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대법제자
【정견망】
남편은 수련인이다. 자식들과 손주들은 모두 따로 살고, 평소에는 우리 두 부부가 방 두 칸짜리 집에서 산다. 남편은 햇볕이 잘 들고 넓은 안방에 살고 나는 햇빛이 들지 않는 북쪽 작은 방에 산다.
남편은 매우 꼼꼼한 사람이고 조용한 것을 좋아해서 다른 사람에게 방해받는 것을 싫어한다. 때문에 나는 평소 집에서 이런 일에 신경을 많이 쓴다.
올해 초봄 날씨는 특히 복숭아꽃이 피다가 갑자기 기온이 다시 영하로 떨어지는 등 날씨가 평범하지 않았다. 난방이 중단된 후 방안은 아주 추웠다. 날씨가 추워져서 나는 아침에 집안청소를 마치고 안방에 가서 책을 읽었다. 속으로 ‘안방이 따뜻하고, 햇빛도 좋고, 소음도 없으니 남편에게 영향을 주지 않을 테니 별일 없을 거야’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거기서 책을 보면 남편은 책을 보지 않고 거실에 나가 라디오를 듣거나 오두막에 가곤 했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오두막에 가지 말고 여기서 보세요”
남편이 말했다.
“오두막은 춥지 않아요”
며칠이 지나자 나는 뭔가 문제가 있고 공간장이 상화롭지 않음을 느꼈다. 마치 내 행동에 대해 남편이 불만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일부러 했든 모르고 했든 남편을 건드린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나는 별로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을 돌아봐도 잘못이 없다고 여겨 무시한 것이다. 이렇게 며칠이 지나자 서서히 내 마음도 침울해졌고 얼굴에도 어느 순간 웃음이 사라졌으며 동시에 피로한 상태가 나타났다.
이때 나는 자리에 앉아 지난 며칠 동안 내가 한 생각과 행동들을 꼼꼼하게 돌이켜보았고 그제서야 남편을 방해한 것이 나였음을 똑똑히 알았다.
이어서 또 생각이 올라왔다.
“당신은 무슨 이유로 넓은 안방에 살고, 나는 작은 방에 사는가? 당신이 안방에 살아도 되고 나도 따지지 않지만, 최근 며칠 날씨가 추워져서 가서 책을 좀 보는 것도 안 되는가? 안방은 원래 내가 차지해야 한다, 전통적으로 남자는 자기 아내를 사랑으로 돌봐야 하는데 당신은 반대로 하고 있고 내가 늘 당신을 돌봐야 한다. 내가 당신 마음에 들어야 하고 당신을 즐겁게 해야 하는데 이게 습관이 되니 이런 일이 생긴 게 아닌가?”
이 생각을 다 듣고 나는 깜짝 놀랐다. 어떻게 그런 불선(不善)한 말을 할 수 있는가? 가만히 그것을 바라보다 나는 똑똑히 깨달았다. 그것은 “진선인(真善忍)”으로 구성된 진아(真我)의 생각이 아니라 변이된 관념이 이번 일을 통해 드러난 것이다. 그것은 이기적이고 법에 부합하지 않는 것으로 악(惡)한 일면이 나온 것이다.
대법제자의 사명은 중생을 구도하는 것으로 올바르지 않은 것들은 모두 법(法)에서 바로잡아야 한다. 대법은 우리에게 무사무아(無私無我) 선타후아(先他後我)의 생명으로 성취할 것을 요구하는데 나는 어떻게 했는가? 나는 남편이 방해받기 싫어하는 성격임을 뻔히 알면서도 여전히 날씨가 추우니 괜찮을 거라고 자기 위주로 생각했다. 남을 위하는 생명이 어디 날씨를 따지고 무슨 조건을 따지겠는가? 이것은 분명 고생을 두려워하고 편안한 생활을 포기하고 싶어하지 않는 내 관념이 건드려진 것이다. 지금 내가 깨달은 것은 수련은 정말 아주 엄숙한 것으로 아주 사소한 사람 마음과 관념조차도 모두 내려놓아야 하며, 문제가 없다고 여기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배후에 건드려진 것이 어쩌면 무량한 중생이 구도 받는 것일지 모른다.
오늘 나는 오두막을 한 번 청소하고, 내 작은 방으로 돌아갔다. 마실 물도 미리 준비해서 특별한 일이 없으면 방에서 나가지 않았다. 정오가 되어 점심을 준비할 때에야 밖에 나갔다. 남편이 원하는 것이 조용함이니 내가 할 것은 가급적 일을 적게 하는 것이다.
전에 나는 오두막은 좁고 춥다는 관념이 있어서 가고 싶지 않았고 늘 거실 소파에 앉아 책을 보거나 문장을 보았다. 이번에 오두막에 가서 심득 체험을 써보니 아주 조용하고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남편 동수도 달라졌다. 내가 문장을 쓸 때 남편이 오두막에 와서는 나더러 점심에 뭘 먹고 싶냐고 묻더니 점심을 준비했다. 내 관념이 변하자 모든 게 다 달라졌다.
어떤 동수가 교류하면서 “시시각각 안으로 찾으면 모든 장애와 마난(魔難)이 다 푸른 구름 위로 올라갈 사다리로 변하고 이런 때에야 비로소 진정으로 ‘수련’이란 두 글자를 이해할 수 있다.”라고 말한 것이 떠올랐다.
최근 개인이 수련하면서 얻은 작은 깨달음이니 틀린 곳이 있다면 자비로 시정해 주기 바란다.