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생(重生 다시 태어남)
【정견망】
올해 10월, 40여 년을 함께 살던 남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남편이 세상을 뜰 때 외지에 있는 딸 집에 있었다). 나와 딸은 이미 10년 가까이 따로 살았기 때문에 딸 집에 잠시 머물 수밖에 없었는데, 두 집의 생활 습관이며 습성의 차이가 컸다. 그래서 사소한 일에서 큰 차이가 났는데, 이 과정에서 나는 많은 사람 마음의 집착을 닦아냈다. 이를 글로 써서 동수들과 교류하고자 한다.
1. 음식
딸 가족은 국수를 좋아해서 매주 일요일 집에서 식사할 때면, 사위가 국수나 수제비만 만드는데 때론 하루 두 끼를 먹었다. 사위는 집에서 식사할 때 국수가 없으면 밥을 안 먹는 것 같았다. 저녁에 사위가 늦게 들어오면 내가 해놓은 죽은 쳐다보지도 않고 자기가 다시 국수를 만들어 먹곤 했다. 이렇게 남긴 죽은 어쩔 수 없이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가 나중에 내가 먹어야 했다. 처음에는 정말 견딜 수 없었고, 사위가 이렇게 하는 것이 마치 나와 맞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또 수련인(修煉人)이니 뭐라고 말할 수 없어 그냥 억지로 참았다.
딸과 외손녀는 주전부리를 좋아해서 거의 매일 온라인으로 음식을 시켜 먹었다. 집에는 크고 작은 음식들이 가득했다. 때로는 이렇게 먹고도 모자라서 또 새로운 것으로 바꾼다. 먹기 싫은 것, 먹다 남긴 것, 사두고 잊어먹은 음식들이 날마다 아주 많았다. 나는 이 집에서 그야말로 동냥하는 것처럼 변했는데 딸 가족이 먹다 남긴 음식을 매일 먹어도 다 먹을 수 없었다(음식을 버리는 것은 법의 요구에 부합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외손녀를 위해 요리를 해주면 자기가 좋아하는 것은 먹지만, 좋아하지 않는 것은 다음 끼에 내가 해결해야 했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외식할 때 딸과 사위는 매운 음식을 좋아해서 사먹는 음식이 대부분 매웠다. 하지만 나는 억지로 먹어야 한다. 또 한 번은 외손녀 사위와 함께 식사를 하는데, 그때 우리는 집에서 각자 만두와 팔보죽을 하나씩 가져갔다. 식사 시간이 되자 내가 가져온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사위는 자신이 좋아하는 러우쟈모(肉夾饃 역주: 찐빵 사이에 고기 등을 넣어 만든 중국 음식)를 사서 외손녀에게 줬다. 외손녀가 나더러 먼저 먹어보라고 했지만 “나는 필요 없으니 네가 먹으렴”이라고 했다.
또 사위가 좋아하는 양(羊) 내장탕을 외손녀와 한 그릇씩 주문했다. 이번에는 외손녀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먹었다. 두 부녀가 먹고 마시는 것을 보면서 나는 마음이 정말 서글펐다. 이는 사람의 마음을 자극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법리를 반영하는 것이다. 나는 당시 속으로 생각했다.
‘요즘 젊은이들은 어쩜 이렇게 예의가 없을까? 그래도 내가 너희들 어른이 아닌가?’
막 이렇게 생각하고 나서 나는 곧바로 인식했다.
‘이것은 진아(真我)의 생각이 아니다.’
이는 사부님께서 이 장면을 이용해 나더러 사람 마음을 제거하게 하신 것이다. 나는 곧바로 안으로 찾았다. 내게 또 어떤 사람 마음이 존재하기에 나더러 이런 장면을 보게 하신 걸까? 이번 연극에서 찾아보니 내게는 여전히 맛있는 음식을 좋아하는 마음, 허영심, 체면을 중시하는 마음, 사위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마음이 있었다. 나는 곧 바로잡았고 사부님께 감사드렸다.
“제자가 잘못을 알았습니다. 저는 이런 사람 마음을 원하지 않습니다.”
