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简体 | 正體 | English | Vietnamese

신사신법은 영원히 불변하고 처음처럼 수련해 사부님을 바짝 따르다

중국 대법제자

【정견망】

나는 이미 29년 동안 대법을 수련해 왔다. 나는 사존(師尊)의 자비로운 구도와 거대한 감당에 대해 몹시 감사드린다. 사부님께서는 원래 자아(自我)에 집착하고 온몸이 업력이며 성격이 좋지 않은 사람이었던 나를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알고 감사할 줄 알며, 일에 부딪히면 다른 사람을 생각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변화시켜 주셨다. 이 속에는 사존의 수많은 간난신고(艱難辛苦)와 노력이 스며들어 있다. 나는 사존께서 중생을 구도하시는 대가로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안다. 사존께선 오직 우리에게 법 속에서 향상하고 선(善)을 향하는 그 마음만 원하실 뿐이다! 나는 오직 정진하면서 어떤 상황에서도 사존의 요구에 따라 하는 것만이 사존께서 원하시는 것임을 안다!

아래에서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최근에 사상업력의 교란을 돌파해 박해 결속을 집착하는 마음을 제거하고 법 공부의 힘을 늘려 처음과 같은 수련 상태를 되찾은 것이다. 위대한 사존께 보고드리고 동수들과 나누고자 한다.

1. 사상업력을 돌파한 과정

1999년 7월 20일, 사악한 당이 대법을 박해하면서 악독한 비판과 거짓 선전에도 나는 쓰러지지 않았고 당시 여전히 직장에 출근했다. (지금은 이미 퇴직했지만) 내 마음속에는 내가 선택한 파룬따파(法輪大法)는 정법(正法)이며 사부님께서는 세인(世人)을 구도하고 계심을 똑똑히 안다! 수련에 정진하면서 나는 교란을 받아본 적이 없고 종래로 대법을 의심해 본 적도 없으며 사부님을 의심한 적은 더더군다나 없었다. 이는 모두 대량의 법 공부로 견실한 기초를 다졌기 때문에 대법이 이미 내 생명 속에 아주 깊이 뿌리를 내렸기 때문이다.

나는 해마다, 날마다 사부님의 요구에 따라 세 가지 일을 하고 있다. 그러나 사악한 당의 대법에 대한 박해는 1999년부터 25년 동안 계속되었고 아직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을 줄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길고 암울한 세월 속에서 나는 사부님과 대법을 굳게 믿었고 이는 그 어떤 힘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중공 바이러스가 지속되던 3년간 사악한 당의 야만적인 제로화 및 봉쇄 정책에 직면해, 날마다 핵산 검사를 받으면서, 사람의 인내심이 정말 한계에 이르자 나는 마음속으로 사악한 당에 대한 원한이 극에 달했다. 당시 나는 비록 날마다 법을 공부하고 연공하며 발정념을 했고 때로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렸지만 밖에 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었고 모두 집에 갇혀 있었다. 단지 핵산 검사를 하러 나올 때만 사람을 볼 수 있었다. 나는 이 기회를 이용해 인연 있는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렸다.

그러나 내 마음속에서 사당(邪黨)에 대한 증오는 이미 아주 강해졌다. 사당에 대한 증오심 때문에 나는 선(善)과 악(惡)에는 보응이 따른다는 것에 대해 의심이 생겼다. 나는 사당의 그런 부패한 관리와 악도(惡徒)들이 사당을 따라 온갖 악행을 저지르고 양심을 저버리며 대법제자들을 박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또 역병을 이용해 전체 중국인들을 박해하는데 그들은 왜 보응을 당하지 않는가? 사악한 당의 악도들은 여전히 ​​중국의 권력을 장악해 권위와 복을 누리며 법을 무시하는가? 반면 진선인(真善忍)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된 억만 수련인들은 오히려 사당의 비이성적이고 잔혹한 박해를 받고 있으니 인간 세상에서 대악(大惡)이 대선(大善)을 박해하는 비극을 연기하고 있으니 천리(天理 하늘의 이치)는 어찌하여 선악에 보응이 따르는 법칙을 보여주지 않는단 말인가?

마음속 의심과 혼란에 사악한 당에 대한 증오가 더해지자, 사상업력(思想業力)이 곧 기회를 타고 더 강해졌다. 또한 나의 법 공부, 연공, 발정념에도 영향을 주었고 사상이 고요해지지 않았으며 첫 느낌은 법을 공부할 때 고요해지지 않고 딴생각이 났으며, 머릿속에서 과거의 일, 직장일, 사당의 뻔뻔한 거짓말, 사악의 해외 침투 등이 떠올랐다. 마치 영화처럼 돌아가면서 상영되었는데 그야말로 대단히 혼란스럽게 올라와 억제하려 해도 누를 수 없었다.

