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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을 베껴 대법을 널리 알리고 진상 알려 사람을 구하다 (상)

중국 대법제자

【정견망】

나는 올해 75세로 한때 중공 체제 내의 관리였지만 1996년 억울한 일을 당해 인생의 슬럼프에 빠졌을 때 우연히 《전법륜》을 얻었다. 밤새도록 《전법륜》을 다 읽고 고심(高深)한 법리에 감탄하면서 내 세계관마저 완전히 전변[轉變 역주: 전변은 사소한 변화나 개변(改變)이 아니라 사상의 전향처럼 근본적이고 커다란 방향전환을 뜻한다]되었다.

나는 철저한 유물론자에서 파룬따파(法輪大法) 수련자가 되어 반본귀진(返本歸真)의 길에 들어섰다. 지난 27년간의 수련에서, 특히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한 후 겪은 13년간의 억울한 옥살이를 거치면서, 정정당당하게 오늘까지 걸어올 수 있고 마땅히 해야 할 세 가지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대법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사존(師尊)의 가호 덕분이다.

법을 얻은 후, 대법수련은 내 생활 전체에 녹아들었고, 법 공부는 나의 매일 일과에서 주요한 부분이 되었다. 처음 수련을 시작한 후 1999년 ‘7.20’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하기 전까지 3년 동안 나는 거의 네 차례 《전법륜》을 외웠고 일곱 번 베꼈는데, 그 중 한 번은 붓으로 베꼈다. 또 한 번 또는 여러 번 《정진요지》, 경문, 각지 설법을 베꼈다. 검은 소굴에서도 나는 《전법륜》을 한 번 베꼈다.

2018년 검은 소굴에서 나와 지금까지 날마다 붓으로 정체(正體)자로 《전법륜》을 베끼는데 지금까지 《전법륜》 5번과 《홍음》 에서 《홍음 6》을 여러 번 베꼈다. 나는 여기서 내가 법을 베끼면서 대법을 널리 알리고 진상을 알려 세인을 구한 체험을 사존께 보고 드리고 동수들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

1. 법을 베끼며 승화해 끊임없이 집착심을 제거

내가 법을 얻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운 좋게 다른 성(省)의 보도소장을 통해 사부님의 《창춘 보도원법회설법》을 얻었고 법 공부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일체 불필요한 사교 활동(홍법은 제외)을 중단했고 더는 TV를 보거나 다른 책 보는 것을 중단했다. 그때 나는 직장에서 배치를 기다리느라 특별히 맡은 업무가 없었다. 모든 시간과 정력을 거의 다 법공부와 수련에 사용할 수 있었다.

매일 직장인반과 퇴직자반 두 그룹에서 연공과 단체 법 공부를 했고 밤이면 또 법 공부 소조에 참여했으며 다시 아내와 함께 2시간 가부좌를 했다. 나는 또 혼자서도 법을 공부했는데 처음에는 법을 외우다 나중에 베끼기 시작했다. 밖에 나가 길을 걸을 때도 혼자 법을 외웠고, 차를 타면 법을 들었으며, 집에 돌아가면 법을 베꼈다. 법을 베끼는 중에 나는 또 그 어떤 관념도 품지 않았고 그저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 공은 사부에게 달렸다”(《전법륜》)는 심태로 마음을 조용히 하고 법을 베꼈다. 가급적 자신을 대법 속에 녹아들게 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사람은 마치 용기(容器)와도 같아, 법을 많이 담으면, 특히 이는 우주대법이라, 그는 사람에게 정념이 있게 하며, 사람에게 정면(正面)작용을 일으키게 하는데, 틀림없이 이러하다.” (《2009년 대뉴욕국제법회설법》)

끊임없이 법을 베끼다 보니 나 자신도 제고가 아주 빠르고 사람의 관념이 갈수록 줄어드는 것을 느꼈다. 예전에 집착했던 많은 것들을 담담히 보고 내려놓을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수련 전에 나는 현지에서 유명한 우표 수집광으로 협회 회장 및 이사장을 역임했다. 나는 여가 시간과 수입의 대부분을 우표 수집에 사용했고, 우표를 정리하느라 자주 밤을 새곤 했다. 하지만 법을 계속 베끼는 동안 이런 집착들이 어느새 시들해져서 내려놓게 되었다. 결국 나는 우표 수집을 좋아하는 처제에게 10만 위안 이상의 우표를 모두 무상으로 주었다.

