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제자
【정견망】
가족은 내가 가장 많이 접촉하는 사람들이다. 속인 층면에서 보자면 자신을 가장 잘 아는데 왜냐하면 밖에서는 각종 방법으로 자신을 감싸고 단점을 감추며 장점을 뽐낼 수 있어도, 집에서는 아무래도 멋대로 해서 진면목이 남김없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수련의 층면에서 보자면, 법(法)에서 내가 이해하기에, 사부님께서는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나를 점화해주시는데, 가족의 입을 빌리는 것이 가장 편리한 형식이다. 그러므로 그 어느 층면에서 보더라도 가족의 말은 절대 소홀히 할 수 없다.
내가 깨달은 것은 가족은 내 수련에서 여러 방면에서 많은 도움을 주는데 여기에는 일깨움(배후는 대개 사부님의 점화), 시범, 거울 등을 포함한다. 여기서 나의 작은 체험을 기록해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
남편은 속인인데, 그가 지적한 나의 단점은 모두 매우 ‘정확’했다. 다만 나는 당시에 종종 인정하지 못해 남편과 싸웠고, 때로는 그것을 깨닫는 데 몇 년이 걸렸다. 내 생각에 남편이 ‘정확’한 이유는 한편으로는 남편이 나를 잘 이해하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부님께서 그의 입을 빌려 나를 점화해 주시기 때문이다.
‘경고’와 ‘시범’ 작용
경고 외에도 가족은 또 ‘시범’ 작용을 한다. 모든 생명은 다 장단점이 있는데 수련인은 또 사람 마음과 관념을 인식하고 닦아 버려야 한다. 이와 동시에 속인은 또 여러 방면에서 귀감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사람 마음과 관념은 아주 완고해서, 스스로 인식하기 어렵다. 또한, 오랫 동안 이 방면에서 잘못된 사유로 문제를 생각해 왔기에 심지어 무엇이 옳고 좋은지 모른다.
나는 점차 우리 가족이 내게 정확한 사유와 행동 방식을 많이 ‘시범’ 보여 주었고, 그 배후에는 당연히 사부님의 고심한 배치가 있음을 깨달았다. 일은 모두 아주 작았지만 나는 많은 관념의 전변이 가장 작은 일에서부터 배우는 이것이 가장 빠른 방식이자 또 가장 착실한 것임을 발견했다. 고인은 “세 살이면 미래를 알 수 있다”고 했다. 전통 가정에서 자란 어떤 아이들은 세 살이나 다섯 살이면 성격, 도덕, 행동 방면에서 좋은 기초를 다질 수 있었는데 늘 가장 기본적인 작은 일부터 습득한 것이 아닌가?
예를 들어보자. 나는 집안일을 건성으로 하는데 시간이 촉박해져야 한다. 남편이 잔소리하면 나는 또 승복하지 않고 자신이 일을 빨리 한다고 여긴다. 그는 곧 내가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고 한다. 반대로 진지하고 세밀하게 하면 그는 또 내가 효율이 떨어지고 하는 방법이 옳지 않다고 말한다. 어떻게 해도 다 안되는 것 같다. 나중에 나는 그가 한 말이 다 옳음을 깨달았다.
내가 신속하게 할 때는 확실히 너무 많은 세부적인 것들을 무시했고 품질이 좋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때로는 설거지를 끝낸 접시에 여전히 진흙이 묻어 있다. 또한 내가 진지하게 한다고 여길 때는 확실히 효율을 무시했다. 비록 품질은 좋았지만 너무 오래 걸리고 시간을 낭비했다. 실제로 “머리를 써서 방법을 찾는” 것이 부족했다. 나중에 남편이 일하는 것을 보니 나와 비교해 확실히 품질도 높고 또 효율적임을 알게 되었다. 이것은 내가 배울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는 전에 나더러 다른 사람을 관찰하거나 배우지 않으며, 생각하고 요약하는 데 능숙하지 않다고 지적한 적이 있다. 지금 나는 이 방면에서 확실히 과거보다 훨씬 나아졌다.
