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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난교류】 신(神)이 되어 사람에서 걸어나오자

중국 대법제자 미련(微蓮)

【정견망】

사부님께서는 《법난》에서 분명히 말씀하셨다.

“사실 나는 우리가 사람을 구하고 있는 동시에, 아직도 15%의 업력을 없애지 못했음을 알고 있다. 이것은 중생구도 20여 년간 남겨진 것으로, 이는 매우 거대한데, 나는 알고 있다. 그러므로 내가 직면해야 할 거대한 압력과 감당해야 할 것들이 하나하나 다가올 것이다.”

비록 내가 이 단락 법의 깊은 내함(內涵)을 깨닫기는 여전히 어려웠지만, 당시 많은 동수는 법난의 일이 닥칠 것을 예상했고 또한 션윈(神韻)에 대해 음모를 꾸미는 사악에 대해 한동안 발정념을 했다. 지금 사령(邪靈)은 서슴없이 사부님 신변에 흑수(黑手)를 뻗쳐 여론전과 소송전이란 초한전(超限戰)을 벌이고 있다. 그것의 궁극적인 목표는 중생을 훼멸하는 것이다.

대륙의 법난 초기를 돌아보면, 사부님께서는 중공사당(中共邪黨)에 속아넘어간 국제 사회 민중들이 파룬궁 진상을 모르는 강력한 압력을 무릅쓰고 미국 및 해외 제자들을 이끌고 인간 세상에서 선량한 민중들이 파룬따파를 널리 인정하도록 초기의 상황을 역전시키고 대륙 제자들에 대한 박해를 감소시키셨다. 그런데 지금 정사대전(正邪大戰)의 주전장이 미국으로 확대되었으니 대륙제자들은 절대 관망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사령의 소굴은 대륙에 있고 대법제자의 주체는 대륙에 있으며, 대법을 수호하고 사부님을 도와 사람을 구함은 제자들의 사명이고 우리로선 미룰 수 없는 책임이기 때문이다. 안일과 나태는 수련인의 상태가 아니다. 모두가 즉시 신(神)이 되어야 하고, 움직여야 하며, 사람에서 걸어나와야 한다. 해내외(海內外) 제자들이 강력한 정체를 형성하고, 이를 계기로 삼아 법에 없는 염두와 행동을 바로잡아야 한다.

1. 신(神)이 되어야

정법수련이 이미 25년 이상 지나 대열에서 떨어지지 않고 정법 노정을 따라온 대다수 동수들은 이미 성숙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1999년 7·20 법난이 시작된 초기, 사부님께서는 7·20 이전에 법을 얻은 제자들을 모두 제 위치까지 밀어주셨다. 보다 효과적으로 조사정법(助師正法)하도록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불법신통(佛法神通)을 하사하셨고, 우리더러 발정념으로 악인과 악행을 제지하게 하셨다.

사부님께서는 《대법제자의 정념은 위력이 있다》에서 말씀하셨다.

“사실 대법제자 매 사람은 모두 능력이 있다. 단지 표면공간에서 표현되어 나오지 않아 공능이 없다고 여길 따름이다.”

그러므로 악을 없애는 것은 법을 바로잡는 것으로 또한 세인과 중생을 구하는 것이다.

《무엇이 공능인가》에서 “공능(功能)은 신통(神通)이라고도 하는데 현대인은 초능력(超能力)이라고 부른다.”라고 하셨고 《정념의 작용》에서는 “그러나 무릇 어려움이 얼마나 크던지 모두 확고하게 정념(正念)으로 사악을 제거해야 한다. 왜냐하면 악을 제거하는 동시에 또한 정법 속에서 대법제자의 위대한 위덕(威德)을 수립하는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알려주셨다.

지난 25년 동안, 동수들의 각종 교류 문장을 통해, 열려서 수련하든 닫혀서 수련하든, 모두 사부님의 점화와 가지(加持), 호법신의 조력(助力)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발정념은 우리 매 정법시기의 대법제자가 반드시 해야 할 세 가지 일 가운데 하나다. 우리가 정체적으로 입장(立掌)하는 그 순간, 우리는 다른 공간의 사악과 교전하는 것으로 바로 조사정법하는 것이다.

현재 우리 지역의 동수들은 교류를 통해 인식했다. 이 역사적 관건 시각에 발정념의 힘을 크게 강화하고 자신의 불법신통을 동원해, 깨달은 그 일면(一面)의 작용을 발휘해 사부님의 압력을 돕고 줄이는데 도움이 되어야 한다.