아내가 물었다.

“당신은 왜 아깝지 않아요?”

내가 말했다.

“나는 지금 금을 안고 있는데 어떻게 그런 흙벽돌에 연연할 수 있겠소.”

법을 공부한 이런 견실한 기초가 있었기 때문에 1999년 ‘7.20’ 중공이 파룬궁 박해를 시작했을 때 나는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모든 것이 필연처럼 느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당신이 진정하게 수련하는 사람이라면 우리 法輪(파룬)은 당신을 보호해 줄 것이다. 나의 뿌리는 모두 우주에 박혀 있으므로 누가 당신을 움직일 수 있다면 곧 나를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분명히 말하면, 그는 곧 이 우주를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전법륜》)

나는 ‘내겐 대법 사부님이 계시는데 두려울 게 뭔가!’라고 생각했다. 처음 우리는 동수들과 협력해 각급 부문에 진상 편지를 보냈다. 공안이 나를 소환할 때, 나는 그들에게 파룬궁 진상자료를 보내주었고 대법을 수련한 후 나의 세계관이 어떻게 변했는지 이야기했다. 회사에서 나를 위한 학습반을 꾸리자 나는 그들에게 파룬궁이 무엇인지 유창하게 설명해주었다. 나는 또 다른 성(省)에서 온 동수를 집에 데려와, 현지 동수들과 교류하게 했고 이를 통해 많은 동수들이 걸어 나와 법을 실증할 수 있게 했다.

직장에서 나를 산위에 보내 감시하게 했을 때, 나는 다그쳐 법을 배웠다. 가끔 나는 나를 감시하던 직원을 데리고 산을 내려가서 동수를 만나 토론하고 교류했는데 그는 자기 볼 일을 보러가고 서로 상관하지 않았다. 610이 세뇌반을 운영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나를 감시하다가 집에 간 직원에게 한통의 편지를 남겼다. 그에게 편지를 본 후 내가 떠났으며 막으려 했지만 막지 못했다고 보고하라고 했다. 나는 곧 아내와 함께 집을 나섰다.

유리실소(流離失所)하는 기간에 나와 아내는 여러 곳을 다니며 친구나 전우(戰友)들을 찾아가 파룬궁 박해의 진상을 알리고 중공의 거짓말에 속지 말라고 알려주었다. 우리는 가는 곳마다 친척과 친구들의 따뜻한 대접과 사심(私心) 없는 지원 및 도움을 받았다. 일부 파룬궁 수련생들이 사오(邪悟)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와 아내는 납치될 위험을 무릅쓰고 그들을 찾아가 교류했고 그들이 정념을 지킬 수 있기를 바랐다. 우리는 또 각각 선생님, 동창, 전우, 동료 및 관련 부서에 공개편지를 썼고 CCTV와 신문사에 편지를 보내 그들이 소위 ‘천안문 분신자살사건’을 날조해 파룬궁에 누명을 뒤집어씌우는 거짓말을 했다고 폭로했다.

당시 우리가 집을 나설 때 수중에는 겨우 현금 3천 위안(역주: 우리 돈으로 약 50만원)뿐이었다. 당시 아내가 말했다.

“3천 위안으로 어떻게 살죠?”

내가 말했다.

“안심해요. 사부님께서는 절대 우리더러 밥을 굶게 하진 않으실 테니.”

결국, 우리는 약 1년 동안 집을 떠났지만 수중에 있던 3천 위안을 쓰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친구와 전우들의 도움을 받아 휴대폰, 컴퓨터, 프린터 및 기타 진상 자료를 만드는 장비를 구입했다. 또 동수의 협조를 받아 자료점을 만들었다. 진상을 알리며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다.

우리는 일찍이 공안에 수배되어 납치, 가택수색, 감금, 노동교양, 판결을 받았다. 비록 나는 13년이 넘는 억울한 옥살이를 당했지만 나는 또 그것을 단지 수련 환경이 개변되어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는 대상이 변했다고만 생각했다. 간수소, 노교소, 감옥에서 나는 여러 번 노동 거부, 단식, 단수로 세뇌반을 저지하고 박해에 반대했다. 사부님의 가호 아래 박해가 심해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경찰과 범인의 존중을 받았다. 매번 내가 수련하고 진상을 알림에 따라 환경이 개선되었다.

