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제자
【정견망】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사실, 사람의 신체는 표면의 이 조그마한 것이 아니며, 층층층층 모두 당신의 신체가 있고, 모두 당신의 사상이 있으며, 모두 당신의 세포가 있는 것으로, 모두 당신의 한 정체이다. 한 가지 일을 함에 표면상의 행위를 할 때, 한 가지 일을 할 때, 전반 세포는 모두 운동하고 있고, 모두 사고하고 있으며, 동시에 또 한 공간 속에 있지 않다.”[1]
현재 층차에서 내가 깨달은 것은 대법제자의 일사일념(一思一念)은 다른 공간에서 정(正)의 요소와 부(負)의 요소의 대결이라는 것이다.
오늘 몇 가지 작은 일을 겪었는데, 그 속에 일사일념이 법에 부합하는지 고험이 있었다.
친척에게 부탁해서 대신 일을 해달라고 했다. 친척이 관련 부문에 가서 일을 처리할 때 해당 부서에서 반드시 갖춰야 할 절차들을 알려주었는데 친척에게는 없었다. 그래서 그는 내게 전화를 걸어 알려 주었고, 당시 나는 컴퓨터에 관련 정보가 있으니 그더러 한번 시험 삼아 찾아보라고 알려주었다. 나는 전화를 끊고도 마음이 안정되지 않았는데 잠시 후 ‘그가 과연 이 일을 처리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만약 이 방법이 안 되면 어떻게 하지?’ 하고 생각했다.
이 때 나는 마땅히 정면(正面) 사유로 대해야 하며 부면(負面) 사유가 내 머리를 차지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이 나타난 것은 곧, 나로 하여금 정면 사유와 부면 사유 중에서 선택하게 하는 것이다. 이를 깨닫자 나는 곧 솟구쳐 올라오는 부면 사유를 배척해서 정면 사유가 주도하게 했다. 아울러 외부의 표현이 어떻든 흔들리지 말아야 하며 이 일념을 단단히 지켰다.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고,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 얼마 후 친척이 전화를 걸어와 내게 일이 잘 성사되었다고 알려주었다. 아마 이 친척도 아주 신기하게 생각했을 텐데 그가 전화로 말하는 것을 들어보니 심정이 아주 격동되었다.
또 한 가지 아주 까다로운 일이 며칠 동안 나를 괴롭혔다. 하지만 내가 관념을 전변(轉變)해 정면(正面) 사유로 대했을 때, 일에 곧 전기(轉機)가 생겼다. 이렇게 하루 동안, 경험한 두 가지 일이 나로 하여금 깨닫게 했다.
평소 나는 사상 염두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중시하지 않았고 또 어느 것이 부면 사유이고 어느 것이 정면 사유인지 이렇게 똑똑히 구별하지 못했다. 때문에 대부분 감정적으로 일을 처리했고 사상 속에 나타난 염두에 대해 걸러내지 않았으며 어떤 일이 나타난 배후의 요소가 무엇인지 깨닫지 못했다. 그 결과 관념이 전변되지 않았고 심성이 제고되지 못했다. 정면(正面) 사유로 눈앞에 발생한 일을 처리하지 못했고, 어느 것이 대법에 부합하는 것이고 어느 것이 해체할 것인지 구별하는 혜안(慧眼)이 없었다.
그런데 왜 오늘은 할 수 있었는가? 나는 자신이 위타(爲他)의 각도에서 섰고 사유(思惟)의 동기가 선량해서 타인을 고려했기 때문이라고 보는데 모순 속에서 상대방의 좋은 점과 장점을 생각했다. 바로 선(善)의 요소 때문에 닥친 일을 이성적으로 마주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다른 공간의 일체 물질은 다 생명이 있는 것으로 사상 속에서 내보낸 그 어떤 염두(念頭)든 다른 공간에서는 모두 물질 존재다. 인체는 소우주(小宇宙)로 우주 중에 있는 요소는 인체 이 소우주에도 마찬가지로 갖추고 있다. 단지 법에 부합하는 순도(純度)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우주에는 정(正)이 있고 부(負)가 있다. 인체라는 이 소우주에는 또 정(正)의 요소와 부(負)의 물질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사람이 삼계(三界)라는 이 미혹의 공간을 벗어나지 못했을 때, 사상 속의 염두는 곧 부면 요소와 섞이게 된다. 수련에는 그 어떤 우연한 일도 나타날 수 없다. 소위 모순과 문제가 당신 앞에 놓여 있을 때가 바로 당신의 불성(佛性)이 마성(魔性)을 싸워 이길 수 있는지, 당신의 정념(正念)이 사념(邪念)을 싸워 이길 수 있는지 보는 것이다.
사람은 사(私)가 있기 때문에 사(私)에서 두려움, 걱정, 근심 등 부면적인 물질들이 생겨난다. 이런 물질들은 다른 공간에서 물질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럼 정법(正法)이 이런 부면적인 사유들을 건드릴 때면 곧 당신 사상 속에 반영된다. 당신의 대뇌에 이런 부면적인 사유가 반응되어 나와 당신을 방해하는 것이 목적이다. 당신이 이런 부면 물질을 갖고 있기 때문에 비로소 부면 사유를 갖게 된 것이다.
부면 사유가 있는데 만약 당신의 정념이 부족하면 당신은 곧 이런 부면 사유를 따라 계속 연장하고 발전해 내려가는데 당신의 정념이 갈수록 더 작아지고, 사람의 물질이 갈수록 더 많아져서 당신은 곧 사람의 궤도로 끌려갈 것이다. 당신의 사상이 완전히 부면 사유에 의해 조종당할 때면, 당신은 벗어나기가 아주 어렵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대법제자가 미혹 속의 사회에서 속인과 함께 생활하고 있기에 사상에서, 적어도 어느 한 방면에서 가장 쉽게 흐름에 휩쓸릴 수 있다. 만약 당신이 일을 함에 대법으로 자신을 가늠하지 않고 정념으로 생각하지 않으며, 문제에 부딪혔을 때 법에 서 있지 않으면, 당신은 속인과 다를 바가 없다.”[2]
사부님의 설법은 제자에게 법을 명확히 알려주셨고 나로 하여금 대법제자가 어떤 일을 만나든 사부님을 생각하고 법을 생각하며 법으로 가늠하고 자신을 법속에 놓아, 대법 속에서 자신의 때를 씻어내고, 법속에서 자신의 일사일념(一思一念)을 순정하게 해야 함을 일깨워주었다. 이렇게 하면 대법의 보장이 있어 속세에서 길을 잃지 않을 것이며 집으로 되돌아가는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작은 수련 체득이니 부당한 곳이 있다면, 자비로 시정해주기 바란다!
주:
[1] 리훙쯔 사부님 저작:《대법홍전 25주년 뉴욕법회설법》
[2] 리훙쯔 사부님 저작:《무엇이 대법제자인가》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5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