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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병은 마음으로 치료해야”

주정도(走正道)

【정견망】

어떤 사람은 의사가 신체적인 질병은 치료할 수 있지만 정신적인 질병은 치료할 수 없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아무리 의사라도 더러운 사람 마음을 개량할 약은 처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사악한 공산당 문화의 영향을 받은 지금 중국인들의 인식이다. 고인(古人)은 전통문화의 지도를 받아, 언행이며 생활 곳곳에서, 늘 선(善)을 체현했고 사람 마음을 선화(善化)했으며 의사들도 선념과 선행으로 사람 마음을 개변시켜 양심이 좋아지게 할 수 있었다.

여기서는 한 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중국 고대에 학(郝)씨 성을 가진 낭중(郎中 원래 관직명인데 여기서는 의사를 가리킴)이 있었는데, 뛰어난 의술을 지녔음에도 성품이 좋아서 사람들이 모두 그의 치료를 받길 원했다. 어느 날 그는 30리 밖에서 죽어가는 환자를 구했는데 집에 돌아오는 길에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학 낭중은 속으로 약간 겁이 나서 나무 막대기를 손에 쥐고 자신을 격려했다. 몇 걸음 걷다가 갑자기 공중에서 “누구냐?”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학 낭중이 자세히 보니 네 사람이 그의 앞에 서 있었다. 그들의 얼굴은 모두 시커먼 재를 칠했고 손에 든 쇠몽둥이가 밤빛에 반짝이고 있었다. 그는 비적(匪賊) 무리를 만났음을 알고 급히 말했다.

“저는 사람을 치료하는 의사입니다. 부디 지나가게 해주실 수 있을까요?”

하지만 네 사람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 위아래로 몸을 수색해 가진 물건을 다 빼앗았다. 그리고는 그를 심하게 떠밀며 말했다.

“여기서 꺼져라. 다시는 내 눈에 띄지 마!”

그는 이렇게 생명을 구했고, 당황해서 길도 확인하지 못하고 달렸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데 갑자기 귀에 또 어린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아, 어떻게 된 일이지? 오늘따라 별일을 다 만나는군. 쓸데없는 일에 나서기보다는 모른 척 하는 게 낫겠다.”

이렇게 혼자 중얼거리며 발걸음을 빨리했다. 하지만 걸어갈수록 아이의 울음소리가 그의 귀를 더 깊이 파고드는 것을 느꼈다. 그는 차마 두 다리를 움직일 수 없었다.

‘나는 세상을 구하고 사람을 구하는 의사인데 어찌 남의 위험을 보고도 구하지 않을 수 있는가?’

그래서 그는 소리를 따라 아이를 찾아보았다. 찾고 보니 늑대 두 마리가 한 아이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는 서둘러 마른풀과 낙엽을 집어 부싯돌로 불을 붙인 다음 아이에게 다가갔다. 늑대는 겁을 먹고 도망갔고, 학 낭중은 아이의 말을 따라 아이 집으로 갔다.

아이 엄마가 마침 등불 밑에서 울고 있었는데, 아이가 무사히 돌아온 것을 보고 너무 기뻐하더니 울다가 웃었다.

아이 엄마가 말했다.

“저희 집의 빌어먹을 놈(남편)이 돈을 벌러 나갔지만 열흘이 지나고 보름이 지나도 아무 소식이 없답니다. 지금 이곳에 ‘산리열(山里热 산에서 발생한 발열성 전염병)’이 생겨 아이가 전염되었습니다. 아이 큰아버지가 아이를 내다 버리지 않으면 살아남는 아이가 하나도 없을 거라고 했어요. 아, 그래서 이 아이를 산채로 버릴 수밖에 없었답니다.”

