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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진’과 ‘과격’에서 생각한 것

대법제자

【정견망】

한번은 교류원고를 쓸 때 ‘급진[중국어로는 격진激進]’이란 단어를 사용하려고 관련 법리(法理)를 검색해보았다. 하지만 ‘경서검색[經書檢索 역주: 중문 파룬따파(法輪大法) 사이트에 있는 경문 검색도구를 말함. 한글 사이트에는 아쉽게도 아직까지 경서를 검색하는 기능이 없다]’에서 검색해보니 뜻밖에도 한 군데도 없었다. 그래서 ‘과격[중국어로는 편격偏激]’으로 검색해보니 여러 곳에서 찾을 수 있었다.

나중에 내가 깨달은 것은 ‘급진’이란 단어는 옳지 않은 것으로 ‘격렬’하게 해서는 ‘나아갈’ 수 없기 때문임을 깨달았다. 예를 들면 ‘진보(進步)’나 ‘진전(進展)’ 등이 그렇다. 반면 ‘과격’이란 단어에 담긴 뜻은 옳은 것으로 이 단어 자체에서 ‘격렬’함은 ‘편파(偏頗)’적이고 ‘치우치며(偏離)’, ‘방향이 틀린(走偏)’ 것임을 나타낸다.

개인적으로 이해하기에 어휘 자체도 사람의 심리에 영향을 끼치는 것 같다. ‘급진’이란 이 단어는 비록 과격하긴 하지만 그래도 나름 효과가 있고 진전을 가져올 수 있다는 느낌을 주지만, ‘과격’이란 단어는 사람들에게 ‘격렬’한 것이 틀렸음을 알게 한다.

법 학습을 통해서 나는 격동(激動), 격정(激情), 과격(過激), 충동(衝動) 등은 좋지 않은 것으로 평화롭고 이성적인 것만이 좋은 것이라 이해했다.

중국 전통문화는 중용(中庸)의 도(道)를 제창하기에 극단적이거나 과격하지 않으며 평화와 담담함 등을 강조한다. 가령 ‘마음이 평화롭다’거나 ‘담담하고 고요하다’거나 ‘담백한 맛이 가장 좋다’거나 ‘총애와 모욕에도 놀라지 않는다’거나 ‘군자의 사귐은 물처럼 담담하다’는 등의 품성(品性)을 제창한다.

그러나 중공 당문화(黨文化)는 ‘대약진’처럼 극단을 숭배하고 대부분 극단적인 것을 제창하는데 아주 신속하게 가장 높고 가장 좋은 것에 도달할 것을 제창한다. 내가 느끼기에 수많은 단어들이 당문화의 영향을 받아 사람들의 정서와 심태 등과 관련이 있다. 예를 들면 격정, 격동, 격앙(高亢), 강개(慷慨), 기세 등등, 눈앞의 성공과 이익, 큰 공 세우길 좋아함, 터무니없는 목표 추구 등이다.

이렇게 ‘격렬함’과 관련된 것들은 평화롭고 담담한 것을 잃어버린 것으로 단순히 ‘나아가지’ 못할 뿐만 아니라 ‘치우친’ 것이니 다시 말해 수련인이라면 마땅히 닦아버려야 할 것들이다.

사부님께서는 《음악 창작회 설법》에서 말씀하셨다.

“이성이 없는 격정, 이지를 잃은 광기, 사실 그것은 부(負)면적인 것을 격발한다. 그러나 평화로운 상태야말로 바로 선(善)한 것이고 사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사람의 상태이다.”

사부님께서는 또 《2016년 뉴욕법회설법》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중공사당 그 사회에서는 무엇을 하든 모두 극단적이다! 이 사회는 무엇을 하든 모두 여지를 남기는데, 응당 어떠해야 하면 바로 어떠한 것으로, 당신은 아마 견딜 수 없을 것이다. 당신은 견딜 수 있어야 하며, 당신은 그렇게 해야 한다. 중국대륙에서는 정말로 이런 것으로서, 무엇이든 다 극단적이다. 식당을 차리더라도 모두 “황중황(皇中皇)”, “왕중왕(王中王)”, “천중천(天中天)”이라고 부른다. (뭇사람 웃음) (사부님 웃으심) 내가 말하는데, 국제사회에서 사람을 구하는 일을 잘하고자 한다면, 이 이념을 속히 바로잡아야 한다.”

내 생각에 우리 많은 사람들이 당문화의 영향을 받아 ‘평화’와 ‘담담’ 등의 가치를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어떤 일을 계획할 때 나타나는 정서나 생각해 낸 방법을 보면 일단 ‘격렬함’을 띠는데 그렇게 해야만 힘이 있다고 느낀다. 그러나 이렇게 하면 평화롭고 차분한 이성적인 사고는 할 수 없다.

한 동수는 심득(心得)에서 감정이 평온하고 정서와 생각이 평범해야만 어떤 한 가지 일을 견지하기 쉽다고 말했다. 반대로 쉽게 감동하고 격동하면, 종종 오래 지속하기 어렵다. 중공은 문예작품을 선전하면서 종종 일부 이야기를 ‘특별하고’, ‘특별히 간고하다’게 쓰거나 또는 ‘특별히 비참’거나 ‘특별히 사랑스럽’게 쓰는데 마치 ‘특별한 자극’으로 ‘전형(典型)’을 만들어 사람의 심리를 한번 뒤집어놓지 않으면 그만두기 어려운 것처럼 보인다.

장개석(蔣介石)은 일찍이 중공의 그런 수법은 대체로 극단적이기 때문에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고 평가한바 있다. 장개석은 또 장중정(蔣中正)으로 불리는데, 내가 보기에 장개석은 아마 극단으로 치닫지 않고 너무 격동적이지 않으며, 중정(中正)이란 전통적인 태도를 지켜야만 천하를 오래 유지할 수 있고 또 이렇게 해야만 정상적인 상태라 여겼을 것이다.

《천고영웅인물 장개석》 시리즈 문장의 마지막에서 이렇게 결론짓고 있다.

“창세주께서는 장공(蔣公 역주: 장개석)에게 우주 정사대전(正邪大戰)의 최후 일전에서 중국인들이 승리할 조건을 충분히 준비하게 하셨다. 중국대륙에서 대대적으로 문화대혁명을 일으켜 5천년 전통을 파괴할 즈음 장공은 대만에서 중화문화 부흥운동을 일으켜 중화문화를 보존했다.”

작은 깨달음이니 부당한 곳이 있다면 자비로 바로잡아 주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52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