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無名)
【정견망】
얼마 전 사부님의 《2003년 정월대보름 설법》을 공부했다.
“어느 일방도 일 처리 방법에서 아직 대자대비(大慈大悲)하지 못하다. 당신이 정말로 대자대비 할 수 있다면 내가 생각하건대 분명코 잘못된 곳을 잘 고칠 수 있을 것이다.”
전에 이 부분을 학습할 때, 지금껏 이 구절을 마음에 두지 않았는데, 그날 공부하면서 자비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곧 위타(爲他)한 각도에서 자신의 사람 마음을 청리(淸理)했다. 이렇게 제거하고 나니 자신의 수많은 바르지 못한 염두들 역시 밖으로 나오지 않는 것을 발견했다. 다음날 나는 문득 이런 사유 논리를 깨달았는데, 과거에 내가 사람 마음을 청리한 것은, 내가 느낄 수 있는 사람 마음을 제거하고 닦으려 노력한 것이고, 위타한 각도에 서서 사람 마음을 청리한 것은 외면의 사악을 제거할 뿐만 아니라 또한 관용하고 크게 참는 마음으로 일체 생명을 대하는 것을 포함하는데, 아무리 나쁜 생명이라도 자비 앞에서 모두 융화되거나 또는 제거할 수 있다. 이렇게 수련하면 아주 간단하다. 이것이 요 며칠 내가 깨달은 것이다.
오늘 사부님의 《각지 설법 2》〈2002년 보스턴 법회 설법〉에서 다음 단락을 학습했다.
“여러분이 기억하다시피, 나는 늘 당신들에게 한마디 하는데, 대법제자는 어떤 일을 함에 모두 우선 다른 사람을 고려해야 한다. 매번 한 사건이 발생하거나 일종의 정황이 나타날 때, 설사 작은 일일지라도 나의 첫 일념(一念)은 우선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것인데, 왜냐하면 나에게 있어 다른 사람을 우선해 생각하는 것은 이미 자연스러운 일로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떤 심태(心態)인가? 바로 관용(寬容)인바, 매우 홍대(洪大)한 관용으로서, 다른 생명을 용납할 수 있고 진정으로 입장을 바꾸어서 다른 생명을 생각한다.”(《각지 설법 2》〈2002년 미국 필라델피아 법회 설법〉)
사부님께서는 이 방면의 설법을 이미 여러 차례 언급 하셨지만 전에는 이해하지 못했고, 오늘까지 수련해서야 비로소 곳곳마다 일마다 일사일념(一思一念)에서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어야 함을 깨달았다. 나는 그날 대법제자가 된다는 것은 내가 막 대법 속에 들어왔을 때, 시시각각 자신을 닦고 사유방식을 바꿨던 것과 마찬가지로, 지금은 자신을 닦아야 할 뿐만 아니라 또 늘 다른 사람을 위해 생각해야 한다.
현 단계의 체회(體會)를 여러분과 나누고자 한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3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