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명(自明)
【정견망】
주지하다시피 곤륜산에서 강자아(姜子牙)가 하산하기 전 원시천존(元始天尊)이 특별히 강자아에게 당부한다.
“가는 길에 누가 너를 부르더라도 절대 응대하지 말거라. 만약 응대하면 36방향에서 군대가 너를 정벌할 것이다. 그리고 동해(東海)에서 누가 너를 기다리고 있을 테니 조심 하거라.”
그 결과 신공표가 뒤에서 부르자 처음 두 번은 돌아보지 않았지만, 신공표가 세 번째로 인정(人情)을 내세우며 “너는 매정하게도 옛 친구를 잊었구나. 이제 승상이 되어 신하로서 가장 높은 자리에 있다고 옥허궁에서 40년간 함께 도를 배운 나를 잊고 오늘 이렇게 여러 번 부르는데도 대답조차 하지 않다니.”라고 하자 사부님의 말씀보다 인정을 더 중시해 뒤를 돌아보았고 결과적으로 수많은 번거로움을 초래했다.
그렇다면 우리에겐 이런 의문이 생긴다. 원시천존의 능력이라면 분명 강자아의 경지에서 반드시 뒤돌아보고 36방향의 정벌을 초래할 것임을 알았을 것이다. 기왕에 이미 정해진 수(數)가 있다면 원시천존이 이렇게 당부하는 말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사실, 많은 사람의 추측과 달리 이는 원시천존이 제자인 강자아가 떠나기 전에 또 한 차례 교훈을 준 것이다. 바로 자신의 인식으로 사부의 말이 옳고 그름을 생각하지 말고, 그 어떤 상황에서도 백분의 백 집행하는 것만이 가장 옳은 것이며, 그렇지 않으면 마난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어떤 계발을 주는가? 사람 속에서 우리 대부분은 모두 이런 습관이 있는데 늘 백분의 백 에누리 없이 법(法)에 따라 실천하기보다는 늘 자신의 인식과 이해에 따라 일을 한다. 즉, 우리가 이해할 수 있고 자신의 관념에 일치하는 것은 그렇게 하고, 이해하지 못하거나 자신의 관념과 선호하는 표준에 맞지 않는 것은 하지 않거나 절충해서 한다. 우리가 비록 36번의 정벌을 받진 않았지만 법에 따라 하지 않아 초래한 마난은 36번의 정벌보다 훨씬 많았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백분의 백 법(法)을 믿는다고 말하는데 말은 이렇게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하는 사람은 몇이나 되는가? 예를 들어 발정념을 말하자면 자신의 일념(一念)이 산을 가를 수 있다고 실제로 믿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고 의식적으로 이런 신념(信念)을 강화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가? 우리는 모두 자신의 정념을 강하게 만들고 싶어 하지만 신념이 강하지 않은데 어떻게 정념이 강해질 수 있는가? 우리의 낮은 인식과 관념으로 우리가 법에 동화하고 법을 실증하는 것을 방해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에게 교류 기회를 제공해준 대법 플랫폼에 감사하며, 나 역시 종종 교류 문장에서 계발을 받았으니 받기만 해선 안 되니 나도 교류에 좀 기여할 생각에 작은 경험을 써낸다. 함께 교류하고 기여해 준 여러분에게 감사드린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58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