2. 움직여야

사부님께서는 《수련과 종교》를 발표하신 다음 날, 필자가 가부좌에서 막 출정하려 할 때 일념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천군만마(千軍萬馬)로 조정(朝廷)을 수호하라.” 나는 즉시 생각했다. 이 천군만마란 필경 천병천장(天兵天將)일 것이며 사부님 경문은 바로 층층 공간 생명의 법지(法旨)이자 호령(號令)이니 천병천장은 이미 사존의 성가(聖駕)를 수호하기 위해 교전하고 있다.

며칠 후 미국 동수의 교류 문장을 보고 나서야 나는 사령(邪靈)이 이미 미국 법률소송과 여론을 이용해 위대한 사부님과 대법을 비방하고 모함하려는 계획임을 알았다. 이는 천상(天象) 변화가 여기에 이르러 사악이 감히 멸망의 끝장을 달게 받아들이지 않고 고집을 부리며 최후의 발악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천상과 인간 세상에 대응하는 천병천장은 바로 우리 전체 대법제자들이다.

“천상변화는 만약 아래에서 움직이는 사람이 없다면, 속인사회에 어떤 상태도 가져다줄 수 없으며, 그것을 천상변화라고 할 수도 없다.”(《전법륜》)

현재 천상에서 아래에서 누가 움직이는가? 당연히 우리 대법제자들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번 큰 연극의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움직이는가?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당신들은 늘 나에게 위로 이끌게만 하고 당신들 스스로 가지 않아서는 안 된다. 법을 명시적으로 말해야만 당신들은 비로소 움직이며, 명시적으로 말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거나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 나는 이런 행위를 수련이라고 인정할 수 없다.”(《정진요지》〈뿌리를 캐다〉)

우리는 법에서 발정념은 다른 공간의 사악을 해체하는 것이고, 인간 세상의 일은 또 이지적으로 처리할 사람이 있음을 알고 있다. 우리는 단지 사상(思想)에서만 움직일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도 움직여야 한다. 대륙 대법제자들은 지난 25년간 반박해(反迫害)하면서 어느 정도 경험을 쌓았고, 이는 사악을 억제하고 박해를 줄이는 데 모두 매우 좋은 작용을 일으켰다.

《사기 손자오기열전》에 “위(魏)나라를 포위해 조(趙)나라를 구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것은 삼십육계(三十六計)의 하나이자 고인(古人) 지혜의 결정이다. 과거를 지금에 이용하면 모든 고대 문화는 다 우리가 오늘날 조사정법하는데 바르게 사용하고 선(善)하게 사용하면 모두 좋은 용도로 활용할 수 있다. 간단히 말해서, 바람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바람을 움직이고, 비를 부릴 수 있는 사람은 비를 부릴 수 있다. 팔선(八仙)이 바다를 건너며 각자의 능력을 드러내고 사악을 두려워 떨게 만들고 곧장 사악을 깨끗이 제거하는데 이르러야 한다.

3. 사람에서 걸어나와야

첫 번째는 물질 공간의 사람에서 걸어나와야 한다. 모두 알다시피 단체 법공부는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남겨주신 수련 형식의 하나다. 그러나 일부 동수는 박해 받은 후 법공부 소조에 참가하지 못해 상호 촉진하는 환경을 잃었고 정진(精進)의 동력이 부족해 속인처럼 살고 있다. 자손들의 하인이 되거나 돈벌이 도구가 되어 속인의 즐거움을 즐기며 자신이 세상에 온 사명을 망각했다. 어떤 동수는 단지 법 공부만 참가하고 사람을 구하는 일은 하지 않는데 반박해 초기에 공헌을 많이 했으니 ‘공로부(功勞薄 공로를 기록한 장부)’에 누워 원만을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고 여긴다. 또 어떤 동수는 걸어나왔지만 여전히 외지 동수의 집을 찾아가 자신의 울타리를 형성하는데 병업 중인 동수에게 발정념을 해준다는 구실로 이집 저집 다니는 것을 좋아하지만 자신이 담당한 구역에서 사람을 구하는 사명은 망각했다. 또 어떤 동수는 돈벌이에 빠져 법을 공부하지 않고 연공도 하지 않으며 또한 핸드폰으로 푼돈을 벌기에 바쁘다.

마치 어떤 동수가 말한 것과 같은데 “사부님 경문을 구하는 사람은 많지만, 사람을 구하는 바른 일을 하는 사람은 적고, 오직 대법 속에서 구할 줄만 알고 세상에 온 사명이 중생구도임을 망각했다.”

