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简体 | 正體 | English | Vietnamese

“고산유수에서 지음을 찾는” 진정한 원인

대법제자

【정견망】

우리는 사실 때때로 신통(神通)을 부러워 하는데 음악에 대한 이해 역시 부러워한다. 하지만 그것들은 그리 현오(玄奧)하지 않다. 모두 원인이 있는 것이다.

백아(伯牙)는 거문고를 잘 탔고, 종자기(鍾子期)는 연주를 잘 알아들었다. 한번은 백아가 태산(泰山) 북쪽을 여행하다 갑자기 폭풍을 만나 바위 밑에 머물렀다. 마음이 서슬퍼져서 거문고를 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계속되는 폭우를 표현하는 곡을 연주했고 이어서 또 높은 산[高山]이 무너지는 것을 표현하는 웅장한 소리를 연주했다.

백아는 거문고를 연주하면서 마음속으로 높은 산을 생각했다.

종자기가 듣고는 찬탄하며 “좋구나, 태산처럼 우뚝 솟았구나!”라고 했다.

이번에 백아는 속으로 흐르는 물을 생각했다.

그러자 종자기가 다시 갈채를 보내며 “좋구나! 호호탕탕한 것이 장강(長江)처럼 광활하구나!”라고 했다.

백아가 거문고를 연주할 때 어떤 생각을 품든 종자기는 늘 연주를 듣고 그것을 알 수 있었다. 백아가 어떤 곡을 연주해도 종자기는 늘 그 속에 담긴 취지를 알아들을 수 있었다.

백아가 문득 거문고를 내려놓더니 길게 탄식하며 말했다.

“좋구나, 좋아! 당신이 거문고를 들을 때 생각한 것이 내가 연주할 때 표현하려는 것과 같습니다. 내가 어디로 간들 내 마음속의 소리를 감출 수 있겠습니까?”

종자기가 백아의 거문고 연주를 듣고 이해할 수 있었는데 여기에는 아마 몇 가지 가능성과 원인이 있을 것이다.

하나는 자신의 심태(心態)가 순정하기 때문인데, 이렇게 사는 사람은 본성이 일면이 곧 드러날 수 있고 보통 사람들이 감수할 수 없는 일부 것들을 보거나 느낄 수 있다.

둘째로는 신통(神通)인데 일부 수련인 또는 신통을 지닌 사람들도 할 수 있다.

셋째는 연분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연분이 있을 때면 역시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일부 것들을 느낄 수 있다. 이런 것들은 흔히 특정한 사람에게만 유용하다. 소위 “암묵적으로 서로 마음이 통한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다.

사존께서는 《창춘 보도원법회 설법》에서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당신에게 속인의 마음이 없다면, 당신은, 각 방면에서 모두 당신을 교란하려 드는 다른 사람의 생각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이 무슨 문제를 생각할 때는, 그의 한 동작 한 표정, 아주 미묘한 표현까지도 목적을 띠게 마련이다.”

“평범한 마음이 없으면 다른 사람의 마음 속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있으며, 그 모든 측면이 당신을 방해 할 것이라고 말씀드립니다. 사람이 생각하는 것, 움직임, 표정, 아주 미묘한 표현 하나하나에는 모두 목적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람의 심태가 순정한 상황에서 능력을 말한 것이다. 종자기는 아마 집착심이 적어 본능을 드러낼 수 있었을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경문 《사부의 가족을 대함에 정확히 하라》에서 알려주셨다.

“기나긴 역사 속에서 중생과 세인 다수는 사부와 각종 인연을 맺게 되었으며, 더욱이 세인은 대다수 이미 사부와 혈연관계였다. 특히 대법제자 다수가 사부와 많은 생의 직계 가족인 적이 있는데, 이것 역시 대법제자가 될 수 있는 인연의 주된 원인이다.”

오늘날 세인은 사실 모두 창세주(創世主)와 인연이 있기에 창세주의 부름을 느낄 수 있다.

“고산유수(高山流水)에서 지음(知音)을 찾는” 배후의 원인은 흔히 모두 연분과 상태에 따라 결정되기 마련인데 지금은 모두 중요하지 않다. 오늘날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법(法)을 얻는 것이다. 연분은 “고산유수에서 지음을 찾음”이 형성된 것을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연분의 진정한 목적은 오히려 창세주와 이런 연분을 통해 법을 얻는 것이며, 이것만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인간 세상의 모든 것은 오늘날 정법(正法)과 세인이 법을 얻기 위해 다져진 것이다. “고산유수에서 지음”을 찾음 역시 이와 같은 것으로 연분의 기묘함과 법을 얻는 중요성을 설명할 수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모두 인연이 있는 것으로 인연이 있으면 상대방의 심사(心思)를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고산유수에서 지음을 찾는” 일반적인 원리다. 하지만 지금은 창세주와의 연분만이 우리가 마땅히 관심을 지닐 것이며, 법을 얻어 하늘로 돌아가는 것만이 가장 중요하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42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