‘모든 일은 서로 통한다는’ 이치
표면적으로 당신이 집안일을 얼마나 잘하는지는 어디에도 영향을 끼치지 않지만 수련의 문제는 더욱 중요하다. 그러나 나는 모든 일은 서로 통하는 것을 발견했는데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사람 중의 일이든, 수련 중의 일이든 막론하고 그 배후에는 같은 관념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집안의 사소한 일을 더 진지하고 세심하게 하면 법을 공부할 때 더 마음에 들어가는 것을 발견했다. 과거에 법을 읽는 것은 늘 형식적이었다. 아울러 내가 컴퓨터를 사용할 때 점점 더 보다 간단하고 효율적인 방식을 발견하게 되었다. 예전에는 ‘마음을 쓰지 않는’ 습관 때문에 비교적 멍청한 방법을 사용했는데 다년간 변하지 않았다.
“채소를 씻었어도 여전히 진흙이 묻어 있는” 것은 사실 작은 일이 아니다. 이 배후에 있는 대충하는 습관을 제거하지 않으면 그것은 수련의 각종 방면에서 체현될 것이다. 사실 스스로 ‘작은 일’이니 대충 해도 된다고 여기는 베후는 여전히 큰 공을 세우려 하고 야심이 큰 것 등 당 문화에서 유래한 사람 마음이 있다. 이런 것들이 모두 수련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화를 내는 것이 지향하는 관념
남편은 성격이 좀 좋지 않아서 나는 전에 다년간 이것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다. 나는 남편에 대해 매우 좋은 태도를 갖고 있다고 느꼈지만, 그가 나를 대하는 태도는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었으며 나를 존중하지 않아 불공평하고 억울함을 느꼈다. 나중에 나는 ‘태도가 좋은지 나쁜지’만 겨냥하는 이렇게 좁은 관념으로 문제를 생각할 수 없음을 발견했다. 사유를 확장해야 하고 또 더 깊이 들어가야 한다.
예를 들어, 얼마 전 남편은 내가 한 가지 생각을 고집한다고 크게 화를 내며 소리를 질렀다. 과거에 그런 일이 있었다면 나는 분명히 참지 못하고 나는 아무 잘못도 없다고 느꼈을 것이다. 단지 서로 의견이 다를 뿐인데 어떻게 그렇게 무례할 수 있는가? 나는 내 생각을 말할 권리가 있다고 여겼다. 예전에는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고 아울러 며칠 동안 평온을 찾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번 일이 갑자기 발생했을 때 나는 비록 불평하기는 했지만, 다행히 크게 동요되지는 않았다. 한동안 안정을 취하다가 금세 진정되었고 이후 아주 빨리 자신의 문제를 깨닫게 되었다.
나는 나중에야 남편이 그렇게 크게 화를 낸 이유는 사실 이 일에 반영된 나의 한 가지 완고한 고집 때문이라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이 관념은 평소 드러나지만 자신은 알지 못했고 남이 크게 말하지 않으면 나로서는 아예 발견할 수 없는 문제였다. 그 관념은 바로 자신이 좀 번거롭게 여기는 일에 대해 미리 걱정하는 것이다. 배후는 바로 부면(負面) 사유인데 소위 ‘번거로운 일’에 대해 정면적이고 자신감이 있는 게 아니라 부면적으로 근심하며 줄곧 걱정한다.
법에서 내가 이해한 것은 좋고 나쁨은 일념의 차이에 달려 있으니 나타난 일에 대해 정확한 사유는 당연히 좋은 방향으로 생각해야지 부면적인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 나의 이런 부정확한 관념은 사실 수련의 각도에서 보면 큰 문제다.
이 일이 있은 후 나는 귀찮고 부담스러운 일이 생겼을 때, “아, 귀찮아, 분명히 안 될 거야”가 아니라 “괜찮아, 반드시 할 수 있어”라고 생각을 바꾸려 노력했다. 물론 또 아주 작은 일부터 시작했다. 확실히 과거에 걱정했던 모든 것들이 최후에 문제가 없다는 것이 확인되었고 신심(信心)이 커졌다. 나는 관념이 이미 바뀌기 시작했음을 느끼는데 일에 부딪혀 “긴장하고 근심”하는 대신 “담담하고 여유”가 생겼다. 물론 아직 실천 속에서 끊임없이 정확한 사유 방식으로 다질 필요가 있다.
