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대법제자
【정견망】
나는 해외에 나온 지 여러 해 되었고 이 도시에는 동수들이 비교적 많은 편이다.
나는 내가 머릿속에서 늘 생각하는 것이 당 문화가 강하고 사람 마음이 비교적 강한 일부 동수들임을 발견했다. 늘 그들의 표현에 이끌리는데 때로는 이 사람은 왜 이렇고 저 사람은 왜 저런가, 다년간 수련했음에도 어쩜 이럴 수 있는가? 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불량한 표현에 당황하거나 심지어 수련 환경에 대해 의심하고 겁을 먹었다.
점차 나는 사실 동수들 중에는 수련을 잘한 이들이 더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마치 이런 동수들은 보지 않고 사람 마음이 무거운 그런 동수들을 보는 데 습관이 된 것 같다.
최근 인식한 것은 마땅히 수련을 잘한 동수들의 표현에 주목해서 보아야 하는데, 심지어 아주 선량한 속인의 표현을 포함한다. 설령 사람 마음이 중한 동수라도 마땅히 그들의 장점을 보아야 한다.(그들 사람 마음의 집착을 보는 것이 아님) 나는 눈이 어디를 보느냐가 매우 중요함을 깨달았다. 여기서 여러분들에게 개인의 일부 체험을 나눠보고자 한다.
오염
법에서 내가 이해하기에 사람이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듣든, 사실 보고 들은 것이 모두 헛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보고 들어야 할지 선택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게다가 단지 사람뿐 아니라 신들조차 자신이 본 것에 영향을 받는다.
사부님께서는 《각지 설법 7》〈미국서부국제법회 설법〉에서 말씀하셨다.
“원인은 삼계가 만들어진 후, 일부분 천체는 삼계와 너무 가까워졌는데 삼계와 가까운 뭇 신들은 삼계를 볼 수 있었으며, 심지어 삼계와 접촉하였다. 그리하여 삼계와 가까운 신들은 오염되어 떨어져 내려가기 쉬웠다. 삼계 내에는 정(情)이 있고, 중생의 이치 역시 반대로 되었으며, 환경은 고통스럽고, 사람은 또한 강렬하게 집착한다. 하지만 정신(正神)은 慈悲(츠뻬이)한 것으로, 환경이 매우 고생스러운 삼계 중생으로부터 쉽게 교란을 받는다. 그러므로 삼계와 가까운 신은 늘 바꿔야 한다.”
두 가지 다른 경계
현지 동수들의 환경 속에서 나는 늘 일부 동수들의 표현에 곤혹스럽다. 가령 어떤 동수는 늘 사람을 선의(善意)로 대하지 않고 원망이 가득하며, 많은 동수들을 무시하고 다른 사람이 정진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날카로운 태도로 대한다. 또 어떤 동수는 자아를 실증하려는 마음이 아주 심하고 어떤 동수는 거만한 등등.
나중에 나는 또 다른 종류의 동수들을 생각했다. 이렇게 오랜 세월 무심코 한 수많은 관찰 끝에 나는 그들이 수련을 아주 잘했고 대부분 다 표현하지 않는데, 좀처럼 자신을 드러내지 않음을 발견했다. 또 누구를 대하든 항상 겸손하고 예의 바르며 온화하고 우호적이다. 그들의 내심은 아주 평온하고 흔들리지 않음을 관찰할 수 있다. 그들은 일은 하지만 말은 하지 않으며 자랑과 아첨을 좋아하는 그런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부류의 사람들이다.
나는 이 두 부류 동수들의 심경(心境 마음의 경계)이 크게 다름을 깨달았다. 앞 부류는 사실 자아를 실증하는 가운데 소위 ‘성취감’, ‘성공’, ‘가치감’을 즐긴다. 그들의 마음속에는 큰 공을 세우고 빨리 공을 이루려는 등의 요소가 있다. 득실을 따지는 마음이 아주 강하고 일에 이끌려 기뻐하거나 슬퍼하며 남과 자신에 대해 흔히 관념으로 높고 낮으며 귀하고 천함을 구별하기 쉬운데 모든 사람을 순수한 선심(善心)로 동등하게 대하기란 쉽지 않다.