학 낭중이 이 말을 듣고는 이 병은 자신이 고칠 수 있다며 어머니를 위로했다. 그리고 재빨리 몇 가지 약재를 가져오라고 말했다. 그가 약재 이름을 알려 주자 아이 엄마는 “공교롭게도 집에 다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아이 엄마는 부뚜막에서 약을 달이고 솥에 달걀을 삶았다. 그녀는 심지어 학 낭중에게 술을 좀 마시라고 했다.

바로 이때 문이 “쾅”하고 열리더니 눈에 핏발이 선 한 남자가 달려들었다. 그는 학 낭중의 멱살을 잡고 욕을 했다.

“어디서 굴러온 놈이기에 내 아내를 유혹하느냐? 그것도 이렇게 야심한 밤에?”

학 낭중은 목이 너무 조여 숨조차 쉴 수 없었다. 아이 엄마가 설명을 하려고 하다가 남편의 발에 차이는 바람에 바닥에 쓰러졌다. 거의 동시에 한 남자가 “펑!”하는 소리를 내더니 서까래에서 뛰어내리더니 남자를 가리키며 욕설을 퍼부었다.

“대체 뭐 하는 인간이야? 정말로 더는 참을 수 없군.”

남자가 깜짝 놀라자 그가 말했다.

“나는 도둑이오. 나를 때리려면 때리고, 벌을 주려면 주고, 관아에 끌고 가려면 끌고 가시오. 하지만 내가 당신들을 위해 공평한 말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소.”

알고 보니 도둑은 날이 어둑할 때 이곳을 지나다 집에 여자 혼자 있는 것을 보고 조용히 집에 들어가 들보에 올라가 여자가 잠들 때를 기다려 물건을 훔치려 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여자와 의사의 대화를 듣게 되었고, 이렇게 좋은 사람과 비교하면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더는 머물 수도 없어서 목숨을 걸고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도둑의 말을 들은 남자가 등불을 들고 학 낭중을 바라보더니 외쳤다.

“당신이 내 친형님입니다!”

그는 몸을 굽혀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는 말했다.

“당신이 이렇게 선한 마음을 움직여 여러 생명을 구했습니다. 제가 누군지 한번 보세요.”

학 낭중은 어찌 눈앞에 있는 남자를 알아볼 수 있겠는가? 그러자 그가 말했다.

“감히 거짓말을 하지 않겠습니다. 사실을 말씀드리자면 어둑할 때 산에서 당신 돈을 강탈한 사람들 중 하나입니다. 보시다시피 당신에게 강탈한 돈은 다 여기에 있습니다. 이것을 형님께 돌려드리겠습니다. 또 형님이 만약 머물지 않고 떠나신다면 제가 이 자리에서 머리를 박고 죽어버리겠습니다. 아니면 저를 관가로 데려가시든가요.”

이렇게까지 하니 학 낭중도 머물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세 남자가 술을 마시며 솔직한 대화를 나눴고, 학 낭중은 아이가 우는 소리를 듣고 처음엔 아이를 구하고 싶지 않았다고 사실대로 털어놨다. 날이 밖을 때까지 술을 마신 남자와 도둑이 학 낭중을 집에 데려다 주려 했다.

두 남자가 말했다.

“선생님은 아이를 구했을 뿐만 아니라 우리 두 사람의 양심도 고쳐 주셨으니 저희가 선생님을 댁까지 바래다 드려도 되겠습니까?“

학 낭중은 그들의 온정을 버릴 수 없어 이에 세 사람이 함께 대화를 나누며 함께 갔다.

뜻밖에도 학 낭중이 사는 마을에 다다랐을 때 멀리서 타는 냄새가 났고, 가까이 다가가니 마을 성벽이 무너졌고 집들이 무너져서 시체가 온 땅에 널린 것을 보았다. 학 낭중은 “안돼”라고 외치며 바닥에 쓰러졌다. 남자가 급히 그의 인중을 필사적으로 꼬집자 겨우 숨이 돌아왔다. 그는 정신을 차리고 아내와 아이들을 찾기 위해 온 마을을 찾았지만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분명 도적들이 어젯밤 이곳에 와서 마을 사람들을 다 죽였다고 생각했다.