나는 어디서든 기본적으로 법을 베끼고 연공하며 진상을 알릴 수 있었다. 간수소에서 교도관은 또 내게 수감자들에게 사람이 되는 도리를 가르쳐 주라고 요청했다. 나는 이 모든 것이 대법이 준 것임을 안다. 내가 대법에 대한 바른 믿음[正信]을 확고히 하고, 대법의 요구에 따라 했을 때 사부님께서 가호해주신 것이다. 대법이 없고 사부님이 없었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이번 박해에서 우리 대법제자야말로 주역이고 대법제자가 결정한다는 것을 인식했다. 대법제자의 정념(正念)은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다. 다시 말해 당신에게 그런 마음이 없다면 그런 일이 없다는 뜻이다.

2. 법을 베끼며 대법을 널리 알리다

내가 법을 베끼기 시작한 이유는 내가 법을 읽거나 외울 때면 쉽게 한눈을 팔거나 졸렸기 때문이다. 이에 더욱 효과적으로 법을 잘 배우기 위해 법을 베끼기 시작했다. 나는 법을 베끼면서 점차 법을 베끼는 것은 단지 손만 움직이는 게 아니라 또 머리도 쓰고 체력을 소모하며 정신을 집중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법을 베낄 때 늘 물이 졸거나 음식을 하다 졸이는 경우가 많았다. 한번은 끓이다 연기가 나는 것을 본 이웃이 우리 집에 불이 났다고 여겼다.

법을 베끼는 과정은 그 자체가 고생이라, 업(業)을 없애고 집착을 제거하는 과정인데 즉 수련에서 제고하는 과정이다. 박해가 시작되었을 때 두 가지 일을 겪은 후, 나는 생각을 개변해 법을 베끼면서 대법을 널리 알릴 수 있음을 알았다.

내가 상방(上訪)한 후 한 달가량 형사 구류된 후 회사에서 계속 나를 감시했다. 어느 날 나를 감시하던 직원의 친구가 내게 파룬궁이 어떻게 된 일이냐며 대화를 나눴다. 나는 그에게 파룬궁은 불가(佛家) 수련의 고덕대법(高德大法)으로 사람더러 우주 진선인(真善忍)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고 최후에 초상(超常)적인 사람이 될 것을 가르친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에게 《전법륜》을 한번 보라고 제안했다.

내가 말했다.

“내 대법 서적을 빼앗겨서 지금은 여분이 없네요. 일단 내가 베껴 쓴 《전법륜》을 보면 어떻습니까?”

그가 말했다.

“좋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내가 붓으로 베낀 《전법륜》을 선사했다. 그는 매우 기뻐하며 거듭 사의를 표했다.

또 한 가지 일은 사오(邪悟)했다 돌아온 한 동수가 있었는데 대법 책이 없었다. 그녀가 내게 《전법륜》을 보고 싶다고 해서 내가 붓으로 베낀 《전법륜》을 주었다. 나중에 이 동수는 견정하게 대법 수련으로 돌아왔고 세인(世人)들에게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는 중에 여러 차례 납치되어 박해를 받았다.

이 두 가지 일에서 계발을 받아 나는 법을 베껴 써서 홍법(洪法)하기 시작했다. 2000년에 내가 아내와 집을 떠날 때, 한 상사를 보러 갔다. 박해 전 나는 그에게 《전법륜》과 사부님 설법 비디오 등 대법 자료를 준 적이 있었다. 그는 우리에게 이 지역에 큰 지진이 발생했을 때 소구(小區)의 다른 집들은 다 무너졌지만 자기 집만 멀쩡했다고 말했다. 심지어 바닥에 떨어진 텔레비전과 보온 주전자까지 멀쩡했다는 것이다. 지진 전문가들이 와서는 모두들 이상하게 여겼다고 했다. 동시에 그는 또 자신이 겪은 신기한 일들을 많이 들려주었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대법 책을 읽어 대법 사부님의 보호를 받았기 때문에 재난을 면할 수 있었던 겁니다.”