비록 위에서 말한 상황이 현지 동수의 주류는 아니지만, 이런 동수들은 확실히 여러 사람의 조사정법(助師正法)을 뒤로 잡아당기고 있다. 자세히 생각해 보라, 어떤 사람 마음이 상술한 동수들이 정진하는 길을 가로막았는가? 한 글자로 하면 두려움(怕)이다. 속인의 이익을 잃을까 두렵고 박해받을까 두려운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일찍이 《생사의 고비(死關)에서 벗어나라》에서 우리에게 경고하셨다.

“두려운 마음은 사람으로 하여금 그릇된 일을 할 수 있게 하며, 두려운 마음은 또한 사람으로 하여금 기연을 잃게 하며, 두려운 마음은 사람이 신을 향해 나아가는 데 있어서 생사의 고비이다.”

또 최근 거듭 우리에게 경고하셨다.

“구세력이, 중공사당이 통치하는 그렇게 큰 국가를 이용하여 전력으로 탄압했는데, 아직도 수련의 엄숙함을 모르는가? 사람이 신으로 성취되는, 이는 역사상 있어 본 적이 없는 것인데, 엄숙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대법제자가 수련 중에서 잘하지 못했을 때의 각종 침통한 교훈이 아직도 당신을 청성하게 깨어나도록 하지 못하는가?”(《대법수련은 엄숙한 것이다》)

지난 2년 동안 사악에게 육신이 끌려간 동수들을 보면 교훈이 얼마나 심각한가. 만약 당신이 정법의 최후에 도달해서도 깨달을 수 없고 정법 노정을 따라가지 못한다면, 자신의 서약 실현과 그야말로 생생세세(生生世世) 겪었던 그 윤회의 고통이 오늘 하루아침에 망가질 것이다!

몇 년 전, 필자는 동수가 제작한 《영원한 시편》에서 “사부님께서 피눈물을 흘리셨다”는 것을 보고 당시에는 깊은 이해가 없었다. 지금 사부님께서 다시 사악의 비방과 공격을 받으시고, 미국 사법을 이용한 소송으로 사부님께서 난을 겪으시는 이 일체는 다 제자들의 사람 마음이 초래한 것이 아닌가? (나를 포함) 이때에야 비로소 사부님께서 피눈물을 흘리신 것은 단지 세인에 대한 연민과 중생에 대한 자비일 뿐만 아니라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제자들에 대한 사랑과 아낌, 연민과 걱정에서 나온 것임을 깊이 느낄 수 있었다.

우리 마음을 고요히 하고 진지하게 생각해 봅시다.

사부님께서 우리를 구도하기 위해 거듭 시간을 연장하셨고, 거대한 감당과 희생으로 제자들이 정체적으로 제고할 때까지 기다리신 것을 생각해 보라. 감옥에 갇힌 동수들의 위험한 처지를 생각해 보라. 아직도 구도를 기다리는 세인들이 아주 많은데 마비되어 깨닫지 못할 수 있는가. 사악이 정법과 대법제자들의 수련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것을 생각해 보라.

우리가 어찌 인터넷과 핸드폰에 빠져 게으르게 전진하지 않으면서 편안할 수 있는가? 자식 정에 빠져 스스로 헤어나지 못할 수 있는가? 돈벌이와 재산 축적에 집착해 고향을 잊을 수 있는가? 속인의 사람 마음, 사람 생각, 사람의 정에 빠져 사부님을 따라 세상에 내려온 애초의 서약을 잊고 사람에서 걸어 나오지 못할 수 있는가?

사부님께서는 《최후일수록 더욱 정진해야 한다》에서 분명히 알려주셨다.

