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제자 귀항(歸航)
【정견망】
진수(真修)하는 대법제자들은 모두 절실한 체오(體悟 직접 겪고 나서 얻는 깨달음)가 있는데, 수련의 길에서 겪는 매 하나의 관난(關難)은 모두 우리의 심성을 제고할 가장 좋은 기회이자, 우리의 승화를 위한 특혜이자 디딤돌이다. 비록 구세력이 우리의 사람 마음, 관념, 집착과 욕망 등 기타 사람의 것들을 이용해 소위 고험해도, 우리가 만약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해 주신 ‘장계취계(將計就計)’ 법리의 내함을 진정으로 이해해 깨달을 수 있고 또한 실제 수련에서 뜻대로 장악할 수만 있다면, 아주 쉽게 구세력의 일체 안배를 타파하고 각양각색의 관난을 지나갈 수 있다.
아래에서 필자는 개인 수련과 정법 수련 두 가지 방면에서 ‘장계취계’ 법리에 대한 체오를 말해보고자 한다.
1. 개인 수련의 각도
법을 대량으로 공부한 동수들은 모두 알다시피, 자신의 신체는 바로 하나의 소우주(小宇宙)이고, 매 하나의 세포는 모두 자기 천체세계 그 한 층의 무량한 중생과 대응하는데, 심지어 매 하나의 사유(思惟)마저도 그 층층 우주 중생의 사유가 투영된 것이다. 때문에 우리 몸에 부정확한 상태가 나타났을 때는, 사실 대응하는 그 하나의 천체에서 대법 진선인(真善忍)에서 벗어난 무량한 중생들이 그들의 주(主)나 왕(王)에게 도움을 구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천체의 정법이 끊임없이 신속하고 맹렬하게 진행되고 있기에, 자기 신체에 대응된 바로 잡히지 않은 그런 공간 속 중생이 도태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왕이나 주의 구도를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다.
그러므로 내가 체오한 것은 이렇다. 매번 우리 신체 어느 한 부분에 부정확한 상태가 나타날 때면, 우리는 우주 대법에서 닦아낸 선념(善念)과 법리를 사용해 그들을 구도해야 하는데, 중생이 모두 대법 ‘진선인’에 동화할 때면, 그 한 층 천체의 무량한 중생들이 순정(純正)하고 자비로운 법광(法光)에 잠기고 진정으로 구도 될 것이다! 구도 되려 하지 않거나 심지어 구세력에게 이용당해 교란과 박해 작용을 한 것들 역시 순정한 법광에 용해되어 소각될 것이다. 그 한 층 천체는 그야말로 “불광이 널리 비치니 예의가 원만하고도 밝도다”(《전법륜》)가 된다.
또 우리 머리에 부면(負面) 사유가 나타날 때면, 내가 깨달은 것은 마땅히 대응하는 그런 부면(負面) 생명들을 구도해야 한다. 삼계는 바로 정부(正負) 생명이 동시에 존재하는 곳으로, 이는 구우주 상생상극 법리의 체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세력은 이런 부면 생명을 이용해 표면 인류라는 이 한층 공간에서 우리에게 번거로움과 사단(事端)을 일으킨다. 하지만 일률적으로 소각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자비하신 사부님께서 이미 우리에게 분명히 알려주셨기 때문이다.
“중생을 구하려면 일률적으로 멸(滅)해서는 안 되는 것으로, 그를 아직도 구할 수 있는지 없는지 봐야 한다.”(《푸왠선(副元神) 관련 문장이 일으킨 파동에 관해》)
이렇게 본다면 우리는 마땅히 우주 대법제자의 자비와 선념(善念)에 따라 모든 중생에게 구도 받을 기연(機緣)을 주어야 하는데 구도가 먼저고 청리(淸理)는 나중이다. 이렇게 해야만 바른 일이다. 이는 단지 우주 대법의 무변(無邊)한 법력을 체현할 뿐만 아니라 진애(珍愛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는 생명에 대한 창세주의 자비하신 구도이자 무상(無上)의 은전(恩典)을 체현한다.
2. 정법 수련의 각도
마음을 써서 법을 공부하고, 법을 깨닫고, 특히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께서 주신 시의적절한 점오(點悟)와 법리의 은사(恩賜 은혜로 하사하심)를 통해 나는 ‘장계취계’ 법리가 정법 수련에서 드러나는 것을 점차 똑똑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다음과 같다.
