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대법제자
【정견망】
자아(自我), 나는 내 삶의 곳곳에서 그것의 흔적이 있음을 발견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물을 설명할 때 “무엇은 무엇이다”라고 이런 식으로 정의내리길 좋아하고, 또 다른 사람들과 교류할 때면 자신의 관점을 강요하길 좋아하는데 내 관점에 동의하지 않으면 뭔가 분명히 틀렸다고 여겼다. 또 과시하길 좋아하고 자신이 아주 좋다고 여기는 등등. 이 모든 것에는 모두 “내가 가장 좋고, 나는 아주 대단하다”라고 여기는 “자아” 관념이 숨어있다.
수련에서 이 ‘자아’는 대단히 위험하다. 우리가 느끼지 못할 때, 그것은 우리 눈앞에서 조용히 연변(演變)하고 자랄 수 있다. 과시의 다음 단계는 아마 찬사를 듣길 좋아하고 다른 사람의 비판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고, 다음 단계에서 자아는 아마 남의 성과에는 눈꼽만치도 관심이 없거나 심지어 심하게 불평하고 질투하는 것으로 변신한다. 속인은 눈뜬 장님이라 대법제자의 가치를 모른다고 생각한다. 실제로는 대법을 방패막이로 삼아 ‘자아’라는 이런 집착을 닦는 것을 스스로 가로막는 것이다. 더 나아가면 몹시 두려워지는데 그것이 발광할 수 있다. 즉 자아가 대법을 위해 무언가를 감당했다고 여기며 대법에 대해 보답을 바란다. 결과는 어떻게 될까? 아마 마(魔)에게 이용당해 마도(魔道)로 들어가서 자신을 훼멸할 것이다.
지금 정신을 차리고 생각해 보니 박해중에 사오(邪悟)로 나간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두 이와 같음을 깨달았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전에 노교소에 납치되었을 때 그들과 가까이 해서 위험에 빠진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사부님께서 여러 차례 꿈속 점화로 제때 깨닫게 해주셨기에 미혹의 길에서 되돌아와 대법정도(大法正道)로 회귀할 수 있었다.
일찍이 존재했던 그런 잘못된 사상 관념 중 일부는 대법 속에서 바로잡혔고 일부는 해체되었다. 그러므로 지금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사부님께서 나를 점화하신 꿈속의 장면들뿐이다.
한번은 땅을 파서 꽃을 심는 꿈을 꾸었는데 땅을 파다가 땅속에 숨어있는 두꺼비 한 마리를 발견했다. 깨어났을 때 나는 생각했다.
‘두꺼비는 대법을 박해한 강(江) 마두(魔頭)와 한패가 아닌가? 내가 그것의 구덩이로 들어가면 대법의 대립 면에 서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 나는 장차 천고(千古)의 죄인이 될 것이다!’
두 번째 꿈은 강가에서 자라는 붉은 꽃을 꺾고 싶었는데, 강가를 밟을 때 아직 힘을 쓰기도 전에 땅이 꺼지기 시작했다. 급히 발을 빼서 보니 강가의 흙이 돌출되어 튀어나와 있었다. 꿈에서 깨자마자 나는 “어떤 사람은 이미 한쪽 발을 허공에 디디고 있으며”(《2003년 정월대보름 설법》)라고 하신 사부님 말씀이 떠올라 놀라서 식은땀을 흘렸고 서둘러 안으로 찾아 자신의 잘못된 생각과 행동을 끝냈다.
파룬따파 수련에서, 자신이 법(法)에서 무엇을 증오(證悟)하고, 자신이 법을 실증하면서 어떤 성과를 거뒀든 그것은 모두 사부님께서 주신 무상(無上)의 은전(恩典)이자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은사(恩賜 은혜로 주신 것)하신 것이다. 사악의 박해 속에서 자신이 얼마나 많은 대가를 치렀고 얼마나 많이 감당했다고 여기든 그것은 모두 사부님께서 우리를 위해 아무런 대가 없이 감당하신 후 우리가 심성을 제고할 수 있도록 남기신 고만큼에 불과할 뿐이다. 구체적으로는 천분의 일이나 만분의 일에 불과하거나 어쩌면 무수한 만 분의 일에 불과할 것이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지 않으시면 누구도 똑똑히 말할 수 없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나는 일체 우주 지혜를 구성하는 원천이지만 나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각지 설법 1》〈베이징 국제교류회 설법〉)
사부님에 대해, 대법에 대해, 우리 생명 중 일체의 일체는 모두 마땅히 영원히 감사하는 마음을 품고 대법의 구도에 감사드리고 사존의 불은호탕(佛恩浩蕩)에 감사드려야 한다.
올해 중추가절(仲秋佳節)을 맞아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존께서 즐거운 중추절 되시길! 허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264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