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북 대법제자
【정견망】
나는 이 노동수를 거의 본 적이 없는데 올해 함께 법을 공부할 기회가 있었다. 대화 중에 우리는 그녀가 올해 여든여섯 살임을 알게 되었는데, 얼굴이 불그레하고 온 얼굴에 빛이 나며, 걸음걸이가 가볍고, 자전거도 가뿐하게 탄다. 그녀가 법을 읽을 때면 목소리가 크고 낭랑하게 울렸고 거의 한 글자도 틀리지 않고 읽었다.
그녀는 말했다.
“법(法)을 읽을 때는 똑똑하고 발음도 정확해야 합니다. 법이니까요!”
대화 중에 나는 그녀에게 네 아들과 며느리, 손자, 손녀, 증손들이 있는데 가족이 모두 대법이 좋다는 것을 인식하고 모두 대법을 지지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별생각 없이 내게 몇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나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그녀가 남편과 결혼할 때 그들은 고향에 세 칸짜리 방이 하나 있었다(그들은 나중에 일하기 위해 도시로 이사했고, 둘 다 이미 수년 전에 은퇴했다). 사람이 살지 않았기 때문에 집이 무너지고 터만 남았다. 지금 누가 이 터를 사려고 5만 위안[우리 돈으로 약 935만원]을 주려고 했다.
그러자 노동수가 남편에게 말했다.
“우리에게 이 5만 위안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돈이며 음식이 부족하지 않으니 이 5만 위안을 동생들에게 줍시다.(남편에게는 6명의 동생이 있다) 그들이 원하는 대로 나눠 가지게 하고 우리는 아무것도 갖지 맙시다.”
당시 이 말을 듣고 생각해 보았다.
‘나라면 이렇게 할 수 있을까? 이 5만 위안을 담담하게 포기할 수 있을까?’
나는 문득 사부님 말씀이 생각났다.
“버릴 수 있음은 수련의 승화이다.”(《정진요지》〈무루〉)
어느 날, 노동수가 자전거를 타고 길을 가다 전동삼륜차를 탄 청년과 부딪혔다. 차량의 속도가 너무 빨라 충돌이 아주 심했다. 노동수는 바닥에 쓰러졌고 젊은이는 놀라서 겁에 질려 얼굴색이 변했다. 검사를 해봐야 한다며 기어코 동수를 병원에 데려가려 했다. 하지만 노동수는 서서히 땅에서 일어나더니 침착하게 말했다.
“젊은이, 두려워하지 말아요. 자네를 귀찮게 하지 않겠네. 나는 파룬궁을 연마하고 사부님의 보호가 있어서 아무 일도 없을 걸세.“
그런 다음 젊은이에게 진상을 알렸고 또 삼퇴를 시켰다. 노동수는 젊은이를 보내고 나서야 자전거 핸들이 구부러진 것을 발견했다.
집에 돌아온 후 보니 왼쪽 팔과 다리가 모두 멍이 들어 옷을 벗거나 팔을 들 수 없었다. 남편이 모르게 하려고 밤에 옷을 입은 채 잠을 잤으나 결국은 남편에게 발각되었다. 가족들은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아야 한다고 했지만, 노동수는 평온하게 말했다.
“내겐 사부님이 계시니 걱정하지 말아요.”
이렇게 날마다 해야 할 일을 다 했고, 연공중에 팔을 들 수 없을 때는 다른 손으로 끌어올렸다. 세 가지 일도 전혀 지체하지 않았다. 20여 일이 지나자 그녀의 몸은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왔고, 가족들은 다시 한번 대법의 신기를 목격했다.
내가 그녀에게 “아들 며느리들이 많은데 집안에 무슨 모순은 없나요?”라고 묻자 그녀가 대답햇다. “왜 없겠어요? 아들 며느리는 늘 다툼이 있죠.”
한번은 큰아들이 아내와 이혼하려고 고집을 부렸는데, 아버지가 화를 내며 때리고 야단쳤지만 아무리 말해도 듣지 않았다. 결국 노동수가 말했다.
“당신의 이런 방법은 통하지 않으니 당신은 이 일을 상관하지 마세요.”
그리고 전통문화를 사용해 아들에게 장문의 편지를 썼다. 고대로부터 지금 사회에 이르기까지, 또 큰며느리가 얼마나 좋은 사람이고 또 얼마나 힘들었는지 등등. 장남이 편지를 보고는 이혼할 생각을 완전히 내려놓았다.
둘째 아들 부부도 이혼한다고 했는데, 역시 노동수의 설득으로 잘 넘어갔다. 두 며느리는 파산 직전의 가정을 시어머니가 구해 주었기 때문에 노동수를 더욱 존경하고 대법을 더욱 지지하게 되었다.
노동수가 오랫동안 줄곧 셋째 아들과 함께 살았기 때문에 큰 며느리가 이를 보고 안타까워하여 노부부가 편안히 자신의 생활을 살 수 있도록 사적으로 48만 위안[우리 돈으로 약 9천만 원]을 들여 작은 집을 하나 사주었다. 나는 이 말을 듣고 정말 감동 받았다. 요즘 세상에 어느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이렇게까지 할 수 있겠는가? 큰 며느리가 진심으로 시어머니를 위하고 대법을 인정함을 알 수 있다.
노동수는 대법 실증을 자신의 일상생활에 접목 시켰다. 한번은 그녀는 내가 입고 있는 옷이 꽤 좋아 보이는 것을 보고는 어디서 샀는지 물었다. 자기 시누이가 나와 체형이 비슷하니 하나 사주고 싶다는 것이다. 노동수는 도처에서 시누이를 생각했다. 고향에 갈 때면 새 옷을 가져다주었다. 그러니 시댁 식구들은 노동수가 활기차고 건강한 것을 보고 모두 파룬궁은 좋고 우리에게 복음을 가져다준다고 말한다. 온 가족이 사부님과 대법의 은혜에 감사드린다.
지금 노동수는 친척과 친구들의 집을 다니니 모두 다 대법이 좋다고 말하고 대법을 인정한다. 설 기간이면 노동수는 네 아들 며느리 및 손주들이 모두 모여 새해를 축하한다. 이웃이나 친척, 친구들이 모두 부러워한다.
“파룬궁을 수련하니 이렇게 큰 가족이 이렇게 화목하고 좋구나!”
노동수는 “대법제자의 가족이 어찌 대법이 좋다는 것을 모를 수 있어요?”라고 했다. 그녀의 가족 중에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직계 및 친척을 포함해 수십 명의 식구들이 있는데 모두 대법이 좋다는 것을 알고 삼퇴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노동수가 진정으로 수련하고 착실히 수련해 가족과 친척들 중에서 잘했고 대법을 실증했기 때문이다. 가족들이 모두 진정으로 대법의 아름다움을 목격했고 내심에서 우러나와 대법을 인정한 셈이다. 나는 이 부분에서 나와의 격차를 보았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988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