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简体 | 正體 | English | Vietnamese

《전법륜》을 천 번 배우다

대만 대법제자

【정견망】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동수 여러분, 안녕하세요!

나는 대북(臺北 타이베이) 대법제자로 1996년 3월 법을 얻었다. 현재는 모 소프트웨어 회사에서 기술 부문 책임자로 일하고 있다. 자신이 걸어온 수련의 길과 인생의 길을 돌이켜보면서 나는 법을 얻은 기연(機緣)의 수승(殊勝)함과 난세(亂世)에 수련의 어려움 및 대법제자의 막중한 책임을 깊이 느꼈다. 오직 법을 공부하고 마음을 닦아야만 자신을 구하고 남을 구도해 대법제자가 마땅히 맡아야 할 역사적 사명을 완성할 수 있다.

1. 법 공부를 견지해 법에 녹아들다

1996년 막 법(法)을 얻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특히 사부님의 시사와 문언문(文言文 역주: 백화가 아닌 고문을 말하는데 사부님 경문 중 《정진요지》 등 일부 문장은 고문으로 쓰셨다) 경문을 특히 좋아해 곧 외우곤 했다. 내 기억에 처음으로 외운 경문은 보도원 집 벽에 붙어 있던 《정진요지》〈경지〉였다.

“악자(惡者)는 질투심의 소치로 자신을 위하고, 화를 내며, 불공평하다고 한다. 선자(善者)는 늘 慈悲心(츠뻬이씬)이 있어, 원망도 증오도 없이, 고생을 낙으로 삼는다. 각자(覺者)는 집착심이 없으며 세인들이 환각(幻)에 미혹됨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다.”

나중에 나는 또 《논어》를 외우기 시작했고 이어서 《전법륜》 제1강을 외웠다. 제1강을 아직 다 외우기도 전에 중간에 심성을 제고하지 못해 반년 넘는 기간 수련을 하는 둥 마는 둥 속인 상태에 처해 법 암기도 중단되었다. 그러다 1997년 11월 사부님께서 대만에 오셔서 설법하신 후에야 비로소 다시 대법 수련으로 돌아왔고, 얼마 후 북경 및 장춘 교류회에도 참가했다. 대만에 돌아온 후 나는 비로소 다시 대법 책을 구해 계속해서 법을 외우기 시작했다. 이렇게 반년에 걸쳐 《전법륜》을 한번 외웠다. 그 후 나는 계속해서 책을 외웠는데 대략 1년에 한 번 정도 외웠고 십수 년간 십여 번을 외웠다.

2015년에 직장 업무의 변화로 출근 시간이 상대적으로 유연해져서 나는 진지하게 집중적으로 법을 외우기 시작했고 마침내 1년에 1번 외우는 상태를 돌파했다. 한번 외우는 데 걸리는 시간이 끊임없이 단축되고 또 단축되었는데 몇 개월에서 몇 주, 최후에 6일에 한번 외울 수 있게 되었다. 그 이후 그것을 고정해서 6일마다 《전법륜》을 1번씩 외웠고 지금까지 500번 이상 외웠다. 법을 외우는 동시에 나는 또 통독을 유지했기 때문에 법을 외운 것과 통독을 합하면 나는 이미 《전법륜》을 천 번 이상 공부했다. 만약 대법을 닦지 않았더라면 책 한 권을 이렇게 여러 번 공부한다는 것은 나로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배우면 배울수록 더 내려놓을 수 없게 되었고, 배울수록 새로운 수확이 더 많아졌다.

수년간 지속적으로 법을 외우는 것이 처음에는 그리 쉽지 않았다. 특히 복잡한 속인 사회에서 수련하니 늘 상태가 좋지 않을 때가 있었다. 내가 채택한 방법은 뒤처진 진도를 나중에 스스로 보충하도록 요구했다. 진도가 뒤처질수록 보충할 것이 많아졌기 때문에 감히 너무 오래 미루지 못했고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자 습관이 되어 그다지 어렵지 않게 되었다. 매일 내가 정한 법 암기 진도를 달성하기 위해 나는 종종 운전하거나 산책하거나 집안일을 하는 등 여가 시간을 활용해 법을 암기하곤 한다. 무형 중에 자신이 법 속에 녹아들어 갔는데 이는 정말 큰 수확이었다.

사부님께서는 《정진요지》〈법 중에 용해되자〉에서 말씀하셨다.

