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제자
【정견망】
음력 정월 어느 날, 빨래를 마치고 남편과 함께 발코니에 나가 빨래를 널었다. 남편은 내가 일하는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욕설을 했다.
나는 “당신 말이 너무 저속해요!”라고 말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탁자에 앉아 법 공부를 하려고 했지만, 마음이 평형을 이루지 못했다.
‘정월(正月)에 큰 소리로 사람을 욕하다니 사람이 뭐 어찌 저 모양일까? 자신은 참지 못하면서 늘 나를 괴롭히고 욕을 하니 정말 어이가 없구나! 나는 정말 남편을 잘못 골랐어.’
생각할수록 화가 치밀었다. 잠시 후, 남편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한 얼굴로 “주전자는 어디 있어?”라고 물었다. 나는 팍하고 주전자를 그에게 집어던졌다. 나중에 남편이 발코니 문을 닫자, 나는 문을 열었다. 나중에 남편이 에어컨을 켰고, 나는 짜증이 나서 에어컨을 껐다. 그가 무언가를 할 때마다 반대로 행동했다. 그와 말다툼까지 하진 않았지만, 줄곧 기분이 좋지 않았다. 점심에도 식사 준비를 하지 않고 화가 나서 누워있었다.
낮잠에서 깨어났을 때, 좀 냉정해져야겠다고 생각해서 책을 들고 법을 외우기 시작했다.
“心性(씬씽)이 얼마나 높은지 가늠하는 데는 또 척도가 있다. 척도와 공기둥은 동일한 공간에 존재하지 않지만, 그것은 도리어 동시에 존재하고 있다. 당신의 心性(씬씽)이 수련되어 올라오면, 예컨대 속인 중에서 다른 사람이 당신에게 욕을 한마디 해도 당신이 아무 소리 하지 않고 당신의 마음이 아주 태연하며, 당신을 주먹으로 한 대 쳐도 역시 당신이 아무 말 하지 않고 한번 웃고 지나간다면, 이 사람의 心性(씬씽)은 이미 아주 높다. 그러면 당신이 연공인(煉功人)으로서, 당신이 마땅히 얻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 당신은 공을 얻지 않는가? 당신의 心性(씬씽)이 제고되어 올라오면 당신의 공은 곧 자라 올라온다. 心性(씬씽)이 얼마만큼 높으면 공도 얼마만큼 높은데, 이것은 절대적인 진리다. 예전에 어떤 사람은 공원에서 연공(練功)하든 집에서 연공하든 연마(練)에 무척 정성을 들이고 아주 경건하며 연마(練)함도 괜찮았다. 그러나 문만 나서면 그가 아니다. 제멋대로 하며 속인 중에서 명예와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과 다투고 싸우는데, 그의 공이 자랄 수 있겠는가? 전혀 자랄 수 없으며, 그의 병이 나을 수 없는 것도 역시 이 때문이다. 왜 어떤 사람은 장기간 연공(練功)해도 병이 낫지 않는가? 기공은 수련으로서, 초상(超常)적인 것이며 속인 중의 체조가 아니기 때문에 반드시 心性(씬씽)을 중히 여겨야만 병이 낫거나 공이 자랄 수 있다.”(《전법륜》)
이번에 다시 이 단락을 외웠는데, 층층(層層)의 법리가 아주 명확히 드러났고 직설적이고 명백하지만 깊이 생각해 보게 했다. 예를 들어, 심성을 가늠하는데 척도가 있는데 심성을 수련해 올라가야만 담담하게 웃을 수 있고 심성을 수련하지 못하면 끝없이 다투면서 병이 낫지도 못하고 공이 자라지도 못할 것이다.
법의 표준에 따라 자신을 가늠하고 자신을 대조해 보니, 내 심성에 많은 문제가 있음을 발견하고 부끄러웠다.