이에 일념을 발출해 이런 사람 마음을 ‘멸(滅)’했다. 마음이 곧바로 편안해졌다. 사위와 외손녀가 식사를 마친 후 우리는 즐겁게 나갔다.
얼마 후 나는 생각했다.
‘그들의 이런 행동은 모두 나의 사람 마음을 제거하라는 것이 아닌가?’ 마음을 조용히 하고 계속해서 안으로 찾아보니 결국 내게도 맛있는 음식을 좋아하는 마음, 까다롭게 음식을 고르는 마음, 그들 가족의 나쁜 습관을 경멸하는 마음이 있었다. 또 체면을 중시하는 마음, 또 남에게 잘 보이려는 마음과 불평하며 질투하는 마음이 있었다. 이렇게 찾고 나서 나는 좀 놀랐다. 과거에는 늘 자신이 수련을 잘해서 사람 마음이 이미 거의 없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사람의 마음이 이렇게 많단 말인가? 내가 이러고도 여전히 수련인이란 말인가?
사실 이 모든 게 나의 심성 제고를 돕는 게 아닌가? 내가 만약 이 모든 사람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다면 이곳은 내가 수련하기에 가장 좋은 환경이 아닌가? 그때부터 나는 법을 더욱 열심히 외우고, 법 공부를 더욱 열심히 하며, 대법에 대조해 자신을 수련하고, 자신을 하나의 수련인으로 여기며, 자신에게 말했다.
“너는 속인이 견딜 수 없는 고생을 견딜 수 있어야 하고, 속인이 참아낼 수 없는 일을 참아낼 수 있어야 한다.”
한동안 견지한 후에 유암화명(柳暗花明)이 되었다. 지금 나는 더는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이 환경에서 생활하는 데 익숙해졌다. 생각해 보면 환경이 더 복잡할수록 심성을 더 빨리 제고할 수 있다. 나는 이 복잡한 환경 속에서 잘 수련해야 하고, 지금까지 아주 깊이 숨겨져 있던 그런 사람 마음의 집착을 닦아버려야 한다.
2. 이익
나는 수련인이라, 이익에 대해 일찍부터 담담하게 여겨왔다. 하지만 딸은 속인이라 이익심(利益心)이 아주 무겁다. 딸은 자기 돈을 물 쓰듯 하는데 먹고, 입고, 사용할 것을 사면서, 지금껏 아끼지 않는데 정말 헤프다.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쓰는 돈은 전혀 다르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나는 그녀에게 1만 위안을 주면, 대법 자료점에 보내 사람을 구하는 일을 한다고 했지만 그녀는 마지못해 억지로 했다.
내가 또 셋째 삼촌 병 치료(암)를 위해 우리 둘이 16,000위안(내가 10,000위안, 딸은 6,000위안)을 주자고 하자 딸은 화를 내며 내게 소리를 질렀다. 내가 참을성 있게 그녀를 위로하고, 진정시킨 후 다시 말했지만, 이익심이 너무 무거워서 전혀 내 충고를 듣지 않았다,
마지막에 내가 말했다.
“이 돈을 모두 내가 내면 괜찮겠니?”
“그래도 안 돼요.”
“네 셋째 삼촌이 암에 걸려서 돈이 많이 들어. 우리가 능력이 있으니 도와주면 안 되겠니?”
하지만 딸은 말했다.
“셋째 삼촌이 우리 아빠를 또 어떻게 대했죠?”
“우리가 그와 똑같이 해선 안 되잖니?”
끝까지 말해봤지만 설득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럼 관두자.”
나는 그저 입을 다물고 내 방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이점 역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이익을 위하는 자 육친마저 몰라보고”(《홍음》〈사람 되기〉)가 옳음을 증명한다.
내 방에 들어와 마음을 가라앉히고 안으로 찾았다. 이것은 나의 어떤 마음을 제거하라는 것일까? 딸은 왜 이러는 걸까? 혹시 내게 아직도 무슨 사람 마음이 남아있는 건 아닐까?