“사람은 마치 하나의 용기(容器)와도 같아 무엇을 담으면 곧 무엇이다.”

《전법륜》에서는 또 이렇게 말씀하셨다.

“평소 속인이 문제를 생각할 때 내보내는 대뇌형태의 것은, 그것이 에너지가 없기 때문에 내보낸 지 얼마 되지 않아 곧 흩어져 버리나, 연공인(煉功人)의 에너지는 유지되는 시간이 더 길다.”

그럼 내가 대량으로 법을 외웠으니 다른 공간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황금 뇌가 형성되지 않았을까? 그것은 진정한 ‘황금 두뇌’다! 법 공부와 법 암기를 견지한 것은 내가 수련의 길을 잘 걷는 가장 근본적인 보장이었다.

사실 매일 법 공부를 견지한 것은 내가 매일 연공을 견지하면서 도출해 낸 경험을 총괄한 것이다. 2000년부터 나는 아주 큰 병업관(病業關)을 겪었는데 몸이 아주 마르고 신체도 허약해졌다. 한번은 퇴근하고 집에 가면서 신호등을 기다리며 잠시 쉬려고 핸들 위에 누웠는데 운전대를 돌릴 힘조차 없는 것 같았다. 이 하나의 관을 나는 여러 해 동안 겪었는데, 이 기간에 상태가 때로는 좋았다 나빴다 했다.

내 기억에 2006년 우리 회사 팀장님이 나더러 얼굴이 아주 시커멓다고 했다. 2007년에 직장을 바꾸면서 미국에 출장을 가니 미국 동료들도 내 얼굴이 아주 시커멓다고 말했다. 나는 속으로 이래선 안 된다고 생각했고 다시 연공을 잘하기로 했다. 이전에 병업관을 극복하기 위해 나는 2004년 한동안 날마다 두 시간 연공을 견지했고 만약 그날 연공을 다하지 못하면 다음 날 보충할 시간을 찾았다. 이것이 내게는 아주 어려웠다. 때로 너무 바빠서 연공할 시간이 아예 없으면, 다음날 4시간을 연공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또 출근도 하다보니 마치 하루 종일 연공만 하는 것 같아 몇 달 버티다 중단했다.

이에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하루에 두 시간 연공을 완수할 수 없으니 그럼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하자! 그래서 나는 매일 최소한 한 시간씩 연공하기로 스스로 다짐했고 만약 이를 완수하지 못하면 나중에 반드시 보충하기로 했다. 이렇게 2007년 11월 21일부터 6,000일 이상 중단 없이 견지하자 병업관을 자신도 모르게 지나갔다. 나도 언제 지나갔는지 기억조차 할 수 없다.

2021년부터 나는 매일 네 차례 정시 발정념도 추가했다. 만약 속인 일이나 다른 이유로 정각에 발정념을 하지 못하면 나중에라도 반드시 시간을 내서 이를 보충했다. 내 휴대폰에는 날마다 내가 법을 외우고, 연공하고, 발정념한 진도를 따로 메모하는 공간이 있다. 이렇게 하자 어영부영하던 이전에 비해 현재 나의 수련 상태가 훨씬 더 평온해졌다.

2. 푸른색과 녹색을 구분하는 사람 마음을 제거

과거에 나는 남록(藍綠 역주: 녹색은 대만 독립을 주장하는 집권당인 민진당을 상징하고 청색은 중국과 통일을 주장하는 야당인 국민당을 상징한다)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각지 설법 6》〈아태지역 수련생 회의 설법〉에서 사부님께서는 대만 총통 선거에 관한 수련생의 질문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러나 대법제자는 중국대륙에서 대법제자에 대한 이 한 차례 박해를 통하여 모두 하나의 문제를 보게 되었다. 그 때문에 어떤 사람은 곧 “누가 우리를 박해하는 사악과 가깝다면 나는 그를 선택하지 않는다.”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럼 나는 중국 공산당을 따르지 않는 정당을 선택하자, 그럼 당연히 문제가 없을 것이다 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올해 초 한 가지 사건이 발생하고 나서야 나는 남록 문제에 대한 자신의 사람 마음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올해 초 야당 의원들이 정부와 여당의 방역 기간 백신 조달 과정에 허점이 있다면서 문제를 제기했다. 이런 뉴스를 보면서 나는 ‘정부와 여당이 전염병 시기에 방역을 잘한 게 아닌가? 그런데 야당 의원들은 왜 이런 일을 과장하는가?’라고 생각했다. 나중에서야 나는 뭔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내가 왜 속인 정당을 변호하려 하는가? 백신 조달 과정에 정말로 무슨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닐까? 그것은 속인의 문제인데, 수련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 야당이 여론을 대변해서 정부의 국정을 감독하는 것은 그들의 일인데 내가 왜 특정 정당을 수호해야 하는가? 좀 더 자세히 생각해 보니 중국 공산당과 싸우는 여당의 성과를 긍정하다 점차 이 정당을 긍정하게 되었고 결국에는 그것을 수호하는 것으로 변했는데 이것이 수련인가?

