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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신법(信師信法)”을 다시 말함

해외 대법제자

【정견망】

나는 1998년에 대법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720 이후, 특히 전에 세례받았던 다른 종교와 완전히 결별한 후, 나는 줄곧 신사신법(信師信法)에 아무 문제도 없다고 믿어 왔다.

하지만 어느 날, 한 동수가 동수 W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중 한 가지 세부 사항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바로 동수 W가 어느 한 가지 일에 대해 사부님께서 전에 말씀하신 것과 나중에 다른 동수가 한 질문에 대한 대답이 반대였을 때 이 동수는 곧바로 자신이 대체 어떤 문제가 있는지 찾았고 어디에 제고할 필요가 있는지 찾았으며 그 외 다른 어떤 생각도 없었다고 했다. 나는 당시 나와 이 동수의 신사신법에 아주 큰 격차가 있다고 여겼다. 이런 경험은 또 나로 하여금 신사신법이란 이 주제에 대해 보다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나는 밀레르빠의 수련 이야기가 생각났다. 밀레르빠는 사부가 자신을 대하면서 여러 차례 말을 뒤집고 억울한 누명을 씌우고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신체적 고통을 겪게 했을 때에도 어찌하여 시종 의심하지 않고 여전히 사부의 요구에 따라 할 수 있었는가?

내가 720 당시를 생각해 보니, 사악이 사부님을 겨냥해 천지를 뒤덮는 비방과 모함을 듣거나 보고 나서, 나는 사람 속에서 신봉하던 가치관으로 가늠해 사부님이 바르고 좋다고 인정하고 그런 후에 대법을 확고히 수련하며 오직 대법만 닦았다.

그런데 오늘 나는 이미 자신의 근본집착을 보았는데, 그것은 바로 내가 신봉(信奉 믿고 떠받드는)하는 사람 속의 이치를 가장 근본으로 삼고 또 이를 최종적으로 가늠하는 표준으로 삼아 이를 통해 대법과 사부님을 가늠한 것이다. 자신의 집착을 가지고 대법에 들어가는 것은 정상적이다. 왜냐하면 그때의 나는 법(法)에서 법을 인식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날에도 여전히 매체 인터뷰에서 사부님께서 무료로 ‘자원봉사’를 하셨다거나, ‘생활이 단순하셨다’거나 자신의 관념에 부합하는 다른 것들을 가늠하는 표준으로 삼는다면 그럼 나는 여전히 사람 속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하면, 수련 중에서 어느 한 층의 법(法)이나 한 가지 일이, 자신이 인정하는 사람 속의 이치에 부합하지 않을 때면 수련인이 법을 배반하기 쉽다.

《미국서부국제법회설법》에서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내가 여러분에게 수련을 가르친다고 하여 나도 당신들과 마찬가지로 수련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만약 이렇다면, 우리가 좋지 않으면 당신들은 곧 수련하지 않을 것인데, 그렇지 않은가? 내가 당신들에게 전한 법속에는 사부가 반드시 수련인과 똑같이 고생스럽게 수련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나는 중생을 위해 고생을 겪음으로써 사악에게 공격을 당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좋지 않으면 당신들은 곧 수련하지 않을 것인데, 그렇지 않은가?”라는 구절은 정말로 내게 아주 큰 충격을 주었다. 사람을 구하는 각자가 어찌 “좋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현재의 제한된 층차에서 나는 깨달았다. 우리가 눈으로 본 좋지 않은 것의 배후에는 더 깊고 더 넓은 배치가 있는 것은 아닐까? 예를 들어, 밀레르빠의 사부는 표면적으로 아주 좋지 않게 보일지라도, 배후에서는 제자의 성취를 위한 진실로 고달픈 마음 씀이 있었다. 앞에 언급한 동수는 사부님께서 같은 질문에 대해 다른 답변을 하셨을 때, 그것은 우리 사부님께서 부동한 층차에서 수련하는 제자들을 고려해 각자 부동한 수련 내용을 말씀하셨거나 또는 아직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보다 많은 이치가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진수제자(真修弟子)의 대법에 대한 바른 믿음은 자신이 착실하게 수련하는 과정에서 수립된 것이다. 일단 자신이 얻은 것이 진법(真法)이고 진도(真道)라고 인정했다면, 수련인은 수련의 길에서 부딪히는 모든 것을 사부님의 가르침에 따라서 가늠하고, 부동한 층차의 부동한 법에 무조건 동화해야 한다.

이 외에도 나는 자신에게 속인 중에 살아가는 사부님을 신격화하지 말라고 스스로에게 경고한다. 《창춘 보도원법회 설법》에서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내가 당신들에게 알려주는데, 나에게 만약 하나의 속인 사상이 없다면 나 역시 여기에 머물 수 없다. 바로 이 일을 하기 전에 내가 사람의 사상을 규합했는데, 사람 가운데 있으면서 이렇게 당신들에게 설법할 수 있게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많은 일은 당신들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또 《20년 설법》에서 말씀하셨다.

“비록 이러하지만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사부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표현할 것이다. 정법이 종결되기 전까지는 누구에 대해서도 신처럼 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내가 지금 신과 마찬가지라면 당신들의 수련 환경을 파괴하게 되며, 당신들이 수련 중에서 깨달아야 하는 이 미혹이 타파됨으로써 당신들이 한 것과 당신들의 수련 이후를 모두 인정할 수 없게 된다. 이 일체를 망가뜨리면 중생도 구도될 수 없다. 그러므로 당신들은 사람 마음으로 법을 가늠하지 말고, 사람의 생각으로 사부를 보지 말라. 사부가 전한 이 법은 당신들을 수련시킬 수 있으며, 당신들은 이 법 중에서 수련하고 있다. 이 법으로 대조하라. 법은 틀림이 없다. 법은 그의 가장 표면적인 사람의 문자, 사람의 문자 구조가 있다. 하지만 결코 이러한 표면에 국한되지 않으며, 층층층층 법의 내포가 있다.”

사악은 대법과 대법제자들을 고험하기 위해 해외에서 법난(法難)을 만들었고, 사부님께서는 장계취계(將計就計)로 남아있는 15%의 업력을 없애고 대법제자를 성취하게 하셨다. 수련인은 어지러운 현상 속에서 초심을 지켜야 하고, 견정한 신사신법으로 대법을 수호해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경문 《도법》에서 말씀하셨다.

“사실 대법(大法)은 단지 사람만 제도하는 것이 아니다. 역시 각계 중생에게 말해 주는 것으로, 깨달은 본성은 스스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것이다. 당신들 사람의 이 일면을 애호(愛護)함은 당신들에게 법에서 깨우치게 하는 데 있다. 대법(大法)은 중생을 원용(圓容)하고 있고, 중생 역시 대법(大法)을 원용하고 있다. 내가 당신들에게 법의 장엄함과 신성함을 알려준 목적은 법에 대한 당신들의 미혹, 오해를 지워버리는 데 있다.”

우리는 영원히 수련하는 사람으로 남아 있을 수 없고, 장기간 사부님의 보살핌을 받으며 사람 속에 머물 수 없다. 우리는 진정으로 깨달아 올라가야 하는데, 정법제자의 개인 원만은 단지 수련의 기초일 뿐이며, 정법제자는 인간 세상에서 법을 실증하고 조사정법하며 중생을 구도할 책임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을 명백히 알아야 한다.

현재 개인의 제한된 층차에서의 인식이니 부당한 곳이 있다면 시정을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46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