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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곳 쉬운 곳부터 시작

대법제자

【정견망】

나는 큰 공(功)을 세우려는 마음이 아주 강해서 매사에 큰 것부터 생각하고 계획하지만 대부분 결과는 좋지 않았다. 가령 일단 정진(精進)을 말하기만 하면 머릿속에서 생각하는 것이란 아침에 어떻게 일찍 일어나고 포륜(抱輪) 시간을 연장하며 법공부 양을 늘리는 등이다. 하지만 결국 늘 해내지 못해 실망하고 떨쳐 일어나지 못하고 안일한 마음이 많으며 의지력이 약하다고 자신을 원망하곤 했다.

동수가 작은 곳에서부터 시작했다는 심득을 듣고도 나는 눈에 차지 않았고 별로 끌리지도 않았다. 남들이 빼먹은 법공부와 연공을 나중에 보충했다는 심득을 교류할 때도 나는 오히려 법공부와 연공을 다년간 흔들리지 않아야지만 사람을 탄복시킬 수 있으며 빼먹는 것은 정진이 아니고 자율성이 강하지 못한 것이라고만 여겼다. 다른 사람이 법을 읽고 얻은 수확을 교류할 때도 나는 오히려 법을 외워야지만 좋다고 여겼다.

하지만 나는 큰 계획에 끌리긴 했지만 오히려 착실하게 하지 못했고 때로는 달아올랐다 금새 식었다 하면서 꾸준히 견지하지 못했다. 나는 큰 것을 생각하고 큰 것을 계획하는 데서 수익을 얻기는커녕 도리어 실망만 초래했다. 나는 전형적으로 눈은 높지만 실력이 따라가지 못하고, 말만 크게 하고 실천하지 못하면서도 작은 것은 또 하려 하지 않았다. 때로 아침에 늦게 일어나면 하루 종일 심정이 우울했고 연공과 법공부를 해도 마음이 조용해지지 못했으며 그러면서도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신을 용서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런 심태가 나를 아침에 일찍 일어나게 촉진하진 못했다. 배후의 마음을 깊이 파보면 사실 구하는 마음과 이성적이지 못하고 급히 이루려 하고 비교하며 비현실적인 목표를 잡는 것 등이다.

최근, 마침내 실천을 통해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의 단맛을 볼 수 있었다. 한번은 하루 종일 일이 바빠서 밤늦게까지 법공부와 연공을 하지 못했다. 잠시 법을 공부하고 나니 잠자기 전 발정념 시간까지 15분만 남았다. 이때 연공을 하고 싶었지만 기껏해도 15분밖에 안 될 것 같았다. 예전 같으면 나는 분명 이런 시간을 중시하지 않고 겨우 15분 연공하는 것은 연공하지 않은 거랑 같다고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그날은 15분간 연공하기로 결심했고 제1장 및 3장 일부를 연공했는데 몸이 아주 편한 것을 느꼈다. 이렇게 짧은 연공으로도 이렇게 느낌이 다를 줄은 몰랐다. 나는 자신이 짜투리 시간과 작은 노력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냈기 때문에 격려를 받은 것이라고 느꼈다.

큰 공 세우길 좋아하는 마음의 또 다른 표현은 때로 큰 항목에 참여하면 매우 기뻐하고 흥분하면서, 참여하면 마치 계단을 오르는 것처럼 여긴다. 사실 시작도 하기 전에 이미 공로를 자신의 머리 위에 놓은 것이다. 배후의 마음가짐은 정진이 아니라 탐욕으로 공로를 탐하는 것이다.

법공부 방면에서도 과거에는 법공부를 강화한다는 말만 하면 곧 얼마나 많은 법을 외웠는지, 얼마나 많은 법을 배웠는가 여부만 생각했다. 늘 공부양이 작으면 마땅치 않았고 법을 외우지 않고 읽는 방식은 마땅치 않게 여겼다. 내 생각에 이런 생각들의 배후에는 모두 큰 공 세우길 기뻐하는 마음이 있다. 최근에 나는 책을 들고 진심으로 소중히 여기기만 하면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상관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평범하다고 해서 소중함을 몰라서는 안 되며, 늘 큰 것만 바라보며 만족하지 못해서는 안 된다.

그날 법을 읽으면서 “이 책은 이미 가치를 가늠할 수 없다. 당신은 또 무엇을 구하는가?”(《전법륜》)를 읽을 때 나는 단번에 날마다 법을 들고 읽으며, 법을 공부하고, 연공할 수만 있다면 이런 쉽고 평범한 것들이 사실 대단히 소중한 것임을 느꼈다. 쉽게 얻었다고 해서 소중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나는 아주 행복한 것을 느꼈고, 정말로 더 바랄 게 없었다.

최근 한 가지 경험은 내게 큰 공 세우길 좋아하는 것이 때로는 촉진이 아니라 오히려 저해가 됨을 깨달았다. 나는 원래 어떤 주제에 대해 교류문장을 쓰려고 했다. 원래 길고 전면적으로 쓰려고 계획했지만, 결국 몇 달 동안 손을 대지 못했다. 마치 뭔가 저항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고, 추진력과 아이디어도 부족했다. 그러다가 작은 깨달음이 있어서 붓을 들고, 짧은 글을 쓰려고 했다. 주제는 달랐지만 생각의 폭이 점차 넓어졌고, 마치 사부님의 가지(加持)와 지혜를 얻은 것 같았다. 결국 오랫동안 계획했지만 쓰지 못했던 그 글을 쓰게 되었는데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좋았다. 여기서 나는 큰 공 세우길 좋아하는 그런 마음이 도리어 자신에게 어려운 느낌을 갖게 만들어 일을 촉진하긴 커녕 오히려 일을 방해했음을 깨달았다.