첫째, 내가 그렇게 강렬하게 반응하고 화를 낸 이유는 심성이 속인 중에 있기 때문이다. 사실, 남편과 나는 거의 비슷하다. 둘 다 남이 (자신을)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시시콜콜한 걸 따지기 좋아하고, 나쁜 말을 들으면 참지 못한다. 내 심성이 속인 속에 있으니 무슨 일이 생기면 속인의 이치로 가늠한다. 내 심성이 남편과 같은 층차에 있으니 그가 나를 욕하면 나를 건드려 마음속에서 분노를 일으켰고 내재된 악의(惡意)를 불러일으켰다.
나는 자신에게 물어보았다.
‘만약 남편의 욕설이 1층이고 내 심성이 2층이라면 그가 나를 건드릴 수 있었을까? 만약 내 마음의 용량이 다른 사람의 허물을 용서할 정도로 컸다면 내가 남에게 복수할 수 있겠는가?’
내 마음의 용량이 작으니 남편의 욕조차 용납하지 못했고 이것이 바로 당시 나의 진실한 심성이었다. 20여 년을 배웠고 20여 년을 수련했음에도 “욕”을 듣기만 하면 급히 성질을 부리며 마음이 불편하고 행동도 불편했다. 심성을 지키지 못해 물건을 부수고, 인상을 쓰며, 화를 내며, 남편과 맞섰으니 내 수련이 얼마나 차(差)한 지 알 수 있다. 안으로 찾는 기제(機制)를 형성하지 못했고 일에 부딪혀 법으로 자신을 가늠하지 못했다.
둘째, 마음속 원망과 분노를 떨쳐 버릴 수 없었고, 속인처럼 작은 잘못도 반드시 복수하려는 마음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법리(法理)의 표준은 “아무 말 하지 않고 한번 웃고 지나가는” 것이다. 당시 내 상태는 “남과 따지고 눈물을 흘리며 미워하고 반드시 복수하려 했으며” 늘 다른 사람들의 잘못을 마음에 품고 그들을 미워했다. 비록 입으로 욕하진 않았지만 이에는 이로 맞섰고, 입으로 욕하진 않았지만 마음속으로는 욕을 했으니 욕을 한 것과 다를 바 없었고 오히려 남을 욕한 것보다 더 악독했다. 근본적으로 이 작은 관(關)을 넘기지 못했다.
모순을 만나면 담담히 웃고 몸을 돌리면 잊어버리고 더는 그것에 얽매이지 않고 미워하지 않으며 마음속에 법이 있어서 법의 표준에 따라 가늠하고 제때 사람 마음을 내려놓고 신속히 심성을 제거하는 이것이 수련 공부다. 모순이 지나간 후 내려놓지 못한다면 곧 “한번 웃고 지나가는” 표준으로 자신을 가늠하지 못한 것이다.
또한, 병이 낫지 않는 근본 원인은 심성이 제고해 올라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일이 바쁘지 않을 때는 하루 10시간 이상 법 공부와 연공을 한다. 자신이 아주 정진하는 것 같지만 책을 내려놓고 모순이 닥치기만 하면 늘 본 모습을 드러내는데 평소와 똑같이 하면서 남들과 다툰다. 공이 자라는 것을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피부병은 줄곧 낫지 않고 이미 3년 넘게 온몸이 가려운 발진이 생겼다. 왜 다른 사람들은 연공하면 병이 낫는데 나는 연공해도 좋아지지 않는가? 병마(病魔)는 속인 층차에서 속인을 제약하는 것으로 심성(心性)이 속인을 돌파하면 병마가 근본적으로 닿을 수 없고 병업(病業)도 자연히 물러난다. 병업이 좋아지지 않는 근본 원인은 심성 제고 여부에 달렸다. 정말로 부끄럽다. 20년을 넘게 수련했지만 이렇게 초급적인 법리마저 오늘에야 깨달았으니 나의 심성이 얼마나 낮은지 볼 수 있다.
