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北美) 대법제자
【정견망】
강자아(姜子牙)가 사부께서 주신 봉신방(封神榜)을 받고, 산을 내려가기 전에 원시천존(元始天尊)이 그에게 분명히 알려주었다.
“여기서 나간 후 누가 너를 부르더라도 절대 대답하지 말거라.”
하지만, 그는 여전히 고개를 돌려 자신을 부르던 신공표(申公豹)에게 대답했다. 이것은 강자아의 수행(修行)에서 명백한 한 가지 실수였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동수들이 토론하고 교류한 바 있다. 그런데 이 외에 강자아는 겉으로 보기엔 그다지 지적할 데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은 그렇지 않다. 필자가 보기에 수행인(修行人)으로서 강자아가 저지른 가장 큰 잘못은 바로 일을 하는 것을 수행으로 간주하고 일을 하려는 마음이 수행을 넘어섰고 심지어 수행을 망각했으며 최후에 세간의 명리정(名利情) 속에 떨어진 것이다. 강자아는 산 위에서 40년, 산 아래에서 30년(하산에서 제후에 봉해질 때까지) 있었는데 산 위에서는 청수(淸修 청정한 수련)하고 산 아래에서는 실수(實修 착실한 수련)했음에도 애석하게도 깨닫지 못했다.
여기서 《봉신연의》 제15장을 보자.
“이때 성탕(成湯)의 왕조가 멸망하고 주(周) 왕실이 흥성해야 할 시점이 되었으며 또한 신선(神仙)들이 살계(殺戒)를 범해 원시천존이 그들을 신으로 봉하고 강자아가 재상의 복을 누리는 운수가 교묘하게 맞아떨어졌다.”
천상(天象)의 변화와 세간의 일에는 구체적으로 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며 신(神)이 직접 할 수는 없다.
원시천존의 말로 하자면 “네(강자아를 말함)가 나를 대신해 봉신(封神)하러 하산하라.”
이 말을 들은 강자아는 애절하게 호소했다.
“제자는 진심으로 출가해 지금까지 여러 해 동안 열심히 수행해왔사옵니다. 비록 성취는 무척 더디지만 부디 자비를 베푸시어 미욱한 곳을 지적해 깨달음을 얻게 해주옵소서. 저는 힘들지라도 속세의 부귀영화는 바라지 않고 여기서 열심히 수행해 존경하는 사부님께 부록(付祿)을 받는 신선이 되고 싶사옵니다.”
사실 원시천존을 대신해 봉신하는 것은 천상과 인간에서 모두 극히 중대한 사명임에도 그는 마치 사부께서 하신 말씀을 아예 듣지 못하고 자신더러 산을 내려가라는 것이 자신을 쫓아내 수행의 길을 끊은 것이라고 착각한 것 같다.
강자아가 깨닫지 못하자 남극선옹이 설명해준다.
“자네가 비록 하산(下山)하더라도 공을 이루는 날이면 자연히 다시 산에 올라올 수 있을 것일세.”
공(功)을 이루기 전에 강자아는 확실히 몇 차례 산에 올랐는데 그것은 곤란에 처해 도움을 요청하러 간 것이다. 하지만 공을 이룬 후에는 왜 산에 올라갈 생각을 하지 못했는가?
나중에 만선진(萬仙陣)을 돌파한 후 노자와 원시천존이 강자아에게 이렇게 말했다.
“오늘 온 것은 우리가 12대(代) 제자들과 함께 모두 동부(洞府)로 돌아갈 것이다. 네가 봉신한 후 새롭게 신명(身命)을 닦으면 진선(真仙)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봉신을 마친 후 강자아는 다시 신명을 닦아서 진선(真仙)이 될 생각을 했는가? 아니다, 대신 장상(將相)의 지위를 편안히 누렸고, 이후 제후에 봉해지자 감격의 눈물을 흘린다.
강자아가 나서서 무왕(武王)에게 봉토를 나누고 공신(功臣)과 왕친(王親) 등 작록(爵祿)을 봉하자고 간언했을 때 이정, 금타, 목타, 나타, 양전, 위호, 뇌진자 등 7명은 즉시 일어나 작별을 고하고 산으로 돌아갔다. 이는 분명히 동문인 강자아에게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공을 이뤘으면 물러나 도(道)를 닦는 것만이 주업(主業)임을 점화해준 것이다.
“어가(御駕)와 작별하고 산으로 돌아와 시끄러운 속세 피하니
한가로이 부뚜막에서 연단(煉丹)하며 몸소 불을 때누나
수행으로 우화등선해 삼계(三界)를 넘어서고
음양을 단련해 구소(九霄 구층 하늘)를 뛰어넘네
귀로 고관대작들의 부귀를 들을까 두려워
일신(一身)이 시비로 얼룩진 조정을 떠났네
한가로이 소요(逍遙)하며 인간사 묻지 않고
세월 따라 격변하는 세상을 지켜보았네.”