나를 가장 고통스럽게 한 것은 바로 법 공부 할 때 사상을 집중할 수 없는 것이다. 법 공부를 하고 나면 마치 무언가에 사로잡힌 것처럼 머리가 몹시 피곤하고 둔해졌다. 한 강을 공부하는데 몇 시간이나 걸렸지만 효과는 좋지 않았다. 이전에 법 공부할 때 느꼈던 가뿐하고 순조로운 그런 느낌이 아니었다. 때로는 한 구절을 여러 번 읽어도 마음에 들어오지 않아, 대법이 마음에 들어갈 때까지, 억지로 여러 번 더 읽거나 심지어 십여 번을 읽어야 했다.

나는 자신의 원인을 찾기 시작했다. 무엇이 나의 법 공부를 이렇게 만들었는가? 내가 어찌 선악에 보응이 있다는 천리를 의심할 수 있는가? 나는 조용히 생각해 보았고 사상업력이 장난을 치고 있음을 발견했다. 사상업력이 내 법 공부를 방해해 내 마음이 고요해지지 못하게 했고 법 공부가 느려지고 기억나지 못하게 한 것이다. 나는 사상업력과 증오를 겨냥해 발정념을 강화하고 법공부를 강화해 대법이 마음에 들어가게 했다. 이 과정에서 나는 또 《전법륜》을 한번 외웠다. 평소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전법륜》의 〈주이스가 강해야 한다〉는 단락을 외웠으며 끊임없이 사상업력을 제거하길 꾸준히 견지했다.

2. 박해가 결속에 대한 집착심을 제거

1999년 7월 20일부터 대법에 대한 사당의 박해가 이미 25년이 지났지만 나는 지난 25년 동안 박해 결속에 대한 집착심이 없었다. 그런데 2024년 6월 5일 사부님의 최신 경문 《법난》을 공부하는데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사실 법난은 지역별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단지 표현이 다를 뿐이다. 법난 중에서 또 최후에 남겨질 생명과 도태될 생명을 선택하고 있는데, 또한 대법제자 중에 될 수 있고 될 수 없는 사람을 포함한다.”

나는 당시 자신에게 알려주었다. 사람 마음으로 법난이 결속할 시간을 상상하지 말아야 하며 일체는 다 사부님 정법의 수요(需要)에 따라 안배된다!

그러나 수련이란 바로 사람 마음을 제거하는 것으로 수련인이 집착심이 있고 없음은 누구보다도 사부님께서 잘 아신다. 아울러 사부님께서는 각종 방법으로 우리가 아주 깊이 감춘 집착심을 폭로해 그것을 제거하게 하신다.

나는 늘 자신은 박해 결속에 대해 집착하는 마음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최근 어느 날 제2장 공법 포륜(抱輪)을 연마하는데 사상이 청정하지 않았고, 마음속에 갑자기 이 박해가 이미 25년이나 지속되었고 아직도 지속되고 있는데 내가 이렇게 수련을 견지해도 도대체 수련 성취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재적인 수련을 포함해 아무런 변화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외재적인 형세마저 아주 아득한 상황이고 또한 앞으로의 희망도 볼 수 없었다.

전반 중국의 환경은 사악한 당에 의해 아주 혼란해졌고, 사람 마음이 패괴(敗壞)되어 아름다운 장면을 조금도 볼 수 없게 되었다. 나는 지금껏 사부님과 대법을 의심한 적은 없지만, 이런 내면의 시달림을 스스로 견디기란 정말 힘들었다. 이런 시달림은 수련 중의 고통에서 온 것이 아니라 중국대륙에서 대법제자에 대한 사당의 박해 형세에서 온 것이다! 이런 어두운 날들은 언제 끝날 것인가? 박해는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 이 사악한 중국 공산당은 대체 언제 해체될 것인가? 나는 박해 결속에 대한 집착도 사당에 대한 증오에서 비롯된 것임을 발견했다.

나는 마음을 고요히 하고 자신을 찾았다. 나는 왜 앞날을 걱정하는가? 나는 사당에 대한 증오와 사상업력이 마음속 불안을 만든 것임을 깨달았고, 자신의 견지(堅持)가 흔들리고 자신이 수련해서 제고할 수 있을지 의심하게 한 것을 발견했다. 더 깊이 찾아보니 또 안일심을 발견했는데 하루빨리 박해를 결속시켜, 지극히 어둡고 억눌리고 두려운 이런 날들에 대한 감당이 곧 극한에 달하리라 생각했다. 이때 사부님께서 한 단락 법을 내 머리에 넣어주셨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 제6강 〈마음이 반드시 똑발라야 한다〉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일정한 시기가 되면 당신에게 또 진짜도 아니고 가짜도 아니게 만들어 주어, 이 공이 존재하는지 하지 않는지, 수련할 수 있는지 없는지, 도대체 수련하여 올라갈 수 있는지 없는지, 부처가 있는지 없는지, 진짜인지 가짜인지 당신으로 하여금 분간하지 못하게 한다. 장래 다시금 당신에게 이런 정황이 나타나게 할 것이며 당신에게 이런 착각을 조성해 주어, 당신으로 하여금 그가 마치 존재하지 않으며 모두 가짜처럼 느끼게 하는데, 바로 당신이 견정할 수 있는지 없는지 본다. 당신은, 당신이 꼭 견정불이(堅定不移)하다고 하는데, 이런 마음이라면 그때 가서 당신은 정말로 견정불이할 수 있으며, 당신은 자연히 잘할 수 있다. 왜냐하면 당신의 心性(씬씽)이 이미 제고되어 올라갔기 때문이다.”