심성을 수련하는 측면에서도, 과거에 나는 항상 화내는 것을 고치고 싶었다. 늘 욕을 먹어도 대꾸하지 않는 그런 동수들을 부러워했지만 나는 오랜 세월 해내지 못했다. 늘 자책하고, 괴로웠지만 그렇다고 좋은 방법이 없었다. 나중에 내가 발견한 것은 사실 화내기 전에 또 한 걸음씩 제고할 수 있는 게 많다는 것이다. 나는 단번에 화를 내지 않으려고만 생각했는데 사실 그 앞에 더 쉽게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고 눈만 너무 높았던 것이다. 마치 어린 아기가 걸음마를 배우기도 전에 단번에 달리기를 배우려는 것과 같았다.

자세히 생각해 보니, 화를 내기 전에 무엇이 있는가? 때로는 누군가 내 마음에 들지 않고, 어떤 사람에게 불만이 있고 누군가에게 관념을 갖는데, 이는 나중에 화를 낼 하나의 씨앗을 묻는 것과 같다. 만약 이런 염두들이 떠오를 때, 스스로 자제하거나 그것을 부정하지 않고, 그저 화가 폭발할 때만 자제하려 한다면 그것은 정말 어렵다.

나는 예전에 가족들에게 화를 자주 냈고 다툼이 일상이었다. 그때도 상대방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상대방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지금은 화를 내지 않으며 근본적으로 그런 불만이 다 사라졌다. 모두 내가 안으로 자신을 찾고, 사람마음과 관념을 닦아버리는 과정 속에서 완전히 상대방에 대해 오직 감은(感恩)할 뿐 원망할 게 없음을 깨달았다. 정말이지 원망할 곳이 단 하나도 없었다. 자연히 화를 낼 수 없다. 나는 심성을 수련하는 다른 방면을 발견했는데, 아주 작은 염두가 나왔을 때가 바로 심성을 수련하는 방면에 있어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작은 계단이다. 모순이 폭발하고 관(關)과 난(難)이 쌓일 때까지 기다려서 큰 계단을 뛰어올라갈 필요가 없다.

내 생각에, 큰 공 세우길 좋아하고, 턱 없이 높은 목표를 설정하며 성급하게 일을 이루려 하는 마음의 배후에는 모두 당문화(黨文化)가 있음을 발견했다. 즉 과장되고 극단적이며, 자연 법칙을 무시하는 일종의 비이성과 착실히 걷는 것을 무시하며, 단번에 목적지까지 도약하길 희망하는 것이다. 과거 중공사당의 “대약진” 구호나 “사람이 대담할수록 땅도 산출량이 많아진다”거나 “3년 만에 영국을 추월하고, 5년 만에 미국을 추월하자”와 같은 구호 역시 마찬가지다.

개인적으로 깨달은 것은 작은 것부터 착수하는 것은 일종 이지적이고 지혜로운 심태이자 또한 착실히 매진하는 것으로 오직 착실하게 발걸음을 내딛고 한 걸음씩 걸어가야만 전진할 수 있다. 반대로 큰 것부터 시작하는 것은, 문턱이 너무 높으면 자신의 힘이 미치지 못해 공허한 이야기나 다름없어서, 좌절감을 주는 것 외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심지어 문턱이 너무 높으면 스스로 두렵고 어렵게 만든다.

그러므로 정진이란 반드시 꼭 거창한 계획을 수립하는 것에서 시작할 필요는 없으며, 작은 것부터 시작하여 작은 것들을 소중히 여기고, 잠깐이라도 법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소중히 여기고, 매 번 발정념을 할 때마다 진지하게 제대로 하며 대충하지 않으며, 작은 수련 기연(機緣)에 대해서도 감은(感恩)하고 소중히 여겨야 한다.

나는 최근에 이렇게 시작할 수 있게 된 후, 법을 공부하면 더욱 차분해지고 법리에 대한 깨달음도 더욱 많아졌음을 발견했다. 또 발정념과 연공할 때도 더욱 집중하게 되었고, 열과 에너지를 더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이어서 마음이 더욱 평온해졌고 수련에 대한 신심도 더욱 생겼다. 전체적인 상태도 하늘을 올려다보며 안하무인하며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것에서 땅에 착실히 발을 딛고 현재 활용할 있는 자원에 시선을 둔다. 객관적인 조건을 갖추지 못했거나 자신의 심성과 의지력이 부족한 것을 가리지 않고 현재 없는 것에 눈을 두지 않는다.

나는 또한 내가 가진 것, 가장 평범하고 보잘것없는 모든 것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깨달았다. 아주 짧은 시간, 아주 작은 일, 아주 작은 노력 등은 마치 공기와 물처럼 사실 생명의 중요한 자원이다. 하지만 너무 평범하고 너무 쉽게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오히려 소중히 여기지 않고 반대로 쉽게 얻기 힘든 것을 추구한다.

작은 깨달음이니 부당한 곳이 있다면 자비로 시정해주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55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