(1) 우리의 지혜를 풍부하게 한다
“대법(大法)은 창세주(創世主)의 지혜이다. 그는 천지개벽(開天闢地)ㆍ우주조화(造化宇宙)의 근본으로, 내포가 지극히 홍대하고 미세하며, 부동(不同)한 천체 층차(層次) 중에 부동한 펼쳐보임(展現)이 있다.”(《전법륜》〈논어〉)
창세주께서 직접 전수하신 제자로서, 우리 수련의 길에서 매 한 걸음은 모두 대법의 지도와 시정[糾正]과 떼어놓을 수 없다. 이에 우리는 반드시 계속해서 마음을 써서 법을 공부하고 법을 깨달아야 하며, 아울러 실제 수련 중에서 마음을 써서 체오하고 이해하고 실천하면서, 대법 중에서 끊임없이 에너지와 지혜를 흡수하고 자비하신 사부님의 너그러운 은사(恩賜)와 가지(加持)를 더해, 대법 중에서 닦아낸 홍대(洪大)한 선념(善念)과 진애(真愛)로 표면 신체 또는 모순 중에 드러난 소위 ‘마난(魔難)’과 대응하는 그 한 천체의 무량 중생을 구도해야 한다. 중생이 구도되고 천체가 바로잡히면 표면 공간의 소위 ‘마난’은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다. 내 생각에 이는 바로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 공은 사부에게 달렸다”(《전법륜》)는 법리의 내함(內涵 안에 담긴 함의)이 부분적으로 펼쳐진 것이다.
(2) 우리의 문제 처리와 관리 능력을 강화
더 깊이 깨달으면, 우리의 수련 과정은 사실 사부님께서 아낌없고 고달픈 마음 쓰심과 시시각각 우리의 심신(心身)과 사유를 단련시켜 신우주 부동한 층차 법(法)의 표준, 즉 그 한 층 생명이 반드시 준수해야 할 천체법칙에 도달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자면, 우리는 현실이란 이 표면 공간에서 사람과 일이 펼쳐낸 각양각색 수련의 온갖 나쁜 환경[壞境]을 충분히 이용해야 한다. 심지어 구세력의 존재가 안배한 각종 형식 ‘마난’의 표현까지도, 모두 사부님의 장계취계인바, 우리더러 이를 통해 문제와 모순을 처리하는 법의 지혜와 능력을 깨닫게 하려는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매 한 가지 병은 모두 매 한 가지 병에 대한 치료공능이 있으며”, “부동(不同)한 층차(層次)에는 부동한 층차의 법이 있다.”(《전법륜》)
이렇게 본다면, 우리가 오직 법을 많이 공부하고, 법을 잘 배우며, 마음을 써서 법을 깨닫고 또 실제 수련에서 법을 체오(體悟)하고, 법을 운용해 사부님께서 주신 ‘안으로 찾는’ 법보(法寶)를 파악해 주의식(主意識)이 자신의 사유와 신체를 주재할 수만 있다면, 불가능이란 없는 사부님 ‘장계취계’ 법리를 원하는 대로 사용할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구세력의 존재 여부 및 그들의 안배 여부는 모두 아무런 실질적 의미도 없다. 이런 각도에서 말하자면, 모든 외래 영체(靈體)의 침입을 차단하는 것은 또한 구세력을 전반적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이상의 깨달음에 기초한다면, 정법 수련을 하는 대법제자인 우리가 표면 공간에서 듣고 보고 만나는 그 어떤 일이든,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모두 좋은 일이 아닌가? 모두 우리가 수련에서 승화할 수 아주 좋은 기회다. 오직 우리가 중생을 마음에 두고, 자비롭게 구도하기만 하면, 일체 언행이 위타(爲他)의 기점에 서서 자신의 위치를 바로잡고 자신의 신분을 똑똑히 알면서, 삼계 내 무량한 중생을 내려다볼[俯瞰] 수만 있다면, 그들이 어떻게 표현하든 다 동등하게 보고 공평하게 구도 받을 기회를 주어, 진정으로 사부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원용(圓容)하기만 하면, 진정으로 자신의 오랜 서약을 실현할 수 있고, 대법의 홍대한 위덕과 창세주의 무량한 자비 및 중생에 대한 무궁한 진애(珍愛 아끼고 사랑함)를 펼쳐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사부님의 《홍음 2》〈정신(正神)〉으로 자신을 격려하고자 한다.
정념정행(正念正行)으로
정진하며 멈추지 않노라
법을 어지럽히는 귀신 없애고
중생을 선하게 대하노라
[역주: 여기서 내려다본다는 말은 ‘부감(俯瞰)’으로 삼계내 무량한 중생을 무시한다는 뜻이 아니라 높은 층차의 생명이 그 층차 법의 표준에 부합해 자신보다 낮은 층차의 생명들을 담담히 대한다는 뜻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33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