나는 곧 경각(驚覺)했고 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반드시 견정할 수 있다! 나는 반드시 이 아주 어두운 시기를 지나갈 수 있다!’

내 기억에 처음 이 단락 법을 배울 때 나는 절대 이런 상황에 처하지 않을 것 같았고, 자신이 수련해 나갈 수 있을지 절대 의심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29년을 수련하면서, 사당의 박해 형세를 마주해 사당에 대한 증오 때문에 내게 이런 의심이 생긴 것이다. 자신이 수련에서 제고할 수 있을지 의심했는데 이것은 근본적으로 사부님과 대법에 대해 견고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입으로는 사부님과 대법을 의심하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사실 내심의 집착을 은폐한 것이다. 나는 사부님의 이 단락 법을 베껴 시간이 나면 외웠다.

다음 날 아침 일어났을 때, 마음속의 그런 뿌연 먼지가 사라지고 마음도 가뿐해졌고 또 비관적인 것도 사라졌으며 수련에 대해 예전의 정진 상태를 회복했다. 마치 아예 그런 낙담했던 심정이 없었던 것 같았다. 더 중요한 것은 마음속의 그런 시달림도 완전히 사라졌으며 법 공부 할 때 마음이 고요해질 수 있었다.

내가 안일심을 없앨 수 있도록 사부님께서는 온갖 방법을 다 써서 나를 지도하고 점화해 주셨다. 그날 밤 나는 명혜문장을 읽다가 미국 플로리다의 동수가 쓴 《‘수레를 모는 나에게 마난(魔難)이 따르는데’에 대한 얕은 깨달음》을 보는데 《스위스 법회 설법》에서 인용한 한 구절이 마치 나를 말한 것 같았다.

“사람들은 속인사회 중에서 자신이 편안하게 지내고, 재해가 없으며, 난이 없고, 온종일 아주 편안하며, 유유자적하고, 돈도 부족하지 않으며, 필요한 것이 다 있다면 사람은 하느님(上帝)이 사람에게 자비하다고 느끼고 사람에게 아주 잘 대한다고 느낀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데, 하느님은 이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정말로 이렇다면 그것은 당신에게 아주 좋지 못하게 대하는 것이다.”

나는 문득 수련이란 바로 고통 속에서 마음을 닦고 죄업을 없애는 과정임을 깨달았다! 내가 어찌 안일한 마음으로 눈앞의 수련환경을 벗어나려고 생각할 수 있단 말인가? 중국대륙의 수련환경 역시 사부님 정법에서 안배하신 것으로, 대륙에서 대법제자가 된 것 역시 우리가 사부님과 사전(史前)에 맺은 서약이니 반드시 잘해야만 사명을 완수할 수 있다!

나는 사당에 대한 증오가 강력한 사상업력과 집착심이 생기게 한 근원임을 깨달았다. 증오는 사당의 본성이자 사악의 구체적인 표현이니 수련인은 반드시 이 증오를 제거해야만 한다. 내 사상업력과 증오의 물질을 제거하도록 도와주시고, 또한 내가 안일심을 제거하도록 도와주시고 내 사상을 바로잡아주신 분은 사부님이셨다. 사부님께서는 시시각각 늘 제자를 신변에서 보호해 주신다.

이때 나는 또 사부님의 《2018년 워싱턴 DC 설법》의 한 단락이 떠올랐다.

“일은 여전히 당신들이 해야 한다. 가장 간고하고 가장 어려운 상황하에서, 당신들은 사악을 무릅쓰고 하고 있다. 사부는, 실은 사부도 같이 있다. 공산사당은 내가 미국으로 숨었다고 말하는데, 나는 매일매일 중국에 있다! (뭇 제자 장시간 계속해서 열렬히 박수)”

사부님은 중생 구도를 위해 오신 것으로 매 제자의 상황에 대해 아주 똑똑히 아시며, 마땅히 어떤 집착을 제거할 때가 되면, 늘 사부님 안배가 있다. 나는 오직 끊임없이 정진하고 법을 많이 공부해 법 속에 용해해, 시시각각 정념을 지킬 수 있고 신사신법이 영원히 변치 않아야만 조사정법(助師正法)의 역사적 사명을 잘 완수할 수 있다.

사존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대법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현 단계에서 수련 경험이니 자비로 시정해 주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36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