나는 또 내가 대법을 지지한다는 이유만으로 특정 정치인을 지지해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예를 들어, 2002년 대만 법회에서 당시 야당 시장이 법회 현장에 나와 대법을 지지했다. 그는 많은 정면(正面)적인 발언을 했고 또 포륜(抱輪)동작도 했다. 2004년에는 대북 국부(國父) 기념관에서 열린 제1회 NTD 전세계 화인신년갈라 공연에서도 현장에 와서 관람하고 지지 발언을 했다. 나는 이에 이 시장을 다년간 지지했다.

또 다른 사례는 2014년 새로 선출된 무소속 시장이 대북 101 빌딩을 지나던 파룬궁 수련자들이 친공(親共) 단체 멤버들에게 공격받은 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지역 경찰서장을 공개적으로 지명하며 이 일을 잘 처리하지 않으면 해임하겠다고 한 일이 있다. 그는 또 2015년 국부 기념관에서 열린 션윈 공연도 관람했고 현장에서 인터뷰도 했으며 정상급 공연이라고 칭찬했다. 이에 나는 이 시장을 다년간 지지해 왔다.

만약 이 사람이 우리를 좋다고 말한다고 내가 곧 그가 좋다고 말한다면 이는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속인이 가늠하는 표준과 무엇이 다른가? 속인이 대법을 지지하는 것은 그들이 자신들의 위치를 놓는 것으로 대법제자는 사람과 일을 가늠할 때 진선인(真善忍) 표준으로 해야지 속인의 정에 휘둘려선 안 된다.

여기에는 또 속인에 의지하려는 나의 사람 마음이 들어 있엇다. 유력한 정치인이 대법을 지지하는 것에 의지하면 우리가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하기가 훨씬 쉬울 것 같지만, 사람을 구하는 것은 대법제자의 일이 아닌가! 만약 보다 많은 대법제자들이 모두 속인에게 의지하려는 마음을 지닌다면 곧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마치 사부님께서 《북미순회설법》에서 말씀하신 예와 같다.

“만약 당신들이 모두 이렇게 생각한다면 구세력이 보고서는, ‘어떻게 이런 마음을 가질 수 있단 말인가? 이 마음을 제거해야겠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 총리를 나쁘게 변하도록 하자.’”

나는 이런 속인의 정은 상생상극(相生相剋)의 이치에 의해 또 다른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사부님께서는 《정진요지》〈누구를 위해 수련하는가〉에서 말씀하셨다.

“인류사회는 더욱 이러하다. 정(正)이 있으면 반(反)이 있고, 제창하는 것이 있으면 반대하는 것이 있으며…,”

당신이 여당을 긍정하면 여당을 싫어하는 사람은 당신 말에 반감을 품을 것이고, 당신이 야당을 긍정하면 야당을 싫어하는 사람이 당신에게 반감을 품을 것이다.

