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천(清泉)
【정견망】
《전법륜》에서 사부님께서는 한신이 무뢰배의 도발에 맞서 사타구니 아래를 지나가는 굴욕을 견딘 대인지심(大忍之心)을 언급하셨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한신은 필경 속인이고 우리는 수련하는 사람이라, 우리는 그보다도 훨씬 나아야 한다. 우리의 목표는 속인의 층차를 벗어남에 도달하는 것이며, 더욱 높은 층차를 향해 매진(邁進)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런 일과 마주칠 수는 없겠지만, 수련인이 속인 중에서 굴욕을 당하고 수치를 당할 때도 꼭 이보다 못하지는 않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心性(씬씽) 중의 마찰은 이것만 못하지 않으며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다고 나는 말하는데, 역시 상당히 어려운 것이다.”
수련 중에서, 우리는 모두 모순 중에서 마음을 닦고 집착을 제거하는 어려움을 체험하는데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마찰 중에서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 수련인의 표준으로 자신을 요구하면서, 널리 관용하는 대인지심(大忍之心)으로 사람과 발생한 모순을 대해야 한다. 하지만 정법(正法) 수련 중에서 한가지 모순의 표현이 더욱 강렬한데 때로는 아주 극렬한 정도에 이르고 해결하기도 어렵다. 그것은 바로 동수와 동수 사이의 모순이다.
동수들이 대부분 알다시피 속인과 모순이 생기면 모두 심성을 지킬 생각을 하면서 수련인의 높은 표준으로 자신을 요구하고 속인과 같은 견식이 아니다. 하지만 동수 사이에 모순이 발생하면 종종 ‘당신은 수련인이 아닌가? 어찌 이럴 수 있는가? 어찌 수련인답지 않을 수 있는가? 마땅히 이렇게 해야 옳지 않은가!’라고 여긴다. 심지어 일부 동수들은 겉으로는 사이가 좋지만 마음 속으로는 오히려 풀지 못한 수많은 마음의 매듭이 숨어 있다.
13년 전, 우리 지역의 동수 A가 심장병 가상으로 갑자기 사망했다. 이 동수가 사망한 다음 날, 협조인 동수 B와 몇몇 다른 동수들이 불법 납치되어 판결을 받았다. A는 생전에 B가 일을 처리하는 방식 중 일부를 이해하지 못해 원망하고 비난했다. 동수 B도 아마 마음속에 불만이 있었을 텐데,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동수를 배척했다. 쌍방이 모두 법에서 구별하지 못했고 서로 결산하지 못하고 이 마음의 매듭을 줄곧 묻어놓았다.
13년 후, 협조인 동수 B도 심각한 병업가상이 나타났다. 이 기간에 B는 비록 법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바로잡고 관념을 바꿨지만, 결국 여전히 구세력의 배치를 벗어날 수 없었고 병업의 형식으로 세상을 떠났다. B는 죽기 전에 이렇게 담담히 고백했다.
“사악은 정체(整體)의 누락을 겨냥해 손을 썼고 아울러 다른 공간의 구세력이 이 일을 오랫동안 계획해 왔습니다.”
물론, 동수가 사망한 원인은 복잡하고, 단순히 동수 사이의 모순과 간격 때문만은 아니다. 그러나 만약 단독으로 이 각도에서 문제를 본다면, 대법제자들에게는 확실히 구세력이 만들어 낸 사기극의 가상(假相)이란 문제를 법에서 꿰뚫어 볼 수 있는가의 문제가 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대법제자 외부에서 오는 압력은 고험이자 정진의 기회이며, 대법제자 내부에서 오는 모순과 압력도 마찬가지로 고험이자 정진의 기회이다.”(《유럽법회에 보내는 축사》)
“대법제자가 서로 간에 홍법, 정법의 일로 늘 일부 논쟁을 하는 것은, 내 생각에 이는 모두 정상적이다. 하지만 끊임없이 논쟁하고 대치하면서 양보하지 않는 그것은 문제가 있다.”(《미국 플로리다 법회 설법》)
개인적인 깨달음은 동수 사이에 모순이 발생하는 것은 정상이지만, 모순 쌍방과 이를 목격한 제3자 모두 법에서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모(某) 동수가 정말 나쁜 게 아니라, 다른 공간의 사악한 생명이 틈을 타면서 간격을 만든 것이다. 여러분이 사악의 속임수를 꿰뚫어 볼 수 있어야 하며, 연극에 너무 깊이 끌려 들어가 사악에 코가 꿰여 동수 사이에 서로 원망하고, 비난하며, 서로 배척하고, 상대를 무너뜨리려 원한을 쌓는다면 이것이 바로 사악한 생명이 도달하려는 목적이다. 그것은 대법제자는 하나의 정체임을 잘 알기에 빈틈을 탄 것이다.
대법제자는 장차 천체(天體) 일방을 주관하는 대신(大神)·대각(大覺)으로 반드시 용량이 아주 커야만 일체를 포용할 수 있고, 자기 우주 범위 내부의 부족과 결함을 마주하고 법에서 닦아낸 지혜로 묵묵히 원용하고 보충해야 한다. 상호 배척하고 남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것은 바로 구세력의 표현이자 사악이 도달하려는 목적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대법제자의 관대(寬大)한 흉금이 일체를 참아낼 수 있다 해도 미래의 부동(不同)한 역사 중에서 부동한 일은 나타나게 마련인바, 이 한 부 우주대법은 부동(不同)한 역사시기, 부동한 층차의 중생에게 부동한 시기의 부동한 층차에서 문제가 나타났을 때 참조를 남겨놓은 것으로서, 생명에게 부동한 역사시기에 나타나는 각양각색(各種各樣) 상황에 대해 대처하는 방법을 남겨놓은 것이다. 즉 오늘날 나타난 각양각색 문제는 모두 역사에 남겨놓을 참조로서, 표현됨이 복잡하고 보기에 질서가 없으나 실제로는 아주 질서가 있다.”(《2001년 캐나다 법회설법》)
오늘, 무량(無量)한 신들이 지켜보는 정법(正法)의 무대에서 대법제자는 주인공이다. 무량한 뭇 신들이 대법제자의 일사일념을 지켜보고 있다. 대법제자가 누구든 원망하고 비난한다면 모두 정법의 요구 표준에 도달하지 못한 것으로 신우주(新宇宙)로 들어갈 수 없다. 정법이 최후에 도달했으니 우리는 정말로 우리의 내심을 한번 살펴봐야 한다. 아직도 우리가 무시하거나 원망하는 사람이 있진 않은가? 아니면 마음속에 아직도 작은 마음의 매듭이나 틀어짐이 숨어 있는 것은 아닌가? 이런 것들은 정법 중에서 절대적으로 제거해야 하는 것이다.
만약 한신을 괴롭힌 것이 사람 속의 무뢰한이었다면, 정법 중에서 대법제자 사이에 간격과 모순을 만드는 것은 동수가 아니라 정법에서 마의 역할을 하는 ‘우주 망나니’다. 대법제자는 명확하게 가려내, 미혹에 빠지지 말고, 속아 넘어가지 않고, 끊임없이 우리의 용량을 확대해야만 우리에게 무한한 희망을 기탁한 무량한 중생을 더 많이 포용하고 실을 수 있다.
이상은 우리 법공부 소조의 작은 인식이니 부족한 점이 있다면 자비로 시정해 주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57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