이는 후세 사람이 육신(肉身)을 지니고 신선이 된 이들 7명을 칭송한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강자아는 7인이 작별을 고하는 말을 들었음에도 이별의 슬픔을 억누르지 못했을 뿐 수도할 마음은 전혀 드러내지 않았다.
그렇다면 강자아는 왜 이렇게 빨리 또 이렇게 심하게 타락했을까? 한편으로는 역사상 다른 수련법문들과 마찬가지로 그의 사부가 그에게 진정으로 착실하게 수련하는 법(法)을 똑똑히 말해주지 않아서 그 자신도 수련의 실질이 무엇인지 제대로 몰랐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확실히 홍진(紅塵 속세)의 악(惡)을 확실히 보여준다.
원시천존은 강자아가 산을 내려가기 전 그에게 준 게어(偈語)에서 분명히 알려주었다.
“이십 년 동안 궁핍하게 지내겠지만
인내심 갖고 분수 지키며 편안히 지내라.”
실제로 강자아는 산을 내려간 후 계속되는 곤경에 직면한다. 가령 조리를 팔러 나갔다 하나도 팔지 못했고, 국수를 팔려고 나섰지만 바람에 날라 가고, 식당을 차렸지만 아무도 밥을 먹으러 오지 않고, 늘 끊임없이 아내의 잔소리를 듣다가 끝내는 버림 받았다. 또 천자(天子)가 수배령을 내려 위험에 처하기도 했다. 당시 강자아의 내심은 아마 평정(平靜)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는 그가 부인 마씨(馬氏)와 서로 욕을 하는 장면에서 알 수 있는데 당시 강자아의 마음속에는 불평불만과 의혹이 가득했다.
원시천존이 미리 알려주었기에 그는 자신이 대기만성(大器晩成)이며 나중에 세간에서 큰 사명을 완수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날마다 자신이 어떤 일을 만나고, 어떻게 마주해야 하는지, 눈앞에 닥친 매 하나의 구체적인 난관을 어떻게 극복해나갈 지, 이런 모든 것들은 그에게 막막했다. 그가 늘그막에 아내를 맞이한 것 등은 모두 의도적으로 배치된 착실한 수련을 위한 장(場)임을 전혀 몰랐다. 그는 이러한 사소한 일들과 고뇌들이 앞으로 있을 사명과의 연계를 이해하지 못했다. 몰랐기 때문에 그저 갈아야했는데, 한번 갈기 시작하자 20년이 넘었다. 끝내 그는 현명한 군주의 인정을 받고 중용되어 의기양양하게 재능을 크게 펼칠 때가 찾아왔다.
인생에서 자신을 알아주는 지기(知己)를 하나 얻기란 쉽지 않다. 역대로 천리마는 늘 있었지만 천리마를 알아보는 백락(伯樂)은 늘 존재하지 않았다. 강자아는 분명히 문왕(文王) 및 뒤를 이은 무왕(武王)이 자신을 알아봐준 것에 대해 깊은 정을 품고 있었다. 선비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는다. 이것은 강자아가 늙은 목숨을 다해 희(姬 주나라 왕실의 성)씨를 위해 천하를 평정할 수 있게 한 큰 원동력이었다.
그는 사부나 사형 등 뭇 신(衆神)들의 각도나 수련자의 각도보다는 사람의 각도에서 세상의 흥망성쇠와 군신(君臣) 관계를 바라보았다. 그렇다, 그는 산을 내려올 때부터 정말로 더는 자신을 수행인이라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파룬따파(法輪大法) 사부님이 공개적으로 법을 전수하신 지 30년이 넘었고, 대법제자들은 24년이 넘도록 박해를 당하고 있다. 얼마나 많은 대법제자들이 강자아처럼 숱한 고생 속에서 분주히 뛰어다녔지만 실제적인 심성 수행 방면에서는 똑똑히 모르고 또 다그치지 않는가? 심한 사람은 서서히 속인으로 전락했다.
대법 속에 명예와 이익은 없지만 진상(真相)을 알리고 사람을 구하는 항목이란 형식이 있다. 대법 속에서 중생은 평등하지만 수련생 집단에는 전문가, 예술가, 스타, 인플루언서, 회장, 경영자, 교수 등이 있다. 사부님께서는 대기원과 신당인이 장차 인류사회에서 가장 큰 매체가 될 거라고 말씀하셨는데, 필자가 이해하기에 그것은 하나의 결과이자 플랫폼이며 도구로, 수련과 사람을 구하기 위해 존재하고 나타난 것일 뿐 수련생이 (정신적으로) 추구할 목표는 아니며 이 과정에서 일과 성패 및 명리 등 사람마음의 기복에 빠져서는 안 된다.