그는 단번에 깨달은 듯 말했다.

“나는 고통이 두려워서 연공은 하지 않고 그저 《전법륜》만 보면서 마음을 닦았네.”

아내와 나는 그의 집에서 머문 시간을 이용해 우리가 가지고 있던 박해 이후 사부님께서 발표하신 신경문과 각지 설법, 《홍음》을 베껴 쓰면서 그와 심득을 교류했다. 연분이 있어서인지 그는 비록 대법 수련에 들어가진 못했지만 대법에서 이익을 얻었다.

나와 아내는 상방했다는 이류로 납치되어 간수소에 수감되었다. 그때 간수소에 새로 들어온 사람은 모두 ‘과당벌권(過堂罰拳)’을 해야 했다. 즉 먼저 들어온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주먹으로 신입을 때리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감방에 들어갈 때, 감방장(역주: 감방 수감자들의 우두머리)이 내가 파룬궁을 연마하다 상방해서 수감된 것을 알고는 이 벌칙을 면제해주었다.(사실은 사부님의 가호임) 다음날, 교도소 경찰은 파룬궁이 탄압당한 진상을 들은 후, 나더러 감옥에서 연공할 수 있도록 허락했고, 또 수감자들에게 어떻게 사람 노릇을 해야 하는지 도리를 말해주라고 했다.

감방장은 ‘6·4’에 참가한 적이 있어서 중공의 사악함을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나를 아주 공손히 대해주었다. 덕분에 나는 감옥 안에서 매우 자유롭게 행동했고, 감옥 밖에서 일할 때도 그는 특별히 내가 다른 감방에 수감된 동수들과 교류할 수 있도록 주선해주었다. 그는 내게 펜과 종이도 제공해주었다. 나는 매일 기억나는 사부님 경문과 시사(詩詞)를 베껴 썼고, 늘 감방장에게 파룬궁 진상을 알렸고, 내가 베낀 대법을 그와 다른 사람들에게 주었다.

감방장은 대법 법리를 아주 인정했다. 그리고 전체 감방 수감자들을 이끌고 나와 함께 연공했다. 내가 두 번째로 납치되어 간수소에 수감되었을 때, 간수소에서 복역 중이던 그 감방장이 이것을 알고는 특별히 이번에 내가 수감된 감옥 감방장에게 “우리 사형(師兄)이니 잘 대해주시게.”라고 당부했다.

나는 2019년 감옥에서 돌아온 후 붓을 사용해 원래 불경을 베껴 적는 화선지 노트에 《전법륜》과 《홍음》을 정체(正體) 해서(楷書)로 베끼기 시작했다. 어느 날 동수가 집에 와서는 내가 붓으로 《전법륜》을 베낀 것을 알고는 나더러 《전법륜》을 달라고 했다. 자신이 고향에 갈 때 95세 연로한 부친에게 이 책을 보여주면 부친이 이런 방식을 받아들일 것 같다고 했다.

나중에 그가 내게 말했다.

“얼마 전에 동생이 전화를 걸어와 아버님이 침대에 누워 계시는데 며칠째 먹지도 마시지도 않으시는데 버티기 힘들 것 같다면서 돌아와서 마지막으로 아버지를 만나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당신이 베낀 《전법륜》을 갖고 급히 고향으로 갔습니다.

고향에 가서 보니 부친은 겨우 숨만 붙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부친께 말씀드렸죠.

‘과거에 돈이 있는 사람들은 따로 사람을 불러다 경전을 읽었는데 아들인 제가 직접 경전을 읽어드릴까요?’

이렇게 부친의 허락을 받은 후 당신이 베낀 《전법륜》을 읽어드렸습니다. 부친은 처음에 다가오더니 계속 읽어드리자 일어나 앉으셨고 계속 읽어드리자 침대에서 내려와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온가족이 대법의 신기를 목격했죠. 나는 떠나면서 동생에게 부친께 《전법륜》을 꾸준히 읽어드리라고 했습니다. 나중에 동생이 전화를 걸어서는 ‘아버님이 완전히 건강을 회복하셨어요.’라고 했습니다.”

(계속)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51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