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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淨)과 정(靜)의 신기한 내함

대법제자

【정견망】

정[淨 간체는 净]과 정(靜 고요)은 발음은 동일하지만 그 함의는 비슷하면서도 또 다르다. 간체(簡體) 정(净)은 삼수(氵)에서 점이 하나 빠진 글자에 ‘쟁(爭)’이 합쳐진 글자로, 말하자면 다툼이 적고 쟁론이 적고 쟁투가 적어야 사람 마음이 청정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우리는 때로 본래 여기서는 심정(心情)이 아주 좋았고 심태(心態)가 아주 순정했지만 이때 어떤 일을 만나 마음이 불쾌해지는데 특히 다른 사람과 쟁집(爭執)하면 곧장 심정이 아주 나빠지는데 만약 쟁집이 쟁론(爭論 말다툼)으로 이어지고 쟁론이 더 심해지면 쟁투(爭鬪)가 되는데 그럼 곧 번거롭게 된다.

[역주: 쟁집(爭執)을 직역하면 ‘집착을 다툰다’는 뜻으로 쌍방이 서로 집착을 부리며 내려놓지 못하는 것이다. 쟁론은 서로 말로 다툰다는 뜻이고 쟁투는 서로 싸우는 지경까지 이른 것.]

원래 청정했던 마음이 ‘쟁(爭)’이란 한 글자 때문에 이렇게 망가진다. 그러므로 ‘정(净)’의 내함이 가리키는 의미는 바로 쟁집(爭執), 쟁론(爭論), 쟁투(爭鬥)가 적다는 것이다.

한편 정(靜)은 青+爭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글자가 가리키는 것은 젊은(靑) 사람들은 다투길(爭) 좋아해서 고요함에 들기 어렵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능력이 없고 인생 경험이 적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쟁집의 폭이 그리 크지 않고, 노인들은 인생의 기복을 많이 겪었기 때문에 역시 다른 사람들과 그리 쉽게 쟁집하지 않는다. 그러나 젊은이들은 혈기가 강성해서 쉽게 모순을 일으킬 수 있고 마음이 고요해지지 않는다. 젊은 사람이 고요해지기란 가장 어렵다.

젊은이는 사실 또 득의만만한 사람을 가리키는데, 사람이 득의만만할 때면 쉽게 들뜨고, 정신이 산만해져서 허튼 생각을 하기 쉽다. 그러니 마음이 평온해지기란 아주 어렵다.

[역주: 여기서 원 저자는 靑을 젊은이 또는 한창 봄바람 불 듯이 잘나가는 득의만만한 상태로 풀었다. 이는 저자 개인의 인식이다.]

사실 사람이 고요(靜)해지려면 우선 마음이 깨끗해(淨)져야 한다. 젊은이들이 고요해질 수 없는 이유는 또 마음이 깨끗하지 않기 때문인데 젊다보니 기운이 왕성해서 쉽게 다른 사람과 모순이 생기고 쟁집하거나 심지어 쟁투하는 현상이 생기기 때문이다. 만약 심정(心情)이 순정(純淨)하고 선량하면 다른 사람과 싸우지 않을 것이며 젊은 사람이라도 고요해질 수 있다.

수련인은 입정(入定)해야 하는데, 입정(入定)하기 전에 입정(入靜)해야 하고 입정하기 전에 마음이 깨끗해야 한다. 석가모니 불교에서 수행 요지는 ‘계정혜(戒定慧)’라는 세 글자다. 여기서 계(戒)의 목적이 바로 마음을 깨끗하게 만들어 마음이 고요해짐에 도달하려는 것이다. 이렇게 해야만 입정(入定)에 들어가 지혜가 생겨날 수 있다.

생각해 보면, 집착(執著)을 없애야만 다른 사람과 쟁집(爭執)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고, 마음이 깨끗해질 수 있으며, 마음이 고요해질 수 있다. 원래 중문(中文)에 담긴 함의는 이렇게 심오한 것이다.

물론 중문의 최종 목적은 여전히 세인을 이끌어 법을 얻게 하려는 것인데 바로 파룬따파다.

대법 사부님께서는 《광저우 설법 문답 풀이》에서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대법에 대한 인식이 제고됨에 따라 집착하는 것이 담담해질수록 정공을 연마할 때 점차 조용해질 수 있다. 지금 당신이 만일 모두 내려놓을 수 있다면 층차는 일찍이 올라갔을 것이며 또한 무척 높이 수련되었을 것이다.”

일체는 모두 정법을 위해 길을 다진 것이다. 이야말로 문화가 존재하는 진정한 의미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2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