제를 바라볼 때면, 구세력과 각종 좋지 않은 요소들이 사라질 것이며 일의 밝은 일면(一面)이 드러날 것이다.

어떤 동수는 병업 현상에 직면했을 때, 그의 표정만 봐도 나쁜 일로 간주하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는 한 속인이 구세력이 배치한 병업관을 지나는 것과 같다. 한 속인이 어찌 구세력의 배치를 통과할 능력이 있겠는가? 어찌 구세력의 배치를 부정할 수 있겠는가? 결론이 어떻게 될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몇 년 동안 많은 동수들이 병업으로 세상을 떠났는데 일부 동수들은 마음속으로 이해하지 못한다. 사부님께서는 그렇게 큰 능력이 있으신데 왜 해결해주지 않으시는가? 사부님께서는 법(法)을 바로잡기 위해 오신 것으로 바르지 않은 행위로 법을 바로 잡으실 수는 없다. 다시 말해서 사부님께서 제자를 도우려면 반드시 이치상에서 도와야 한다. 최근 몇 년 동안 사부님께서는 줄곧 바른 이치에 따라 수련해야 한다고 강조하셨고, 수련 중에 마주친 모든 일을 다 좋은 일로 간주하고 대하라고 하셨다.

그러나 우리 일부 동수들은 일단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을 만나거나 신체 어딘가에 불편한 곳이 나타나기만 하면 속인의 관념이 작용해 자신이 나쁜 일을 만났다고 여긴다. 사부님의 말씀을 잊은 지 오래고, 그 후 두려운 마음이 일어나자 곧 구세력이 박해할 구실을 잡게 했다.

사부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바른 이치에 따라 수련하지 않으면 이 한 가지 일의 표현에서 그는 바로 속인이다. 사부님께서 관할하시는 것은 수련하는 사람이지 한 속인의 생로병사를 함부로 관할하실 수는 없다. 때문에 사부님께서 그를 도와주실 수 없는 것이다.

대법제자로서 반드시 자신의 위치를 바로잡아야 하고, 어떤 일이 있어도 반드시 자신을 수련인의 위치에 놓아야 한다. 이렇게 해야만 사부님께서 당신을 도와주실 이유가 생긴다. 만약 당신이 정말로 사부님과 법을 믿고, 봉착한 모든 일을 다 좋은 일로 간주한다면, 사부님께서 당신을 상관하지 않으실 리가 있겠는가? 구세력이 감히 당신을 건드릴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사부님께서 당신을 상관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사부님과 법을 믿지 않고 사부님 말씀을 따르지 않았고, 바른 이치에 따라 수련하지 않아서 생긴 것이다.

바른 이치에 따라 수련해야만 진정한 대법제자라가 수련하는 것이라 할 수 있고, 속인의 반대되는 이치에 따라 수련하면 그럼 속인이 수련인의 일을 하는 것과 같다.

셋째, 철저히 대법에 동화해 법에 따라 행동하리라 결심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왜 사람은 병이 있는가? 그에게 병이 있고 모든 불행이 조성되는 근본원인은 업력으로서, 그 흑색물질의 업력장(業力場)이다.”(《전법륜》)

사람들은 흔히 불쌍한 사람에게는 반드시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들 한다. 사람이 고통 속에 있는 것을 보면 매우 불쌍해 보이지만, 그러나 고통에는 모두 이유가 있는 것으로 결코 아무 이유가 없는 것이 아니다. 나를 말하자면, 금생금세(今生今世)만 해도 엄청난 죄업을 지었는데 우리 대법제자들은 천만 년의 죄업(罪業)을 한 세(世)에 없애야 한다. 비록 사부님께서 나를 위해 대부분의 죄업을 감당해 주셨지만, 자신의 업력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에 소업할 때면 필경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업을 없애는 고통 속에서 나는 또 결심했다. 인연에 따라 예전의 업을 없애고 다시는 새로운 재앙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

나의 이런 업력은 모두 내가 대법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조성한 것이다. 앞으로 더 이상 소업의 고통을 겪지 않으려면 지금 업을 짓지 말아야 한다. 이에 나는 앞으로 철저히 대법에 동화해 법에 따라 행동하기로 결심했다. 다시는 대법에서 벗어난 일을 하지 않고 더는 업을 짓지 않을 것이며, 장래에 업을 갚는 고통을 감당하지 말아야 한다.

대법에 동화해 법에 따라 행동하면 남을 이롭게 하고 자신도 이롭지만 대법에 어긋나게 행동하면 남도 해치고 자신도 해친다. 내가 지금 하는 매 하나의 잘못 장래에 자신에게 한 차례 징벌이 된다. 나는 단호하게 대법에 동화해서 완전히 위타(爲他)한 생명이 될 것이며 에누리 없이 진선인(真善忍)을 실천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자기 생명의 미래에 대해 가장 책임 있는 선택이다!

이상은 내가 이번에 곤두박질치면서 깨달은 작은 인식이니 부당한 곳이 있다면 자비로 시정해 주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52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