그래서 나는 그날 소리를 질러준 남편에게 특히 감사하다. 그렇지 않으면 이 관념을 바꿀 수 없었을 것이다. 생각해 보라, 한 번 소리를 질러 하나의 관념을 바꿀 수 있다면 그것은 대단히 수지맞는 일이고 구하려 해도 얻을 수 없는 것이다.
남편은 나의 여러 가지 문제를 자주 이야기하지만, 동시에 그는 남이 자신을 이야기하는 것을 싫어한다. 즉 그는 나를 말할 수 있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그에 대해 말할 수 없다. 예전에 나는 또 이것이 불공평하다고 느꼈다. 지금 나는 사실 그가 나를 말했기 때문에 많은 문제들을 인식하고 또 제고할 수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이는 그야말로 나 자신의 확실한 수확이다. 그가 남이 말하는 것을 들으려 하지 않음은 그의 선택이다. 사람마다 선택이 다 같을 수는 없고 내가 다른 사람에게 강요할 수는 없다. 사실 누가 남이 지적하는 문제를 잘 들을 수 있다면 그 자신이 손해를 보는 게 아니라 이득을 본 것이다.
동시에 나는 또 남편이 보여준 일부 문제들 역시 내 문제를 보여주는 거울임을 발견했다. 가령 그는 남이 자신을 말하는 것을 싫어하는데 나 역시 뼛속까지 이런 문제가 있었다. 비록 많이 고치긴 했지만 아직도 여전히 가뿐한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많은 일을 겪은 후 나는 지금 남편의 잔소리에 대해 기본적으로 “즐겨 듣는” 태도를 갖게 되었다.
간단하고 실천하기 쉽다
사부님께서는 《파룬궁》에서 “대도는 지극히 간단하고 지극히 쉽다”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또 “지극히 간단하고 지극히 쉬운” 이치를 직접 경험했다. 일부 선입 관념은 완고해 보이는데 어디서부터 변경해야 할지 알 수 없다. 사실, 바꾸는 것은 그리 복잡하지 않고 그렇게 어렵지 않다. 바로 가족이 일깨워 주는 작은 일에서 고치거나 아니면 가족의 시범을 유심히 관찰해 점차 배울 수 있다. 바로 이렇게 간단하다.
내 생각에 사실 가족뿐만 아니라 친구, 동료, 동수들도 모두 나를 돕고 있고 각기 다른 시범과 거울 점화 등의 작용을 해준다. 나는 또 사부님께서는 온갖 방법을 써서 우리가 수련에 성공하도록 도와주시는데 때문에 각종 고심한 배치가 있고 아울러 사부님 법신께서는 정말로 늘 신변에서 우리를 지켜주고 계심을 깨달았다. 다만 사람을 두렵게 만드는 복잡하고 어려운 방식으로 도우주시는 게 아니라 간단하면서도 실천하기 쉬운 방식으로 우리를 도와주신다. 단지 사람들이 흔히 “쉽게 얻으면 쉽게 잃기”에 쉽게 얻은 것을 무시하고 소중함을 모를 뿐이다.
최근에 나는 아주 작은 일에서부터 관념을 바꾸는 ‘달콤함’을 맛보았다. 사유와 행동 방식을 조금 바로잡는 것은 간단하고 실천하기 쉽지만 관념을 전변하는 작용은 또 아주 분명하고 신속하다. 때로는 심지어 하루에 하나씩 할 때도 있다. 마치 영아가 무엇을 배울 때 진보하는 것과 같다. 내가 깨달은 것은 간단하고 쉽게 할 수 있는 방식이 사람에게 신심을 주고 한 걸음씩 더 잘하게 할 수 있다. 하지만 복잡하고 어려운 방식은 과거에 늘 나를 두렵게 만들었고 부면(負面)적이며 신심이 없었다.
최근의 작은 깨달음이니 부당한 부분이 있으면 시정해 주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96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