그렇다, 나는 아직 과시심이 있었다. 자신을 대단하게 생각했고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마자 통 크게 셋째 시동생에게 만 위안을 치료비로 주려 했으니 딸이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나는 왜 이렇게 이기적이고 또 딸에게 6천 위안을 내라고 했을까?
여기까지 생각하자 나는 속으로 말했다.
“사부님, 제자가 틀렸습니다. 이것은 제자의 과시심이 드러난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제거하겠습니다.”
나는 강력한 일념을 발했다.
“과시심을 ‘멸(滅)’한다.”
순식간에 일이 지나갔다. 다음 날 아침, 딸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다.
지금 집에서 일상적인 장보기와 생필품은 모두 내가 구매한다. 나는 일찍부터 돈을 아주 담담하게 본다. 왜냐하면 나는 물건을 살 때 진상화폐를 사용해서 사람을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3. 습관
고향에 있을 때, 나는 집에서 꽃과 관상어를 길렀는데 이런 자질구레한 일들은 진작에 내려놓았다. 하지만 딸은 내가 혼자가 된 후부터 이런 것들을 계속 사왔다. 가뜩이나 집에 화분이 많은데 딸이 어항을 사서 물고기를 키우기 시작했다. 새장도 사서 앵무새도 키웠다. 원래 나는 밤까지 이미 아주 바빴다.
매일 3시 10분에 일어나서 연공하고, 6시 10분에 발정념을 마치면 아침을 차려 7시에 외손녀를 유치원에 보내고, 8시가 넘어야 집에 돌아온다. 돌아와서 바닥을 닦고, 빨래하고, 점심을 준비한다. 이 일이 끝나면 보통 9시가 넘는다. 나는 바로 법을 외우고 공부한다. 때로는 시간을 내어 교류 문장을 쓰기도 한다. 오후 3시부터 저녁 준비를 하고 4시에 다시 아이를 데리러 가서 5시 30분이 지나야 집에 온다. 집에 돌아오면 바로 저녁을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또 발정념을 한다. 때로 그들에게 먼저 식사하라고 한다. 저녁에 저는 명혜망에 접속해 동수들의 교류문장을 읽는데 시간이 있으면 각지 설법을 공부한다.
본래 가뜩이나 바빴던 내가 딸이 사 온 이런 생물들까지 챙겨야 했다. 처음엔 속으로 좀 찜찜한 느낌(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기르지도 않고 죽이지도 않는다”는 법리를 알기 때문)이 들었지만 점차 원망심이 생겼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이런 원망심이 생겨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수련인의 표준에 따라 자신을 요구하고 사람 마음을 내지 말아야 한다. 게다가 딸은 속인이고 업무 스트레스가 심하다. 집에서 이런 애완 동물들을 보면 스트레스가 조금 줄어들 것이다. 나는 연공인이니 속인과 혼동해서는 안 되지만 마땅히 딸을 이해해야 한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나는 딸이 사온 생물들을 진지하게 대했다. 딸이 집에 없으면, 그것들에게 먹이를 주고 청소하는 것을 도왔다. 단지 육체노동을 조금 더 했을 뿐이다. 내가 제때 이런 사람 마음을 찾았기 때문에 사람 마음이 내 수련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고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지금 나는 이 새로운 가정에 있으면서 곳곳에 나의 사람 마음을 닦을 수 있는 조건이 있다. 내가 매번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나 일을 볼 때마다, 나는 곧장 안으로 찾고 자신의 사람 마음을 찾는다. 나는 그들 매 사람을 하나의 거울로 여기는데, 이렇게 깊이 숨어 있는 사람 마음을 찾아낼 수 있다. 내게 이렇게 새로운 수련 환경을 마련해 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제자는 반드시 이 새로운 환경에서 자신을 잘 수련하고, 세 가지 일을 잘해서, 더 빨리 심성을 제고해 사존께 걱정을 덜 끼쳐드리겠습니다.
최근 개인의 수련 체험이니 법에 없는 부분이 있다면 시정해 주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80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