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죽(清竹)
【정견망】
고험(考驗)이란 이름에서 알 수 있다시피 고찰(考察)하고 점검(檢驗)한다는 뜻이다. 흔히 사용되는 보통명사다. 그러나 이 명사를 우리 수련에 사용하면 함의가 신성하면서도 엄숙하게 변한다.
주지하다시피, 한 학생이 초등학교에서 대학이나 또는 더 높은 고등교육기관에 진학할 때, 진급할 때마다 늘 시험이 있고, 매번 졸업할 때마다 시험을 치러야 한다. 당신이 아무리 책을 많이 읽고, 수년간 학교를 다녔어도 졸업시험에 불합격해 졸업장을 받지 못하면 사회적으로는 당신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우리 수련도 마찬가지이다. 매 층차를 제고할 때마다 고험이 있다. 작은 고험은 작은 제고, 큰 고험은 큰 제고를 가져온다. 특히 우리 수련자들이 겪는 원만 고험 그것은 더욱 관건적이고 더욱 엄격하며 더욱 신성하다. 우리 “수련의 최종 목적은 바로 득도ㆍ원만(圓滿)”(《전법륜》)이기 때문이다.
아래에서 원만 고험에 대해 자신의 작은 인식을 말해 보겠다.
1. 원만 고험
5천년 중화 전통문화에서 볼 수 있다시피, 불가든 도가 수련이든, 그 어느 한 문, 어느 한 파든 그들의 수련제자들은 반드시 입문 고험과 원만 고험을 거쳐야 한다. 원만에 대한 고험은 단체와 개인 고험 두 가지가 있다. 우리 모두 알다시피 도가(道家)나 단독 전수하는 법문의 고험은 모두 제자 개인에 대한 고험이다. 하지만 많은 제자들이 존재하는 佛家 수련에 대해 말하자면, 특히 우리 대법제자들처럼 수련하는 사람의 수가 아주 많은 경우, 개별적인 고험 외에 정체 원만에 대한 고험도 있을 수 있다.
노수련생들이라면 모두 이런 고험을 경험한 적이 있을 것이다. 오늘 나는 주로 장기간 수련하지 않았거나 이런 고험을 경험해보지 못한 동수들을 위해 개인적으로 직접 경험한 두 차례 정체 고험에 대해 주로 말해 보고자 한다. 여러분에게 참고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2. 고험에 불합격
나는 비록 1994년 말에 법을 얻은 노수련생이지만 법에 대한 인식은 제고가 아주 느려서 다년간 줄곧 감성적으로 법을 인식하는데 머물러 있었다. 그래서 1999년 중공이 전면적으로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망연해져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그가 말한 1999년 7월에 그 왕을 부활시키기 위해 공포가 하늘에서 내려온다고 한 것은, 바로 중공중앙(中共中央)의 몇 명 딴 심보를 품은 사람들이 수중의 권력을 이용해 대법(大法)과 대법제자에게 전면적으로 사악한 탄압을 시작한다는 것이다. 즉 사람을 잡아가고, 때리며, 노동교양 시키고, 판결하며, 책을 훼손하고, 군대ㆍ경찰ㆍ특무ㆍ외교와 모든 라디오ㆍ텔레비전ㆍ신문을 이용하며, 깡패적인 수단을 채용해 천지를 뒤덮을 듯이 유언비어를 날조하여 박해하는데 그야말로 하늘이 무너질 듯한 기세인바 그 사악한 정도는 전 세계를 휩쓸었다. 구세력이 그것들의 패괴한 관념으로 이 사건을 배치한 목적은 이른바 파괴적으로 대법(大法)을 검증하는 데 있다.”(《정진요지 2》〈예언참고〉)
이것은 전 세계, 특히 중국대륙의 모든 대법제자들을 겨냥한 큰 고험이었다. 당시 우리 지역의 많은 동수들이 북경 천안문 광장에 가서 법을 실증하려 했다. 대법제자로서 나도 당연히 가려 했다. 하지만 그 당시 나의 법(法)에 대한 인식은 아주 피상적이었고, 북경에 가는 목적이 생사를 내려놓고 대법을 실증해야 함을 깨닫지 못했으며, 그저 사람의 방식을 쓰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치 6.4 학생운동처럼 목숨을 걸고 중공과 쟁투해 승리를 얻으려는 것과 같았다.
