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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며”에서 깨달은 것

대법제자

【정견망】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말씀하셨다.

“모(某) 시(市)의 한 보도소 소장이 한 공장으로 法輪大法(파룬따파)를 연마(煉)하는 수련생들의 연마가 어떠한지 보러 갔는데, 그 공장의 공장장이 그들을 직접 접견하며 말했다. “이 직원들이 당신들의 法輪大法(파룬따파)를 배운 후,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며, 성실하고 부지런하게 일하면서 상사가 무슨 일을 맡기든지 가린 적이 없고, 이익 앞에서도 다투지 않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함으로써 전 공장의 정신 면모를 모두 이끌었으며, 공장의 경제효율도 좋아졌습니다.”

나는 비록 과거에 이 법리(法理)를 알고 있었지만, 오히려 일반적인 속인 업무에서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며 일하는 것보다는 더 많은 시간 법 공부하는 것이 낫다고 여겼다. 그래서 나는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대법제자에 대해 좋은 인상을 심어주기 위한 것이라고만 생각했고 이 외에 무슨 의미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업무 규정에 따라 일을 잘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고 얼마나 감당해야 하는가 하는 의미를 인식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나는 기왕 법에서 이렇게 말씀하신 이상 그 의미는 마땅히 아주 크다는 것을 인식했다. 아마 또 선타후아(先他後我)와 사심(私心)을 제거하는 등의 요소가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나는 며칠 전에 시간표를 짜면서 일상생활의 효율을 높여 법 공부와 연공 시간이 다 많아졌지만, 마음은 오히려 더 우울해졌다. 나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중에 다시 생각해보니 전에 한 동수가 내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일, 일을 좀 해요. 기분이 좋지 않으면 시험 삼아 집안일을 많이 해봐요.”

생각해보면 최근에 나는 해야 할 집안일도 했고 또 빠뜨린 건 없었지만 마치 임무를 완수하려는 마음으로 대했다. 즉 일을 마치고 내 일을 하려고 한 것이다. 마치 집안일은 스스로 원해서 한 게 아니라 어쩔 수 없이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곧 많은 법리의 배후에는 아주 깊은 내함(內涵)이 담겨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수련이란 선타후아(先他後我)로 수련 성취해야 하는데, 나 자신의 뿌리 깊은 관념은 무엇이 자기 일이고 무엇은 대충 하거나 또는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인지 똑똑히 구별했다. 이런 구별 배후에는 심각한 사심(私心)이 있었다.

지금 돌이켜보니 내 시간표는 세 가지 일을 포함해서 내 일 위주였다. 집안일도 시간에 포함시켰고 사실 예전보다 적지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내 마음속으로 이런 것들은 어쩔 수 없이 해야 할 임무라 여겼고 다른 것들은 내가 원해서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문제는 아마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이는 심각한 사심(私心)이 아닌가! 그래서 계획을 세우고 세웠지만 오히려 문제가 생긴 것이다.

생각해보니 평소 나는 마음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계산하는 것이 이미 습관이 되었다. 특별히 생각하려 하지 않아도 저절로 득실을 계산한다. 나를 위한 것이나 자신이 좋은 것을 얻을 수 있는 것은 하려고 했지만, 남을 위한 것이나 자신이 그다지 좋은 것을 얻지 못하는 것은 진심으로 원하지 않았다.

아래에 몇 가지 예를 들어 보겠다.

 집안일을 할 때 정성을 다해 하기 보다는 빨리 끝내고 내 일을 하려 한다. 이것은 사부님 법에서 말씀하신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며”와 “성실하고 부지런 함”과는 전혀 다른 심태다. 집안일은 가족을 위해 하는 일이라고 여기거나, 설사 자신을 위해 하더라도 어쩔 수 없이 한다거나 가치가 낮은 일이라 생각했다. 때문에 마음을 내려놓고 진지하고 꼼꼼하게 할 수 없었다. 집안일을 할 때면 늘 명혜 라디오를 듣는데 이렇게 하면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손해 보지 않는다고 여겼다. 물론 시간을 충분히 활용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다만 이 과정에서 자신의 이기심과 계산을 보았다. 이것은 닦아 버려야 할 부분이다. 가끔 휴대폰을 깜빡 잊어 집안일을 하면서 라디오를 듣지 못하면 마치 시간을 낭비하는 것 같아 기분이 아주 불쾌했다. 이 얼마나 강한 득실을 따지는 마음인가?