대법제자가 박해에 반대하는 것은 사람을 구하기 위한 것이지, 사당의 몰락 등 인간 세상의 정치 변화를 강렬하게 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수련과정에서 최대한 속인 사회형식에 부합해서 수련해야 하지만 속인 사회형식에 부합함이 목적이 아니며 수련만이 옳은 것이다.
명혜문장 《우리가 마지막까지 대법제자의 칭호에 걸맞길 희망한다》에서는 이렇게 지적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현대사회의 유혹으로 적지 않은 사람이 점점 수련을 게을리했고 그로 인해 법공부와 수련을 힘들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사회 조류에 따라 아래로 미끄러졌고 명예와 이익 속에 떨어졌으며, 심지어 핸드폰과 인터넷에 빠져 수련을 한쪽에 밀어놨다. 어떤 사람은 아무리 말해줘도 돌아오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러 교류를 해도 대법과 관련된 말을 하지 않는다. 박해가 시작된 후 첫 10여 년은 수련생 수십 명이 모두 수련을 견지했지만, 나중에는 사부님을 도와 사람을 구하는 수련의 길을 확고하게 걷는 사람은 이 중 몇 명밖에 되지 않았다. 정말 마음 아픈 일이다.”
필자 역시 일찍이 속인 정치지도자에 집착하고 그에게 희망을 걸어 이에 따라 격동하거나 소침해진 적이 있다. 또 해외 대법 항목에서 자신의 견해를 고집하거나 직급, 대우, 공헌의 크기 등 세속적인 문제로 동료들과 다투기도 했다. 또 자신이 대가를 치른 것을 늘 생각하며 잊지 못했고 일부 충돌을 늘 마음에 담아둔 적도 있다. 천만다행인 것은 매번 사부님의 홍은(洪恩)과 동수의 도움을 받아 제때에 수련 속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봉신연의》에서 이정(李靖)은 강자아와 대비된다. 유사점은 진당관(陳塘關)의 이정은 어려서부터 도를 찾고 진을 수련해 서곤륜(西崑崙) 도액진인(度厄真人)을 스승으로 모시고 오행둔술(五行遁術)을 배웠다. 그러나 선도(仙道)를 이루기 어렵게 되자 산에서 내려와 주왕(紂王)을 보좌했는데 관직이 총병관에 이르러 인간 세상의 부귀영화를 누렸다. 이것은 주왕에 대한 토벌이 시작되기 전의 일이다.
그러나 주왕 토벌에 성공한 후 이정은 강자아처럼 작록을 받아 처자와 함께 천륜(天倫)의 즐거움과 자손대대로 부귀(富貴)를 누리려 하지 않았다. 대신 산에 들어가 수련했고 결국 육신을 지니고 신선이 되었다.
반면 역사서에 따르면 강자아는 100세에 신강(申姜)이란 여자를 아내로 맞아 한 명의 딸[훗날 왕후가 되는 읍강(邑姜)]과 13명의 아들을 낳았다고 한다. 정말이지 가세가 번창했고 부귀한 지위를 비교할 수 있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아마 어떤 동수는 강자아가 이렇게 한 것 역시 정법(正法) 속에서 한 가지 배치로 역사적으로 이런 역할을 연기해서 상응하는 문화를 남기기 위한 것이라고 여길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봉신연의》에서는 볼 수 없는데 어떤 이는 강자아는 주의식이 똑똑했기 때문에 이렇게 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말한다. “다시 신명(身命)을 닦아 진선이 되는 것”과 세간의 명리정(名利情)을 누리는 양자 사이에서 강자아는 의심할 바 없이 후자를 선택했다. 오늘날 대법제자들은 단지 세간의 자원과 형식을 빌려 수련하면서 사람을 구할 뿐이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여러 차례 “만고의 일은 법을 위해 왔으며”[1] “왜냐하면 인류는 대법을 위해 창조된 것이고 대법은 이 극의 주요 줄거리(主線)이며 중생의 존재는 일체가 모두 이 주요 줄거리를 둘러싸고 있기 때문이다. 단지 사람들은 모두 극 중의 사소한 모순과 충돌에 골몰해 미혹되었고 극의 주제를 잊어버렸으며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지 잊어버렸다. 이 극의 무대가 바로 중국이다.”[2]라고 알려주셨다.
이 글을 쓰는 것은 스스로를 일깨우는 동시에 여러분들과 함께 격려하려는 것이다. 지금 당신의 현재 처지가 여전히 곤궁에 처한 강자아와 같거나 나중에 위풍당당해진 강자아와 같거나 모두 세상에 온 진정한 의미와 홍원(洪願)을 잊지 말아야 한다. 역경이라도 좋고 성취라도 좋은데, 모두 수련하고 사부님을 도와 사람을 구하기 위한 것이다. 세간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해 강자아 같은 잘못을 저질러 유감을 남기지 말아야 한다.
주:
[1] 리훙쯔 사부님 저서: 《홍음 2》〈연극 한 편〉
[2] 리훙쯔 사부님 저서: 《북미순회설법》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578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