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대법제자
【정견망】
사부님께서는 《미국 플로리다 법회 설법》에서 말씀하셨다.
“현재 매 대법제자의 일거일동, 일언일행, 심지어 당신이 사색하는 문제마저 모두 간단한 것이 아니다. 장래에 당신들은 모두 매우 세밀하게 배치된 것임을 볼 것인데, 내가 배치한 것이 아니며, 이는 이런 구세력(舊勢力)이 배치한 것이다. 사실 그것들도 이 일체를 감히 훼멸시키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것들이 이 일체를 훼멸시킨다면 그것들도 끝장이고, 정법의 일이 정말로 훼멸되었다면 일체 역시 모조리 끝장이다. 그것들은 다만 그것들이 하고자 하는 데 따라 하려고 하는 것이지만, 그것은 안 되며 요구에 도달하지 못한다.”
내가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니 항목에서 일할 때 나의 희망은 자신의 일에서 업적을 남기는 것으로 이렇게 하면 사람을 구하는 역할을 함과 동시에 자신의 ‘성취감’과 ‘가치감’을 충족시킬 수 있다.
하지만 ‘성취감’이란 무엇인가? 사실 바로 개인의 명예와 이익이다. 좋은 성과가 있으면 다른 사람의 인정과 칭찬을 받을 뿐만 아니라 또 이익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자신의 명리정(名利情)에 대한 “요구”를 충족시키는 것이 아닌가? 일거양득(一擧兩得)이 아닌가? 대법제자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사람 마음을 만족 시켰으니 겉으로 보면 아주 좋은 것 같다. 심지어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지지해서 더 큰 이익에 도달한다. 당연히 표면적으로 보면 무슨 원칙을 어긴 일을 한 게 아니라고 여기지만 실질적으로 곳곳에서 모두 사심(私心)이 주도한 것이다. 사심의 작용하에서 근본적으로 남을 해치는지, 남의 감수는 어떠한지 고려하지 않았음에도 여전히 자신의 행동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여긴다.
이 단락 법과 대조해 보면 이런 생각이 바로 구세력의 “그것들이 하고자 하는 데 따라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사부님께서는 “그것은 안 되며 요구에 도달하지 못한다.”(《미국 플로리다 법회 설법》)고 알려주셨다.
나는 “요구에 도달하지 못하는” 이유는 대법의 요구에 따라 자신을 수련하지 않았고, 일하는 과정에서 명리정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지 못해 갈수록 더 무사(無私)하고 위타(爲他)한 생명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신을 닦지 않으면 일을 해도 속인이 일하는 것과 다르지 않고, 설령 대법 일을 해도 그렇게 많은 사심과 잡념을 지니고 있어 신(神)의 인정을 받지 못한다.
나의 이런 생각들 자체가 구세력이 안배한 것으로 아쉽게도 나는 법을 잘 배우지 못했고, 법을 이해하지 못했으며, 진심으로 천리(天理)를 경외(敬畏 공경하고 두려워함)하지 못했기 때문에 법리(法理)로 자신의 생각을 바로잡지 못했고 그렇게 오랫동안 구세력의 안배를 따라서 걸었다. 표면적으로는 한 일이 옳게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전부 요구에 도달하지 못했으며 실질적으로 본질은 변하지 않고 껍데기만 바꾼 것이다.
지금 나는 진정으로 천리를 경외하게 되었고 경건하게 법을 공부하고 나서야, 곳곳에서 전전긍긍하게 되는데 자신이 전에 어떤 죄를 지었는지 알기 때문이다. 그것은 정말로 천법(天法)을 어긴 것이다! 항목에서 남들과 다투고 싸웠으며 서로 불복했고 아귀다툼을 했으며 또 업의 빚을 많이 쌓고 하늘의 공(功)을 탐하면서 오만방자했다. 이런 것들은 일일이 다 기록되어 있으며 지나가면 끝나는 그런 것이 아니다. 아울러 대단히 엄숙한 것으로 매 하나의 위사(爲私)하고 불선(不善)한 언행과 사유는 모두 자신의 손실이며 아주 많은 것들이 이후 각종 마난을 초래할 것이다.
다행히 아직 결속하지 않았고 나도 자신의 바르지 못함을 참회하고 바로잡을 기회가 있다. 나는 또 시시각각 도처에서 법으로 가늠하지 않으면 한 걸음도 전진하기 어려우며 아예 옳고 그름을 모름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사유(思惟)의 기점이 사람 속에 있고 사(私)에 있기에 스스로 생각해서 문제가 없다고 여긴 일들이 아마 큰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깨달은 것은 구세력의 안배를 타파함은 우리의 일사일념(一思一念) 일언일행(一言一行) 속에서 착실히 해야 하며 관건은 바로 법 공부를 잘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구세력의 안배를 타파할 능력이 없고 다만 법의 위력이 있어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부당한 곳이 있다면 자비로 시정해 주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235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