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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善)’을 닦음을 말하다

캐나다 대법제자

【정견망】

오늘 교류할 주제는 ‘선(善)’을 닦는 것에 대한 작은 깨달음이다.

나는 수련한 지 이미 26년이 되는데, 사부님의 《전법륜》을 읽은 지 세 시간도 안 되어 수년 동안 나를 괴롭혔던 불면증, 요추 디스크, 경추질환 등이 사라졌다. 당시 내가 이 책을 본 첫 일념은 ‘내가 찾던 것이 바로 이것이다.’였다. 왜냐하면 전에 여러 사찰을 다니며 그곳의 출가인들과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눈 후 그들은 수련이 무엇인지 알지 못함을 알고 몹시 실망했기 때문이다. 나는 사찰 내부에서 아귀다툼, 월급을 받는 등의 현상을 보았다. 때문에 나는 다행히 보서(寶書)를 얻은 후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법리를 굳게 믿고 의심하지 않았다.

수련 후 나는 진선인(真善忍)에 따르는 사람이 되는데 줄곧 ‘인(忍)’이 가장 수련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나는 성격이 좋지 않아 갑작스런 심성 고험을 만나면 통과하지 못할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선(善)을 닦는 문제에서는 별로 문제가 없다고 낙관했다. 나는 천성이 아주 선량해서 선을 하는 것은 그래도 쉽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중에 겪은 몇 가지 일들은 내게 선을 닦는 것에 대해 비교적 깊이 인식하게 했는데 여기서는 몇 가지를 예로 들어본다.

첫 번째 이야기

코로나 이전 함께 진상을 알리던 동수 한 사람이 천국악단에 들어가고 싶어 했는데, 그녀가 연주하는 악기가 우연히 내 파트였다. 그녀의 나이가 많아서 제한 연령을 초과했지만 내가 고집을 부려 그녀가 정식 단원이 되게 했다. 하지만 그녀가 들어온 후 나를 별로 지지하지 않고 때로는 대항하는 것을 발견했다. 어느 날 나는 탁자에 앉아 ‘규칙을 어겨서 들어오게 했으니 내보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막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고개를 들어보니 앞의 하얀 탁자 위에 검은 물건이 꿈틀대는 것이 보였다. 전에 보지 못했던 작고 검은 벌레였다. 진딧물처럼 보였지만 날지 못했다. 나는 장갑을 끼고 그것을 씽크대에 가져가 버렸다. 잠시 후 또 쌓여서 이렇게 세 번을 했다. 또 대체 어디서 왔는지 몰랐다. 그 순간 나는 문득 이는 업력(業力)이 아닌가? 사부님께서 제자를 점화하신 것임을 깨달았다. 즉시 건물을 올라가 사부님 앞에 무릎을 꿇고 말씀드렸다.

“사부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동수에 대해 마땅히 이런 악념(惡念)을 품지 말아야 했습니다.”

동수는 내 심성을 제고하라고 돕는 것이니 당연히 감사드려야 했다. 나는 전혀 수련자답지 못했다. 내가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가 보니 벌레들이 없어졌다. 정말로 오고 감에 아무런 흔적도 없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무한한 감사를 느꼈다. 사부님께서 제자를 지켜보시며 내가 너무 바르지 않은 길을 너무 멀리 가지 않도록 해주셨다.

두 번째 이야기

몇 년 전에 우리 큰 모임에 한 사람이 왔는데, 특무를 쫓아 왔다고 했다. 한 동수가 큰 모임에서 자신들과 함께 있었던 동수 한 명이 체포되어 산 채로 장기를 적출 당했다는 사실을 지적했는데 나는 이 말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나중에 들으니 그녀가 말을 아주 잘했고, 많은 동수들, 특히 노년 동수들이 그녀의 말에 따라 요고대에 가입하는 등 많은 활동에 참여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였다. 나는 줄곧 이 사람이 누군지 몰랐는데 몇 년이 지난 후에야 누군가가 내게 알려주었다.

션윈 공연을 볼 때 나는 가장 좋은 자리에서 그녀를 봤는데 그녀에게 무슨 돈이 이렇게 많을까? 하고 생각했다. 나는 그녀에게 인사도 하지 않았다. 가끔 차이나타운에 갔는데 마침 그녀가 당번이었다. 그녀가 내게 인사했지만 나는 고개를 돌리고 못 본 척했다.

몇 년 전에 우리 차 몇 대가 문 손잡이 홍보를 위해 한 도시에 갔는데, 일단 한 동수의 공장에서 모이기로 했다. 내가 협조인 동수에게 “어떻게 된 일이죠? 이러면 안전하지 않아요.”라고 말하자 협조인은 이 일을 몰랐다. 이때 한 아주머니가 사람이 부족해서 자신이 불렀다고 했다.

