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제자
【정견망】
최근 며칠 동안 수련에 돌파가 있음을 느꼈는데, 비교적 분명한 것은 마음이 평온해지고 사람의 관념이 적어졌으며 일을 하면서 그렇게 극단적으로 하지 않게 되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을 법(法)속에 놓고 평소 생활 속에서 접하는 일을 법과 연계시킬 수 있었는데 이것은 최근에야 비로소 깨달은 것이다. 때때로 마음이 법에 있지 않을 때면, 사람의 것이 너무 강성하고 점유욕(占有慾)이 너무나 크다. 이럴 때면 법을 생각하지 못하고 그저 관념에 이끌릴 수밖에 없는데 한 일도 법에 부합하지 않는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현재 인류 이 사회 환경은 정법시기 대법제자의 수련과 법을 얻으러 온 중생을 위해 개창한 것이다. 대법제자가 진상을 알리든 대법제자가 행한 이런 사람을 구하는 항목이든 표현해낸 각양각색 일들이 보기에는 정상인 것 같지만, 오히려 또 초상적인 것으로 사람은 해낼 수 없다.” (《각지설법 13》〈2015년 뉴욕법회설법〉)
현재 층차에서 내가 깨달은 것은 우리가 처한 환경과 우리의 수련은 직접적으로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상유심생(相由心生)”이라 마음이 외부 환경과 대응하기 때문이다. 사부님께서 제자에게 배치한 수련 형식은 질서가 있는 것으로 제자의 제고를 위한 것이다. 만약 이 환경 속에서 법(法)을 중시하지 않는다면, 그럼 곧 법(法)의 궤도를 벗어나게 되는데, 법에 있지 않은 모든 것들은 다 헛수고다. 왜냐하면 이는 사부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대법의 요구에 따라 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
나 자신을 말하자면, 누가 나더러 사부님을 믿지 않고 대법을 믿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나는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은 사부님을 믿는다고 여겨왔고 또한 이렇게 다년간 수련하면서 대법의 신기(神奇)와 초상성에 대해 깊은 체험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련이란 끊임없이 제고하고 끊임없이 사람의 관념을 타파하는 것이다. 사람이 대응하는 다른 공간은 층층의 천우(天宇)세계로 위로 올라갈수록 당신에 대한 법의 요구는 더욱 엄격해지고 제약하는 힘이 더욱 강하다. 이는 곧 당신더러 정법노정을 따라갈 것을 요구한다. 신체(身體)와 사상(思想) 모두 법이 규정한 그런 순정한 정도에 도달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때로 당신이 사부님을 믿고 대법에 확고하다고 여기지만 실천 속에서는 오히려 당신의 정념이 얼마나 충분한지 드러내지 못하는 이유다.
얼마 전 한동안, 나는 심성(心性)을 지키지 못해 마성(魔性)이 크게 폭로되었다. 모순 속에 빠져 매우 괴롭고 또 몹시 힘들었으며 정말로 마음이 초췌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의 이런 상태가 대체 무엇 때문인지 생각해보았다. 하루 종일 바쁘고 힘들었지만 결과는 오히려 생각처럼 되지 않았고, 가족들은 또 내게 반감을 갖고 나를 미워했는데 이는 내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진상을 알리고 중생을 구하는 것, 이것이 바로 당신이 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를 제외하고 당신이 해야 할 것은 없으며, 이 세상에서 당신이 해야 할 것은 없다. 당신이 해야 할 것은 바로 이러한 일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자기 수련마저 희미해져서 속인의 일을 중하게 보는데, 당신들에 대해 말하면 그것은 대법제자의 수련 길에서 벗어난 것이 아닌가?”(《각지설법 13》〈2015년 뉴욕법회설법〉)
법에 대조해 자신을 보니 곧 수련이 느슨해졌고 사람 속의 일을 중시했다. 때문에 이 한 점에서 곧바로 수련의 길을 벗어난 것으로, 엄밀히 말하면 사부님과 대법을 확고히 믿지 못한 것이다. 이는 바로 사람 상태의 표현이 아닌가? 그렇다면 사람 속의 번뇌는 바로 사람 마음의 대응이 아닌가?
자신의 집착이 있는 곳을 찾아내 사상을 전변(轉變)시켜 대법(大法)을 주선(主線)으로 삼으면, 일체가 다 대법을 에워싸고 돌아가고 일체가 다 대법을 위해 존재한다. 이 때 마음속에 법이 있음을 느끼면 마음이 편안해지는데, 설사 속인 일을 할지라도 법과 한데로 연계할 수 있고, 법에 따라 가늠하고 바로 잡을 수 있다. 그러면 자신은 곧 대법의 한 입자처럼 되고, 대법이 무사(無私)하게 나를 포용해, 법속에 녹아드는 그런 아름다운 느낌이 든다.
이에 따라서 변화가 생기는데 속인 속의 일은 마치 하늘에 떠가는 구름처럼 마음에 두지 않고, 그것에 얽매이지 않게 된다. 당신이 눈앞의 현상을 담담하게 볼 때면 신기하게도 일이 끊임없이 좋은 방향으로 발전하는데 일체가 다 아주 순조로워진다.
대법(大法)이 바로 우리의 뿌리이고, 대법제자의 일체는 법에서 내원하며, 우주 중의 일체 생명 역시 대법이 육성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짊어진 역사적 사명은 조사정법(助師正法)과 중생 구도다. 만약 법을 중시하지 못하고 자신을 법속에 놓지 않으면 그럼 이 생명은 마치 물을 떠난 물고기처럼 더는 생존할 수 없다. 대법제자가 만약 사상이 법에 있지 않으면 그럼 매우 위험한데 왜냐하면 당신의 잘못된 선택이 당신의 결과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매 사람마다 내원이 다르고 생각하는 각도와 동기 역시 다르다. 이것은 생명의 서로 다른 특징이 체현된 것으로 대법은 하나의 주선(主線)과 같아서 우주와 관통된 것이다. 그 어떤 생명이든 이 생명의 내원이 어디에 있든 오직 대법을 믿을 수만 있다면 대법에 의해 융화(融化)될 수 있다. 한 사람이 아무리 멀리 가더라도 그(그녀)가 사람이 된 목적은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대법은 바로 우리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잡이로 대법은 밖으로 떨어진 아이를 집으로 돌아가도록 이끌 수 있다.
주된 것과 부차적인 것 및 경중(輕重)을 똑똑히 구별해야 한다. 인간 세간은 단지 수련 환경일 뿐이다. 하물며 인간 세간의 일체는 다 허환(虛幻)한 것으로 진실한 것이 아니다. 일체 체현은 다 당신이 제고하고 승화해 올라가기 위한 것으로, 이는 당신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계단이다.
작은 수련 체득이나 부당한 점이 있다면 자비로 바로잡아 주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628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