내가 아주 인상 깊었던 한 가지 일이 있다. 2019년 홍콩에서 ‘송환법 반대’ 운동이 일어났는데 당시 대부분의 야당 정치인들은 눈에 띄지 않고 입장을 밝히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 저명한 야당 의원이 전력을 다해 홍콩 청년들이 경찰의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행동을 했다며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나는 이 야당 정치인이 ‘배짱’이 있다며 개인 SNS 계정에 그를 지지하는 발언을 올렸다. 그러자 다년간 나의 좋은 벗이자 여당 지지자였던 친구가 불쾌하게 생각하며 그 정치인이 송환법에 반대한 것은 잘못이 없지만 그렇다고 그렇게까지 칭찬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사실 당시 나는 남록을 구별하는 사람 마음을 갖고 있었다. 남색 진영 사람들은 구하기 어려운데 남색 진영 정치인이 적극적으로 나서 홍콩의 송환법 반대를 지지하는 경우는 드물었기 때문에 이를 이용해 남색 진영 사람들을 “일깨워주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또 내가 모 정치인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표현했을 때 더 심각한 문제를 하나 발견했다. 2020년 대만 총통 선거에서 야당 후보가 과거 홍콩 중련판(中聯辦 중국 연락 판공실) 주임을 방문한 적이 있다는 이유로 그를 친중공 인사로 분류했다. 게다가 일부 속인 매체에서 이 사람이 시장 재임 중 행한 일에 대해 논쟁이 있는 것을 보고 나는 이 사람에 대해 호감이 사라졌다. 의식하든 하지 않든 이 사람에 대해 싫어하는 모습을 드러냈는데 심지어 그가 대선후보에서 탈락한 당일 내외신 기자회견을 취소했을 때 개인 SNS에서 그를 조롱했다. 당시에는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비로소 심각한 문제임을 깨닫고 충격을 받았다.

비록 나의 개인적인 취향이라곤 하지만 대법제자는 사람을 구하기 위해 온 것이다. 설사 어떤 정당이 대선에서 승리하더라도 여전히 약 40%, 즉 5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다른 정당에 표를 던진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나의 이런 말과 행동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밀어내는 것이 아닌가? 사부님께서는 《각성하라》에서 말씀하셨다.

“개인에 대한 공격은 쉽게 원한을 조성한다. 일단 원한을 맺으면 풀기가 매우 어려운데, 그럼 어떻게 사람을 구하겠는가?”

사실 사람은 모두 선악(善惡) 양면을 가지고 있다. 한 사람이 한 가지 일을 잘하거나 못했다고 해서 그 사람의 본질이 선하다거나 악하다는 뜻은 아니다. 한 정당은 더 말할 나위도 없는데, 정당에는 아주 많은 사람이 있는데 대법제자가 어찌 정당에 따라 사람을 나눌 수 있단 말인가? 사부님께서는 《각성하라》에서 말씀하셨다.

“당신은 이 당의 사람은 구하지 않고 저 당의 사람을 구하겠다고 하면 안 된다. 그들은 모두 나의 사람이다! 나와 뭇 신들은 모두 그들을 구하려 한다!”

법을 얻은 지 오래된 노제자(老弟子)로서 나는 올해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자신이 남록에 관해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음을 알았으니 몹시 부끄럽다. 사부님께서는 《각지 설법 11》〈2010년 뉴욕 법회 설법〉에서 말씀하셨다.

“물론 나는 대만 대법제자가 잘하지 못했다고 하는 것이 아니며, 어떤 일들은 구세력이 교란하고 있는 것인데, 예를 들어 애당초 대법제자가 남록(藍綠)을 가르는 사람 마음이 없었다면, 오늘 정황은 더욱 좋았을 것이다.”

오늘 대만의 상황은 속인 사회에서 이 방면의 문제가 더욱 두드러지는데 이 속에는 나의 사람마음도 흐름을 부추기는 것에 일조했다. 기왕 이를 인식했으니 나는 앞으로 더 잘할 것이며 무엇을 하고, 무엇을 생각하든, 늘 사람 구하는 것을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3. 결론

속인의 복잡한 환경 속에서 수련하고 사람을 구해야 하는데 여기에 구세력의 교란과 파괴가 더해져 정말 어렵다. 하지만 대법제자에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왜냐하면 이것은 우리의 역사적 사명이 결정한 것으로 중생은 모두 우리의 구도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극히 한정된 지금 시간 속에서 나는 오직 자신을 잘 닦고 다그쳐 사람을 구해야 하는데 이렇게 해야만 아주 오래 전 서약을 실현할 수 있고 자신에게 유감을 남기지 않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홍음 2》 〈대법제자〉로 여러분들과 서로 격려하고자 한다.

대법제자들
중원에서 박해당하네
천지에 도(道) 없으니 썩은귀신 날뛰는구나
정법의 크나큰 기세 눈앞에 있나니
법은 인간세상을 바로잡으리로다

대법제자들
중책을 어깨에 짊어졌네
중생을 구도하며 진상을 알리는구나
독해를 말끔히 제거함에 법은 끝이 없나니
신의 길은 멀지 않도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2024년 대만 파룬따파 수련심득교류회 발언고)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31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