반면 후자 유형은 진정으로 착실히 수련하면서 끊임없이 향상하는데 세간의 명리정(名利情)에 미혹되지 않고, 수련의 진리를 잘 알아서 늘 즐겁고 평온하면서도 정력(定力)이 있다. 진정으로 불성(佛性)이 각성된 행복한 생명이다.
그날 내가 일일이 꼽아보니 사실은 후자 부류 동수들의 수가 아주 많음을 발견했다. 그렇다면 나는 왜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그들을 보고도 알아보지 못했는가? 눈을 이 소중한 동수 집단에 주목하지 않고 앞서 언급한 마음이 이끌려 끊임없이 원망하는 사람들을 주목했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첫째 자신의 사람 마음이 너무 무거워서 자신과 비슷한 부류의 사람을 바라보기 쉽다. 둘째, 후자 유형의 동수들은 확실히 자신을 드러내길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남의 주목을 받기 쉽지 않다. 그들은 자신의 행복과 즐거움은 다른 사람의 인정과는 아무 관련이 없음을 잘 알기에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데 익숙하고(필요한 경우는 제외) 묵묵히 해야 할 일을 잘하며, 또한 수련이 가져다주는 행복을 묵묵히 즐긴다.
그들은 한 생명이 ‘진선인(真善忍)’에 동화할수록 더욱 행복함을 아는 참으로 총명한 사람들이다. 가령 과시로 가져오는 허영과 즐거움은 가짜 즐거움으로 마치 위조지폐처럼 사용할 수 없다. 또 마치 마약을 흡입하면 단번에 ‘즐거움’을 가져다줄 수 있지만 도리어 남을 해친다. 또 비유하자면 칭찬은 상대방이 일시적으로 행복하게 만들고 자신과 가까워지게 할 수 있지만 역시 위조지폐와 같다. 이런 물질들은 사실 패물(敗物)이며, 많이 쌓이면 사실 마음이 행복해지기는커녕 오히려 공허하고 불편해진다.
성공한 많은 사람들이 말하지 않았는가? 자신이 일찍이 공명을 성취했고 부족한 게 전혀 없다고 느꼈지만, 대법을 얻기 전까지 내심이 공허해서 마치 인생에서 길을 잃은 것 같았다고. 이렇게 보면 ‘진선인’에 동화해 자신의 마음이 더욱 진실, 선량, 포용, 만족함을 아는 것에 가까워지는데 이것이야말로 행복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다.
내부 환경의 선택
나는 눈이 누구를 보고 마음이 무엇에 주목하는가? 하는 이런 것들이 모두 아주 중요하며 내가 어디로 갈지 방향을 결정함을 깨달았다. 아울러 속인을 무시하지 말아야 하는데, 사실 많은 속인의 경계가 낮지 않다. 이 사람들이 일단 법을 얻으면 제고가 아주 빠를 것이다. 최근 에포크타임스에서 일부 기사를 보았다. 어떤 기사를 보니 대만에서 순박하고 선량한 사람들이 있는데 마음이 전통적이고 아주 평화로웠다. 또 어떤 기사를 보니 평범한 서양 속인 역시 아주 평화로운 마음을 갖고 있다 했다. 사실 세상에는 이런 사람들이 아주 많다.
나는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다. 이렇게 다년간 수련했지만 경계(境界)가 이런 사람들과 정말 큰 차이가 난다. 많은 속인들이 션윈(神韻) 공연을 관람한 후, 그들이 표현하는 말속에는 나로서는 도저히 따를 수 없는 의경(意境)이 담겨 있다.
사부님께서는 《각지 설법 10》〈더 정진하자〉에서 말씀하셨다.
“많은 사람이 몸은 서방사회에 있지만, 실제로는 정말 이 사회를 알지 못한다. 바로 당문화(黨文化) 중에서 형성된 관념을 전변시켜야 하고, 국제적으로 인류의 정상적인 생활 상태를 많이 알아야 하며, 늘 사람의 마음으로 가로막지 말아야 한다.”
