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생(重生)
【정견망】
생과 사의 문제에 관해 사부님께서는 “살아 바라는 것 없고 죽어 애석할 것 없네”(《홍음》〈무존〉)라고 말씀하셨다. 수련하기 전과 후로 나는 줄곧 생과 사 이 문제가 곤혹스러웠다. 생과 사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수련을 통해 나는 속인과 수련인의 견해는 절대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인식했다.
속인은 죽음을 직면할 때 두려움과 당황, 절망을 느낀다. 왜 그런가? 왜냐하면 속인은 자신이 죽어 지옥에 떨어지면 다시 태어날 수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무신론(無神論)에 중독되어 원신(元神)이 존재하고 좋은 일을 하면 복을 받고 나쁜 일을 하면 벌을 받음을 믿지 않는다. 석 자 머리에 신령(神靈)이 있음을 믿지 않기 때문에 사람이 죽은 후 전생(轉生)할 수도 있다는 것도 믿지 않는다. 그러므로 죽음에 직면하면 당황, 절망, 두려움이 나타난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사람이 세상에 사는 것이 아주 피곤한데, 평생 다투고 싸우면서 개인의 이익을 위해 남을 해치거나 심지어 온갖 나쁜 짓을 다 저질러 아주 큰 업력(業力)을 짓는다. 전세(前世)의 업을 다 갚지도 못했는데 이번 세(世)에 또 업을 지으니 신체에 큰 병이나 괴질이 나타나고 난치병 등등이 나타난다. 하지만 사람은 사람이라 미혹 속에서 믿지 못하고 사람이 죽은 후 또 윤회전생(輪迴轉生)한다.
생과 사에 대한 사람의 견해는 이렇다. 육체가 살아 있으면 사람이 산 것이고, 육체가 죽으면 사람은 정말로 죽은 것이다. 중국 사람들은 눈으로 봐야만 확실하다고 여기는데, 어떤 사람이 중병에 걸려 병원에서 응급 치료를 받을 때, 사실 원신은 이미 육신을 떠나 이 환자가 이미 죽었다. 하지만 의사는 여전히 환자를 구하기 위해 산소를 공급하고 응급 치료를 한다. 사람들은 환자가 아직 숨을 쉬고 있는 것만으로도 이 사람이 살아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이미 죽은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어찌 믿을 수 있겠는가? 사람은 죽어도 원신은 죽지 않는 진리를 속인은 영원히 믿지 못한다.
수련인의 생사관은 속인의 견해와 다르다. 아래에서 수련한 후 생사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말해보겠다.
나는 사부님의 설법을 학습한 후, 한 사람이 출생했을 때 만약 수련할 수 없다면 속인 중에서 생활하는데 그럼 이 사람은 죽은 것과 다름이 없다고 본다. 왜냐하면 속인 사회는 미혹의 사회이기 때문에 몽롱한 상태에서 살아가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평생 나쁜 일을 하고, 새로운 업을 지어 이미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속인 사회에서는 사람이 태어남이 바로 죽음이고, 사실 사람이 죽으면 곧 다시 태어난다. 한 사람이 사망할 때가 바로 이 사람의 진정한 생명이 해탈할 때다.
사부님께서는 설법에서 당산(唐山) 지진 당시 구조된 사람들을 조사할 때 죽는 순간을 언급하셨다.
“모든 사람이 다 그 일순간에 해탈감과 잠재적인 흥분감을 느꼈으며, 고통스러운 감각이 없었다고 했다.”(《전법륜》)
나는 개인적으로 사람은 다시 태어나며 사람의 원신(元神)이 나오면 사람이 진정으로 자유로워진다고 생각한다. 나는 수련을 시작하면서부터 사람이 세상에 사는 진정한 목적을 알았고, 더는 나쁜 일을 할 수 없고, 더는 새로운 업을 지을 수 없음을 똑똑히 알았다. 대법 속에서 수련하는 사람은 단순히 새로운 업을 지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또한 각자(覺者)로 수련 성취해야 하고 또한 중생을 널리 제도하는 큰일을 해야 하며, 자신을 위해 장차 보다 큰 위덕(威德)을 수립해야 한다. 때문에 우리 수련인은 죽음 앞에서 절대 속인처럼 두렵거나 당황하거나 절망하지 말아야 하며 담담히 마주해야 한다.
예를 들어보자. 어떤 대법제자가 불법으로 감옥에 갇혔는데, 진상을 모르는 경찰과 죄수들에게 심한 구타를 당했다. 하지만 그는 그들을 원망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여전히 자비롭게 진상을 알려 그들을 구도했다. 이 얼마나 대단한 자비의 위대함인가! 죽음 앞에서 당신은 여전히 자신이 아직 구도하지 못한 많은 중생을 생각했고 자신의 생사여부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이것이 속인과 같을 수 있겠는가? 수련인으로서 우리가 오직 수련 원만할 수만 있다면 “영원한 사람몸 얻어야 부처로다”(《홍음》〈인과〉)할 수 있다.
수련인은 생과 사에 집착하지 않으며, 지금의 생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즉 자신을 아주 소중히 여겨야 하는데, 자신의 생명은 대법을 위해 온 것이고, 중생을 구도하기 위해 온 것이며, 신체(神體)를 새로 만들기 위해 온 것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이 미혹 속에서 수련해 내 인피(人皮)를 벗고 사람에서 신(神)으로 걸어가야 한다.
최근 법을 공부하면서 깨달은 작은 이치다. 일부 치우침이 있을 수 있으니 자비로운 시정을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35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