그래서 북경에 가는 기차를 탔을 때, 북경에 도착하기도 전에 쫓아온 현지 경찰에게 체포되어 바로 북경역 경찰서로 이송되었고, 이틀 후 북경 풍대(豐台) 체육관으로 이송되었다. 이틀 후 우리는 현지 공안에 의해 송환되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잡혀가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대법(大法)을 실증하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위대한 것이며, 대법(大法)을 실증하기 위해 걸어 나온 것이다. 기왕 걸어 나왔으면 또한 법을 실증하는 데 도달해야 하는데, 이야말로 걸어 나온 진정한 목적이다.”(《정진요지 2》〈이성〉)
나는 비록 사람에서 걸어 나오긴 했지만 심성이 표준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사악이 틈을 타서 가로막혔고 대법을 실증하는 목적에 도달하지 못했음을 똑똑히 알았다. 기왕에 목적에 도달하지 못했으니 그럼 이번 고험은 나에 대해 말하자면 불합격한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이러한 기회는 절대 많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이후에 또 다른 형식이 있을 것이며, 어쩌면 또 있을 수도 있고 어쩌면 없을 수도 있는데 모두 미지수이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개변하지 못하면 얼마나 많은 차례가 다시 있다 해도 넘어가지 못한다.”(《창춘 보도원회의 설법》)
나는 고험에 불합격한 이유가 자신의 수련이 착실하지 못했고 근본적으로 자신을 개변하지 못했기 때문이며, 이성적으로 대법을 진정하게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임을 깨달았다. 수련이 착실하지 않고 기초가 단단하지 않다면 관건적인 순간에 당신이 생사를 내려놓는다고 말하는 그것은 단지 거창하고 공허한 말에 불과할 뿐이다.
3. 다시 기회를 주시다
‘7.20’이란 큰 고험이 지나간 후 또 16년이 흘렀다. 2015년, 사부님께서는 자비롭게 우리더러 ‘장쩌민(江澤民) 고소[訴江]’라는 얻기 힘든 큰 고험을 주셨다.
나는 다른 동수들처럼 10여 년간 간고한 환경 속에서 수련한 후, 대법에 대한 인식이 이미 감성에서 이성적인 인식으로 승화되었고 점차 성숙했다.
그러므로 나는 이메일로 명혜 편집부 “장쩌민 고소” 통지를 받은 후 이는 대법제자에 대한 또 한 차례 중대한 고험임을 알았다. 대법제자가 생사를 내려놓을 수 있는지, 원만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지에 대한 한 차례 큰 고험이었다. 당시 나는 이전 한 차례 고험에서 잘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반드시 표준에 도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 현지 동수들이 이 일을 교류할 때 어떤 동수는 말했다.
“기왕에 공지가 왔다면 왜 명혜망에서 직접 발표하지 않고 이메일로 통지하는가?”
의미는 진짜 명혜편집부 통지인지 신뢰성이 의심된다는 것이다.
어떤 동수는 사악도 명혜망을 보고 있기 때문에 만약 직접 명혜망에 공개적으로 발표하면 사악이 알게 되어 그것들이 사전에 교란하고 문제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임을 깨달았다. 그렇게 하면 우리가 “장쩌민 고소”가 성공할 수 있겠는가?
또 어떤 동수는 말했다.
“우리가 모두 실명에 실제 주소로 고소하면 그럼 사악이 우리를 잡으러 오지 않겠는가?”
그렇다, 속인의 각도에서 보면 이럴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수련의 각도에서 이 일을 대한다면 그렇지 않다. 무엇을 고험이라 하는가, 무엇을 생사를 내려놓는다 하는가, 무엇이 원만을 향해 나아가는 것인가?
