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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욕(物慾)’을 말하다

대법제자

【정견망】

외지(外地)에 나가야 해서 집에서 물건을 챙기는데, 물건을 하나하나 버리는 게 안타깝지만 그렇다고 너무 많은 것을 가져갈 수는 없었다. 그러자 마음속에 번뇌가 용솟음치듯이 밀려왔다. 한동안 외지에서 머물러야 하니 집에 있는 물건들은 깨끗이 정리해야 했다. 때문에 늘 어떻게 집안의 물건들을 처리해야 할지, 어느 것은 가져가고 어느 것은 버려야 할지, 또 어느 것을 빼먹지 말아야 할지, 늘 고민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연공도 제때 하지 못하고 법을 공부할 시간도 없었으며 수련상태도 좋지 않았다. 늘 불안하고 화가 났다. 이것이 비정상적인 상태임을 알았지만 나도 도저히 제거할 수 없었다. 마치 자신의 정(正)의 요소가 부면(負面)적인 물질을 제약할 수 없는 것 같았고, 뭔가 끌려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어느 날 ‘물욕(物慾)’이란 두 글자가 떠올랐고, 물질에 짓눌려 있는 장면이 떠올랐다. 이는 사부님이 점화가 아닌가! 내가 이런 나쁜 상태에 있는 이유는 바로 인간 세상의 물욕에 얽매여 있기 때문임을 알려주신 것이다. 이것을 깨닫고 나니 마음이 훨씬 밝아졌고 짜증이 줄어들었으며 또 그리 화도 나지 않았다. 물욕이 포괄하는 범위는 대단히 넓은데 수련에 나태할 때면 곧 사람 마음이 상응해서 많이 일어나고, 사람 마음이 사람 마음의 가상을 파생할 수 있다. 바로 눈앞에 물건에 이끌리는 장면처럼 사실 바로 자신의 공간장이 깨끗하지 않고 잡질(雜質)이 있는 것이다. 법(法)에 대조해 자신을 찾을 때면 곧 이런 사람 마음을 닦아 버리는 것으로 자기 공간장의 잡질을 깨끗이 제거하는 것이다.

이런 비정상적인 현상이 일어난 원인을 되돌아보니 탐욕 때문에 생긴 일이다. 물건을 많이 모으는 데는 원인이 있는 것으로, 꼭 물건을 사야 할 필요한 게 아니라 싼 것을 추구하는 것으로 이익심 때문이다. 싼 것을 보면 더 많이 사야 하고 때로는 심지어 지나치게 많은 물건을 사는데 물건이 많이 쌓이면 부담이 되는 경우도 있다. 이것이 그 하나다.

또한 물건을 사는 것은 마치 일종의 방출과 같아서 수련이 태만해진 것으로 사악이 박해하는 환경 속에서 마음은 늘 일종 억눌린 상태에 있다. 속인들처럼 안전 문제를 고려하지 않고 무엇을 하고 싶다고 해서 마음대로 할 수는 없다. 가끔 기분이 풀리면 오랫동안 형성된 박해의 그림자가 다시 나타나서 이렇게 느슨해지면 사악이 틈을 탈까 두렵다. 때문에 마음의 문을 잠그고 억눌러 마음속에 두려움을 단단히 가둔다. 이렇게 뒤틀린 마음은 내가 정상적으로 사유할 수 없게 만든다. 고도로 긴장된 상태에서 이지를 상실한 구매욕은 바로 이런 왜곡된 마음이 조성한 것이다.

이것은 눈에 보이는 물질 층면에서 드러난 것이지만 정신적인 측면 역시 마찬가지다. 집에서도 강렬한 소유욕이 있는데, 가족을 통제하고 싶어 하고 가족이 내가 생각한 대로 되어야 편안하고 만족감을 느낀다. 그러나 개체 생명에 대해 말하자면 상대방의 말과 행동이 내 생각과 완전히 일치하기란 불가능하며, 가족이 내 생각과 일치하지 않을 때면 마음이 다시 불안해진다. 뿐만아니라 마음에 원망이 생기는데 마치 내가 정상적으로 집을 위해 한 일이 가족이 내게 양보하게 만드는 구실이 되고, 또 안으로 자신을 찾지 않고 자신이 어떻게 억울하고 또 힘들었다고 여기는데 사람이 완전히 물욕에 끌려가면 후천적인 관념에 통제되어 정념(正念)이 없다.

이때 나는 내 진념(真念)이 사람의 이 주체에서 이탈된 것을 분명히 느끼는데, 반영되는 상태는 내가 계속해서 미끄럼틀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갔고, 사람의 것이 갈수록 많아지고 수련의 개념이 갈수록 약해지는 것이다. 마음이 조급해져서 빨리 이런 상태를 바꾸고 싶어서 책을 들고 법 공부를 시작하자 점차 정념이 생겨났고 진아(真我)가 주(主)가 되기 시작했다. 명백한 일면 역시 법리를 깨달을 수 있었고 수련 상태도 점차 좋아졌다.

내 진념(真念)이 되돌아 나왔을 때, 자비하신 사부님께서 제자를 가지해 ‘우리는 원래 신이었다’라는 영화를 볼 행운을 주셨다. 영화 속 장면은 내게 큰 깨달음과 감동을 주었는데 인간 세상에서 광명세계 법왕(法王)의 일사일념은 다른 공간에서 그의 천체세계 중생에 대응하는데, 하나의 바른 생각은 다른 공간에서 그의 중생을 구도할 수 있으며, 하나의 잘못된 염두는 천체 중생을 해체시킨다. 영화는 아주 똑똑하고 명백하게 우리 앞에 이런 대응하는 관계를 펼쳐보이는데 매 사람마다 모두 선택해야 한다.

되돌아보니 자신의 탐욕이 이렇게 크고 사람 마음이 이렇게 많은데 어찌 정념(正念)이 나올 수 있겠는가? 정념이 없으면 사념(邪念)이 당신 대뇌를 차지하는데 대응하는 다른 공간의 천체 중생은 곧 해체되고 소각된다. 자신이 정진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얼마나 많은 중생이 구도 받을 기회를 잃었는가? 이는 개인 수련시기가 아니라 법에 없는 상태는 아주 많은 사람이 법에 의해 해체되고 위사(爲私)와 위타(爲他)는 두 가지 부동한 생명이다. 대법제자는 완전히 위타한 생명이 되어야 하며 무슨 개인관념, 탐욕이든 모두 위타한 무사(無私)속에 융화되어야 하며 하고자 함이 없고 구함이 없는 것[無慾無求]만이 우리가 도달해야 할 상태다.

작은 수련 체험이니 부당한 곳이 있다면 부디 시정해 주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98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