바로 이때 멀리서 “아빠-“하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학 낭중이 뒤를 돌아보니 그의 큰처남이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당나귀 두 마리를 끌며 오고 있었다. 원래 그의 아내는 남편이 어젯밤에 돌아오지 않자 남편이 밖에서 먹고 마시고 있는 게 틀림없다고 의심해 아이를 데리고 친정에 갔던 것이다. 다행히 친정 부모님이 현명해서 딸을 잘 달래 사위가 화내지 못하도록 새벽에 큰아들을 보내 집에 데려다주게 한 것이다.

방금 돌아보고 나서야 마을이 약탈당했음을 알게 되었다. 이 사실을 알고는 모두들 충격에 빠졌다. 만약 학 낭중이 어젯밤에 아이를 구출하고 제때 집에 달려가 아내가 떠나지 못하게 막았더라면 일가족이 모두 도적들의 희생자가 되었을 것이다. 또 만약 학 낭중이 아이를 집에 돌려보냈다 남편의 오해를 받지 않았더라면 집에 돌아가자마자 바로 토비들에게 약탈당했을 수도 있다. 한참을 생각한 후 학 낭중이 탄식했다

“하늘의 뜻이로구나, 하늘의 뜻이야!“

그러자 그를 동행한 두 사람이 그의 말을 자르며 말했다.

“무엇이 하늘의 뜻입니까? 이는 학 선생님의 선행이 선한 보답을 받은 것으로 이치상 당연할 뿐입니다! 이는 마땅히 고인이 말하는 ‘좋은 일을 하되 보답을 바라지 말라’는 것과 일치합니다.”

고인이 말한 선(善)은 사람 마음을 바꿀 수 있다는 것에는 이치가 있다. 학 낭중의 선념과 선행은 단지 미혹에 빠진 두 사람을 감화시켜 그들의 선념과 양지를 일깨웠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구했고 또한 자신을 구하고 자기 가족을 멸문의 재앙에서 구했다. 이는 우연 속에 필연이 함축된 것이다. “마음의 병은 마음으로 치료해야 한다.” 약초는 오직 육체의 병만 치료할 수 있을 뿐이며, 사람의 양심을 치료하려면 여전히 진선인(真善忍)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일은 한 가지 문제를 제기한다. 전통문화가 이렇게 좋다면 중공은 왜 기어코 그것을 파괴하려 하는가? 왜 중공은 좋은 사람이 많아지는 걸 두려워하는가? 정상적인 나라라면 어느 당이 집권하든 모두 좋은 사람이 많아지질 바라고, 좋은 사람이 많아질수록 사회 질서가 더 안정되어 좋아할 것이다. 하지만 중공이 집권한 나라에서는 정반대인데 나쁜 사람이 많을수록 좋고, 사람 마음이 더 나빠질수록 좋아한다. 이것은 또 왜 그런가?

과거 중국 백성들은 중국 공산당에 대해 희망을 품었다. 언젠가는 중국 공산당이 정치적인 잘못을 인식해 전통문화와 서방의 보편적 가치를 재검토하며, 더는 거짓말로 백성들을 속이지 않기를 희망했다. 매번 중공 지도부가 교체될 때마다, 비록 민중들이 선출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새로운 세대의 지도자가 취임하면 전임자의 잘못을 바로잡고 백성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제공할 수 있으리란 희망을 품어 왔다. 하지만 이런 희망은 매번 절망으로 변했다.

​오늘날 중국인들은 이미 파룬궁 진상이 널리 퍼졌기 때문에 공산당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중공 마귀의 진정한 모습을 완벽하게 제시한 두 권의 저서 《공산당에 대한 9가지 평론》과 《공산주의의 최종 목적》이 나온 후 사람들은 활연히 깨달았다.

“진정한 원인은 바로 공산사령(共産邪靈)이고, 중국 마귀당은 바로 인간 세상에서 그것이 나타난 것이다.”

