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简体 | 正體 | English | Vietnamese

“사상의 내원”에 대한 작은 깨달음

대법제자

【정견망】

저녁에 소파에 앉아 있는데 아무런 징조도 없이 머릿속에 하나의 염두(念頭)가 떠올랐다. 이 염두는 두려운 마음, 이익심(利益心), 근심, 염려하는 마음, 명예심 등이 섞여 있었는데 이런 비정상적인 염두는 마치 공중에서 날아와서 내 머릿속에 떨어져 내려온 것 같다. 이 비정상적인 반응은 나로 하여금 이것은 관념(觀念)이 내 머릿속에서 장난을 치기 시작한 것임을 알아차리게 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나는 방금 사람의 사상 내원을 말했는데, 내가 정법 중에서 본 정황은, 정법이 이르지 못한 공간 중에서 대법제자의 생각이 비교적 바를 때면, 한 정신(正神) 혹은 요소가 작용을 일으켜 그의 정념을 가지(加持)해 준다.”(《대법제자는 반드시 법 공부를 해야 한다》)

현재 층차에서 내가 깨달은 것은 사람의 사상(思想)은 사실 다른 공간에서 내원한 것으로 사람 이곳 주체에 반영되는 것은 각양각색의 생각(想法)이지만 부동(不同)한 공간의 요소와 연대되어 있다. 때로 무심코 떠오른 한 생각은 자신조차 대체 어디서 왔는지 똑똑히 모른다. 하지만 이 생각은 오히려 아주 실재적으로 나타난다. 수련에는 그 어떤 우연도 없는 것으로 출현했다면 닦을 요소가 있는 것으로 이런 생각의 실마리를 따라가서 깊이 파보면 여전히 감춰진 어떤 것이 있다.

바로 내게 이런 생각이 나타났는데 아주 분명한 한 가지 현상은 ‘두려움(怕)’의 성분이 비교적 심했다. 그렇다면 이 ‘두려움’은 어디서 왔는가? 이 ‘두려움’의 내원은 ‘사(私)’이며 ‘사’는 각종 욕망을 파생해 나온다. 이런 욕망은 마치 물건을 갉아먹는 벌레와 같은데 ‘사(私)’에서 자생(滋生)해 나온 산물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파생해 나온 집착은 ‘사(私)’와 한데 묶여 있는 것으로 그것들은 ‘사’의 세포이고 ‘사’를 구성하는 부분이다. 그렇다면 ‘사’가 살아남으려면 이런 세포들이 그것에게 양분을 공급해 주어야 하는데 이것이 ‘사’가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이다.

그렇다면 사상 속에 반영되어 나온 바르지 못한 염두는 바로 이런 ‘사(私)’의 세포가 뛰쳐나온 것으로 그것들이 살아갈 양분을 보충하기 위해 ‘음식’을 찾는 것이다. 사부님께서 제도하시는 것은 우리의 주원신(主元神)이다. 이 주체(主體)는 또 삼계(三界)라는 이 미혹 속에 있고 삼계의 이치와 천상(天上)의 이치는 또 반대로 되는 이치다. 이렇게 복잡한 환경은 사람을 대단히 미혹시키는데 관념에 이끌리게 되면 때로 주체가 내린 결정 역시 옳지 않고 법(法)에 부합하지 않는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과거의 종교 수련에서, 불가에서는 공(空)을 주장하여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공문(空門)으로 들어가고, 도가에서는 무(無)를 주장하여 아무것도 없으며 가지지도 않고 추구하지도 않는다.”(《전법륜》)

현재 층차에서 내가 깨달은 것은 사상 속에 좋지 않은 염두가 올라올 수 있는 이유는 인위적으로 패물(敗物)을 양성한 것으로 사욕(私慾)에 이끌려 망념(妄念 헛된 생각)이 잇따라 생겨난 것이다. 법리가 똑똑하지 않으면 진아(真我)는 관념에 덮여 똑바로 보지 못하고 똑똑히 구별하지 못하게 된다. 유혹에 이끌리지 않고 가상(假相)에 미혹되지 않으려면 사상이 청정한 상태에 도달해야 하며, 법에서 자신을 순정하게 하는 것이 가장 좋고 또 가장 빠른 것이으로 생명의 본체가 법에 의해 정화(淨化)된다.

대법제자의 수련은 법(法)에서 내원하며 인간 세상이 제아무리 험악하고 제아무리 많은 유혹이 있을 지라도 오직 선근(善根)을 지켜낼 수 있고 자신을 법(法)속에 놓기만 하면 마음속에 법이 있어 항로를 이탈하지 않을 수 있고 사부님을 믿으면 곧 법을 얻어 미혹을 타파해 선천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속인은 믿지 않아도 상관이 없다. 대법제자로서 알고 있듯이, 사실 사람의 그 사상 염두를 고층 생명은 아주 똑똑히 보아내며, 어떻게 사유하는지도 모두 볼 수 있다. 사람의 사상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모두 관찰해 낼 수 있다. 특히 대법제자, 당신들의 일사일념은 매우 많은 생명의 존재와 부존재(不存在)를 결정하고 있다. 당신들이 어떻게 하는지, 그 일을 잘하는지 그 일을 잘못하는지가 그들이 미래에 존재할지 존재하지 않을지 결정하는데, 당신이 말해 보라. 그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모두 보고 있다.”(《2015년 뉴욕법회설법》)

작은 수련체득이니 부당한 곳이 있다면 자비로 시정해주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62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