법을 많이 외울수록, 안으로 찾을수록, 더욱 자책하고 부끄러워졌다. 사부님께서 내게 관(關)을 설치하셨고 남편이 나를 돕기 위해 연기했지만 나는 줄곧 깨닫지 못하고 법리로 가늠하지 못했다. 늘 사람 마음으로 가늠하고 사람의 행동으로 다퉜으니 이렇게 수련한다면, 20년이 더 지나도 여전히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분노와 억울의 감옥에 갇혀 있지 않겠는가? 그럼 수련을 헛되이 한 것이 아닌가? 사부님의 기대를 저버린 것이 아닌가? 중생을 해친 것이 아닌가?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법을 외우고 안으로 찾아야만 속인의 관념을 전변(轉變)할 수 있다. 나는 매일 이 단락의 법을 더 많이 외울 것을 자신에게 요구했다. 오직 마음속에 법리가 뿌리를 내려야만 속인의 분노와 억울을 근절할 수 있다. 나는 앞으로 “아무 말 하지 않고” “한번 웃고 지나가며” 모순을 대하리라 결심했다. 한번 웃고 지나감은 곧 바람따라 날려 보내는 것으로 그럼 이 일이 발생하지 않은 것과 같다.
그 후 나는 날마다 아침에 일어나면 이 법을 외우고, 걸어가면서도 외우고, 일하면서도 외우고, 잠들기 전에도 이 법을 외웠다. 외울수록 마음이 더 가벼워졌는데 마치 사부님께서 나를 받쳐 올려 승화된 것 같았고, 마치 근심 걱정이 사라진 것 같았으며, 마치 마음의 용량이 열린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이 하나의 관을 잘 넘기고 더는 사람 마음의 감옥에 갇혀 있지 않기를 원했다.
며칠 후, 친구와 함께 차를 타고 가는데 남편이 차에서 내게 말했다.
“당신은 빨래 외에는 아무것도 할 줄 몰라. 아무 일도 못 해. 할 줄 아는 일이 없어.”
그러자 친구가 말했다.
“늘 단점만 말하시면 안 돼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번에 나는 남편이 마치 나를 이야기한 것이 아니고, 그가 한 말이 나와 아무 관련이 없는 것 같았다. 내 심성이 제고되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나는 법으로 가늠했고, 그가 무엇을 말하든 다 정상이며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기자, 내 몸과 마음에 이미 상처를 줄 수 없었다.
더는 사람 마음으로 그를 판단하면서 ‘당신은 왜 친구 앞에서 나를 폄하하는가? 설마 집안일도 다 당신이 한단 말인가?’라고 하지 않았다. 심성이 정말로 잘 제고되자 마음이 트였고 밝아졌으며 더는 심하게 반응하거나 다투거나 맞서지 않았다. 최근 며칠 나는 늘 싱글벙글하는데 정말 행복하다.
나는 또 《전법륜》에서, ‘가늠[衡量 역주: 직역하면 저울로 무게를 달아본다는 의미]’이란 두 글자를 검색해 보니 수십 군데 나왔다. 수련에서 어느 한 층차의 이치로 자신을 가늠하고, 어느 한 층차의 표준으로 자신을 요구한다면 그럼 그 한 층차로 수련된 것이고 이 역시 수련의 비급(秘笈)이 아니겠는가!
여러분이 나를 교훈으로 삼아 빈정대고 조롱당하는 가운데 바보를 생각하면서 한 번 웃고 지나가서 덕(德)을 지키고 덕을 잃지 않아야만 심성을 지킬 수 있다. 이익의 모순 속에서 일거사득(一擧四得)을 생각하며 원망하거나 복수하지 않고, 진심으로 감사할 수 있어야만 심성을 제고할 수 있다. 만약 법의 표준으로 자신을 가늠하고 자신을 요구하는 것을 꾸준히 견지할 수 있다면 수련에서 돌비맹진(突飛猛進 날아가는 것처럼 빨리 전진함)할 것이며 공이 자라고 병이 제거되는 것 역시 자연스런 일이다.
작은 견해일 뿐이니 자비로운 시정을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57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