나는 이것을 명백히 깨달았고 마음을 굳게 먹고 단호하게 사부님의 요구에 따랐다. 그래서 나는 ‘장쩌민을 고소하는’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다 쓴 후 또 7부를 복사했다. 이 중 2부는 최고 법원과 최고 검찰원에 보냈고, 2부는 우리 성(省)의 고등법원과 고등 검찰원에 보냈으며, 나머지 2부는 우리 시(市) 중급법원과 검찰원에 보냈다. 나는 우체국에 가서 이 모든 편지를 다 등기우편으로 보내고 나서 또 2부를 더 준비해 우리 구(區) 법원과 검찰원에 보냈다.
당시 나는 구 법원은 내가 사는 곳과 아주 가까우니 직접 가서 전달하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장쩌민 고소’ 편지를 법원에 가서 전달하자 그 사람들은 편지를 읽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
“당신 이 일은 우리 여기서 수리하지 않습니다. 상급 부문으로 가세요.”
나는 그때 그들에게 말했다.
“이 일을 나는 단계별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당신들 이곳에도 반영하러 왔습니다. 수리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당신들의 일입니다.”
사실 이렇게 하는 것은 또 속인의 이치에 부합하는 것이다.
편지를 보낸 다음 날, 나는 컴퓨터로 6개 부서에서 모두 편지를 받았다는 영수증을 발급한 것을 확인했다. 그래서 나는 명혜 편집부의 통지 규정에 따라 “장쩌민을 고소”한 상황을 명혜 편집부에 보냈다.
2015년 5월 중순 명혜 편집부에서 통지를 발표한 후부터 5월 31일까지 명혜망에서 처음으로 소장을 제기한 전국 232명의 대법제자 명단을 공개했다. 각 대법제자의 이름, 주소 및 간단한 박해 상황 등이 올라왔는데 거기에 내 이름이 등재된 것을 보고 나는 정말로 아주 격동했고 대법제자가 되고 수련인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깊이 깨달았다. 우리에게 다시 한번 이런 기회를 다시 주신 사부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역주: 명혜망에서 보안상의 문제로 대륙 동수들에게 이메일로 장쩌민 고소에 관해 통지한 것은 2015년 5월 중순의 일이고 사이트에 공개적으로 올린 것은 2015년 9월 7일이다.]
4. 소결
명헤망에서 공개적으로 내 이름을 공개한 이후 나는 즉시 우리 지역 정법위원회, ‘6.10’, 공안, 가도(街道)사무실 및 기타 부서 사이에서 유명 인사가 되었고, 당연히 그들이 방비해야 할 표적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장쩌민을 고소한 후 중국을 떠날 때까지 3년이 넘는 기간에 비록 수많은 마난(魔難)을 겪었지만 중공 어느 부문에서도 나한테 이 일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고 나 역시 이 때문에 소란을 당한 적은 없다. 왜냐하면 이 일에서 나는 신사신법(信師信法)을 해냈고 생사(生死)를 내려놓았으며 과감히 생명으로 대법을 실증했기 때문이다. 이번 고험에서 합격한 대법제자가 되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매 한 차례의 일, 이렇게 큰일이 나타났을 때는 모두 다 가장 좋은 고험이며 수련생이 그 원만으로 걸어 나오는 가장 좋은 한 걸음이고, 가장 좋은 시기이다. 우리 어떤 사람들은 바로 걸어 나올 수 있지만, 어떤 사람, 그는 또 자신이 실수(實修)하기 위해 움직이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원만(圓滿)을 이루는데도 당신은 움직이지도 않는다니, 내가 보기에 당신은 어쩌자는 것인지, 당신은 원만을 이룰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수련만 하다니, 무엇을 위해서 수련하는가? 원만이 아닌가? 실제로 당신은 자신을 위해서 구실을 찾고, 당신의 다른 한 마음을 위해서 구실을 찾고 있다. 실수(實修)하며 움직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평소 표현이 정말로 그렇게 실수하고 그렇게 움직이지 않는가?”(《창춘 보도원회의 설법》)
마지막으로 우리 대법제자들이 모두 자신을 잘 수련해서 고험에 합격한 대법제자가 되어 모두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만약 법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자비로 시정해 주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36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