이 단락 법과 다른 설법을 통해 나는 당 문화가 있는 제자들은 국제사회의 정상적인 사상 방식을 가진 사람들을 배워야 하고, 또한 전통적인 사상을 가진 사람들로부터 배워야 함을 깨달았다. 내가 이해하기에 이런 것들이야말로 정상적인 사람이 마땅히 갖춰야 할 심태다. 당 문화는 사람 마음을 변이시켜 사람의 선량한 인성을 상실하게 했고 심령이 비뚤어지게 했으며 강경하게 싸워 이기는 것을 정상으로 여기게 했다.
내 생각에 동수든 속인이든, 마땅히 심성이 좋고 경계가 높은 그런 사람들을 항상 보고 관찰하고 한다. 이렇게 하면 좋고 정상적이며 선량한 것들을 마땅히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점차적으로 체험해 좋은 요소들이 계속 쌓이고 발효되어 은연중에 감화되는 과정이다. 물론, 제고의 관건은 여전히 법을 잘 배우는 것이고 이런 것들은 다 단지 보조적일 뿐이다. 자신이 올바른 내부 환경을 “만드는 것”을 도와 자신의 마음이 이런 평화롭고 상화한 환경 속에서 생존하며 영양을 흡수할 수 있게 한다. 강제로 싸워 이기는 환경 속에서 위아래로 이끌리며 생존이 고생스러운 그런 게 아니다.
환경이 사람에게 끼치는 영향은 아주 중대하다. 때문에 맹자 어머니는 아들 교육을 위해 세 번이나 이사했다. 또 ‘사람은 무리로 나뉜다’는 말도 있다. 이런 것들은 외부 환경을 가리키는데 어떤 사람과 함께 할지 선택하는 것이다. 내 생각에는 내심에서 선택하는 환경도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설사 동일한 외부 환경이라 해도 사람마다 관심을 두는 분야가 다르면 결과적으로 내부 환경도 달라지고 이 때문에 사람도 갈수록 더 달라지기 때문이다.
사람의 장점을 보아야
사실 사람 마음이 무거운 일부 동수들 역시 심성 방면에서 자신의 장점이 있다. 만약 그들을 생각한다면 또 이런 장점 위주로 해야 한다.
예를 들어, 한 동수는 화를 잘 내고 불평을 잘 하지만 그러나 장기간 아침 연공을 견지해 왔다. 또 한 동수는 당 문화 때문에 쉽게 감정이 격앙되곤 하지만 줄곧 한마음으로 사람을 구하는데 헌신해 왔다. 이런 소중한 장점들이야말로 바로 내게 부족한 것인데, 나는 왜 이런 점들은 보지 않는가? 이런 점을 많이 보고 많이 생각해야만 동수들로부터 이런 귀중한 것들을 배울 수 있다.
법에서 내가 이해하기에 사부님의 법신(法身)께서는 우리의 일사일념(一思一念)을 다 아시지만 사람 속에서 사부님은 우리의 좋지 않은 사상을 보지 않으시고 또 덮어주신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를 구도하지 않으실 것이다. 내 생각에 사람의 단점이나 사람의 좋지 않은 사상을 보는 것은 자신에게 아주 큰 부면(負面) 작용을 일으키니 절대 보지 말아야 한다.
예를 들어, 우리는 모두 본성적으로 쓰레기통이나 땅 위의 더러운 것을 보기보다는 꽃이나 나무, 파란 하늘, 흰 구름과 같은 아름다운 것들을 보고 싶어 한다. 다른 사람을 보는 것도 마찬가지인데, 다른 사람의 문제를 보는 것이 자신에게 무슨 좋은 점이 있겠는가?
우리는 날마다 사람의 각종 표현을 볼 수 있는데, 좋은 것도 있고 나쁜 것도 있다. 하지만 자신이 좋은 것 보는 걸 중시하고 좋지 않은 것은 무시한다면 자신의 내심 환경이 순정(純淨)해질 것이다.
작은 체험이니 부당한 곳이 있다면 자비로 시정해주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788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