나의 이런 각종 불선(不善)한 행동들을 그녀도 느꼈을 것이다. 작년 큰 모임에서 내가 발언하면서 보니 유일하게 일어나 나가는 사람이 바로 그녀였다. 그녀가 현장을 떠난 것에서 나는 생각해 보았고 과거 내가 했던 일이 불선(不善)했음을 깨달았다. 그녀가 보기에 나는 선량한 사람이 아닐 것이다. 이는 나의 26년 수련 동안 선을 닦는 것에 큰 누락이 있음을 반영한다. 그리고 동시에 경험한 다른 일들은 나로 하여금 선에 대한 이해에서 예전처럼 사악을 증오하는 것이 바로 선이란 그런 경계가 아니다.

2023년 연말 션윈(神韻) 문손잡이 홍보[역주: 션윈 홍보물을 대문 손잡이에 거는 활동]를 하러 갔는데 우연히 그녀와 같은 조가 되었다. 이때 나는 더 이상 그녀에 대해 부면(負面)적인 생각이 없었다. 노선을 배분하면서 길을 알려주고 가급적 길고 구불구불한 길은 내가 가고 그녀에게는 가급적 큰길만 가도록 배치했다. 마지막 한 거리가 남았을 때 나는 그녀가 너무 빨리 가는 것 같아서 잠시 쉬어가라고 했다. 내가 하는 동안 여기서 기다리라고 하자 그녀는 아니라면서 우리가 같이 하자고 했다. 우리는 이렇게 성공적으로 일을 마쳤다. 내가 먼저 정류장에 도착했기 때문에 동수는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는데, 버스에서 내려 뒤를 돌아보니 동수가 웃으면서 손을 흔들며 작별 인사를 하고 있었다.

세 번째 이야기

“일 처리 중의 어투, 선한 마음, 도리(道理)를 더하면 사람의 마음을 개변시킬 수 있으나 명령은 영원히 할 수 없다!”(《정진요지》〈청성〉)

나는 이 단락 법이 아주 익숙하다. 사부님께서는 어투를 가장 먼저 말씀하셨는데, 이는 어투가 아주 중요하다는 것을 설명한다.

나의 현재 수련 층차에서 이해하자면 말투는 바로 심리 상태의 표현이고 어떤 심리 상태가 있으면 바로 말투에서 반영된다.

지난 몇 년을 돌이켜보면 내가 매주 하루 플랫폼에서 큰 그룹의 사회자이자 한 팀의 협조인을 맡고 있고, 우리 지역 큰 모임에서 수시로 발언한다. 지난 몇 년 동안 이런 자리에서 발언한 후 나는 자신의 어투에 과시심, 쟁투심, 지적하는 마음, 비판하는 마음, 자신만 옳다고 여기는 마음이 뒤섞여 있음을 느꼈다. 이런 마음들을 찾아내고 나는 깜짝 놀랐다. 이것은 모두 당 문화의 일부가 아닌가? 선심(善心)이 많이 부족한 것이다.

어느 날 사부님께 향을 올리고 나서 사부님께 말씀드렸다.

“사부님, 저는 반드시 당신을 따라 진짜 집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저는 이런 것들을 원하지 않습니다. 제자가 이런 것들을 없애도록 도와주세요.”

내 기억에 이튿날 플랫폼 사회를 하면서 말투가 훨씬 겸손해진 것 같았다. 나중에 한 동수가 오늘 말투가 많이 좋아졌고 마치 뭔가가 떨어져 나간 것같다고 했다.

나는 “그렇습니다. 사부님께서 그것을 떼어내도록 도와주셨습니다.”라고 했다.

물론 그것이 그때 이후 다 없어졌다는 뜻은 아니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말씀하셨다.

“당신이 괴로울 때일수록 물극필반(物極必反)임을 설명하는데, 당신의 온몸을 정화(淨化)해야 하며, 반드시 전부 정화해야 한다. 병근(病根)은 이미 떼어버렸고, 남은 요만한 검은 기, 그것이 스스로 나오게 하여, 당신에게 고만한 난(難)을 겪게 하며, 고통을 좀 받게 하는데, 당신이 조금도 감당하지 않는 이것은 안 된다.”

나는 앞으로도 꾸준히 수련에 공력을 들여 이런 나쁜 물질들을 계속해서 제거해 나갈 것이다.

