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션윈무용 《오공과 홍해의 대전》을 보고 든 생각

중국 제자

【정견망】

당승 사도(師徒)들이 경전을 구하러 가는 홍해(紅孩)란 요정을 만난다. 홍해는 가상(假象)을 만들어 자신을 나무 위에 매달아 놓고 당승을 유혹해 자신을 구출하게 한다. 오공은 요정의 흉계를 알아차리고 당승을 저지하지만 당승은 그를 믿지 않고 오히려 긴고주(緊箍咒)를 외운다. 오공이 고통스러워 하자 홍해가 당승을 납치해 간다. 오공은 홍해와 대전(大戰)을 벌이다 오히려 홍해가 뿜어내는 삼매진화(三昧真火)에 부상을 당한다. 오공은 사해(四海) 용왕을 찾아가 도움을 청하고 용왕이 물을 뿌려 주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오공은 또 홍해의 아버지인 우마왕(牛魔王)으로 변신해 사부를 구하려 했지만 홍해에게 간파당한다. 마지막 순간, 관음보살이 나타나 홍해를 제압해 데려간다.

이 이야기는 줄거리가 스릴이 넘치고 무대 연출과 배경이 잘 어우러져 더욱 흥미진진한데 나는 여기서 다음 몇 가지를 깨달았다.

첫째, 당승은 육안(肉眼)으로 요괴를 간파하지 못하면서도 자기 고집을 세우며 오공의 말을 듣지 않아 결과적으로 문제를 자초했다. 여기서 생각난 것은 항목에서 동수들도 이런 표현이 있는데 능력이 없는 이가 능력 있는 사람을 관리하고, 일을 잘하는 이는 말할 줄 모르고 일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 말을 잘하며 늘 당신을 화나게 하고 불평하게 하는데 이것이 바로 수련이다. 사실, 오공이 설령 당승이 홍해를 구하는 것을 가로막지 않았다 해도 이 하나의 난(難)은 마찬가지로 존재해, 당승이 고생을 겪고, 업을 없애며, 마음을 제거하는 것은 조금의 차이도 없었을 것이다. 오공 등 세 사람이 한 마음으로 요마와 싸우고 사해 용왕이 협력하는 것은 모두 정체적으로 힘을 합해 악(惡)을 제거하는 것으로 자아를 내려놓는 가운데 자신을 성취하는 것이다.

둘째 : 현재 미국에서 한창 정사대전(正邪大戰) 중인데, 오공이 홍해 요정과 대전이 션윈 무용에 나오는 것은 절대 우연이 아니다. 악당(惡黨) 홍마(紅魔 붉은 마귀)가 미국에서 대법을 단속하려 하는 것이 마치 요정이 어린아이로 변신해 자신을 나무 위에 묶어놓은 것과 비슷한데 사람들의 시선을 돌린다. 이런 작은 속임수가 비록 일시적으로 사람을 미혹시킬 수는 있지만 사해가 모두 홍마를 토벌하면, 홍해가 처음에는 우세를 점하지만 아무리 흉악해도 결국 관음보살에게 얌전히 거둬진 것처럼, 홍마가 아무리 날뛰어도 사(邪)는 정(正)을 이길 수 없다. 우리 정체가 표준에 도달할 때면 홍마는 반드시 멸(滅)한다! 2025년이 바로 그 전환점이다.

셋째 : 홍해 요정을 제거한 후 팔계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낮잠을 자려 하지만 오공이 돌아와 깨워 함께 전진한다. 이 미세한 부분이 아주 흥미로운데 수련인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나태와 게으름, 뒷심 부족이다. 곧 정법(正法)이 결속되려 하는데 적지 않은 동수들에게 나태와 안일한 상태가 나타났고 세간의 의혹에 발걸음이 당겨졌다. 사부님께서는 이 무용으로 제자들더러 절대 느슨해져서 지금까지의 공(功)이 수포로 돌아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격려하신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각지 설법 13》〈2015년 미국 서부법회 설법〉에서 말씀하셨다.

“잘하지 못한 그러한 수련생은 어찌하겠는가? 여러분은 모두 내가 여러분에게 미소 짓는 것을 보기 좋아한다. 그러나 당신들이 알듯이 그것은 고무 격려이고 그것은 기대이다. 생각해 보았는가. 이 시간은 또 이렇게 긴박한데 잘 수련하지 못한 사람은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떤 사람은 아직 기회가 있고 어떤 사람은 심지어 기회조차 없어졌다. 어떤 사람은 그래도 늦지 않았으며 어떤 사람에 대해 말하면 당신은 오로지 뛰어야 한다. 그러나 그런 기초가 없고 법에 대해 또 그런 정도 인식밖에 없으면, 그럼 어떻게 견지할 동력이 있겠는가?”

“그러나 만약 정말로 매우 많은 사람이 떨어지고 따라가지 못하면, 내가 말하는 것은 대법제자인데, 그것이야말로 가장 가슴 아픈 일이다.”

“물론 우리 일부 수련생은 아주 잘했지만, 잘한 수련생을 포함하더라도 원만의 정도에는 이르지 못했다.”

이 무용극은 깊은 의미가 있는데 사부님의 고심(苦心)을 이해해야 하며, 사부님께서는 우리를 구도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난(難)을 겪으셨는가? 최후 시각에 힘을 내야 하며, 사람에서 걸어나와야 하는데, 사회 형세가 어떠한지 보지 말아야 하고, 트럼프가 올라온 후의 각종 거동을 예측하지 말아야 하며, 악당이 언제 무너질까 기대하지 말아야 하고, 시(習 시진핑) 마두(魔頭)가 어떠한 지도 생각하지 말며, 25년을 겨냥한 모든 예언도 생각하지 말고,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의 결말도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반대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날마다 발정념을 몇 번이나 했는지, 법은 얼마나 공부했는지, 몇 사람을 구했는지, 연공은 제대로 했는지, 누구와 마음의 매듭은 없는지 등이다.

2024년이 순식간에 지나갔듯이 2025년은 더 빨리 지나갈 것이니 다그쳐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잘한 수련생을 포함하더라도 원만의 정도에는 이르지 못했다.”(《각지 설법 13》〈2015년 미국서부법회 설법〉) 당신이 아무리 수련을 잘했어도 모두 이 구절 법으로 자신을 한번 가늠해야 하는데 어쩌면 2025년이 보충할 수 있는 마지막 해가 될지 모른다.

작은 체험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4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