즉 공산사령이 변신해 마귀당이 된 것으로 공개적으로 세상을 활개 치고 다닌다. 하지만 그것의 사악한 본성은 필연코 악만 행할 수 있고 선은 행할 수 없게 만들었다. 모든 선량하고 올바르고 전통적인 문화와 가치관 등은 모두 그것이 인류를 훼멸하려는 목적에 방해가 된다. 오직 사람을 점점 더 나쁘게 만들고, 끊임없이 나쁜 일을 저질러, 사람의 업력(業力)이 갈수록 쌓이게 만들어, 십악불사(十惡不赦)한 정도에 도달해야만 사람이 신불(神佛)에 의해 훼멸 당할 수 있다.

때문에 중국 공산당은 파룬궁을 박해하려 하는 것으로, 그것이 과거에 사람들의 선념(善念)을 파괴하고 사람들을 속여 진화론과 무신론을 믿게 만들고, 거짓·사악·투쟁을 삶의 지침으로 삼게 한 이런 모든 것들은 전부 최후 이 단계를 위해 준비한 것이다. 즉 모두 파룬궁 박해를 위해 준비한 것이다. 신불(神佛)을 박해하고, 불법(佛法)을 박해하며, 유언비어를 퍼뜨려 파룬궁 창시인을 비방하고, 진선인(真善忍)을 비방해서 직접 생명이 훼멸될 죄업(罪業)을 짓게 만드는데, 이렇게 해야만 그것이 줄곧 숨겨온 죄악의 목적에 도달할 수 있다.

공산사령은 진선인(真善忍)이 얼마나 좋은지 똑똑히 알고 있고, 사람마다 진선인에 따라 행동하면 사람 마음이 차츰차츰 정화되고 승화되어 생명이 반드시 구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는 중공이 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원하는 것은 바로 사람 마음을 차츰차츰 나쁘게 만들어 중공의 거짓말을 믿게 해서, 사람들이 파룬궁 박해에 참여하게 만들어 최종적으로 훼멸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중공은 파룬궁 진상의 힘과 진선인의 위대함을 예상하지 못했다.

사람이 오직 진상을 믿고 자발적으로 삼퇴(三退 중공 관련 조직에서 탈퇴)하고 진심으로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외우기만 하면 이 생명은 반드시 구도 받을 수 있다. 만약 진상을 똑똑히 아는 생명이 자발적으로 더 많은 이들에게 진상을 알려 구도 받게 한다면 이는 큰 덕을 쌓는 선행으로 생명의 미래가 더 아름다워질 것이다.

중국 공산당이 거짓말을 이용해 중국인에게 만들어준 ‘마음의 병’은 정말로 마음으로 치료해야만 한다. 파룬궁 수련자들은 자비롭게 사람을 구하려는 순정한 신념(信念)을 품고,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사람들에게 파룬궁 진상을 알리는데, 이것이 바로 세인들의 선념과 양지를 일깨우는 것으로 사람 마음을 조금씩 선화(善化)시켜 바로 잡고 있는 것이다. 지난 20여 년간 중공 거짓말과 폭력의 장벽을 끊임없이 돌파하기란 매우 어렵고 힘든 일이다. 비록 4억 명이 넘는 중국인들이 탈당 사이트에 삼퇴 성명을 발표했지만, 아직은 부족하다. 아직도 파룬궁을 비방하는 중공의 거짓말에 중독된 사람들이 많은데, 어떤 이들은 반복해서 진상을 거부하는데 정말로 악보(惡報 악행에 대한 보응)가 닥치면 그때는 후회해도 너무 늦는다!

속담에 이 마을을 지나면 더 이상 이런 가게가 없다는 말이 있다. 이렇게 구원 받는 기회는 지금까지 없던 것으로 만약 놓친다면 영원히 후회할 것이며 영원히 고통스런 후회가 될 것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32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