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제자
【정견망】
요즘 학생들의 수준이 점점 더 낮아지고 있다. 매년 학습을 포기하는 학생들의 수가 증가하는데 올해 내가 가르치는 학급의 일부 학생들이 학습을 싫어하며 수업 시간에 떠들기까지 했다. 나는 매번 수업마다 학생들에게 한 가지 이치를 설명해 학생들의 좋지 않은 사상을 바로 잡아주지만 아이들의 상태는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었다. 나중에 나는 이것이 전적으로 학생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구세력이 상생상극(相生相剋)의 이치를 이용해 평형을 이루려 하기 때문임을 깨달았다.
대법제자가 대법의 법리에 따라 하는 것이 정(正)이라면, 그것들은 학생들을 이용해 부(負)의 것들을 만들어 낸다. 사부님께서는 “정(正)적인 것이 있으면 부(負)적인 것이 있고, 좋은 것이 있으면 나쁜 것이 있다.”(《유럽법회설법》)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나는 이런 부면(負面)적인 표현에 대해 마땅히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는 일정압백사(一正壓百邪 하나의 올바름이 백 가지 삿된 것을 제압한다)를 떠올렸다.
나는 교재의 내용을 이용해서 그것 배후에 담긴 함의를 깊이 생각한 후 학생들을 이끌어 표면적인 의미를 더 깊이 깨닫게 하고, 학생들의 사상 경지를 제고시켰다.
예를 들어, 러시아를 가르칠 때, 교과서 제목은 “러시아는 세계적인 에너지 강국이다.” 표면적으로 보면, 에너지 강국은 경제 발전을 위해 우월한 조건을 제공하는 것처럼 보이고 풍부한 에너지 자원을 가진 나라는 활력이 넘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나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학생들에게 더 깊이 생각하도록 이끈다. 사람도 “에너지원”이 필요하다. 사람의 에너지원은 사람의 정신 즉 정확한 사상인 도(道)에서 내원한다. 그것이 바로 올바른(正) 에너지이고 그것이 있는 사람은 활력과 지혜가 있고 부유한 등이다. 나는 또 이전에 학생들에게 올바른 이치[正理]를 전부 보여주었다. 가령 책임감 있는 학습, 존중하는 마음으로 학습, 정정당당하게 학습, 자신이 학습할 수 있고, 제고하고 선(善)을 향한 학습 등을 가르쳤다.
내가 단번에 많은 법리를 말하자 학급 전체가 올바른 에너지로 충만했고 평소 공부를 하지 않던 학생들도 정신을 차렸고 또 펜을 들어 필기하기 시작했다. 전체 수업이 그야말로 일정압백사였고 정념(正念)이 나오자 부면(負面)적인 좋지 않은 사상 요소가 완전히 사라졌다.
수업이 끝나고 학생들에게 “이번 수업은 어땠니?”라고 물어보니 예외 없이 좋았다고 답했다. 그런 다음 다시 물었다.
“이번 수업에서 바른 에너지를 느낀 사람이 있으면 손 들어 보세요?”
내가 학급을 둘러보니 거의 모든 학생들이 손을 들었는데 그들의 얼굴에는 흥분과 기쁨으로 가득했다.
이 일을 통해 나는 정법 수련자의 에너지장은 순수하고 상화(祥和)하며 자비롭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다. “그러므로 과거에 불교 중에는 이런 한마디 말이 있다. “불광이 널리 비치니, 예의가 원만하고도 밝도다(佛光普照, 禮義圓明).”라고 한 것은, 바로 이 뜻이다.”(《전법륜》)
부면(負面) 생명 요소와 마주해, 우리는 상생상극의 이치에 속수무책으로 당해선 된다. 대법의 순정(純淨)한 이치로 일체 바르지 못한 것들을 바로 잡고 일정압백사(一正壓百邪)하고 조사정법(助師正法)하는 것은 또한 사부님을 도와 중생을 구도하는 것이다.
내가 이해하기에 정법 중에서 보면 구세력은 상생상극의 이런 이치를 이용해 이번 박해를 만들어 냈으니, 우리가 대법의 각도에 서서 구우주(舊宇宙) 생명의 각종 표현을 보면 구우주 생명을 이해할 수 있다. 그것들이 성, 주, 괴, 멸의 규율(規律)에 따라 괴(壞)로 나아갈 때, 그것들이 나쁘게 변하려 하지 않아도 모두 안 되고, 훼멸 되지 않으려 해도 안 된다. 왜냐하면 이것은 구우주의 규율이기 때문이다. 층차가 아무리 높다 해도, 그 누구도 해체될 운명을 바꿀 수 없다.
정법 중에서 우리는 구세력의 이런 절대적인 일정일부(一正一負)의 배치를 인정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정법 중에서 정법에 대해 부면(負面) 작용을 일으키는 것들은 장차 도태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신이 정(正)의 생명이든 부(負)의 생명이든 막론하고 대법제자는 모두 대법의 지도 아래 중생을 구도해야 하며, 모든 중생을 자비롭게 구도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상생상극의 이치 속에 있지 않아 그것에 제약당하지 않을 수 있다.
마치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다.
“나는 역사상 일체 생명의 과거의 잘못을 따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주가 전부 나쁘게 되어, 생명은 전부 성(成), 주(住)시기의 생명과 비교할 수 없게 되었으므로 나도 이 좋지 않은 중에서 누가 누구보다 좋은지 더는 가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어쨌든 모두 구도하려고 한다. 오직 그가 정법 자체에 죄를 범하지 않으면, 나는 그들을 모두 구도할 수 있다. 나는 이런 원칙을 정해 놓고 이 일을 하고 있다.”(《각지 설법 2》 〈2003년 캐나다 밴쿠버 법회 설법〉)
우리는 구세력이 상생상극의 이치를 절대적으로 이용해서 하는 정법을 교란하는 일체 배치를 승인하지 않는데 부면(負面) 생명의 행동을 무작정 감당할 것이 아니라 조사정법하고 사부님을 도와 중생을 구도[助師救度衆生]해서 정면(正面)적으로 걸어나와야 한다. 대법제자가 깨달은 순정한 대법 법리로 일체 바르지 못한 것들을 바로잡아야 하며 일정압백사(一正壓百邪) 해야 한다! 중생이 정법(正法) 중에서 죄를 짓는 것을 피하게 해서 중생이 구도 받을 기회를 주어야 한다.
이상은 개인적으로 착실한 수련을 통해 깨달은 것으로 이를 적어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