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 대법제자 상화(祥和)
【정견망】
내 기억에 1999년 7월 20일, 우리는 평소대로 연공장에 아침 연공을 하러 갔다. 막 정공(靜功)을 끝내고 동공(動功)을 연마하려 할 때 보도소장이 와서 말했다.
“그만 해요, 경찰이 사람을 잡아가기 시작했어요. 보도원 몇 명이 이미 잡혔어요. 우리는 천안문에 가서 대법을 실증해야 합니다.“
소장의 굳은 표정을 보면서 사태의 심각성을 느꼈고, 일종의 사명감이 충만했다.
남편과 나는 서둘러 집에 가서 돈과 가방을 메고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북경에 가는 길에 세 동수를 만났다. 우리는 지하도를 빠르게 통과하다 경찰에 가로막혔다.
“당신들은 파룬궁을 연마하는가?”
그중 한 동수가 말했다.
“하면 어떻고 안 하면 어때서요?”
그렇게 우리 4명(동수 중 한 명은 저지당하지 않음)은 초등학교 운동장으로 보내졌다. 우리 네 사람 중 남편만 남자였다. 그들은 남편을 태양 아래서 꼼짝 못하게 했다. 우리 여자 셋은 그늘에서 비교적 서늘하게 지냈다. 점심 때가 되어 경찰이 도시락을 먹고 있는데, 우리가 급하게 오느라 먹을 것을 가지고 오지 않았고 사부님께서 발표한 경문 소책자 한 권만 가지고 왔다.
경찰은 식사를 마치고 우리를 버스 앞으로 안내했고 당시 다른 곳에서 데려온 동수들도 많았다. 차에 오르기 전 경찰은 야만적으로 책가방을 수색했고 어떤 동수의 대법 서적이 발견되자 경찰이 빼앗았다. 나는 그때 가방을 뒤로 단단히 움켜쥐고 있어서 발견되지 않았다. 동수들이 버스에 올라 타자 군인이 문을 지키고 서서는 남쪽으로 향했다. 차 안에서 한 동수가 말했다. “우리는 수련인으로 공짜로 차를 탈 수 없으니, 한 사람당 2위안의 차비를 냅시다.” 우리는 돈을 동수에게 주었고, 동수가 돈을 모아 기사에게 주었다.
차는 풍대(豐台 펑타이) 체육관으로 갔다. 체육관에는 이미 많은 대법제자들이 있었다. 나중에 많은 남녀노소 동수들이 와서 체육관을 꽉 채웠다. 아직도 많은 군인들이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모두 바닥에 앉아 사부님의 〈논어〉를 외우기 시작했고, 《홍음》 소리가 여기저기서 일어나 끊임없이 울렸다. 경기장 전체가 강한 바른 에너지로 뒤덮였다.
나는 체육관 매점에 가서 약간의 간식을 샀는데 판매원이 “이 사람들은 모두 파룬궁을 연마하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을 잡았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 날이 어두워지자 곁에 있던 한 아이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빨리 보세요, 큰 파룬(法輪)이, 빨간색에서 노랗게 변했고, 또 변해요.”
나도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봤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장면을 보았고 나는 마음속으로 줄곧 진감(震撼) 받았다.
경찰은 또 사람을 가두고 끊임없이 동수들을 연행하기 시작했다. 우리도 운동장에서 끌려나와 자동차에 태워졌고 자동차는 한참을 달렸는데 문은 여전히 군인이 지키고 있었다. 우리는 해전구(海澱區 하이뎬구) 영풍향(永豐鄉 융펑향)의 한 강당으로 끌려가 이름을 등록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한 줄 한 줄로 무대 위로 끌려가 등록했다. 신분, 이름, 나이, 직장, 주소, 정치적 면모, 등록을 마친 후 우리를 차에 태우고, 또 한참을 달렸고, 차에서 내리니 석경산(石景山)이었다. 이때는 이미 늦은 밤이었고, 각 구와 현별로 사람을 보내기 시작했다.
마지막에 7~8명만 남게 되자 경찰은 “차가 없으니 당신들은 알아서 가라”고 했다. 나는 남편과 함께 계속 있었고, 함께 있던 그 두 동수도 끌려갔다. 우리 남은 사람들 중 북경 시내에 사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중 한 동수가 차를 구해서 차비를 냈다. 이렇게 우리는 속속 집에 도착했다.
차 안에서 그 북경 동수는 경찰이 그녀의 머리카락 한 올을 잡았다고 말했다. 차는 아직도 천안문을 지나가고 있었고, 나와 남편은 덕승문에서 마지막으로 내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기사에게 고맙다고 했는데 그때는 이미 새벽 4시가 넘었다. 우리는 조금 피곤함을 느꼈다.
이때 한 아주머니를 만났는데 이렇게 말했다.
“우리 다시 천안문에 갑시다.”
말을 들어보니 상방(上訪)하러 가는 대법제자였다. 나는 남편과 차를 타고 집에 돌아왔다. 저녁에 몇 명의 동수가 와서 말했다.
“당신들이 어젯밤에 돌아오지 않아서 오늘 아침에 당신 아들이 녹음기를 들고 연공장에 갔어요.”
오후에 아들이 돌아와서 아침에 연공장에 사람이 없다고 했다. 그는 곧 북경으로 갔다.
7월 22일 이후에 우리는 집에서 법 공부 연공을 했다. 경찰이 계속 집으로 찾아오고, 주민위원회 사람들이 우리를 감시했으며, 경찰이 밤에 갑자기 집에 와서 우리가 천안문에 갈까 봐 두려워했다. 하지만 내가 대법을 견정하게 수련하는 것은 잘못이 없다. 내가 걷는 것은 광명한 길이고 파룬따파(法輪大法)는 정법(正法)이다.
이미 20여 년이 흘렀다. 지금까지 걸어오는 동안 사부님의 호탕한 불은(佛恩)을 입었고, 사부님께서는 줄곧 나를 보호해 주셨다. 정법은 최후에 이르렀고 사부님의 자비하신 고도(苦度)에 감사드린다.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
그해 7.20에 함께 천안문에 간 동수들의 근황을 말해보겠다.
당시 가로막히지 않은 H 오빠는 나중에 박해당해 두 눈을 잃었지만 여전히 건재하다.
G 언니는 박해받는 중에 세상을 떠났다.
H 언니는 여러 차례 노동교양을 당하는 등 박해를 받았지만 사부님의 가호하에 지나왔다. 나도 사부님의 자비로운 구도를 받아 오늘까지 걸어왔다.
여러분 우리 명심합시다. 사명을 완수하며 심성을 제고해, 정법 수련 중에 신우주(新宇宙)의 정각(正覺)이 됩시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16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