수련 중에 직면한 다양한 장애, 특히 대량의 법 공부를 통해 나는 선(善)을 닦는 것에 대해 더 깊은 이해를 갖게 되었다.

예전에 나는 자신이 아주 선하고 원래 지닌 근기가 작용을 일으킨다고 생각했는데, 사람에서 신(神)으로 나아가려면 선(善)에 대한 요구가 아주 높은데 이는 수련의 요소와 직접 관련된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사부님의 가르침에 따라 법을 많이 배우고 또 법을 이해해야 하며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많은 법을 말씀하신 것은 필경 무엇 때문인지 알아야 한다.

신체(身體)라는 이 그릇에 법(法)이 더 많이 채워지면 그럼 사람의 나쁜 것들이 자연히 줄어들고 이때 우리 머릿속 사상은 진선인(真善忍) 법리로 구성되며, 문제에 직면하면 자연스럽게 진선인 표준에 따라 가늠하고 감별할 것이다. 또 법에서 벗어난 것에 좌우되지 않을 것이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법은 너무나 박대정심(博大精深)해서 다양한 방면을 망라하는데 우리가 직면하는 모든 문제는 모두 이 법의 범위를 벗어날 수 없다. 머리에 담은 것이 모두 법일 때면 당연히 편차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선(善)이 주의식 안에 깊이 뿌리를 내리면 상유심생(相有心生)이라 자연히 언행 속에 선이 체현되어 나올 것이다.

또 법으로 우리 행위를 지도하면 가령 문제에 직면했을 때 안으로 찾고 무사무아(無私無我)하며 일체를 위타(爲他)하고 집착이 없게 닦아내면, 우리가 문제에 부딪힐 때 사람의 관념으로 문제를 보고 일을 판단하지 않고 진정한 선(善)이 외부의 그 어떤 요소에 의해서도 좌우되지 않을 것이다.

마치 사부님께서 《전법륜》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다.

“각종 환경 중에서 모두 다른 사람을 좋게 대해야 하고, 남을 선하게 대해야 하는데, 하물며 당신의 친인(親人)임에랴. 누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서, 부모에 대해 자녀에 대해서도 모두 잘 대하고, 곳곳마다 다른 사람을 고려하는 이 마음은 곧 이기적인 것이 아니며, 모두 자선지심(慈善之心)이고 慈悲(츠뻬이)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당신에게 상처를 주거나, 당신과 충돌하거나, 또는 상대방이 매우 나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등등 이런 것들이 자신의 선(善)을 개변시켜선 안 된다. 왜냐하면 상대방의 일체 좋지 않음은 그 자신의 일이고 당신의 선심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기 때문이다. 만약 이러한 외부적인 것에 의해 인해 자신의 선이 개변되고 애증이 분명하고 질투와 혐오 등으로 표현된다면 그럼 당신은 아직 진정한 선(善)을 닦아내지 못한 것으로 여전히 사람의 정(情)에 좌우되는 것이다.

물론 이 선에는 또 선을 권하는 것도 포함된다. 가령 동수가 확실히 법에서 이탈한 것을 보면 선의로 지적하고 또 우리가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는 것은 모두 아주 선한 행동이다.

사부님께서는 《2004년 미국 서부법회설법》에서 말씀하셨다.

“나는 이미 여러분에게 이야기한 적이 있다. 선(善) 그것은 가장해 낼 수 없으며, 표면적으로 유지하는 하나의 상태도 아니며, 선은 진정으로 내심으로부터 우러나온 것이며, 그것은 수련을 통해서만 비로소 얻을 수 있고, 비로소 체현되어 나올 수 있다. 중생들 앞에서, 당신의 말이 입에서 나오자마자, 당신의 염(念)이 움직이자마자, 좋지 않은 요소를 바로 해체 시킬 수 있고, 세인들을 독해하는 것과 사람의 사상요소 중의 좋지 않은 것을 바로 해체 시킬 수 있어, 사람은 알게 되고 당신은 그를 구할 수 있게 된다.”

내가 현 층차에서 인식하기에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우주대법(宇宙大法)이고, 하시는 것은 우주를 갱신하는 일이다. 이 대법은 우리가 수련하는 층차에서 위로 제한이 없게 할 수 있으며, 부동한 천체에서 내려온 주와 왕들이 그 층차의 높낮이에 관계 없이 오직 사부님 법의 요구를 엄격히 따르고 진수(真修)하고 착실히 수련하기만 한다면 모두 반본귀진(返本歸真)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함께 용맹정진해서 처음 같은 수련 상태를 유지하고, 세 가지 일을 잘하고, 이 마지막 수련의 길을 잘 걸어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갑시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82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