“사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과거의 수련인은 일생을 다 소모해야만 비로소 끝까지 걸을 수 있는 길에서도 감히 한 시각도 태만하지 못했다. 대법이 구도한 생명의 과위를 성취하려는 대법제자는 수련 중에서 또 가장 편리한 수련법문이 있는데 이런 법을 실증하는 수련의 가장 위대한 영예가 일순간에 지나가는 짧은 수련시간 내에 어찌 더욱 정진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두 번째는 사람의 껍질에서 걸어나오는 것이다. 오늘에 이르러 동수들의 수련 상태는 천차만별이다. 다년간 수련한 노동수들의 일부는 법리에 대한 제고가 올라가지 못해 감성적인 인식에 머물러 있으며, 사람을 구하는 사명감이 강하지 않다. 어떤 이들은 오직 《전법륜》만 공부하고 《각지 설법》은 읽지 않거나 아주 적게 본다. 법조차 제대로 보지 않고 心身이 완전히 대법에 동화하지 못했다. 사부님께서 어떻게 우리에게 심층의 법리를 점오해주실 수 있겠는가!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정진요지》를 최소 10번 읽으라고 하셨는데, 나를 포함해서 우리 얼마나 되는 동수들이 했는가? 만약 마음을 고요히 하고 마음을 기울여 《각지 설법》을 많이 공부한 후 다시 《전법륜》을 볼 때면 법리가 한 층 한 층임을 느낄 것이며, 사부님께서 우리를 이끌고 신(神)의 길에서 한 계단 한 계단 위로 올라가심을 깨닫게 될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후기 《각지 설법》에서 일찍이 우리더러 사람을 구하는 속도를 빨리하라고 하셨는데 우리가 이런 법을 많이 공부하지 않으면 사람을 구하는 긴박감이 없을 것이다.

또 《호주 수련생에 대한 설법》 영상을 어떤 동수들은 거의 보지 않는다. 만약 몇 번 더 본다면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수련 중의 ‘안으로 찾기’란 황금 열쇠를 확실히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럼 모순에 부딪혔을 때 어떻게 자신을 찾는지 알 수 있을 것이며 오늘은 이것이 못마땅하고 내일은 저것이 못마땅한 것이 나타나지 않을 것이며, 동수 간의 간격이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 수련 중에서 부딪힌 모든 문제는 다 자신의 심성을 닦으라는 법리이고 법리로 그 한 층의 오물을 씻고, 그 한 층의 사람껍질을 제거하며, 그 한 층 공간 물질의 인체에 대한 속박에서 벗어나 구우주의 기제에서 벗어나라고 하는 것임을 명백히 알게 될 것이다.

심신이 즐겁고 육체가 가벼우며 하늘이 맑고 투명하고 유암화명(柳暗花明)의 수승(殊勝)함과 수련의 현묘(玄妙)함을 느낄 수 있다. 이치적으로 안으로 찾음의 심각한 내함이 얼마나 영명(英明)하고 위대한지 깨달을 수 있다. 그런 모순, 번거로움, 간격, 장애는 단지 우리에게 준 마음을 닦고 집착을 제거할 도구에 불과할 뿐이다. 또 주먹을 쥐고 정체를 형성해서 악을 제거해야만 법력이 무한하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사부님께서 우리 때문에 걱정을 덜 하실 수 있을까?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이 몇 년 동안의 수련 중에 나는 당신들을 위해 매우 많은 것을 감당한 외에, 동시에 당신들의 제고를 위해 끊임없이 당신들에게 점오(點悟)해 주었고, 당신들의 안전을 위해 당신들을 보살펴주었으며, 당신들이 원만할 수 있게 하려고 당신들이 부동한 층차에서 진 빚을 갚아주었다. 이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며 또한 속인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단지 이런 사람들이 너무나 이지적이지 못하고 대법(大法)과 수련의 기연(機緣)을 소중히 여길 줄 모를 뿐이다.”(《정진요지 2》〈교란을 배제하자〉)

사부님의 거대한 감당과 압력은 중생을 위해 죄업을 없애신 것으로, 여기에는 당연히 매 제자의 쌓인 업채(業債)도 포함된다. 제자로서 우리는 늘 사부님께서 우리를 위해 소업해 주시는 것에 의지해선 안 된다. 우리는 인간 세상의 반대로 되는 이치 속에서 사람의 껍질을 닦아 버려야 한다. 대륙의 잔혹한 박해 환경 속에서 세인을 구하는 중에서 고생을 많이 겪으면 일부 업력을 없앨 수 있다.

사부님께서는 《법난》에서 말씀하셨다.

“대법제자는 사부를 따라 사람을 구하는 동시에 자신도 구도하고 있고, 본인의 업력도 없애고 있는데,”

그러므로 우리는 늘 자각적이고 주동적으로 사람을 구해야 하는데 이 또한 사부님의 부담을 줄이고 압력을 경감할 수 있다. 착실하게 자신을 수련하고 사부님께 감사의 마음을 바치자. 바라는 것은 오직 사부님께서 웃으시는 것뿐이다!

이상의 내용은 필자가 최근 수련 층차에서 깨달은 것이니 법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진심으로 자비로 시정해 줄 것을 간청한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45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