 병업 중인 동수를 돕는 발정념을 하거나 동수를 도와 무엇을 할 때 늘 임무를 완수하는 것처럼 했고 자신이 다른 사람을 돕는다고 여겼다. 이는 얻는 것이 아니라 감당하는 것이라고 여겼고, 늘 빨리 잘 해야 하지만 너무 많은 시간을 차지하지 말아야 한다고 여겼다. 그래서 이런 일을 할 때면 늘 인내심이 부족했고 번거로움을 두려워했는데 사실 마음속으로 득실을 계산한 것이다.

 자신이 속인에게, 상대방을 위해 더 많은 대가를 치를 때는, 늘 목적을 지니고 있었다. 진상을 똑똑히 알리기 위한 기초를 다져 상대방이 진상을 들을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만약 이런 목적이 없다면, 특별히 대가를 더 치르려 하지 않았고, 무의미한 시간 낭비라 여겼다. 사실 여전히 강렬한 사심이다. 비록 겉으로는 상대방이 진상을 알게 하려는 것이지만, 자신에게는 상대방에게 진상을 말해주었으니 내게도 공로가 있고, 수련에서 향상할 수 있다고 여기는 하나의 사심(私心)이 여전히 숨어 있었다. 아울러 배후에는 또 진실하지 못함이 드러나는데 겉으로는 대가를 치렀지만 내심에서 우러나온 것은 아니다.

내가 이해하기에, 사부님께서 법에서 말씀하신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함”에는 가급적 많이 하는 것(적게 하는 것이 아님)이 드러나고 “성실하고 부지런함”에는 전심전력을 다하는 것(건성으로 하지 않는 것)을 드러나는데 이렇게 하는 것만이 업무를 대하는 정확한 심태라고 본다. 내가 이해하기에 집안일을 대하는 마음과 다른 일을 대하는 심태 역시 이와 같아야 하며 온 마음을 다해야 하며 감당함에 득실을 따지지 말아야 한다.

법에서 내가 이해한 것은 위타(爲他 희생)는 우주의 특성에 부합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위해 감당할수록 오히려 더 즐겁고, 위사(爲私 요구)는 우주의 특성에 어긋나기 때문에 자신을 위해 아무리 잘 계획하고 아무리 똑똑하게 계산해서 아무리 많이 얻을지라도 진정한 의미의 기쁨은 있을 수 없다.

그날 나는 자신의 문제는 모든 것이 다 사(私)를 둘러싸고 있으며 무슨 일을 하든지 자신이 좋은 것을 얻을 수 있다고 여기면 하려 한다. 반대로 다른 사람을 위해 대가를 치르고 자신은 좋은 점이 없다고 여기면 마치 손해를 보는 것처럼 여겨 하려 하지 않았다. 이 사심은 뿌리가 너무 깊은 것으로 근본적인 문제다. 그날 이 한 점을 깨달은 후 한밤중에 잘 때 끊임없이 신체가 청리되는 반응이 있었다. 아마도 내가 깨달은 게 맞는 것 같았다.

최근 나는 마음속으로 수시로 사심(私心)을 멸(滅)하고 탐욕(貪慾)을 멸한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자사(自私 이기), 자아, 탐욕, 이것이 내 수련의 근본적인 문제임을 깨달았다. 곳곳에서 다 나타날 수 있으니 반드시 시시각각 경계하고, 끊임없이 제거해야 한다.

작은 깨달음이니 부당한 곳이 있다면 자비로 바로잡아 주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65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